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견해와 관념을 내려놓으면 진실을 보리니 — 구나라타나 스님의 「위빠사나 명상」을 읽고

선불교 전통의 나라에 초기불교의 수행법이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수행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참선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의 동일점과 차이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선불교 전통은 언어와 개념과 사고를 가장 파격적으로, 극단적으로 다루는 수행법인지라 안목이나 신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며, 위빠사나 전통은 언어와 개념이라는 양날의 검을 비교적 적극적으로 활용하기에 현대의 지성(이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는 불문하고)을 갖춘 이들에게는 쉽고 친절하게 다가온다. 그 두 전통은 겉보기에는 매우 다른 듯 보인다.

더구나, 위빠사나 수행법은 팔리경전과 논서에 기반한 수행법이라는 역사적 아우라가 있어, 우리나라 불교가 선불교 우위의 전통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위빠사나 수행법이 갈수록 보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학적 증명과 지적 추론을 좋아하는 이들은 위빠사나 수행법만이 정통이라고 주장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러나 수행은 역사학적 증명도 아니며 논리적 추론도 아니다. 오직 직접 경험을 통한 안목일 뿐이다.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을 볼 것 같으면, 초전법륜은 받아들이면서 어찌하여 제2전법륜, 제3전법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탄식하는 구절이 있다. 이는 초기불교와 다른 방식의 수행법, 다른 방식의 가르침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런 상이점에도 불구하고 그것들 모두가 한결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아마도 샨티데바의 탄식은, 시대와 풍토에 따라 수행법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방식, 어느 한 전통만을 국집함으로써 툭 트인 안목을 갖춘 자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수행법 자체가 아니라, 수행으로부터 비롯하는 경험과 안목이다. 그러나 경험이라는 것은 언제나 아름다움과 위험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것은 전통의 가르침을 화석화시키지 않고 생생한 아름다움, 살아있는 가르침으로 불러세울 수 있는 반면에, 그 경험을 가능하게 했던 전통만을 국집하도록 만들 위험도 있다. 바야흐로 모든 수행법에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시대에 이르러, 이제 그런 국집도 서서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느 수행법이 수승한 것일까? 수행법의 수승함/열등함이란 있을 수 없으며, 자신에게 맞는 수행법,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수행법이 곧 수승한 수행법일 것이다. »» 계속 읽기

2011년 01월 28일 | 댓글1

이 글은 불교서적(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자관게(慈觀偈, Mettākathā) 낭송을 들으며

«호흡관법경» 서두에 보면, 부처님 재세시 승가에서는 비구들이 다양한 종류의 수행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 언급된, 당시 비구들이 닦고 있었던 수행의 종류로는, 사념처, 사정근, 사여의족, 오근, 오력, 칠각지, 팔정도를 비롯하여, 자애(慈), 연민(悲), 기쁨(喜), 평정(捨), 부정관, 무상관, 호흡관 등을 들 수 있다.

이중에서 사무량심으로 통칭되는 자•비•희•사는 각각이 수행방식으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자(慈, mettā)를 닦는 수행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 수행방식을 일컬어 역사적으로는 “자관”(慈觀)이나 “자심관”(慈心觀), “자비관”(慈悲觀)이라 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자애관”이나 “자비관”으로 통용되고 있는 듯하다.

선불교 전통 우위의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자관은 오늘날 상좌부불교 전통에서 필수적인 수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위빠사나 수행단체들이 대부분 자관을 닦는 게송, 즉 자관게(慈觀偈, Mettākathā)를 매일 아침 낭송하고 있는 것에서도 미루어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불교의 전통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자관게는 반야심경이나 천수경의 위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애송되는 만큼 자관게는 여러 텍스트로 변형되어 전승되어 왔고, 오늘날 상좌부불교 수행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유통되고 있다. 그러나 그 변형이라는 것이 반복되는 내용을 첨삭하거나 일부 내용을 재배치하거나 조합을 새로 하는 정도일 뿐 텍스트의 주제와 실질적인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유통되고 있는 자관게는 소부경에 속하는 경전, «무애해도»(無碍解道, Paṭisambhidāmaggapāḷi) 2.4, <자관게>에 직접적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텍스트의 변형은 변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수행의 목적을 위한 축약과 정돈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 계속 읽기

2011년 01월 10일 | 댓글 4

이 글은 불교배우기(으)로 분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