법구경, 「폭력품」

129 모두가 폭력[1]“daṇḍa”는 구상적으로는 ‘막대기, 지팡이, 몽둥이’를 뜻하며, 그 용도상 ‘형벌, 타격, 폭력, 위협’ 등의 뜻으로 전용되어 쓰인다. 따라서 이 품의 “폭력”, “막대기” 등의 번역어는 팔리어로는 동일한 것이다. 앞에서 떨며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한다.[2]제129송의 1-2구는 「밀린다왕문경」에서 세존의 말씀으로 언급된다: “대덕 나가세나여, 세존께서는 ‘모두가 폭력 앞에서 떨며,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설하셨습니다.” 이로 미루어볼 때 밀린다왕과 존자 나가세나의 문답은 「법구경」의 결집・유통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모두를] 자신과 다름없이 여기고
죽이거나 죽이게 하지 말라.

130 모두가 폭력 앞에서 떨며
모두의 생명이 소중하다.
[모두를] 자신과 다름없이 여기고
죽이거나 죽이게 하지 말라.[3]제129송과 제130송의 3-4구는 「숫타니파타」 제705송과 동일한다: “나를 대하듯 그들을 대하고/ 그들을 대하듯 나를 대하여/ 자신과 다름없이 여기고/ 죽이거나 죽이게 하지 말라.” 「숫타니파타」의 게송은 아시타 선인仙人의 제자인 날라카에게 세존께서 직접 설하신 것이다.

131 안락을 바라는 존재들을
폭력으로 해치는 자,
그러면서도 자신의 안락을 추구하는 자는
죽어서 안락을 얻지 못한다.

132 안락을 바라는 존재들을
폭력으로 해치지 않는 자,
그러면서 자신의 안락을 추구하는 자는
죽어서 안락을 얻는다.[4]제131송~제132송은 「자설경」 1.13, “폭력경”과 동일하다. 세존께서 사밧티로 걸식하러 가실 때 아이들이 막대기로 뱀을 죽이는 것을 보시고 송하신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안락을 바라는 존재들”은 사람 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가리킨다. 제129송의 “모두가 폭력 앞에서 떨며/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한다”, 제130송의 “모두의 생명이 소중하다”에서 “모두” 역시, 움직이는 생물이든 움직이지 않는 생물이든 불문하고 생명을 가진 일체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133 누구에게도 거칠게 말하지 말라,
들은 자가 거칠게 답할 것이니!
과격한 발언은 괴로운 것,
그 발언을 두고 되갚는 자 있으리라.

134 부서진 징이 울리지 않듯
그대 스스로(我)가 울리지 않는다면
이는 열반에 이른 것!
더 이상 쟁쟁거림 없어라.[5]제133송과 제134송은 “되갚음”이라는 낱말로써 이 품의 핵심어인 “폭력”과 연결되어 있다. “되갚음(paṭidaṇḍā)”이라는 복합어를 풀자면, “폭력(daṇḍa)에 폭력으로 되갚음”을 뜻한다. “폭력에 폭력으로 되갚음”은 “과격한 발언(sārambhakathā)”과 “되갚음”(제133송)이라는 심리적 반응과, ‘징을 때림’과 “쟁쟁거림”(제134송)이라는 물리적 반응으로 설명된다. 이 반응, 이 울림, 이 쟁쟁거림, 이 되갚음이 없는 것이 곧 열반이다. 열반은 “我”가 부서져 더 이상 울림을 형성하지 않는 것이다.

135 목동이 막대기로
소들을 목장으로 몰아가듯,
늙음과 죽음이
살아 있는 것들의 목숨을 몰아간다.

136 어리석은 자는 악업을 지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명철하지 못한 자는 자신의 업에 의해
불에 타듯 괴로워한다.

137 비폭력적이고 흠 없는 자들을
폭력으로 괴롭히는 자는
열 곳 중 어느 곳으로
신속하게 떨어지나니 ―

138 격심한 느낌(受),
육체의 손상과 파멸,
중한 질병, 그리고
心의 혼란을 당할 것이며,

139 왕의 공격,
강한 비판,
친족 몰락,
재산 손실을 당할 것이며,

140 타오르는 불길이
집들을 태우고,
그는 몸(身)이 무너진 뒤
지혜(慧)가 없는 자로서 지옥에 들어설 것이다.

141 나체로 다님도 결발結髮도 진흙을 바름도,
단식도 맨땅에서 잠도,
먼지도 오물도 쪼그려 앉음도,
욕망을 건너지 못한 인간을 정화하지는 못한다.

142 단장한 자[6]제142송의 “단장한 자(alaṃkato)”는 제141송의 나체수행 등을 하는 고행자를 대비시킨 것이다. 출가비구는 장식과 꾸밈을 금한다는 점에서 “단장한 자”를 재가자로 읽을 수도 있으나, 이와 같은 대비를 고려하면, 옷을 입거나 몸을 씻는 것 자체를 두고 “단장한 자”로 칭한 것일 수도 있다. 앞서 다른 품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법구경」은 앞뒤 송을 한 주제로 엮어 읽을 때 그 뜻이 해명되는 경우가 많다.라도 고요하게 노닌다면
그는 평온한 자, 길든 자, 차분한 자, 범행자梵行者!
일체 존재에 대해 폭력을 내려놓으면[7]“일체 존재에 대하여 폭력을 내려놓다”는 표현은 경 여러 곳에서 언급된다. 그중 유명한 것으로는 중부 「앙굴리말라 경」, “앙굴리말라여, 나는 영원히 멈춘 자로다,/ 일체 존재에 대하여 폭력을 내려놓았으니!”(M ii.99)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제142송과 유사한 게송으로는 「숫타니파타」 제629송, “움직이는 존재든 움직이지 않는 존재든/ 그들에 대하여 폭력을 내려놓아/ 죽이지도 죽이게 하지도 않는 자,/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가 있으며, 이는 「법구경」 제405송으로도 결집되었다.
그가 바라문, 그가 사문, 그가 비구여라!

143 세간에서 부끄러움을 알고
삼가는 사람이 누구더냐?
좋은 말이 채찍을 부르지 않듯
비난을 사지 않는 자여라.

144 좋은 말이 채찍을 맞으면
열심히 빠르게 달리듯이,
신심과 계戒와 정진으로,
정定과 택법擇法[8]“택법擇法”은 칠각지 중 하나로서, 지혜로 ‘선법/불선법’, ‘흑법/백법’을 갈라내어(擇) ‘선법, 백법’의 갈림길에 들어 노닐며(伺) 그 법을 밀밀히 살피는 것(思量)을 말한다(S v. 68; S v. 104 참고). “택법각지”는 팔지성도의 “정견”에 속하는 것(M 117)이기도 하다. 흑법/백법에 대해서는 제87송 주석 참조.으로,
명행明行을 갖추고[9]“명행을 갖춘 자(sampannavijjācaraṇo)”라는 뜻의 “명행족明行足”은 여래의 십대 명호 중 하나이다. 낱말 그대로 풀이하면, “명행”이란 ‘무명無明을 타파하고 명明 속에서 노니는 것’을 뜻한다. 유념함으로써,
이 많은 괴로움을 없애버려라!

145 수로를 내는 자들은 물을 끌어들이고
화살 만드는 자들은 화살대를 곧게 만들고
목수들은 목재를 곧게 다듬고
덕행자들은 자신을 길들인다.[10]「법구경」 제80송과 동일한 형식의 게송이다. 제80송 주석 참조.

129 sabbe tasanti daṇḍassa sabbe bhāyanti maccuno,
attānaṃ upamaṃ katvā na haneyya na ghātaye.

130 sabbe tasanti daṇḍassa sabbesaṃ jīvitaṃ piyaṃ,
attānaṃ upamaṃ katvā na haneyya na ghātaye.

131 sukhakāmāni bhūtāni yo daṇḍena vihiṃsati
attano sukham esāno pecca so na labhate sukhaṃ.

132 sukhakāmāni bhūtāni yo daṇḍena na hiṃsati
attano sukham esāno pecca so labhate sukhaṃ.

133 mā voca pharusaṃ kañci vuttā paṭivadeyyu taṃ,
dukkhā hi sārambhakathā paṭidaṇḍā phuseyyu taṃ.

134 sace neresi attānaṃ kaṃso upahato yathā
esa patto si nibbānaṃ sārambho te na vijjati.

135 yathā daṇḍena gopālo gāvo pāceti gocaraṃ
evaṃ jarā ca maccu ca āyuṃ pācenti pāṇinaṃ.

136 atha pāpāni kammāni karaṃ bālo na bujjhati,
sehi kammehi dummedho aggidaḍḍho va tappati.

137 yo daṇḍena adaṇḍesu appaduṭṭhesu dussati
dasannam aññataraṃ ṭhānaṃ khippam eva nigacchati.

138 vedanaṃ pharusaṃ jāniṃ sarīrassa ca bhedanaṃ
garukaṃ vāpi ābādhaṃ cittakkhepaṃ va pāpuṇe.

139 rājato va upassaggaṃ abbhakkhānaṃ va dāruṇaṃ
parikkhayaṃ va ñātinaṃ bhogānaṃ va pabhaṅguṇaṃ.

140 athav’ assa agārāni aggī ḍahati pāvako,
kāyassa bhedā duppañño nirayaṃ sopapajjati.

141 na naggacariyā na jaṭā na paṃkā nānāsakā thaṇḍilasāyikā vā
rajo va jallaṃ ukkuṭikappadhānaṃ sodhenti maccaṃ avitiṇṇakaṃkhaṃ.

142 alaṃkato ce pi samaṃ careyya santo danto niyato brahmacārī
sabbesu bhūtesu nidhāya daṇḍaṃ so brāhmaṇo so samaṇo sa bhikkhu.

143 hirīnisedho puriso koci lokasmi vijjati
yo nindaṃ appabodhati asso bhadro kasām iva.

144 asso yathā bhadro kasāniviṭṭho ātāpino saṃvegino bhavātha.
saddhāya sīlena ca viriyena ca samādhinā dhammavinicchayena ca
sampannavijjācaraṇā patissatā pahassatha dukkham idaṃ anappakaṃ.

145 udakaṃ hi nayanti nettikā usukārā namayanti tejanaṃ
dāruṃ namayanti tacchakā attānaṃ damayanti subbatā.

* 각주   [ + ]

1. “daṇḍa”는 구상적으로는 ‘막대기, 지팡이, 몽둥이’를 뜻하며, 그 용도상 ‘형벌, 타격, 폭력, 위협’ 등의 뜻으로 전용되어 쓰인다. 따라서 이 품의 “폭력”, “막대기” 등의 번역어는 팔리어로는 동일한 것이다.
2. 제129송의 1-2구는 「밀린다왕문경」에서 세존의 말씀으로 언급된다: “대덕 나가세나여, 세존께서는 ‘모두가 폭력 앞에서 떨며,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설하셨습니다.” 이로 미루어볼 때 밀린다왕과 존자 나가세나의 문답은 「법구경」의 결집・유통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3. 제129송과 제130송의 3-4구는 「숫타니파타」 제705송과 동일한다: “나를 대하듯 그들을 대하고/ 그들을 대하듯 나를 대하여/ 자신과 다름없이 여기고/ 죽이거나 죽이게 하지 말라.” 「숫타니파타」의 게송은 아시타 선인仙人의 제자인 날라카에게 세존께서 직접 설하신 것이다.
4. 제131송~제132송은 「자설경」 1.13, “폭력경”과 동일하다. 세존께서 사밧티로 걸식하러 가실 때 아이들이 막대기로 뱀을 죽이는 것을 보시고 송하신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안락을 바라는 존재들”은 사람 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가리킨다. 제129송의 “모두가 폭력 앞에서 떨며/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한다”, 제130송의 “모두의 생명이 소중하다”에서 “모두” 역시, 움직이는 생물이든 움직이지 않는 생물이든 불문하고 생명을 가진 일체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5. 제133송과 제134송은 “되갚음”이라는 낱말로써 이 품의 핵심어인 “폭력”과 연결되어 있다. “되갚음(paṭidaṇḍā)”이라는 복합어를 풀자면, “폭력(daṇḍa)에 폭력으로 되갚음”을 뜻한다. “폭력에 폭력으로 되갚음”은 “과격한 발언(sārambhakathā)”과 “되갚음”(제133송)이라는 심리적 반응과, ‘징을 때림’과 “쟁쟁거림”(제134송)이라는 물리적 반응으로 설명된다. 이 반응, 이 울림, 이 쟁쟁거림, 이 되갚음이 없는 것이 곧 열반이다. 열반은 “我”가 부서져 더 이상 울림을 형성하지 않는 것이다.
6. 제142송의 “단장한 자(alaṃkato)”는 제141송의 나체수행 등을 하는 고행자를 대비시킨 것이다. 출가비구는 장식과 꾸밈을 금한다는 점에서 “단장한 자”를 재가자로 읽을 수도 있으나, 이와 같은 대비를 고려하면, 옷을 입거나 몸을 씻는 것 자체를 두고 “단장한 자”로 칭한 것일 수도 있다. 앞서 다른 품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법구경」은 앞뒤 송을 한 주제로 엮어 읽을 때 그 뜻이 해명되는 경우가 많다.
7. “일체 존재에 대하여 폭력을 내려놓다”는 표현은 경 여러 곳에서 언급된다. 그중 유명한 것으로는 중부 「앙굴리말라 경」, “앙굴리말라여, 나는 영원히 멈춘 자로다,/ 일체 존재에 대하여 폭력을 내려놓았으니!”(M ii.99)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제142송과 유사한 게송으로는 「숫타니파타」 제629송, “움직이는 존재든 움직이지 않는 존재든/ 그들에 대하여 폭력을 내려놓아/ 죽이지도 죽이게 하지도 않는 자,/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가 있으며, 이는 「법구경」 제405송으로도 결집되었다.
8. “택법擇法”은 칠각지 중 하나로서, 지혜로 ‘선법/불선법’, ‘흑법/백법’을 갈라내어(擇) ‘선법, 백법’의 갈림길에 들어 노닐며(伺) 그 법을 밀밀히 살피는 것(思量)을 말한다(S v. 68; S v. 104 참고). “택법각지”는 팔지성도의 “정견”에 속하는 것(M 117)이기도 하다. 흑법/백법에 대해서는 제87송 주석 참조.
9. “명행을 갖춘 자(sampannavijjācaraṇo)”라는 뜻의 “명행족明行足”은 여래의 십대 명호 중 하나이다. 낱말 그대로 풀이하면, “명행”이란 ‘무명無明을 타파하고 명明 속에서 노니는 것’을 뜻한다.
10. 「법구경」 제80송과 동일한 형식의 게송이다. 제80송 주석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