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제18품, “티끌”

235 이제 너는 시든 잎 같구나,
염라의 사자使者들도 네 곁에 서 있구나.
떠나는 어귀에 서 있는데도
네게는 노자路資마저 없구나.

236 스스로가 섬이 되라,
어서 힘쓰라, 현자가 되라!
티끌이 제거된 자, 흠 없는 자[1]“흠 없음(anaṅgaṇa)”이란 탐・진・치 등 마음의 오염이 없어 청정한 것을 말한다. “그는 貪이 없는 자, 瞋이 없는 자, 痴가 없는 자, 흠이 없는 자, 心이 오염되지 않은 자”(M i. 25)라는 용례와, “心이 입정하고, 청정하고, 맑고, 흠이 없고, 오염원에서 벗어나고, 유순하고, 수월하고, 안정되고, 부동不動에 이르렀을 때”라는 경의 정형구를 참고하라. 나아가 팔정도도 “흠 없는 것”으로 수식된다: “비구들이여, 이 여덟 법은 청정하고 맑고 흠이 없고 오염원에서 벗어난 것들이지만 여래・아라한・정등각의 출현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나니, 이 여덟은 무엇인가? 정견・정사유・[…]・정정이다.”(S v. 15)는
천상의 성스러운 땅으로 가리니.

237 이제 너는 생이 끝나가는구나,
염라의 면전으로 가고 있구나.
중간에 머무를 곳도 없는데
네게는 노자마저 없구나.

238 스스로가 섬이 되라,
어서 힘쓰라, 현자가 되라!
티끌이 제거된 자, 흠 없는 자는
다시 생사에 이르지 않으리니.[2]“다시 생사에 이르지 않는다”는 표현은 제348송에도 보인다. 제348송에서는 “일체처에서 意가 해탈된 자는/ 다시 생사에 이르지 않는다”고 했다.

239 명철한 자는 먼저,
차츰차츰 순간순간마다
야금사가 은을 제련하듯,
자신의 티끌을 제거한다.

240 쇠에 녹[3]이 품의 제목은 팔리어로 “mala”인데, 이는 ‘티끌, 오점, 더러움’ 등의 뜻이며, 쇠와 관련된 경우에는 ‘녹’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 “티끌”은 이 품에서 의미를 확장하여 ‘오염’ 일반을 가리키는 바, “악법”(제242송, 제248송), “무명”(제243송), “오염”(제244송), ‘파계’(제246송~제247송), “욕망, 非法”(제248송), “탐・진・치”(제251), “희론”(제254송), “제행”(제255송) 등까지 포괄한다.이 슬면
그 녹이 쇠를 잡아먹듯,
정행淨行을 어긴 자들은
스스로 지은 업業이 악처로 이끈다.

241 진언眞言의 티끌은 송하지 않음이요,
집의 티끌은 일어나지 않음이다.
안색顔色의 티끌은 게으름이요,
지킴의 티끌은 방일放逸이다.

242 여인의 티끌은 나쁜 행실이요,
베풂의 티끌은 인색이다.
참으로 악한 법들은
이 세간에서도 저 세간에서도 티끌이다.

243 그런 티끌들보다 더 더러운 티끌,
가장 더러운 티끌은 무명無明이니,[4]이상 제241송에서부터 제242송 둘째 구까지 언급되는 티끌은 모두 여덟 가지로, 이 여덟을 언급한 송은 「증지부」 제8.15경, “티끌 경”의 게송과 동일하다.
이 티끌을 버리고서
티끌 없는 비구가 되라!

244 살기 쉬워라, 파렴치하고
까마귀처럼 드세고 오만하고
허세가 있고 방자하고
오염된 자의 삶은!

245 살기 어려워라, 염치가 있고
늘 맑음을 추구하고
침체되지 않고 방자하지 않고
생이 청정한 ‘보는 자’의 삶은!

246 생명을 해치고
거짓말을 하고
세간에서 주지 않은 것을 취하고
남의 아내에게 접근하고

247 곡주와 과실주 마시기에
빠진 사람[5]제246송에서 제247송 둘째 구까지 언급된 오계五戒 관련 송은 「증지부」 제5.174의 게송과 동일하다. 이 경에서는 이 다섯 가지 파계破戒를 일컬어 ‘두려움과 증오를 낳는 다섯’이라 했다.
그는 그와 같이 하여
이 세간에서 자신의 뿌리를 뽑는 것이다.

248 대장부여, 이와 같이 알라:
악법들은 자제함이 없는 것이니,
탐욕이나 비법非法[6]경의 정의에 따르면, “邪見・邪思惟・邪語・邪業・邪命・邪精進・邪念・邪定・邪慧・邪解脫”(「증지부」 제10.113경)도 “비법非法”이며, 오계五戒의 파계 등(「증지부」 제10.171경)도 “비법”이다.이 너를 지배하여
오랫동안 괴로워하는 일 없게 하라.

249 사람들은 믿음대로,
신심信心[7]“pasādana”는 일반적으로 ‘맑은 믿음, 깨끗한 믿음(淨信)”으로 옮긴다. 이는 ‘불・법・승・계 四法에 대한 맑은 믿음’을 뜻한다. 그러나 낱말 자체의 뜻으로 보자면 ‘믿음’이라는 의미는 없고 ‘맑음, 깨끗함’의 의미만 있다. 요컨대, “pasādana”는 ‘믿음으로 인하여 맑아진 마음상태’를 가리키는 낱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불교용어의 활용례를 고려하여, “pasādana”를 “신심信心”으로 옮기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교학적으로 볼 때, “心”은 본래 맑은 것이지만 오염원에 의하여 덮여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통용하여 쓰고 있는 ‘마음’이란 사실 “意”이지 “心”이 아니다. “心”은 티끌과 오염이 제거된 자에게만 드러나는 것이다.) 대로 보시하기 마련이니,
남들이 주는 음료와 음식에
불만인 자는
낮이건 밤이건
입정入定에 이르지 못한다.

250 그러나 그것(불만)이 끊어지고
근절되고 파괴된 자는,
낮이건 밤이건
입정에 이른다.

251 탐貪만 한 불길은 없으며
진瞋만 한 포박은 없으며
치痴만 한 그물은 없으며
애愛만 한 강은 없다.[8]유사한 형식의 게송으로 제202송을 들 수 있다: “탐貪만 한 불길은 없으며, 진瞋만 한 패착은 없으며, 온蘊만 한 괴로움은 없으며, 평온보다 더한 안락은 없어라.”

252 다른 이의 허물은 보기 쉽고
스스로의 허물은 보기 어렵나니,
남들의 허물은
겨를 까불리듯 하고,
스스로의 허물은
타짜가 속임수를 감추듯 하는구나.

253 남들의 허물을 찾고
늘 흠잡는 자는
누漏가 증장하고
누漏의 멸진滅盡은 아득하다.

254 허공에는 자취가 없고
사문은 바깥에 있지 않다.[9]경에는 형용사 “바깥(bāhira)”과 관련한 명시적인 교학상의 정의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제254송과 제255송 자체만으로 해석할 경우, “희론”, “제행”을 일종의 “바깥”으로 해석할 여지는 있다. 다른 경의 용례와 비교하자면, ‘信・精進・念・定・慧의 오근五根이 전혀 없는 비구’나, ‘불・법・승・계의 예류과 사법四法이 전혀 없는 성스러운 제자’는 “범부에 속하는 외부자(bāhira)”(S v. 202; S v. 397)라고 하였으므로, “사문은 바깥에 있지 않다”는 구절을 ‘사문은 범부에 속하는 외부자가 아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나아가, 부사 “밖으로(bahiddhā)”는 교학상 매우 중요하므로 “바깥(bāhira)”과 별개로 깊이 궁구할 필요가 있겠다.
범부는 희론을 즐기지만
여래들은 희론에서 떠나 있다.

255 허공에는 자취가 없고
사문은 바깥에 있지 않다.
제행諸行은 영원하지 않으며
붓다들에게 동요는 없다.

235 paṇḍupalāso va dāni si Yamapurisā pi ca taṃ upaṭṭhitā,
uyyogamukhe ca tiṭṭhasi pātheyyam pi ca te na vijjati.

236 so karohi dīpam attano khippaṃ vāyama paṇḍito bhava,
niddhantamalo anaṅgaṇo dibbaṃ ariyabhūmim ehisi.

237 upanītavayo va dāni si sampayāto si Yamassa santike,
vāso pi ca te n’ atthi antarā pātheyyam pi ca te na vijjati.

238 so karohi dīpam attano khippaṃ vāyama paṇḍito bhava,
niddhantamalo anaṅgaṇo na punaṃ jātijaraṃ upehisi.

239 anupubbena medhāvī thokathokaṃ khaṇe khaṇe
kammāro rajatasseva niddhame malam attano.

240 ayasā va malaṃ samuṭṭhitaṃ taduṭṭhāya tam eva khādati
evaṃ atidhonacārinaṃ sakakammāni nayanti duggatiṃ.

241 asajjhāyamalā mantā, anuṭṭhānamalā gharā,
malaṃ vaṇṇassa kosajjaṃ, pamādo rakkhato malaṃ.

242 mal’ itthiyā duccaritaṃ, maccheraṃ dadato malaṃ,
malā ve pāpakā dhammā asmiṃ loke paramhi ca.

243 tato malā malataraṃ avijjā paramaṃ malaṃ,
etaṃ malaṃ pahatvāna nimmalā hotha bhikkhavo.

244 sujīvaṃ ahirīkena kākasūrena dhaṃsinā
pakkhandinā pagabbhena saṃkiliṭṭhena jīvitaṃ.

245 hirīmatā ca dujjīvaṃ niccaṃ sucigavesinā
alīnen’ appagabbhena suddhājīvena passatā.

246 yo pāṇaṃ atimāpeti musāvādañ ca bhāsati
loke adinnaṃ ādiyati paradārañ ca gacchati,

247 surāmerayapānañ ca yo naro anuyuñjati
idh’ evameso lokasmiṃ mūlaṃ khanati attano.

248 evaṃ bho purisa jānāhi: pāpadhammā asaññatā,
mā taṃ lobho adhammo ca ciraṃ dukkhāya randhayuṃ.

249 dadanti ve yathāsaddhaṃ yathāpasādanaṃ jano,
tattha yo maṅku bhavati paresaṃ pānabhojane
na so divā vā rattiṃ vā samādhiṃ adhigacchati.

250 yassa c’ etaṃ samucchinnaṃ mūlaghaccaṃ samūhataṃ
sa ve divā vā rattiṃ vā samādhiṃ adhigacchati.

251 n’ atthi rāgasamo aggi n’ atthi dosasamo gaho
n’ atthi mohasamaṃ jālaṃ n’ atthi taṇhāsamā nadī.

252 sudassaṃ vajjam aññesaṃ attano pana duddasaṃ,
paresaṃ hi so vajjāni opunāti yathā bhusaṃ,
attano pana chādeti kaliṃ va kitavā saṭho.

253 paravajjānupassissa niccaṃ ujjhānasaññino
āsavā tassa vaḍḍhanti ārā so āsavakkhayā.

254 ākāse ca padaṃ n’ atthi samaṇo n’ atthi bāhiro,[10]“samaṇo n’ atthi bāhiro(사문은 바깥에 있는 자가 아니다)” 대신 “samaṇo n’ atthi bāhire(사문은 바깥 것에 있지 않다)”로 읽는 판본들도 있으나, 후자로 읽는 것은 대개 후대 판본이다.
papañcābhiratā pajā nippapañcā tathāgatā.

255 ākāse ca padaṃ n’ atthi samaṇo n’ atthi bāhiro,
saṃkhārā sassatā n’ atthi n’ atthi buddhānam iñjitaṃ.

* 각주   [ + ]

1. “흠 없음(anaṅgaṇa)”이란 탐・진・치 등 마음의 오염이 없어 청정한 것을 말한다. “그는 貪이 없는 자, 瞋이 없는 자, 痴가 없는 자, 흠이 없는 자, 心이 오염되지 않은 자”(M i. 25)라는 용례와, “心이 입정하고, 청정하고, 맑고, 흠이 없고, 오염원에서 벗어나고, 유순하고, 수월하고, 안정되고, 부동不動에 이르렀을 때”라는 경의 정형구를 참고하라. 나아가 팔정도도 “흠 없는 것”으로 수식된다: “비구들이여, 이 여덟 법은 청정하고 맑고 흠이 없고 오염원에서 벗어난 것들이지만 여래・아라한・정등각의 출현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나니, 이 여덟은 무엇인가? 정견・정사유・[…]・정정이다.”(S v. 15
2. “다시 생사에 이르지 않는다”는 표현은 제348송에도 보인다. 제348송에서는 “일체처에서 意가 해탈된 자는/ 다시 생사에 이르지 않는다”고 했다.
3. 이 품의 제목은 팔리어로 “mala”인데, 이는 ‘티끌, 오점, 더러움’ 등의 뜻이며, 쇠와 관련된 경우에는 ‘녹’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 “티끌”은 이 품에서 의미를 확장하여 ‘오염’ 일반을 가리키는 바, “악법”(제242송, 제248송), “무명”(제243송), “오염”(제244송), ‘파계’(제246송~제247송), “욕망, 非法”(제248송), “탐・진・치”(제251), “희론”(제254송), “제행”(제255송) 등까지 포괄한다.
4. 이상 제241송에서부터 제242송 둘째 구까지 언급되는 티끌은 모두 여덟 가지로, 이 여덟을 언급한 송은 「증지부」 제8.15경, “티끌 경”의 게송과 동일하다.
5. 제246송에서 제247송 둘째 구까지 언급된 오계五戒 관련 송은 「증지부」 제5.174의 게송과 동일하다. 이 경에서는 이 다섯 가지 파계破戒를 일컬어 ‘두려움과 증오를 낳는 다섯’이라 했다.
6. 경의 정의에 따르면, “邪見・邪思惟・邪語・邪業・邪命・邪精進・邪念・邪定・邪慧・邪解脫”(「증지부」 제10.113경)도 “비법非法”이며, 오계五戒의 파계 등(「증지부」 제10.171경)도 “비법”이다.
7. “pasādana”는 일반적으로 ‘맑은 믿음, 깨끗한 믿음(淨信)”으로 옮긴다. 이는 ‘불・법・승・계 四法에 대한 맑은 믿음’을 뜻한다. 그러나 낱말 자체의 뜻으로 보자면 ‘믿음’이라는 의미는 없고 ‘맑음, 깨끗함’의 의미만 있다. 요컨대, “pasādana”는 ‘믿음으로 인하여 맑아진 마음상태’를 가리키는 낱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불교용어의 활용례를 고려하여, “pasādana”를 “신심信心”으로 옮기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교학적으로 볼 때, “心”은 본래 맑은 것이지만 오염원에 의하여 덮여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통용하여 쓰고 있는 ‘마음’이란 사실 “意”이지 “心”이 아니다. “心”은 티끌과 오염이 제거된 자에게만 드러나는 것이다.) 
8. 유사한 형식의 게송으로 제202송을 들 수 있다: “탐貪만 한 불길은 없으며, 진瞋만 한 패착은 없으며, 온蘊만 한 괴로움은 없으며, 평온보다 더한 안락은 없어라.”
9. 경에는 형용사 “바깥(bāhira)”과 관련한 명시적인 교학상의 정의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제254송과 제255송 자체만으로 해석할 경우, “희론”, “제행”을 일종의 “바깥”으로 해석할 여지는 있다. 다른 경의 용례와 비교하자면, ‘信・精進・念・定・慧의 오근五根이 전혀 없는 비구’나, ‘불・법・승・계의 예류과 사법四法이 전혀 없는 성스러운 제자’는 “범부에 속하는 외부자(bāhira)”(S v. 202; S v. 397)라고 하였으므로, “사문은 바깥에 있지 않다”는 구절을 ‘사문은 범부에 속하는 외부자가 아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나아가, 부사 “밖으로(bahiddhā)”는 교학상 매우 중요하므로 “바깥(bāhira)”과 별개로 깊이 궁구할 필요가 있겠다.
10. “samaṇo n’ atthi bāhiro(사문은 바깥에 있는 자가 아니다)” 대신 “samaṇo n’ atthi bāhire(사문은 바깥 것에 있지 않다)”로 읽는 판본들도 있으나, 후자로 읽는 것은 대개 후대 판본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