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번역을 시작합니다. 어느 분께서 제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번역본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독일어 원문으로 전부 읽어보지도 못했고 번역본들을 비교해 본 적도 없어서 추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Also sprach Zarathustra»를 집어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것인데, 참 좋더군요. 그래서, 아직 «비극의 탄생» 번역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이지만 여러모로 이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번역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하나는, 올 여름을 즈음하여 제 나름으로 정신적 진보가 있어 니체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안목이 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관한 여러 해석서들을 섭렵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닙니다. 니체가 어느 한 정신적 고원에 이르러 쏟아냈던 말들은 그 고원 가까이 이른 자라야만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고, 저는 그 지점 가까이에나마 이르는 때를 기다렸던 셈입니다.
다음으로, 독일인들이 가장 아름다운 독일어 문장으로 꼽고 있을 만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문체가 아름답습니다. 그 문체를 살리고, 정신적 고원에 걸맞는 고차원적인 낱말로 역어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점에서는, 어디까지나 예상이긴 하지만, «벽암록» 기타 선어록의 언어와 정신세계가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또한 우리말 문체도 시험해 볼 겸 색다른 차원으로 니체를 번역해 볼 겸, 겸사겸사 저의 수련에 도움이 되기도 하겠습니다. 번역은 느린 속도로 진행될 것입니다.
다음은 역어 선택 기준입니다. 의견사항으로 제시했던 것인데, 여기에 그대로 옮깁니다:
저의 역어 선택 기준은, 첫째, 고준한 정신세계에 어울릴 것, 둘째, 문체의 속도를 살릴 것, 셋째, 니체의 정신적 맥락을 놓치지 않을 것, 넷째, 서양고전문헌학의 흔적을 놓치지 말 것, 등입니다.
셋째, 넷째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지요. 가령, 차라투스트라의 연설 중 “읽기와 쓰기에 관하여”는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서 문제의식을 끄집어 낸 것입니다. 이것을 “독서와 저술에 관하여”로 옮기면 이러한 정신적 전거를 놓치는 동시에 어학상의 오역은 아닐지라도 내용상의 오역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차라투스트라의 서설 3장의 ‘die Eingeweide des Unerforschlichen’은 ‘불가사의한 것의 내장’이 아니라 ‘불가사의한 일을 점치는 내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의 내장을 가지고 치는 내장점은 서양의 고대로부터 성행한 것으로서 워낙 잘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Eingeweide’(내장)라고 하면 ‘내장점’과 동일어로 쓰이는 것이지요.
이러한 점들은 어떤 해설서나 주석서에서도 언급하고 있지 않은 사항들이지만, 엄연히 니체의 글에는 근본으로 깔려 있는 인식들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니체의 고준한 정신세계에 걸맞아야 하는 것이 번역어 선택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첨언하자면, 저는 학자들의 정신세계는 결코 고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축에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문제의 “문체의 속도”. 책세상의 번역본들 대부분이 니체의 문체의 속도를 거의 완벽하게 죽이고 있지요. 가장 커다란 문제점입니다. 그 속도감 있는 문장들이 지리멸렬한 문장으로 둔갑하여 쓰러지는 현장을 지켜보노라면, 소위 우리나라 니체 전공자들의 감각과 양식이 의심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