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가벼움을 연주하다

“섬세하면서도 마음 깊이 스며드는 연주, 논 레가토 연주를 하였다.”(베토벤)
 

모차르트의 가벼움 혹은 경쾌함을 흔한 의미대로의 가벼움이라고 생각함은 커다란 잘못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벼움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을 우리는 글을 통하여 이렇다 혹은 저렇다 말할 수 있지만, 그 가벼움을 실제로 연주에서 드러낼 때에는 글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는 모차르트 음악이라는 신비의 숲을 다만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과 실제로 그 숲으로 들어가는 것과의 차이나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래서 논 레가토를 음미하려는 이 초라한 글은 물론 훌륭한 글조차도 단 한 번의 건반 두들김에도 못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악보라는 것은 하나의 연속체를 점점이 표기해 놓은 것이며, 연주자는 그 악보의 외형을 통해 예감하고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향하여 육박해 갑니다. 즉 점점의 악보에서 하나의 연속체로 회귀하는 작업은 연주자의 능력이며 해석입니다. 분절된 악보를 통하여 표기된 모차르트의 음악은 연주자의 손길을 통하여 비로소 육화되며, 하나의 연속체, 그러나 변형된 연속체를 획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연주자의 연속체와 모차르트의 연속체는 때로는 합하고 때로는 빗나가고 때로는 비스듬히 흘러갑니다.

연속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는 끊어짐이 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지만 음악적으로 연속체라는 것은 끊어짐과 이어짐의 연결입니다. 피아노의 한 건반에서 다른 건반으로 이동하는 찰나의 끊어짐은 그래서 연주자가 가장 탁월하게 해석을 집어넣을 수 있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끊어짐의 정도를 무한히 세분할 수 있지만 그러나 악보상으로는 단지 몇 단계로밖에 구분할 수 없는데, 그것은 바로 “스타카토”(끊어서), “논 레가토”(이어지지 않게), “레가토”(끊어지지 않고 이어서) 등입니다. 아마도 곡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ppp에서 fff로 표현되는 셈여림, 템포, 그리고 위의 끊어짐의 정도일 텐데, 모차르트의 경쾌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끊어짐의 정도에 대한 해석이 더 중요하겠지요. 한 예로 브루노 발터가 지휘하는 35번 교향곡 <린츠>의 리허설을 들어보면, 그는 초장부터 논 레가토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늘어지는 듯하던 분위기가 어느새 날렵하게 되살아나게 되지요.

 

“섬세하면서도 마음 깊이 스며드는 연주, 논 레가토 연주를 하였다”는 말은 베토벤이 모차르트의 연주를 두고서 한 말입니다. 특히 모차르트 당시의 피아노포르테는 현대의 피아노와는 달리 저음부에서도 웅웅거리지 않고 경쾌하고 화사하게 울리며, 현대의 피아노보다 논 레가토 연주에 유리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연주자들이 레가토 연주를 선호한 반면 모차르트가 베토벤에게 깊은 인상을 줄 정도로 논 레가토 연주를 선호하였다면, 모차르트의 가벼움은 당시 사람들에게 상당히 이질적이었을 것입니다. 경쾌함과 경박함을 구분할 줄 모르는 무거운 사람들에게 모차르트는 하나의 충격이었겠지요.

그런데, 모차르트의 토도독 치는 논 레가토 연주가 투박하고 경박한 연주가 아니라 도리어 놀랍게도 그와 정반대로 “섬세하면서도 마음 깊이 스며드는 연주”였다면, 저로서는 한 건반에서 다른 건반으로 옮기는 찰나가 절대적인 순간으로 다가옵니다. 그 찰나야말로 가장 시적인 순간이며, 연주자의 해석이 가장 농밀하게 응축되는 순간인 셈입니다. 음이 울리는 순간이 아니라 음이 끊어지는 침묵의 순간에 연주자의 함성이 돌연 터진다고나 할까요. 이 함성을 가장 느끼기 가장 힘든 분야는 아마도 현악일 것인데, 모차르트의 경쾌함과 화사함을 드러내는 현악주자를 찾기 힘든 것은 어쩌면 현악기 자체의 특성과 그 특성에 자연스럽게 물든 연주에서 비롯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현악기가 논 레가토와 잘 어우러지지 않는다 해서 결함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논 레가토로 합주하다가 현악만으로 레가토 선율을 타는 황홀한 대목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도저히 가벼울 수 없는 어두운 지점에서 앙증맞게 비상하는 모차르트 음악의 비밀, 세상에 대한 천번의 입맞춤의 비밀 중 상당 부분은 연주자가 침묵의 함성을 터뜨리는 논 레가토 안에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논 레가토, 이어지지 않게”, 무한한 편차의 끊어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단순한 악보상의 표기 하나만을 의지하여 모차르트의 가벼움에 육박할 수밖에 없는 연주자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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