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어의 위치

부처의 반열반Parinirvaa.na 후 2개월이 지난 뒤 부처의 측근이었던 제자들이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거기서 그들이 기억해 내어 낭송한 모든 가르침, 설법, 계율을 정통한 것으로 인정하였고, 니까야Nikaaya라 부르는 다섯 “모음집”으로 분류하였다. 니까야들은 “세 성경”(Tipi.taka, 三藏)의 하나를 구성한다. 이들 “모음집”은 앞으로 올 세대들을 위하여 여러 ‘상좌’ 또는 ‘장로’ 그리고 그들의 계승자들에게 구전으로 계승되었다.

손상되지 않은 정통한 구전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낭송이 필수적이다. 이 낭송이 한 개인의 작업이 아니고 집단적 작업(合誦)이라는 데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 집단적 낭송의 형식을 취하는 목적은 경전을 손상시키지 않고 보존키 위해, 변형·수정·개작을 방지하여 보존키 위해서였다. 만약 동아리의 한 사람이 한 마디를 잊는다면 다른 사람이 기억할 수 있다. 또한 한 사람이 한 단어나 한 구절을 수정하거나, 덧붙이거나, 누락한다면 다른 사람이 바로잡아 주게 된다. 이런 방법으로 바라던 대로 그 어떤 것도 변형되거나 수정되거나 첨가되거나 누락될 수 없었다. 이런 류의 손상되지 않은 구전을 통하여 전해진 경전은, 그 전파자가 죽고 여러 해가 지난 뒤에 그 가르침을 한 개인이 혼자서 적은 그 어떤 기록보다도 더욱 신뢰할 수 있고 정통한 것으로 여겨졌다. 부처의 가르침은 불멸佛滅 후 4세기가 지난 뒤, 즉 B.C. 1세기에 실론에서 결성된 ‘위원회’에서 문자로 처음 기록되었다. 그때까지 ‘삼장’ 전체가 이런 손상되지 않은 구전으로 여러 세대를 거쳐서 전하여 왔다.

원본은 빨리어로 쓰여졌다. 빨리어는 부드러우며 그 선율이 아름다우며 매끄럽게 흐르는 언어이다. 빈번한 반복은 카테고리로 묶이어서 기억을 돕는다. 이는 구전의 맥이 끊기지 않게 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전에 시적 아름다움과 매력을 부여한다. 경전에는 시적 리듬이 사용되었으며 시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우아함이 담겨 있다. 이 경전들을 열대림의 고요한 분위기에서, 또는 절간에서 원래의 빨리어로 낭송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고 조화롭고 청아한 효과를 낸다. 낭랑한 빨리 말들과 그 말들의 위풍, 그리고 유명한 반복의 운율은 그 뜻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알지 못하는 말을 장엄히 영창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 전통적 선율의 시로써 읊어지는 이런 종류의 낭송은 아주 평화로워서 때로는 숲속에 신들이 거기에 반하여 끌리게 되었다는 옛날 이야기도 전해온다.

—월폴라 라훌라/ 이승훈,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경서원) 209~210면

빨리어는 기원전 1세기에 스리랑카의 실론에서 처음 문자로 기록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구전으로만 전승되었다. 어족상으로 빨리어는 쁘라끄리뜨에 속한다. 쁘라끄리뜨는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기원후 11세기 무렵까지 인도에서 사용된 인도 아리안의 민중어이다. 산스끄리뜨가 인위적으로 규정되어 완성된 언어인 반면, 쁘라끄리뜨는 인위가 가해지지 않은 자연어, 속어, 민중어이다.

현존하는 문헌의 양질로 판단하자면, 빨리어는 쁘라끄리뜨 언어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전에는 빨리어 이외의 언어에 의해 불교성전이 많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현재 그 성전이 완전히 전해지고 있는 것은 상좌부에 속하는 빨리어 불전뿐이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에서도 처음에는 쁘라끄리뜨를 성전용어로 사용했던 듯하나 불교 전파지역이 산스끄리뜨 사용이 많았던 서북인도 방면이었던 점에서, 그리고 지방마다 다른 쁘라끄리뜨를 대신해서 산스끄리뜨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풍조에서, 이들 불교도들도 후에는 순수 산스끄리뜨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들은 고래의 쁘라끄리뜨 경전도 산스끄리뜨로 고치려고 했지만, 운문부분은 운율 관계상 충분히 산스끄리뜨화 하지는 못하고 산문부분만이 산스끄리뜨로 고쳐졌다. 현존하는 산스끄리뜨 법화경, 산스끄리뜨 보요경, 산스끄리뜨 무량수경 등에서의 운문부분만이 속어적이며 산문부분은 산스끄리뜨로 되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산스끄리뜨 경전 속의 속어는 산스끄리뜨에 가깝다. 이것은 주로 게송gaathaa에 사용된 것으로, 서양의 학자는 이것을 ‘게송 방언’, 혹은 ‘섞인 산스끄리뜨’로 부른다. 또는 불교 경전에서만 볼 수 있는 속어적 산스끄리뜨이기에 ‘불교 산스끄리뜨’라고도 불린다.

 

모든 쁘라끄리뜨 가운데에서도 가장 긴 역사를 가지며, 각 시대의 문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빨리어뿐이다. 빨리어의 발달 단계는 대략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 성전의 게송: 기원전 3세기까지
빨리어의 오래된 게송에는 베다어와 공통되거나 유사한 고형이 발견된다. 그중에는 운율상 어구가 생략되기도 하여 주석서 없이는 제대로 읽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러나 빨리어 성전의 게송 모두가 제1단계에 속하는 것은 아니며 새로운 게송도 있다.
2. 성전의 산문: 기원전 100년 무렵까지
앞 단계보다도 문법적이며 문장은 평이하고 활달하다.
3. 성전의 주석서류: 5~6세기를 중심으로 전후 수백년 간
성전의 주석서류 및 교리강요서, 사서류 등에 사용되고 있다. 빨리어 가운데 가장 세련되고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인도 본토나 스리랑카에서 대개는 인도 출신의 학자에 의해 사용되던 것이기 때문에 그 언어의 사용이 지극히 명료하고 문장이 유려하다.
4. 후세의 문헌들: 10세기 무렵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혀 통일되지 않은 잡다한 것이다.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그 뒤에는 미얀마, 타이 등에서 발달했으며, 빨리어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었기에 작위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1]
  1. 이상의 내용은 水野弘元/ 김형준, «팔리어 문법»(연기사)에서 요약한 것이다. 국내에 출간된 빨리어 서적은 두어 권에 불과한데, 그중에서 이 책이 탁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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