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스페셜 ‘모차르트’ 시사회를 다녀와서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아 문화방송이 <MBC 스페셜 ‘모차르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이번 주 일요일(3월 26일) 밤 11시 20분에 제1부가 방송되고, 그 다음 주 일요일(4월 2일) 밤 11시 20분에 제2부가 방송될 예정이라고 한다. 텔레비전은 거의 보지 않는 나인지라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어느 한 작곡가와 그의 음악을 두고 우리나라 제작진이 2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일은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의미 있는 제작물이어서인지는 몰라도 MBC 제작진은 오늘 오후 시중 영화관에서 ‘모차르트’ 다큐멘터리의 공개시사회까지 마련하였다. 오스트리아 주한대사 부부, 앙드레 김, 강지원 변호사, 기타 음악관련 인사들 등 소위 ‘귀빈’들도 참여하여 시사회장을 빛내는 것을 보고, 방송국의 권력 (혹은 방송국에 기대는 사람들의 욕망)이 놀랍게 여겨졌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모차르트 음악과 무슨 상관 있으랴.

연출자는 이채훈 피디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주 4.3’, ‘보도연맹’ 등 무거운 시사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피디가 음악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질 지 모르겠으나, 이채훈 피디는 모차르트를 열렬히 사랑하는 모차르트 마니아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머지 제작진은 모차르트 문외한인 듯했다.
 

오늘은 제1부 “천번의 입맞춤”만 시사회를 가졌는데 그에 대해 몇 가지 느끼는 바가 있다.

이채훈 피디가 모차르트 음악의 이중성을 모를 리 없지만, 다큐멘터리는 시종 모차르트의 감미로운 선율만으로 일관하였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교향곡 제40번>, <피가로의 결혼> 중 백작부인의 ‘아름다운 날은 가고’,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등의 음악이 다큐멘터리에서 주요한 선율로 들려온다. 그의 발언대로, 주로 대중에게 익숙한 곡을 우선으로 선곡했기 때문이다. 방송국의 피디는 예술가가 아니기에 피디 개인의 취향에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시청자와의 교감을 중시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방송국 제작진의 불문율인가 보다. 제2부 “마술피리—음악의 힘으로”에서는 주로 오페라를 다룰 예정이므로 제1부의 감미로운 선율을 거두고 다른 측면을 부각시킬 지도 모르는 일이니 아직 실망하긴 이를 지도 모른다.

외국의 저명한 음악가나 저술가와 가진 인터뷰, 유럽 현지 취재, 리허설 촬영, 모차르트 편지와 악보 촬영 등 제작진이 다큐멘터리에 쏟은 정성이 여간하지 않다. 특히 피아니스트 시프리앙 카차리스의 연주와 인터뷰, 엠마 커크비의 인터뷰, 어린 모차르트에 관한 영국왕립학술원의 바링턴 보고서 촬영 등은 이채훈 피디의 모차르트에 대한 평소 역량을 엿볼 수 있는 꼭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연출자는 음악 선곡, 인터뷰언트 선정, 연주 촬영 섭외, 촬영자료 선정 등의 작업을 거의 혼자 해낸 듯하다. 이채훈 피디 외에는 그것을 선별할 만한 역량이 있는 사람이 제작진에는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것이 이 다큐멘터리의 한계이기도 하다.

국내음악계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이라면 국내에서 서양음악이론이나 역사에 관한 이해가 얼마나 척박한가를 잘 알 것이다. 음악대학의 교수들에게서도 결코 높은 수준을 기대할 수가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차르트에 관해 피상적 이해를 넘어서 깊이 파고들게 되면, 아무에게서도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방송국의 제작진이 도움을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국내에 번역된 모차르트 번역서들뿐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증거는 인터뷰언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다름아닌 국내에 번역된 모차르트 관련 저작들의 저자들인 미셸 파루티, 에릭 엠마누엘 슈미트가 주요 인터뷰 대상자로 나온 것이다. 특히 통찰력은 없이 평이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미셸 파루티의 인터뷰가 지속적으로 화면에 등장한 것은 좀 괴로웠다.

국내의 음악수준이 상당히 높아 슈테판 쿤체의 모차르트 오페라 관련 서적이 번역되기라도 했다면, 틀림없이 이채훈 피디는 그 저자를 인터뷰하려고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그는 슈테판 쿤체까지 인터뷰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에 관한 정보가 우리나라에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것이 우리나라 음악계의 현실이고 이 다큐멘터리의 한계이다.
 

다음으로, 작가의 영역인데, 이에 대해서는 특별히 기대할 것이 없다. 시공사의 소책자 <모차르트: 신의 사랑을 받은 악동>과 영역에서 중역된, 그것도 극히 일부만 번역한 편지집 <모차르트 천 번의 입맞춤>만 읽으면 쓸 수 있는 수준의 나레이션이기 때문이다. 주제적인 모티브는 “사랑, 사랑, 사랑, 이것이 천재를 만든다!”(모차르트)로 설정했으면서도 이에 대한 집중이 없었고, 여러 인터뷰언트가 “모차르트의 어린아이다움”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도 이를 주목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나레이션은 있는 듯 없는 듯했고 오직 인터뷰 내용이 서사구조를 쥐고 가는 듯했다. 그래서 소위 ‘시퀀스’가 엉성한 면이 있다. 영상도 특별할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채훈 피디에 대해서는 여전히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다. 그마저 없었더라면 이렇게 모차르트 음악만으로 가득찬 다큐멘터리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시종일관 어리숙한 사람처럼 처신했다.
 

이상의 소감은 어느 몹시 편협하고 고지식한 네티즌의 평일 뿐이다. 어지간한 분들은 이 다큐멘터리를 감동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모차르트를 아는 연출자의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다큐멘터리 시사회를 갖기 전에 들려주었던 곡을 들어보자:

마술피리 2막 피날레, KV.620 Georg Solti, Wiener Philharmoniker
Wiener Staatsopernchor

 

MBC 스페셜 ‘모차르트’ 시사회를 다녀와서”에 대한 1개의 댓글

  • 저는 재작년에 동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이채훈 피디님도 전적으로 공감하실 논평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차르트에 이제 막 미친 한 명인데 이곳에서 모차르트에 대해 깊은 내용의 글들을 접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모차르트 음악을 칼 바르트처럼 매일 듣고 있는데 여기오면 참 듣기 좋게 정리되어 있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정정안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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