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리하르트 바그너에게 바치는 서문

«비극의 탄생» 초판본 표지

«비극의 탄생» 초판본 표지

우리의 미적 대중 특유의 인물이 이 글에 통합된 사상을 빌미 삼아 품을 수도 있는 온갖 의혹이나 흥분, 오해를 떨쳐내기 위하여, 그리고 마치 숭고하고 좋았던 시간들의 화석처럼 명상적 희열을 이 글 각 면마다 남기고 있습니다만 바로 그 명상적 희열을 품고서 이 글의 권두언을 쓸 수 있기 위하여, 제가 가장 존경하는 벗, 당신께서 이 글을 받아볼 순간을 눈앞에 그려봅니다: 아마도 당신은 겨울 눈속에 저녁 산책을 하고 난 뒤, 책 표지의 [결박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를 눈여겨 보겠고, 제 이름을 읽겠고, 이윽고 확신하기를, ‘저자가 이 글에 담고 싶은 내용을 담긴 담았겠으나 뭔가 심각하고 절실한 것을 말할 수밖에 없었구나’, 동시에, ‘저자 홀로 생각해낸 것이거늘 그는 마치 나를 면전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기라도 하듯 이야기하고 있고 오직 이 면전에 어울리는 내용만을 적었구나’ 할 것입니다. 아울러, 베토벤에 대한 당신의 찬란한 기념논문이 탄생하던 때[1], 바로 그 시기에, 그러니까 막 발발한 전쟁의 공포스러움과 숭고함 속에서 제가 이 사상에 집중하였음을 당신은 되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집중한 것을 두고 애국적 고취와 미적 탐닉의 대립, 늠름한 심각함과 명랑한 유희의 대립을 생각하는 자들이라면 헤매게 되겠지요: 그들이 그러는 일 없이 이 글을 실제로 읽어보고서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독일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알고는 충격을 받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진정 소용돌이이자 전환점으로 보고서 참으로 독일적 희망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흡사 그렇게 “현존의 심각함”을 대비시켜 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누군들 알겠느냐는 식으로, 예술을 그같은 “현존의 심각함”을 [달래는] 소일거리나, 없으면 섭섭한 방울소리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바로 그런 이들은 무릇 미적 문제를 그토록 심각하게 바라보는 일을 불쾌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심각함을 유지하는 자들은, 확신하건대, 어느 대장부의 감각으로는 예술이 생애의 지고한 과제이자 본연의 형이상학적 활동이라는 점을 알았으면 합니다. 저는 바로 그 대장부에게, 저의 탁월한 선구자인 분에게, 여기 이 글을 헌정하고자 합니다.

 

1871년 말, 바젤

  1. 리하르트 바그너는 베토벤 탄생 백주년을 맞아 1870년 7월초에 <베토벤과 독일민족>이라는 기념논문 초안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 이 초안은 포기되고, 7월 20일에 <베토벤>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이 글에서 음악의 자율성을 예찬하였다.

    한편 니체는 1870년 7월에 트립셴의 리하르트 바그너 부부를 방문하고 1870년 7월 30일에 트립셴을 떠나 칸톤 우리의 마더라너탈Maderanertal im Kanton Uri로 갔다. <자기비판의 시도> 첫 문단에서 “알프스 벽지 어드메”라고 언급한 바로 그곳이다. 그는 이 시기에 «비극의 탄생» 전단계인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에 대한 논문 작업에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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