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오늘처럼

november
11월 29일, 부슬비 내리는 날의 북한산 숲. 노키아 5800으로 촬영.

김홍도의 소림명월도를 완상하면서 김홍도는 우리나라 11월과 2월의 산하를 좋아했을 것같다는 생각을 가졌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시절과 늦겨울에서 초봄으로 접어드는 시절의 산하. 예컨대, 오늘처럼 따스한 늦가을/초겨울에 부슬비가 내리는 날의 산하. 이 때 우리나라 산하의 나무들은 처처에서 허름하면서도 잔잔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 아름다움은 어느 순간 갑자기 발견되는 아름다움이어서, 마치 추풍낙엽과 같은 율동감이 느껴진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우수수 드러나는 아름다움.

11월 29일, 오늘처럼 숲이 촉촉한 비에 젖을 때면 김홍도가 사랑했고 내가 사랑하는 풍경이 드러난다. 봄날의 앳띤 성장도 아니요, 여름날의 풍요도 아니요, 가을날의 만산홍엽도 아니요, 겨울날의 은산도 아니다. 그렇지만, 찬란한 슬픔처럼, 오늘 풍경은 지극히 조용하게 그 찬란함과 그 허름함을 드러낸다. 나무들은 자기만의 색깔을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생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도 지나가리라. 툭 툭, 느리게 느리게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지나가리라.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파우스트)와 같은 눈물어린 호소도 소용 없으리. — 세간의 아름다움과 애잔함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어서, 숱한 감동도 있고 숱한 기쁨도 있고 숱한 설레임도 있는 법. 그러나 거기에 의존하지 않으리. 그러므로 순간이여, 그대는 흘러라. 순간인 나여, 그대는 멈추지 말고 흘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