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제15품, “안락”

197 참으로 안락하게 살아가자,
원한을 가진 자들 속에서도 원한 없이!
원한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도
원한 없이 지내자.

198 참으로 안락하게 살아가자,
병든 자들 속에서도 병들지 않고!
병든 사람들 속에서도
병들지 않고 지내자.

199 참으로 안락하게 살아가자,
화급한[1]“화급하다(ussuka)”는 낱말은 주로 욕락과 관련하여 쓰인다. 「중부」 제125경 및 「증지부」(A i.68)에 “욕락을 화급하게 추구하다(kāmapariyesanāya ussukko)”는 용례가 보인다: “욕락欲樂 가운데에 살고 욕락을 만끽하고 욕락의 갈피에 잡아먹히고 욕락의 열기로 달아오르고 욕락을 화급하게 추구하면서, ‘이욕離欲에 의해 알려지고 이욕에 의해 보이고 이욕에 의해 성취되고 이욕에 의해 실현되는 것’을 알거나 보거나 실현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M iii.130). 자들 속에서도 화급함 없이!
화급한 사람들 속에서도
화급함 없이 지내자.

200 참으로 안락하게 살아가자,
우리는 무소유無所有[2]“무소유”는 ‘소유물이 없다’는 일상적인 뜻을 넘어서는 말이다. 「법구경」의 용례에 따르면, “무소유”는 “욕락들을 버림”(제88송), “명색名色에 집착하지 않음”(제221송), “취하지 않음”(제396송, 제421송)과 동일시된다. 「중부」 제43경 및 「상응부」 제41.7경에 따르면, “貪이 소유(kiñcana, something)이며, 瞋이 소유이며, 痴가 소유”(M i.292)이므로, “무소유(akiñcana, nothing)”라 함은 ‘탐・진・치가 없음’을 뜻한다. 요컨대, “무소유”라 함은 탐・진・치라는 “세 소유”가 없는 “무소유 심해탈(ākiñcaññā cetovimutti)”(S iv.296)이므로, 명색에 집착하지 않으며, 욕락을 버리며, 취함이 없다. 즉 한계를 짓는 “뭔가(=소유, kiñcana)”가 없는 것이 “무소유”이다.인 자들이니!
광음천光音天의 신들처럼
희열을 먹는 자들이 되자.[3]제200송은 「상응부」 제4.18경의 게송과 동일하다. 세존께서 탁발하러 마을로 가셨으나 음식을 얻지 못하시고 빈 발우로 되돌아 오시면서 송하신 것이다.

201 승리는 원한을 초래하고
패배자는 괴로워하며 잠든다.
평온한 자는 승리와 패배를 버리고
안락하게 잠든다.[4]「상응부」 제3.14경, “전쟁경”의 게송과 동일하다. 카시(오늘날의 바라나시)를 차지하기 위한 마가다왕 아자타삿투와 코살라왕 파세나디 간의 전쟁에서 마가다국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세존께서 송하신 것이다.

202 탐貪만 한 불길은 없으며,
진瞋만 한 패착은 없으며,[5]제202송과 유사한 형식의 송으로는 제251송이 있다: “탐貪만 한 불길은 없으며, 진瞋만 한 포박은 없으며, 치痴만 한 그물은 없으며, 애愛만 한 강은 없다.”
온蘊[6]“온蘊”은 색수상행식의 “오온”을 말한다.만 한 괴로움은 없으며,
평온보다 더한 안락은 없어라.

203 허기[7]제203송에서 말하는 “허기”는 단순한 육체적 배고픔을 뜻하지 않고, 뭔가를 짓기 위한 심리적 허기, 심리적 갈증이라고 할 수 있다.가 최고의 병이며,
행行이 최고의 괴로움이니,
이것을 여실하게 알고 나면
열반이 최고의 안락이어라.

204 병 없음이 최고의 소득이며,
지족知足[8]“지족”이라 함은 출가비구로서 가사袈裟와 걸식으로 만족하는 것을 말한다. 경전에서는 “비구는 몸을 보호할 염의染衣와 배를 유지할 걸식乞食으로 지족한다.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바로 그것만을 지니고서 간다. 마치 날개 달린 새가 어디를 날더라도 정녕코 날개만을 지니고 날듯이,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을 보호할 염의와 배를 유지할 걸식으로 지족하며, 어디를 가더라도 바로 그것만을 지니고서 간다”는 정형구로 설해진다.이 최고의 득과得果이며,
신뢰가 최고의 친척이며,
열반이 최고의 안락이어라.[9]제204송의 “병 없음이 최고의 소득”(1구)과 “열반이 최고의 안락”(4구)이라는 게송은 「중부」 제75경, “마간디야 경”과 함께 읽어야 한다: “병 없음이 최고의 소득이며, 열반이 최고의 안락이며, 길(道) 중에서는 팔정도가 불사不死에 이르는 안온처여라”(M i.508), “이 몸(身)은 병이며 종기이며 화살이며 재난이며 압박이다”(M i.510). 이 경에 따르면, “병”은 “몸(身)”을 가리킨다. 불교에서 말하는 몸(身)은 단순한 육체적 의미를 뜻하지 않으며, 탐・진・치와 함께 건립된 오취온을 가리킨다. 요즘의 언어를 빌리자면, ‘영혼-육체’의 결합물이라고 할 수 있다.

205 한거閑居의 맛과
적정寂靜의 맛을 마시고서,
법열法悅의 맛을 마시고서,
공포와 악惡에서 벗어난 자 된다.[10]제205송은 「숫타니파타」 제257송과 동일하다.

206 성자들을 뵘은 훌륭하여라!
성자들과 함께 지냄은 늘 안락하여라!
어리석은 자들을 보지 않으면
항상 안락하리라.

207 어리석은 자들과 어울려 지내는 자들은
장구한 세월을 슬퍼한다.
어리석은 자들과 함께 지내는 자는
마치 적과 함께 지내듯 언제나 괴롭다.
그러나 현묵玄默한 자와 함께 지냄은 안락하여
마치 친척들을 만남과 같다.

208 현묵한 자, 지혜로운 자, 다문多聞한 자,
계戒를 지닌 자, 금禁이 있는 자, 성자 ―
그와 같은 진인眞人, 성현聖賢을 따르라,
마치 달이 천체의 궤도를 따르듯이!

197 susukhaṃ vata jīvāma verinesu averino,
verinesu manussesu viharāma averino.

198 susukhaṃ vata jīvāma āturesu anāturā,
āturesu manussesu viharāma anāturā.

199 susukhaṃ vata jīvāma ussukesu anussukā,
ussukesu manussesu viharāma anussukā.

200 susukhaṃ vata jīvāma yesan no n’ atthi kiñcanaṃ,
pītibhakkhā bhavissāma devā ābhassarā yathā.

201 jayaṃ veraṃ pasavati dukkhaṃ seti parājito,
upasanto sukhaṃ seti hitvā jayaparājayaṃ.

202 n’ atthi rāgasamo aggi, n’ atthi dosasamo kali,
n’ atthi khandhādisā dukkhā, n’ atthi santiparaṃ sukhaṃ.

203 jighacchāparamā rogā, saṃkhārā paramā dukhā,
etaṃ ñatvā yathābhūtaṃ nibbānaṃ paramaṃ sukhaṃ.

204 ārogyaparamā lābhā, santuṭṭhiparamaṃ dhanaṃ,
vissāsaparamā ñātī, nibbānaṃ paramaṃ sukhaṃ.

205 pavivekarasaṃ pītvā rasaṃ upasamassa ca
niddaro hoti nippāpo dhammapītirasaṃ pivaṃ.

206 sādhu dassanam ariyānaṃ sannivāso sadā sukho,
adassanena bālānaṃ niccam eva sukhī siyā.

207 bālasaṅgatacārī hi dīgham addhāna socati,
dukkho bālehi saṃvāso amitteneva sabbadā,
dhīro ca sukhasaṃvāso ñātīnaṃ va samāgamo.

208 dhīrañ ca paññañ ca bahussutañ ca dhoreyyasīlaṃ vatavantam āriyaṃ
taṃ tādisaṃ sappurisaṃ sumedhaṃ bhajetha nakkhattapathaṃ va candimā.

* 각주   [ + ]

1. “화급하다(ussuka)”는 낱말은 주로 욕락과 관련하여 쓰인다. 「중부」 제125경 및 「증지부」(A i.68)에 “욕락을 화급하게 추구하다(kāmapariyesanāya ussukko)”는 용례가 보인다: “욕락欲樂 가운데에 살고 욕락을 만끽하고 욕락의 갈피에 잡아먹히고 욕락의 열기로 달아오르고 욕락을 화급하게 추구하면서, ‘이욕離欲에 의해 알려지고 이욕에 의해 보이고 이욕에 의해 성취되고 이욕에 의해 실현되는 것’을 알거나 보거나 실현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M iii.130).
2. “무소유”는 ‘소유물이 없다’는 일상적인 뜻을 넘어서는 말이다. 「법구경」의 용례에 따르면, “무소유”는 “욕락들을 버림”(제88송), “명색名色에 집착하지 않음”(제221송), “취하지 않음”(제396송, 제421송)과 동일시된다. 「중부」 제43경 및 「상응부」 제41.7경에 따르면, “貪이 소유(kiñcana, something)이며, 瞋이 소유이며, 痴가 소유”(M i.292)이므로, “무소유(akiñcana, nothing)”라 함은 ‘탐・진・치가 없음’을 뜻한다. 요컨대, “무소유”라 함은 탐・진・치라는 “세 소유”가 없는 “무소유 심해탈(ākiñcaññā cetovimutti)”(S iv.296)이므로, 명색에 집착하지 않으며, 욕락을 버리며, 취함이 없다. 즉 한계를 짓는 “뭔가(=소유, kiñcana)”가 없는 것이 “무소유”이다.
3. 제200송은 「상응부」 제4.18경의 게송과 동일하다. 세존께서 탁발하러 마을로 가셨으나 음식을 얻지 못하시고 빈 발우로 되돌아 오시면서 송하신 것이다.
4. 「상응부」 제3.14경, “전쟁경”의 게송과 동일하다. 카시(오늘날의 바라나시)를 차지하기 위한 마가다왕 아자타삿투와 코살라왕 파세나디 간의 전쟁에서 마가다국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세존께서 송하신 것이다.
5. 제202송과 유사한 형식의 송으로는 제251송이 있다: “탐貪만 한 불길은 없으며, 진瞋만 한 포박은 없으며, 치痴만 한 그물은 없으며, 애愛만 한 강은 없다.”
6. “온蘊”은 색수상행식의 “오온”을 말한다.
7. 제203송에서 말하는 “허기”는 단순한 육체적 배고픔을 뜻하지 않고, 뭔가를 짓기 위한 심리적 허기, 심리적 갈증이라고 할 수 있다.
8. “지족”이라 함은 출가비구로서 가사袈裟와 걸식으로 만족하는 것을 말한다. 경전에서는 “비구는 몸을 보호할 염의染衣와 배를 유지할 걸식乞食으로 지족한다.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바로 그것만을 지니고서 간다. 마치 날개 달린 새가 어디를 날더라도 정녕코 날개만을 지니고 날듯이,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을 보호할 염의와 배를 유지할 걸식으로 지족하며, 어디를 가더라도 바로 그것만을 지니고서 간다”는 정형구로 설해진다.
9. 제204송의 “병 없음이 최고의 소득”(1구)과 “열반이 최고의 안락”(4구)이라는 게송은 「중부」 제75경, “마간디야 경”과 함께 읽어야 한다: “병 없음이 최고의 소득이며, 열반이 최고의 안락이며, 길(道) 중에서는 팔정도가 불사不死에 이르는 안온처여라”(M i.508), “이 몸(身)은 병이며 종기이며 화살이며 재난이며 압박이다”(M i.510). 이 경에 따르면, “병”은 “몸(身)”을 가리킨다. 불교에서 말하는 몸(身)은 단순한 육체적 의미를 뜻하지 않으며, 탐・진・치와 함께 건립된 오취온을 가리킨다. 요즘의 언어를 빌리자면, ‘영혼-육체’의 결합물이라고 할 수 있다.
10. 제205송은 「숫타니파타」 제257송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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