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제22품, “지옥”

306 사실과 달리 말하는 자는 지옥[1]“지옥(naraya)”과 “천상(sagga)”은 대립어이다. 일반적으로 경에서는 오계五戒 등을 어기는 자는 “지옥”에 놓이고, 그와 반대로 오계 등을 지키는 자는 “천상”에 놓인다고 가르친다.으로 가나니,
저지르고서도 ‘내가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도 마찬가지!
그들 둘은 죽어서 타처他處에서도 똑같이
저열한 업의 인간들이 된다.[2]「자설경」 제4.8경, “순다리 경”의 게송이다. 외도들이 부처님과 승단을 시기하여 고의로 살인을 저지르고 승단을 모함하였을 때, 부처님께서 자설하신 게송이다. 그러므로 이때의 “사실과 달리 말하는 자(abhūtavādin)”라 함은, 살인을 저지른 자들이 불교 승단에 누명을 씌우고 악소문을 퍼트린 일화와 관련된 것이다. 이와 같은 게송의 인연을 고려하고, 또 부처님 재세시 비구들이 어지간한 경은 대부분 암기하고 있었음을 고려하면, 제306송의 게송이 평담한 언어로 구성된 듯하여도 악랄한 일화와 함께 간직되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여시어경」 제2.2.11경, “지옥에 떨어지는 자 경”에도 이 게송이 결집되어 있다. 이 경에 따르면, 범행자梵行者가 아니면서 ‘범행자’라고 사칭하거나 ‘진짜 범행자’를 ‘터무니없는 비범행자非梵行者’라고 비방하는 자를 가리켜 “사실과 달리 말하는 자”라 했다. 요컨대 두 경의 인연으로 보건대 “사실과 달리 말함(abhūtavādin)”이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살인을 저지르고 남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범행梵行”의 실천 여부, 즉 자신과 남의 공부수준을 거짓되게 말하는 것이다. 청정범행을 사칭하는 것과 살인을 저지르고 누명을 씌우는 것이 동급으로 얘기되고 있다.

307 가사를 걸치고도
수많은 악법을 조심하지 않는 자들 ―
그들은 악한 자들로서
악업에 의해 지옥에 들어선다.

308 차라리 화염처럼 뜨거운
쇳덩이를 삼키는 게 낫다,
계행이 나쁘고 조심함이 없으면서
나라의 걸식을 먹느니![3]제306송~제308송 세 송은 앞서 언급한 「여시어경」 제2.1.11경의 게송 세 송을 그대로 결집한 것이다. 이 경은 범행자梵行者가 아니면서 ‘범행자’라고 사칭하는 자, 그리고 ‘진짜 범행자’를 두고 ‘터무니없는 비범행자非梵行者’라고 비방하는 자를 향한 설파이다. 이들 두 부류는 “가사를 걸치고도 수많은 악법을 조심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리고 「여시어경」 제3.5.2경에도 제307송~제308송이 결집되어 있다. 이 경 역시 출가비구가 되어 사문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는 자들을 향한 설파이다. 그러므로 제307송~제308송은 출가자가 되어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서 걸식하느니, 차라리 “뜨거운 쇳덩이”를 삼키는 게 낫다는 가르침이다.

309 방일하여 남의 아내를 가까이하는 사람은
네 경우를 당하리니 ―
박복薄福과 불안한 잠,
셋째는 비난, 넷째는 지옥이다.

310 두려움에 떠는 남녀의 즐거움은 짧으며
박복과 악도惡道가 있다.
왕은 무거운 형벌을 내리나니
남자는 남의 아내를 더는 가까이하지 못하리라.

311 잘못 잡은 쿠사 풀이
손을 베어버리듯,
잘못 잡힌 사문생활이
지옥으로 끌고 간다.

312 흐트러진 행업도
오염된 금禁도
깨진 범행梵行도
큰 결실이 없다.

313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행하라,
그것을 굳세게 힘쓰라!
흐트러진 출가자는
티끌먼지 자욱이 뿌리나니.

314 악행은 짓지 않는 게 낫다,
악행이 훗날 고통을 주나니!
선행은 짓는 게 낫다,
선행을 지으면 고통을 주지 않나니![4]제311송~제314송은 「상응부」 제2.8경, “타야나 경”에서 천인 타야나가 송한 다섯 송에서 네 송을 고른 것이다. 게송의 순서를 달리했다. 아울러 제312송은 「장로게」의 “사비야 장로게” 제277송으로도 결집되어 있다.

315 변방의 요새가
안팎으로 지켜지듯이
스스로를 지키라,
한순간도 놓치지 말라!
한순간이라도 놓친 자들은
지옥으로 들어가며 슬퍼한다.[5]「장로게」에 결집된 “사리풋타 장로게” 삼십송 중에서 제1005송을 취한 것이다.

316 부끄럽지 않은 일을 부끄러워 하고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자들 ―
그들은 사견邪見을 받아들인 중생,
악도惡道[6]경에서는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천상세간”이라는 “오도五道”가 언급된다(「중부」 제12경, 「중부」 130경 등 참고). 이중에서 정견업正見業을 받아들인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천상세간”(선도善道)이나 “인간들” 중에 태어나고, 사견업邪見業을 받아들인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지옥, 아귀, 축생”이라는 삼악도三惡道에 태어난다고 가르친다. 고대한역에서는 “선취善趣, 악취惡趣”로 번역했다.로 간다.

317 두렵지 않은 일에서 두려움을 보고
두려운 일에서 두렵지 않음을 보는 자들 ―
그들은 사견을 받아들인 중생,
악도로 간다.

318 허물 없는 일에 허물을 짓고
허물에서 허물 없음을 보는 자들 ―
그들은 사견을 받아들인 중생,
악도로 간다.

319 허물을 허물로 알고
허물 없음을 허물 없음으로 아는 자들 ―
그들은 정견을 받아들인 중생,
선도善道로 간다.

306 abhūtavādī nirayaṃ upeti yo vāpi katvā na karomi c’ āha
ubho pi te pecca samā bhavanti nihīnakammā manujā parattha.

307 kāsāvakaṇṭhā bahavo pāpadhammā asaññatā,
pāpā pāpehi kammehi nirayaṃ te upapajjare.

308 seyyo ayoguḷo bhutto tatto aggisikhūpamo
yañ ce bhuñjeyya dussīlo raṭṭhapiṇḍaṃ asaññato.

309 cattāri ṭhānāni naro pamatto āpajjatī paradārūpasevī:
apuññalābhaṃ na nikāmaseyyaṃ nindaṃ tatīyaṃ nirayaṃ catutthaṃ.

310 apuññalābho ca gatī ca pāpikā bhītassa bhītāya ratī ca thokikā
rājā ca daṇḍaṃ garukaṃ paṇeti, tasmā naro paradāraṃ na seve.

311 kuso yathā duggahīto hatthaṃ evānukantati
sāmaññaṃ dupparāmaṭṭhaṃ nirayāy’ upakaḍḍhati.

312 yaṃ kiñci saṭhilaṃ kammaṃ saṃkiliṭṭhañ ca yaṃ vataṃ
saṃkassaraṃ brahmacariyaṃ na taṃ hoti mahapphalaṃ.

313 kayirañ ce kayirāth’ enaṃ daḷham enaṃ parakkame,
saṭhilo hi paribbājo bhiyyo ākirate rajaṃ.

314 akataṃ dukkataṃ seyyo pacchā tapati dukkataṃ,
katañ ca sukataṃ seyyo yaṃ katvā nānutappati.

315 nagaraṃ yathā paccantaṃ guttaṃ santarabāhiraṃ
evaṃ gopetha attānaṃ, khaṇo ve mā upaccagā,
khaṇātītā hi socanti nirayamhi samappitā.

316 alajjitāye lajjanti lajjitāye na lajjare
micchādiṭṭhisamādānā sattā gacchanti duggatiṃ.

317 abhaye bhayadassino bhaye cābhayadassino
micchādiṭṭhisamādānā sattā gacchanti duggatiṃ.

318 avajje vajjamatino vajje cāvajjadassino
micchādiṭṭhisamādānā sattā gacchanti duggatiṃ.

319 vajjañ ca vajjato ñatvā avajjañ ca avajjato
sammādiṭṭhisamādānā sattā gacchanti suggatiṃ.

* 각주   [ + ]

1. “지옥(naraya)”과 “천상(sagga)”은 대립어이다. 일반적으로 경에서는 오계五戒 등을 어기는 자는 “지옥”에 놓이고, 그와 반대로 오계 등을 지키는 자는 “천상”에 놓인다고 가르친다.
2. 「자설경」 제4.8경, “순다리 경”의 게송이다. 외도들이 부처님과 승단을 시기하여 고의로 살인을 저지르고 승단을 모함하였을 때, 부처님께서 자설하신 게송이다. 그러므로 이때의 “사실과 달리 말하는 자(abhūtavādin)”라 함은, 살인을 저지른 자들이 불교 승단에 누명을 씌우고 악소문을 퍼트린 일화와 관련된 것이다. 이와 같은 게송의 인연을 고려하고, 또 부처님 재세시 비구들이 어지간한 경은 대부분 암기하고 있었음을 고려하면, 제306송의 게송이 평담한 언어로 구성된 듯하여도 악랄한 일화와 함께 간직되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여시어경」 제2.2.11경, “지옥에 떨어지는 자 경”에도 이 게송이 결집되어 있다. 이 경에 따르면, 범행자梵行者가 아니면서 ‘범행자’라고 사칭하거나 ‘진짜 범행자’를 ‘터무니없는 비범행자非梵行者’라고 비방하는 자를 가리켜 “사실과 달리 말하는 자”라 했다. 요컨대 두 경의 인연으로 보건대 “사실과 달리 말함(abhūtavādin)”이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살인을 저지르고 남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범행梵行”의 실천 여부, 즉 자신과 남의 공부수준을 거짓되게 말하는 것이다. 청정범행을 사칭하는 것과 살인을 저지르고 누명을 씌우는 것이 동급으로 얘기되고 있다.
3. 제306송~제308송 세 송은 앞서 언급한 「여시어경」 제2.1.11경의 게송 세 송을 그대로 결집한 것이다. 이 경은 범행자梵行者가 아니면서 ‘범행자’라고 사칭하는 자, 그리고 ‘진짜 범행자’를 두고 ‘터무니없는 비범행자非梵行者’라고 비방하는 자를 향한 설파이다. 이들 두 부류는 “가사를 걸치고도 수많은 악법을 조심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리고 「여시어경」 제3.5.2경에도 제307송~제308송이 결집되어 있다. 이 경 역시 출가비구가 되어 사문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는 자들을 향한 설파이다. 그러므로 제307송~제308송은 출가자가 되어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서 걸식하느니, 차라리 “뜨거운 쇳덩이”를 삼키는 게 낫다는 가르침이다.
4. 제311송~제314송은 「상응부」 제2.8경, “타야나 경”에서 천인 타야나가 송한 다섯 송에서 네 송을 고른 것이다. 게송의 순서를 달리했다. 아울러 제312송은 「장로게」의 “사비야 장로게” 제277송으로도 결집되어 있다.
5. 「장로게」에 결집된 “사리풋타 장로게” 삼십송 중에서 제1005송을 취한 것이다.
6. 경에서는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천상세간”이라는 “오도五道”가 언급된다(「중부」 제12경, 「중부」 130경 등 참고). 이중에서 정견업正見業을 받아들인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천상세간”(선도善道)이나 “인간들” 중에 태어나고, 사견업邪見業을 받아들인 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지옥, 아귀, 축생”이라는 삼악도三惡道에 태어난다고 가르친다. 고대한역에서는 “선취善趣, 악취惡趣”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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