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없다…” — 병고 고익진 선생의 비문碑文을 찾아서

우리나라 현대불교학이 내놓은 모든 저술 중에서 단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삼십대 청년이 쓴 석사학위논문,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1971)를 꼽겠다. 이 논문은 작성자 본인조차도 생전에 그 비중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할 만큼 빛나는 저술이며,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로, 아울러 대승불교에서 초기불교로 건너는 징검다리를 시설한 불후의 역작이다. 흔한 학문적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기존 불교교학과 학계의 성과를 아예 무시하다시피한데다 곳곳에 오류가 도사리고 있는 청년의 무모한 시론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어떤 해석전통에도 의존하지 않고, 즉 이천년래 부파불교ㆍ대승불교의 해석이나 상좌부불교의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 심지어는 일본학계나 서양학계의 학술적 성과에도 전혀 기대지 않고, 오직 한역 아함 및 팔리 니카야만을 의지하여 불교수행 및 교학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오온ㆍ십이처ㆍ십팔계ㆍ십이연기를 청년의 비범한 통찰과 거침없는 용기를 가지고 탐색함으로써, 오늘날 니카야/아함에 대한 전면적인 재해석의 길을 열어줄 저술로 평가될 만하다. 발표된 지 45년여가 흐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의의가 퇴색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빛나야 할 저술, 지금 이 시절에 마땅히 빛나야 할 저술….

아마도 후대의 역사는 지금 이 시절을 천육백여 년 한국불교사에 있어 가장 커다란 전환점으로 기록할 것이다. 고대 삼국시대 불교 초전기부터 대승불교가 전래된 이래 처음으로 팔리 니카야의 번역과 상좌부불교 수행법 전래가 이루어진 시절이며, 기존세대와는 의식 및 의사소통 구조가 판이한 세대가 이미 중년에 이른 시절이며, 불교정화 이후 조계종 종단의 파행과 타락이 맞물리면서 기존 신행생활 방식에 더는 연연하지 않는 새로운 방식의 불교공부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승가에 대한 귀의? 조계종 승단이 사쌍팔배의 거룩한 승가인가?—지구촌 정보화 시대를 만끽하는 세대는 이 질문에 대하여 주저없이 부정적으로 답할 것이다. 이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의 흐름이다. 그와 동시에,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인도 베단타와 서양심리학, 상좌부불교의 위빠사나와 선불교의 공안선, 염불수행, 밀법수행, 요가 등등 불교 및 타종교의 각종 상이한 교학과 수행법이 절대적 권위를 잃고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부유하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에도 고대 인도의 붓다 시대가 재래한 것이다. 수많은 사문과 바라문이 곳곳을 유행하며 자신들의 가르침만을 높이고 다른 이들의 가르침은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유세의 시대 말이다.

자, 붓다 재세시의 각축장과도 같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불교를 공부할 것인가? 일단 어느 한 전통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수행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위빠사나라면 주로 미얀마나 태국 계통의 수행, 선불교라면 주로 한국 간화선 전통의 공안참구, 아니면 티벳불교의 밀교수행이나 인도 베단타나 요가 전통, 현대적 명상 등, 대체로 이 너댓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한 전통에 들어가 수년간 실수실참하다보면, 곳곳이 문제 투성이임을 알게 된다. 내 개인적 견해로는, 붓다고사의 「청정도론」을 부동의 준거로 한 현행 위빠사나 수행은 팔리 니카야의 피상적 해석에 근거한 수행으로 보고 있으며, 간화선 수행방식 역시 의단을 형성하지 못하고 가부좌 트는 것만을 공부로 삼는 폐단이 대단히 크다고 보고 있다. 대부분 수행처에서 수행법이 잘못 정착된 시대인 것이다. 게다가 나름의 수행처에서 삼매나 선정에 들어본 학인이라하더라도, 더 이상 무엇을 의지하여 공부할 지 모르며 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으니 참으로 쉽지 않은 것이 이 공부길이라 하겠다.

 
반야심경과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

고익진의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는 바로 이 시절, 이 시점에서 만나야 한다. 곳곳의 수행처에서 잘못 정착된 수행법을 간파하고서 경전을 의지하여 홀로 떠나는 공부여정 중에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더 나아가 선불교까지 회통시킬 수 있는 요처와 같은 것이 이 논문에 담겨 있으므로. 혹자는 이러한 나의 평가를 두고 비웃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 논문은 팔리 니카야 및 한역 아함을 (상좌부불교의 해석과는 다르게) 근본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는 역사적 비원悲願과 수증修證상의 안목이 없으면 접근이나 평가도 불가능하고 관심거리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한 전통(즉, 조직)의 수행법만 고집하는 학인은 자신의 전통에 속하지 않는 이런 논문을 흔한 잡설로 치부하겠지만, 누구나 자신의 경계에서 노닐기 마련이니 그와 같은 태도를 나무랄 일도 아니다. 모든 일은 다 시절 인연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늦깎이로 불교학에 입문한 삼십대의 청년이 어떻게 그와 같은 역작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일까? 배경을 알기 위해 먼저 관련 자료를 토대로 그의 생애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병고丙苦 고익진, 생몰년대 1934년~1988년. 의대재학 중 21세에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치명적 질병을 앓고 5년간 병원생활, 이후 무등산 자락 암자에서 정양하다. 정양 중에 반야심경의 “눈이 없다…”는 경문을 접하고 3여년 간 의문에 사로잡힌 끝에 “조그마한 경계”를 얻다. 그러나 “기쁨에 잠기기가 무섭게 다시 쓰라린 자기 붕괴”를 맛보다. 이후 부침이 계속되면서 공부여정을 밟다. 그리고 31세에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하다. 35세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37세에 석사학위논문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1971)를 쓰다. 이후 한국불교학 연구에 매진하면서, 수행단체 일승보살회를 조직하여 이끌다. 향년 54세, “나는 평생 게으르지 않았다.”

그가 불교에 입문한 계기는 반야심경의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響味觸法…”에서 “無眼”, 즉 “눈이 없다…”는 경문이었다. 이 경문이 병고로 점철된 이십대 청년의 인생을 뿌리채 뒤흔들며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 충격에 이은 의문의 형성과정은 선불교의 수행법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는 이 일련의 입문과정에 대하여 입적하기 이태 전인 1986년 불광사 대중법문에서 가장 상세하게 토로했던 바, 이를 육성으로 들어보자. (여기에 올리는 음성파일은 안심정사의 김근식님이 공개한 80분 분량의 법문 중에서 고익진 선생이 불교입문 과정을 술회한 내용만을 따로 편집한 것이며, 다음의 인용문은 이 음성파일 후반부를 채록한 것이다. 이 역시 안심정사에서 공개한 것이다. 이 법문은 「고익진 교수님이 들려주는 불교이야기」(광륵사 2011)로 출간되었다.)

 

(법문 후반부 채록)
그때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고 충격적이었던 말은 ‘눈이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색(色)을 볼 수 있는 겁니다. 눈이 없으면 색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눈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색을 보고 색을 보면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도 없고, 색도 없나니라’ 이렇게 반야심경에 쓰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받아들일 수 없는 세계를 저에게 제시하고 있었어요. 분명히 눈이 있고 색이 있는 세계에서 저는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병원에서 지낸 5년이라는 덧없는 세월 속에서 절실하게 느꼈던 그런 문제는 분명히 눈이 있는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세계가 없다는 반야심경의 교설을 처음 대했을 때 제가 받았던 충격은 정말로 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을 들은 뒤로 3년간 아무것도 못하게 되고 말았어요. 여러분들도 지금 반야심경을 읽는 분이 많이 계실 겁니다. 그런데 어째서 반야심경을 읽으시면서 그런 말씀에 충격을 받지 않는가가 저는 이상한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들은 뒤로 3년간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물을 열려고 하다가도 멈추고서는 ‘내가 이 문을 왜 열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는 밥을 먹다가도 ‘이 밥을 먹는 자가 누굴까’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눈도 없고 색도 없는 세계에서, 먹고 있는 자는 누구란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3년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제가 제 인생을 결정했습니다. 3년쯤 하니까, 이제는 부처님이 왜 ‘눈이 없다’라는 말씀을 하셨는지를 제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눈이 있다는 세계’와 ‘눈이 없다는 세계’, 이 두 세계는 서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세계입니다. ‘반야바라밀다’라는 말로 전해지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세계였던 것이었습니다.

— 1986년 불광사 특별법문 중에서

성년 이후 일평생 심히 병약했던 이 인물의 육성을 들어보면, 선정에 들어 체득한 자만이 내뿜을 수 있는 기상이 느껴진다. 일반학자는 결코 이와 같이 내면이 충일한 음성을 토할 수 없다. “눈이 없다…”는 경문에서 촉발되어 의단이 형성되고 타파되는 과정에서 그는 새로운 안목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빠른 준마가 휙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슬쩍 엿본 것과도 같으며,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번갯불에 드러난 만상을 찰라에 엿본 것과도 같다. 이후 공부여정에서 그는 “다시 쓰라린 자기 붕괴”와 새로운 경계를 맛보면서 공부여정을 밟다가 31세에 다시 대학신입생으로 입학하여 불교학을 공부했던 것이며, 이후 이력은 익히 알려진 대로 한국불교학의 전설을 쓰기 시작한다.

하여 반야심경은 고익진에게 “날카로운 첫 키쓰”(한용운, 「님의 침묵」)와도 같은 것이며, 이 반야심경 경문을 해독하는 것이 불교학 여정의 첫번째 과제가 된다. 과연 그의 첫 공식적인 논문은 대학 재학시절 쓴 「반야심경에 나타난 연기론적 교설에 대하여」(「동국사상」 제4집, 1968)라는 소논문으로서, 여기에서 그는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로부터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까지 제1과단으로 나누고 이를 “일체개공의 사상을 전개한 무한부정적 실상론”(99)으로 보며, 이후 “보리살타菩提薩陀…”에서 “…구경열반究竟涅槃”까지 제2과단으로 나누고 “반야바라밀다와 같은 궁극적 실체가 제시되고 거기에 의주한다는 교설”(102)로 본다. 이는 대단히 오류가 많은 성급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소논문은 산스크리트어 원문 해석을 토대로 “불교사 2,500년”의 해석전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근본적인 원리에 돌아가, 그것을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된다”(105)는 공부자세를 과감하고 거칠게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아함교설과 대승교설을 어떻게든 융합하려는 의지를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눈이 없다…”는 경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온ㆍ십이처ㆍ십팔계ㆍ십이연기ㆍ사성제 교설에 대한 선이해가 필수적이다. 이 교설은 팔리 니카야와 한역 아함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고익진은 「반야심경에 나타난 연기론적 교설에 대하여」에서 대승불교의 실상론에 치우친 나머지 니카야/아함의 근본교설을 전혀 다루지 못했으며, 심ㆍ의ㆍ식에 대해서도 안 다루니만 못할 정도로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논문에 투영된 시론의 스케일과 산스크리트어 경문의 성실한 분석은 칭찬할 만하지만, 내용 자체는 그가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를 역으로 알려주고 있다. 고익진의 동국대 수석졸업과 관련한 「동대신문」의 1969년 2월 25일자 기사를 보면, “대학원에 진학, 한국불교를 체계적으로 종합 정리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이 대학원 진학 당시 포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가 석사학위논문(1971)에서 아함의 근본교설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그의 첫번째 소논문에서 미해결된 채 남아 있던 문제, 즉 “눈이 없다…”는 경문에 대한 마음속 과제를 되돌아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그의 석사학위논문은 한국불교학의 문헌학적 작업과 해석을 잠시 뒤로 미루고, 운명처럼 다가왔던 “눈이 없다…”는 날카로운 첫 키쓰를 추억하는 청년의 절절한 시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청년의 시편에 찬가를 부치고자 한다.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의 의의

불교교학에 두루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나는 진작에 고익진의 저술들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의 한국불교학 관련 논문들을 접하면서 그 어떤 학자의 논문에서도 엿볼 수 없는 번뜩이는 통찰과 활발발한 기세 덕분에, 비유컨대 유사流沙의 사막과도 같이 메마른 학술적 세계에서 오아시스의 청량함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익진을 유념하고 있던 차에 불교교학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오온ㆍ십이처ㆍ십팔계ㆍ십이연기 등의 교설들을 이해하려고 각종 저술을 탐독하면서 궁구해 보았으나, 복잡하게 얽히기만 할 뿐 그 어떤 것도 속시원히 풀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잠정적으로 추론하기를, 그 교설들이 각기 따로 형성되어 오다가 후대에 통시적으로 종합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각 부파의 상이한 해석들이 섞여든 까닭에 원천적으로 풀기 힘든 문제가 되고 말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런 와중에 접한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는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고익진은 한역 아함을 주요 전거로 하여(당시로서는 팔리 니카야를 접하기 힘들었던 까닭에 그는 논문저술 마무리 시기에 비로소 팔리 니카야를 구하여 대조했다), 모든 교설들이 정합적이며 내적 통일성을 갖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경전의 잡다하고 상이한 듯 보이는 오온ㆍ십이처ㆍ십팔계ㆍ십이연기 교설들을 기존의 전통이나 학설과는 다르게 독창적으로 재구성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 시도는 경이로워 보였으나 그때만 해도 나는 아직 그 논문을 깊이 독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숫타니파타」의 “수칠로마 경”을 번역하고 음미하면서, 내가 갖고 있는 니카야/아함의 용어들에 대한 관념이 전부 잘못 형성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하여 “수칠로마 경”에서 암시적으로 언급되는 촉ㆍ수ㆍ상ㆍ사ㆍ애와 관련한 경설들과 다른 경들을 열람해본 결과, 불자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탐ㆍ진ㆍ치”가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전혀 아니라, 선정에 들어야만 비로소 관찰되는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서 「호흡관법경」, 「대념처경」, 「염신경」, 「염수경 상응」 등의 경을 팔리어 원문과 대조하면서 읽어보니, 그동안 내가 니카야/아함의 모든 술어와 용어에 대해 완벽하게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참으로 뼈아픈 자각이었다. 이는 동시에 상좌부불교ㆍ대승불교를 막론하고 기존의 거의 모든 불교서적에서 정의된 니카야/아함의 용어들이 너무나 피상적으로 해석된 개념에 불과하다는 발견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오해가 첩첩이 쌓여 있었던 까닭에 니카야/아함을 피상적으로밖에 접근하지 못했던 것이다. 코끼리 발자국이 모든 동물의 발자국을 섭수하듯이 모든 수행법을 섭수하고 있는 이 경들을 그간 까마득히 몰라보고 있었다니! 그 충격은 처음에는 “감당할 수 없다”는 거대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이 엄청난 것을 앞으로 어떻게 공부할 것이냐….

나는 그 충격을 채 떨치지 못한 채 내 마음속 숙제와도 같았던 고익진의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를 천천히 집어들었다. 오온ㆍ십이처ㆍ십팔계ㆍ십이연기를 정연하게 이해하기 위해 불교해석사 이천년래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참신한 방식으로 사유한 이 결과물은, 전통적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 “獨一靜處에서 專精思惟하여 觀察其義”(139), 즉 “홀로 한적한 곳에 머물러 오롯이 선정 속에서 그 뜻을 관찰”할 후학들에게 빛나는 등불이 되어줄 통찰과 방법론을 개진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러한 성과를 감안하자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를 성급하게 연결시키려는 저자의 의지 탓에 발생한 오류들을 빌미로 이 논문의 가치를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논문평은 불교초학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대단히 불친절한 논설이므로 불교초학자들은 굳이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으며, 가능하면 읽지 말고 건너뛰기를 권한다.)

예컨대 고익진은 “대승의 이론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함이요, 아함을 완성하고 있는 것은 대승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20)라고 언급할 만큼 대승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진여법계”, “진여실상” 등 후대의 대승불교적 용어를 사용하여, “18계는 6근ㆍ6경ㆍ6식으로 이루어진 유위세간에 대하여 그 실상을 구체적으로 나타낸 진여법계와 같은 것”(77), “18계와 6계가 육육법ㆍ5온의 유위세간에 대한 진여실상계”(127)라고 보고, “18계와 6계는 일종의 ‘과도기적’ 진여법계의 성질을 띠고”(27)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진여법계”는 반야경에서도 “진여ㆍ법계”라는 나열어로 쓰였으나 후학들에 의하여 나열의 맥락이 상실되어 사용된 용어이며, “진여실상”은 니카야/아함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반야경에서 비로소 등장하는 용어이다. 더구나 이를 니카야/아함의 “계”(18계, 6계)에 적용한 것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18계와 6계는 식의 분별 없이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곧 처處와 계界에 대한 이해가 아직은 미진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와 같은 해석을 토대로 논문의 주요 뼈대를 구성함으로 말미암아 그가 세운 체계성 자체는 아무래도 허술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일례로, “육육법六六法의 근본 12처가 지ㆍ수ㆍ화ㆍ풍 사대(원소)로 분석되면 12처의 구별 다시 말하면 육법성이 사라진다. 18계에서 육법성六法性이 사라짐과 함께 일진무변법계一眞無邊法界를 이루게 된 것이 다름아닌 6계이다”(137)와 같은 논술은 청년의 패기에 깃든 허술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위와 같은 부류의 오류를 용인하고서 그의 논문을 읽어보면, 십이처ㆍ십팔계에서 오온으로 이어지는 연기와, 다시 오온에서 십이연기로 확장되는 연기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일반적인 불교교학은 오온ㆍ십이처ㆍ십팔계ㆍ십이연기ㆍ사성제를 각기 별도의 교설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십이연기와 사성제가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은 관련 경문을 조금만 살펴도 알 수 있는 것이므로 두 교설의 결합에 대한 발견이 새로울 것은 없겠으나, 적어도 오온ㆍ십이처ㆍ십팔계ㆍ십이연기의 결합은 그동안 내가 접해본 그 어떤 불교교학이나 학술서적에서도 궁구한 바가 없었다. 그래서 나 역시도 하나의 사태를 각기 다양한 관점에서 기술한 잡다한 교설로 알고 적당히 눙치고 있었다. 그런데 “촉ㆍ수ㆍ상ㆍ사ㆍ애”와 관련된 경문들과 「호흡관법경」, 「대념처경」, 「염신경」, 「염수경 상응」 등을 숙독하면서 니카야/아함의 술어 하나하나가 우주의 성좌처럼 빈틈없이 치밀하고 정확하다는 충격을 받고서 그 근본교설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하여 청년 고익진의 논문을 다시 살펴본 결과, 그가 “육육법”을 천양함으로써 근본교설들 간의 긴밀한 내적 연관과 체계성을 드러내고자 했음을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숫타니파타」를 읽으면서 궁금해 했던 “촉ㆍ수ㆍ상ㆍ사ㆍ애”도 다름아닌 고익진이 명명한 “육육법”에 속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익진은 논문에서 「잡아함경」 권13(304) 경에서, “육내입처六內入處ㆍ육외입처六外入處ㆍ육식신六識身ㆍ육촉신六觸身ㆍ육수신六受身ㆍ육애신六愛身”을 “육육법六六法”이라 일컫는 바를 근거로, 육육법을 천양했다. 그리고 “이 육육법은 5온설과 12연기설에 인도하는 교량적인 법문으로서 그들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적으로도 훌륭한 교리조직을 이루고 있다”(53)고 밝혔다. 이는 다소 보충이 필요한 논설로, 육육법은 비단 오온과 십이연기의 연결에 그치지 않고 십이처ㆍ십팔계ㆍ오온ㆍ십이연기까지 연결시키는 교량적인 법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논문은 육육법에 관한 논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아함의 경문을 토대로 육육법을 명명하고 천양함으로써 수많은 통찰을 제시한 것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는 육육법과 관련한 여러 잡다한 경문들을 유형화하여 나열하고서 육육법이라 명하게 된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상 대강 살펴보았지만 이 한 무리의 법은 잡다한 양상과 내용을 갖고 있어 도대체 그들을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 알 수가 없다. 또한 이들은 종래 불교학의 주의를 받지 못했던 관계로 5온ㆍ12처ㆍ18계ㆍ12연기 등과 같이 통용되는 이름조차 없다. 그러나 아함에는 그들 중의 하나인 ⓔ형에 대해서 명확히 ‘六六法’이라 부르고 있다.

有六六法 何等為六六法 謂六內入處 六外入處 六識身 六觸身 六受身 六愛身 何等為六內入處 謂眼入處 耳入處 鼻入處 舌入處 身入處 意入處 何等為六外入處,色入處 聲入處 香入處 味入處 觸入處 法入處 云何六識身 謂眼識身 耳識身 鼻識身 舌識身 身識身 意識身 云何六觸身 謂眼觸 耳觸 鼻觸 舌觸 身觸 意觸 云何六受身 謂眼觸生受 耳觸生受 鼻觸生受 舌觸生受 身觸生受 意觸生受 云何六愛身 謂眼觸生愛 耳觸生愛 鼻觸生愛 舌觸生愛 身觸生愛 意觸生愛

따라서 이 ‘六六法’이라는 이름을 갖고 그에 해당한 ⓔ형 뿐만 아니라 그들 전부를 통칭하는 이름으로 삼고자 한다.

—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동국대학교 출판부, 2002년 재판), 50-51면

육육법은 한 마디로 오온, 오취온의 내부 설계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어찌하여 그토록 중요하냐 하면, 「대념처경」 법념처에서 법수관을 할 때 “오개—오온—육내외입처—칠각지—고성제(오취온)—고집성제(육육법)—고멸성제(육육법)—도성제(팔정도)” 순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는 교학적인 이해가 수행론 논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법념처의 법수관 자체가 대단히 깊은 선정에 들었을 경우에만 가능한 관찰, 적어도 심청정ㆍ심해탈과 함께 가능한 관찰인데다가, “육근ㆍ육경ㆍ육식—촉—수(ㆍ想ㆍ思)—애(ㆍ尋ㆍ司)”는 곧 “애愛의 집멸集滅”이므로, 육육법을 알고 봄이 애愛의 멸진, 무명과 행의 타파를 위한 결정적 관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육육법은 고준한 법문法門이며, 팔정도는 그 법문을 뛰어넘는 위없는 법문인 것이니 팔정도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준의 팔정도가 전혀 아니다. 선가의 표현을 빌자면, “내외명철하여 만법이 모두 현현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견見ㆍ사유思惟ㆍ어語ㆍ업業ㆍ명命ㆍ정진精進ㆍ념念ㆍ정定”이 바로 팔정도가 아니겠는가? 이처럼 육육법을 아는 것은 십이처ㆍ십팔계ㆍ오온ㆍ연기의 건축적 공간을 아는 것이며, 동시에 그 무엇보다 섬세하고 정치한 이해가 필수적인 실수실참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커다란 이익이 되는 것이다.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의 방법론과 통찰

물론 고익진은 논문의 목적상 그 정도까지 분석해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육육법의 명명과 천양 자체만으로도 후학들이 니카야/아함의 근본교설들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빛을 던져주었다고 할 수 있다.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는 눈부신 혜안과 과감한 오류로 점철된 청년의 작품, 비유컨대 니체의 문제작, 「비극의 탄생」과도 같은 작품이다. 그렇다고 장점이 눈부신 혜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논문은 과연 불교교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론적 귀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탐구 방법론을 한번 살펴보자.

첫째, 고익진은 “경으로써 경을 해석”하려고 했다. 행인지 불행인지 당시 우리나라 불교학계에서는 니카야/아함의 교학이 구사론의 비평에 의존해 소개된 수준에 불과했으며, 고작해야 김동화의 「원시불교사상」 수준의 개론적인 이해만 있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고익진의 탐구 방법론을 제어할 학계권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익진은 붓다고사의 주석을 부동의 준거로 삼는 상좌부불교의 해석이나 기존 (일본)학계의 해석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아함/니카야 경전만을 토대로 궁구할 수 있었다. 오늘날은 이미 상좌부불교의 전통적 해석이나 일본학계/서양학계의 해석이 학계권력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고익진의 논문과 같은 논문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곧 해석전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경으로써 경을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논문이 탄생하기 어렵다는 얘기이다.

둘째, 한문, 일어,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영어에 능숙했던 까닭에 경설과 교학용어를 원전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산스크리트어ㆍ팔리어 술어의 뜻을 어원학적으로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고래의 불교교학을 새롭게 이해하려고 애썼다. 일례로, 석사학위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동대신문」에 기고한 「산스카아라」(1969.11.6)라는 칼럼을 보면, “행行”(saṃskāra)의 어원과 해석사를 살피고서, “어원적으로 고찰한 ‘行’(산스카아라)의 기본인 뜻, ‘붙게 함’은 이러한 마음의 작용을 너무나도 잘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곧 중생 속에 내재하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노력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생멸, 변화하려는 법들을 그러지 못하도록 결합하고 있는 ‘함’이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쉽게 말해, 생주이멸하는 법들을 상주불변하는 존재로 전복시키는 짓거리(有爲)라고 “행”을 정의하고 있는바, 이는 “형성작용”이니 “의지작용”이니 하는 요즘의 해석과는 비교 자체를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어원적 고찰을 통한 시론이 논문 곳곳에 투영되어 있다. 고익진의 방법론을 굳이 실례로 들지 않더라도, 이제는 산스크리트어ㆍ팔리어ㆍ한문에 능통하지 않으면 더 이상 교학 및 수행을 논할 수 없는 시절이 도래하고 있으므로, 학인이라면 관련어학을 익혀 고대의 사유로 홀홀단신 뛰어들어가 사색하는 여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다 그 이익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셋째, 경전의 경설이 정합적이고 “일미성一味性”(21, 138)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그 체계성을 파악하는 데 진력했다. 그리하여 그는 경전의 형성사나 부파불교의 영향사에 큰 비중을 두면서 경전을 잡다하고 상이한 경설들의 모음집 정도로 취급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다. 이는 박식하고 경박한 학자들이 저지르는 우둔하기 짝이 없는 패악질이라고 할 수 있는바, 고익진은 그들과 달리 반야심경 경문에서 촉발된 선정체험 덕분에 경전의 일점일획에 대하여 최대한 존중하는 자세로 다가갔을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자신의 사유체계에 맞추어 경전을 자유롭게 결합ㆍ해체ㆍ증광ㆍ폐기하면서 해석하는 게 아니라, 경전의 일점일획도 절대로 건드리지 않고 자신의 사유체계를 끊임없이 해체ㆍ전복하면서 경문에 다가가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때의 “자신의 사유체계”라 함은 이천년래 불교해석사 전통으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사유체계까지 포함한 것이다. 그래서 고익진은 그토록 파격적으로 니카야/아함을 독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눈이 없다…”는 기이한 경문조차도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그가, 자신의 사유체계가 뿌리채 흔들린다한들 그 어떤 일점일획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겠는가! 제자 이미령이 회고하는 스승 고익진의 당부를 들어보면, 그러한 자세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금 시대에 다시 공부한다는 것은, 마치 바둑에서 복기復棋하는 것과도 같아. 바둑을 둔 사람은 훌쩍 떠났고 이제 우리는 바둑판에 바둑알을 하나씩 놓으며 되짚어가야만 하는 거야.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더듬어 짐작해야 해. 한 알이라도 잘못 두면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되니 신중하고 신중해야 해.”(「병고 고익진의 학문세계」(2013, 한국불교학회 창립 40주년기념 2013 동계학술워크숍 자료) 29-30면)

넷째, 위의 셋째 방법론에 부속되는 사항이지만, 경문에 대한 지극한 준중 덕분에 그는 가급적 경증經證을 통해서 논리를 구성하고자 했다. 앞서 고익진의 소논문에서 “근본적인 원리에 돌아가, 그것을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는 노력”을 언급한 바 있지만, 그가 말한 “합리적인 생각”은 이제 경증과 경증을 정합적으로 결합시켜 논리를 구성하는 것, 달리 말해 “합의성合義性”(21)으로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경증에 우위를 두고서 자신의 사유를 확인ㆍ폐기ㆍ수립ㆍ전복ㆍ확장ㆍ보완을 지속하면서 공부하는 학인은 세월이 흐르면 일반학자들과는 소위 “급”이 다르게 된다. 일반학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고익진처럼 선정에 들었던 학인의 비범한 안목은 일반적인 학술적 역량에 의해서 얻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경전에 접근하는 마음가짐, 사유하는 방식 자체가 애당초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학계 내부에서는 고익진과 같은 인물이 국외자로 취급되고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머지 부류의 학자들이 대세를 장악하여 권력과 명예와 부를 얻겠지만, 자신들이 얼마나 메마르고 생기 없는 작업을 평생동안 해왔던가를 스스로 속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전형적인 인문학 소피스트들인 것이다. (니체는 그런 부류의 학자들을 일컬어, 알렉산드리아적 문화를 지탱하는 “노예계급”이라 폄칭했다. 학자들은 니체의 폄칭조차도 자신들을 겨냥한 것인지도 모르고 현실의 노예제도를 찬동한 것이라고 곡해하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으니, 참으로 희한한 것이 세상사라 하겠다.)

다섯째, 오로지 경증만으로는 논리를 구성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경설들 간의 정합성을 수호하려면 일반 사유체계가 뿌리채 뒤흔들리거니와, 일반적인 논리적 구조들은 예외없이 침식ㆍ붕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익진은 구사론의 정의에 따라 “법상法相”을 “법 그 자체가 나타내는 뜻”(29)으로 정의하고, 연결되기 어려운 경증과 경증을 “법상”을 통해 연결하여 논리를 구성하고자 한다. 그래서 논문 제목을 “아함법상阿含法相의 체계성 연구”라 하고, 경증 자체만으로 체계성을 세울 수 없을 경우에는 법상을 얼개로 하여 체계성을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경설을 밀의설로 간주하고 그 뜻을 법상을 통해 드러낸다는 아비달마 학파의 방법론을 의지한 것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자면, 법상에 의해 연구하되 “아함교설의 귀중한 자증성自證性”(30)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지나친 논술을 삼가고 경증을 중시하며 정리해가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이 방법론이 얼핏 새로울 것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논문을 살펴보면 고익진은 그 어떤 학자보다 경증을 우선시함을 알 수 있다. 그에 비하자면, 경증을 중시합네 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실제로는 (차마 법상이라고 간주할 수도 없는 수준의) 자신의 논지를 훨씬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고익진이 좌초한 지점은 다름아닌 경증에서 법상으로 넘어가는 지점에 있다. 그 누구보다 법상보다 경증을 중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니카야/아함이라는 천의무봉의 경설은 그보다 훨씬 더, 아니 그 극에 이르기까지 경증을 우선시할 것을 요구한다. 그 극점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인간의 사유체계를 송두리째 전복시키는 경설천하經說天下이므로, 반드시 깊은 선정과 더불어 들어가지 않으면 예외없이 누구나 좌초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익진의 학문을 계승할 수 있는 자격은, 고익진의 좌초지점에서 경증을 향해 그보다 훨씬 더 밀고 나아갈 수 있는 학인에게만 있다고 하겠다. 그런 후학들이 출현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위와 같은 방법론을 거쳐 고익진의 논문에 언급된 경문들을 살펴볼 것 같으면, 경전을 전수 열람해본 자가 아니라면 전혀 접해보지 못했을 경문들이 눈에 많이 띈다. 사실 “육육법”이라는 이름조차도 한역 아함 중에서 「잡아함경」에 딱 한 번만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언급된 경문들은 매우 생소하면서도 깊이 사유해볼 만한 것들이다. 예컨대, 「잡아함경」 권31(892) 경문의 시설 순서, “내육입처ㆍ외육입처ㆍ육식신ㆍ육촉신ㆍ육수신ㆍ육상신ㆍ육사신ㆍ육애신ㆍ육계신ㆍ오음”(36, 고익진이 논문 결론에서 아함의 교리체계를 도시한 것은 대체로 이 순서에 상응한다), “촉ㆍ수ㆍ상ㆍ사”를 사무색음四無色陰이라 칭하는 「잡아함경」 권13(306)의 경문, “眼色緣生眼識 三事和合觸 觸俱生受想思 此四無色陰”(49, 여기에서 “사무색정四無色定”의 정의가 도출된다), “종종계種種界(십팔계)”와 “육육법”을 연결시키는 「잡아함경」 권16(452)의 경문, “緣種種界生種種觸 緣種種觸生種種受 緣種種受生種種愛 云何種種界 謂十八界”(79), 외육계를 연하여 想ㆍ思ㆍ觸ㆍ受ㆍ欲ㆍ熱ㆍ求ㆍ得이 일어난다는 「상윳타 니카야」의 경문(79, SN14:9) 등등이 그렇다. 여기에 예시한 경문들은 대단히 깊은 사유를 요하는 것들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흔한 잡설로 취급하고 궁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문들을 마땅히 극진하게 대하는 자세를 갖추어야만 경지境地(gocara)가 열리는 법이다. 어찌보면, 경지가 열려야 비로소 이와 같은 경문들이 성스럽게 다가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고익진의 논문에서는 위와 같은 심오한 경문들을 접할 수 있는 한편으로, 번뜩이는 통찰도 무수히 접할 수 있다. 다음에서 여러 인용문을 통하여 그의 심원한 통찰을 엿볼 기회를 갖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인용문 자체가 난해한 암호문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물론 고익진이 불교교학의 정점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인용문들이 논급하는 바를 깊이 사유하지 않는다면 니카야/아함의 교학과 수행, 반야경 전통을 논할 자격이 없음을 명심해야 하겠다.

5온은 육육법에 의해 설명되고, 12연기는 육육법과 5온에 의해 설명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5온의 수受는 육수신六受身이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이 육수신은 육육법의 육수신인 것이다.(29)

연기는 현실미계現實迷界가 중생의 미혹으로부터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보여주는 법문法門(39)

우리의 감각기관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직 자기 경계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 다른 경계는 절대로 인식할 수 없다. […] 그런데 우리의 몸은 각각 독립된 오관五官을 갖고 있으면서도 분명히 하나이고, 객관에 대해서도 종합적인 인식을 한다. 따라서 우리에겐 그런 독립적인 오관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제6근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40-41)

제6근과 제6경에 대해서 아함은 의意(manas)와 법法(dhamma)이라고 이름하고 있다. 이 명명은 그들 사이의 인식상의 관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작용ㆍ반응의 인과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 의意와 법法이 이와 같이 작용ㆍ반응의 인과관계를 나타내고 있다면 12처는 업설業說의 이론적 기초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업業은 한 마디로 의意의 작용(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41,43)

신身ㆍ구口 2업은 의업意業에 속한 것이라고 시사하고 있다. 업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사업思業과 사이업思已業이라 한다. […] 여기의 사업思業은 의업意業을 가리키고 사이업思已業은 신ㆍ구 2업을 가리킨다고 해석된다.(44)

육육법이 연기라는 것은 이미 서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것에 일체一切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ㆍ연이생緣已生과 같은 술어가 연결되어 있는 점에서 명백하다.(78)

육육법연기의 성립근거로서의 종종계種種界에 대해서도 내ㆍ외6계로 갈라 촉觸ㆍ수受는 내6계를, 상想ㆍ사유思惟 등은 외6계를 연한다(83)

아함은 12처의 색처色處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모두 사대四大와 사대조색四大造色으로 되었다고 설하고 있다. 즉, 6내입처(6근)에 대해서는 의처意處를 제외한 나머지 오처五處를 사대조정색四大造淨色이라고 설하고, 6외입처에 대해서는 법처法處를 제외한 나머지 오처를 사대와 사대조색이라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의ㆍ법 이처二處를 제외한 십처十處를 모두 4대와 4대조색이라고 할 때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정신적인 것(意ㆍ法)을 제외하고는 모두 네 가지 원소로 되어 있다는 말이 된다. […] 5온이 이와 같이 4대에 기초를 둔 것이라면 거기에는 12처의 구별이 사라져야 한다. […] 5온[의 색온]을 4대와 4대조라고 설명한 것은 색온色蘊은 의ㆍ법 이처를 제외한 십처라는 말과 같다.(85, 87)

아함은 5온도 분명히 육육법과 같은 연이생법緣已生法이라고 하면서도 그 각 지분 사이에는 연기관계가 없는 것으로 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5온의 각 지분이 그들 상호간에 연기관계가 없어 각각 별립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함에 오취온五取蘊이 설해 있는 점에서도 확실하다. […] 중생의 몸이 되려면 그들을 한 몸으로 통합하고 있는 것이 없어서는 안된다. […] 5온은 ‘취取에 속한 온蘊이 다섯 개’라는 뜻으로서 각각 별립된 5온이 취取에 의해서 한 몸으로 통합되어 있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하면 ‘취取’는 12처의 제6근(意)과 같은 작용을 하고 있다.(89-91)

[오온의] 식識(viññāṇa); 기본적인 뜻은 육육법의 식識과 같다. 그러나 그 인식대상은 반드시 그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술어는 같지만 의미내용은 교설의 진전에 따라 항상 새로워지기 때문이다.(101)

아함은 5온의 각 지분을 육육법에 의해서 설명했는데, 그와 똑같이 5취온의 집멸集滅에 대해서도 육육법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 색色과 식識의 집集에 대해서는 육육법에 그에 해당한 연기가 없으므로 애희愛喜와 명색名色에 의해 설명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색色에 대해서는 식집食集이 곧 색집色集이라는 예도 보인다.(106)

5온의 ‘집集’을 육육법의 연기에 의해 설명할 때 수(六受身), 상(六想身), 행(六思身)은 육촉六觸의 집集에 의해서 설명이 가능하지만, 색온과 식온에 대해서는 그럴 길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 둘은 육육법의 연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색집色集에 대해서는 ‘애희집愛喜集(또는 식집食集)’에 의해, 식집食集에 대해서는 ‘명색집名色集’에 의해 각각 설명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제식연기齊識緣起의 식과 명색의 상호관계는 바로 그 ‘명색집名色集’에 관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114-115)

이상의 논급 하나하나가 면밀한 경전독해와 깊은 사유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위의 논급들로부터 번뜩이는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자라면, 그는 교학과 수행에 깊이 들어선 학인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가 아직 배울 것이 산적해 있는 학인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물론 위의 논급들을 이해한다고 하여 니카야/아함의 체계성이 속시원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체계성의 일단을 밝혀본 것”이며 “결코 충분한 고찰이 행해진 것은 아니다”(139)라는 고익진의 자평처럼, 이 논문은 니카야/아함의 체계성을 밝히려는 하나의 시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접해본 그 어떤 학술서적, 그 어떤 수행서적보다 빛나는 통찰과 영감을 안겨주는 시론, 참으로 대담한 기획의 시론이며, 니카야/아함의 모든 술어를 근본적으로 재음미할 것을 단호히 요구하는 시론이다. 그점에서 나는 청년 고익진의 석사학위논문을 우리나라 현대불교학이 내놓은 저술들 중에서 주저없이 상수上首로 꼽는다.

 
고익진 선생의 비문碑文을 찾아서

동국대학교 출판부의 출간본으로 산정해보면 123면에 불과한 짧은 석사학위논문을 가지고 어찌보면 지나치다싶을 만큼 비중을 두어 평한 것으로 비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육육법”을 명명하고 천양한 것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저술이며, 숱한 영감을 선사하는 통찰들이 담겨 있는데다가 유사의 사막을 향해 흐르는 강물처럼 청량한 탐구 방법론이 흐르고 있음을 감안하자면,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는 저술이다. 참으로 후학들의 기나긴 유행遊行을 밝히 비춰줄 등불과도 같은 것이 이 논문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 후학들 중의 한 명은 다름아닌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하다.

늘 사유체계를 전복시키며 배우고 있다고 내심 자부하고 있었던 나 같은 학인도, 그동안 구태의연하게 형성된 개념틀을 가지고 초기불전을 이해하고 있었음을 미처 몰랐다. 그런데 얼마 전 「숫타니파타」를 번역ㆍ고찰해 보면서 그 안이한 사고가 일거에 무너졌다. 모든 개념이 붕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자 탐貪, 진瞋, 수受, 심尋, 의意, 애愛, 유有, 욕락欲樂, 그리고 육육법 등등 안이하게 이해하고 있었거나 별 고심하지 않았던 술어들이 완벽하게 탈바꿈되어 입체적으로 되살아오면서, 마침내 팔리 니카야 경들이 엄청난 심연 속에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니카야 경전을 공부하기에 앞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고익진의 석사학위논문을 펼쳐보니, 이 역시도 예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포착되었다. 심오한 오류와 빛나는 통찰로 점철된 논문!

그러나 애석하게도 고익진은 이 석사학위논문을 끝으로 더 이상 니카야/아함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자신조차도 이 논문의 가치를 과소평가했을 수도 있다. 이후 그는 한국불교학 문헌작업과 해석작업에 나머지 모든 생을 바쳤으며,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한국불교전서」 문헌작업은 한국불교학 연구에 있어 불후의 금자탑으로 꼽힌다. 어찌하여 그는 한국불교학 연구에 매진했던 것일까? 반야심경 경문의 인연을 맺어준 한국불교로부터 법은法恩을 입었다는 자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끝내 고익진은 니카야/아함의 경설을 더 이상 깊이 궁구하지 않았고, 한국불교학 연구에 길이 남을 지남指南을 제시해놓고 때이르게 적멸에 들었다.

불법을 만난 인연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다. 나 역시 지난 이삼년 간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를 공부하면서 서서히 니카야 경전공부를 준비해 왔지만, 불교수행의 인연을 맺어준 선불교 전통에 대하여 법은을 잊지 않고 늘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선불교 전통의 실수실참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니카야 경문이 읽힐 리도 없기 때문이다. 아직은 니카야/아함 경전을 잘 모르는지라 섣부른 추정이 되겠지만, 선불교 수행법 중에서 간화선은 사무량심 수행맥락에 속하는 듯하며, 조사선 전통은 법념처의 법수관으로 섭수되는 듯하다. 그점에서 선불교 수행은 법념처 법수관에 강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제록」에 보이는 “임제의 사료간四料簡” 같은 경우는 사념처의 “심ㆍ법”을 알지 못하면 답할 수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심ㆍ법”의 구조를 알아야 함은 물론, 법념처의 법수관을 통해 안목을 얻어야 거량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선불교는 수행법에 강점이 있긴 하지만, 초기불교 교학과 반야경 전통으로 이어지는 교학전통에는 무지하다시피하다. 이는 육조혜능의 금강경해의金剛經解義만 살펴보아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안목 자체와는 무관하게 반야경 교설에 무지함으로써 위대한 전통과 단절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교학에 무지한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의 전체맥락을 놓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맥락을 놓치면 잘못 정착된 수행법에 매여 자칫 수십년을 흘려보낼 수도 있다. 더불어 이제는 초기불교 교학을 상좌부불교 교학과 분리할 때도 되었다. 「청정도론」에 근거한 교학이란 것이 오히려 부파불교 교학보다 한참 후대의 교학인데, 과연 그것을 니카야 해석의 부동의 준거로 삼는다는 게 타당한가? 이상의 발언 하나하나가 대단히 파괴력 있는 발언인지라 조심스럽지만, 바야흐로 니카야/아함, 반야, 선을 아우르는 불교공부를 할 수 있는 시절이 도래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이와 같이 회통할 수 있는 공부를 위해서는 그동안 각 전통에 애오라지 귀속되어 공부했던 학인들이 안이하게 형성된 개념틀을 부수고 나와서 훨씬 깊은 차원에서 두루 경전을 열람하며 전정사유專精思惟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산스크리트어ㆍ팔리어ㆍ한문에 능숙해야 함은 물론, 무엇보다 선정에 들어 신ㆍ수ㆍ심ㆍ법을 수관隨觀할 수 있어야 한다. 수관隨觀이야말로 전정사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진정한 고급수준의 불교공부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이제 나는 니카야 경전공부를 위한 기나긴 유행을 떠날 때가 되었다. 이 유행이 생이 끝날 때까지 지속됨은 당연하겠으나, 적어도 반야경, 선불교까지 이르는 여정도 포함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유행을 떠나기 전, 아함의 경설을 깊이 음미하고 천재적 통찰로 아함법상을 드러내었던 고익진 선생의 부도를 찾아 배견함이 예의이리라. “지혜로운 벗, 훌륭하게 살아가는 의연한 공행자共行者를 만나거든, 알아차림 속에서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그와 함께 유행하라”는 「법구경」 경문을 마음에 새기고서 배견하리라.

지난 부처님오신날 연휴에 산사를 다녀오면서 무등산 자락의 사암私庵, “광륵사”를 방문하다. 고익진 선생이 이십대 시절에 정양했던 곳이자, 동국대 재직시절 요양차 수시로 머물렀던 곳이다. “생활인의 불교도량”이라는 주련과 “광륵사” 편액이 걸린 아담한 일주문을 지나니, 경내 건물이 여느 여염집과 다름없이 어리숙하게 틀이 잡혀 있다. 전각 하나에 나머지는 두어 채 요사. 갑진년(1964년) 김여화 필筆의 “대웅전大雄殿” 편액의 글씨가 전통자수처럼 단아하고 졸拙하여 눈여겨 보게 된다. 작은 마당 한 켠에 모친 김여화 스님의 부도와 고익진 선생의 부도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이는 고풍스런 맛이 없으나, “병고고익진지탑丙苦高翊晉之塔”이라는 명銘이 있어, 이 부도를 위시하여 이 부도가 모셔진 광륵사, 무등산이 빛난다. “이러한 비구 한 명이 있어, 고싱가 숲이 빛난다”는 경문처럼. “광륵사光勒寺”라는 사명寺名은 미륵의 빛으로 빛나라는 뜻이라던가. 또 무등無等은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의 뜻이니, 무등산 자락의 광륵사는 참으로 위없이 고준한 이름이라 하겠다.

아내가 초파일 연등을 달려고 하니 지도법사가 어떻게 이곳에 왔느냐고 묻는다. 고익진 선생의 부도를 배견하려고 서울에서 왔다하니 극진히 대접하며 그동안 내가 구하지 못했던 선생의 유일한 저작, 「한국고대불교사상사」를 건네준다. 고익진 선생이 정양 중에 머문 요사를 물으니, 평소 포행길에 홀로 입정入定했다는 독일정처獨一靜處를 가르쳐준다. 광륵사 동편 기슭에 자리잡은 저수지 인근 오솔길이다. 이 근방은 증심사를 중심으로 한 공원구역에 속한지라 부산한 편이지만, 포행길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부터 떨어져 한적하다. 아마 선생이 정양했던 시절에는 깊은 숲, 외딴 곳이었으리라.


고익진 선생이 포행하며 선정에 들었다는 오솔길을 걷다. 한나절의 햇빛에 나뭇잎들의 그림자가 일렁거리고 있으니, 문득 상념에 젖는다.

오솔길을 포행하는 중에 초여름 날씨의 햇빛과 산들바람에 어른거리는 나뭇잎들의 그림자를 보다. 마치 사대 및 사대조색이 일렁거리는 것처럼, 그 일렁거림에 덧붙는 상相에 식識이 자리잡으면서 육내외입처ㆍ십팔계로 분열ㆍ확산하고, 오온이 쌓이고 애愛가 서식하고, 마침내 유정세간과 기세간으로 펼쳐지는 것처럼. 식과 명색의 호연(識緣名色 名色緣識 二支逆順互緣)이자 십이연기….

식과 명색은 그림자의 일렁거림에 덧붙는 상相과 함께 핵분열하듯 분열하여 중중무진 확산한다. 우리의 세간은 바로 식과 명색의 호연互緣을 통한 확산덩어리, 무명과 행에 의해 켜켜이 감싸진 집적集積덩어리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식과 명색이 있으며, 그의 식은 그의 명색을 경계境界(visaya)로 삼고 살아간다. 식과 명색의 호연互緣은 곧 육입처ㆍ십팔계의 분열이며, 오온의 쌓임이며, 애愛의 서식이며, 생사의 윤회, 십이연기의 연기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세계, 유위세간이다. 그러나 선정에 들면 경계가 달라지면서, 즉 식과 명색의 중중무진에서 그 일중一重이 벗겨지면서, 비로소 식과 명색의 중중무진 연기를 관할 수 있는 흐름에 들게 된다. 그러나 그 관찰은 역설적이게도 상相이 있는 선법善法을 일으키면서 시작된다. 선가禪家의 “땅으로 인하여 넘어진 자, 땅으로 인하여 일어선다”는 법어처럼, 상相으로 인하여 넘어진 자, 상相으로 인하여 일어서야 한다. 이는 상相의 폭류를 자르고 여리작의如理作意하는 것이니, 마치 코끼리가 강물을 건널 때 그 흐름을 자르고 건너는 것과도 같다——고익진 선생이 선정에 들었던 무등산 자락을 포행하며 일렁거리는 그림자를 대하자니, 두서없이 이런저런 상념에 젖게 된다.

고익진 선생의 부도는 있지만, 그분의 탑비는 없어 비명碑銘을 찾을 길 없다. 후학들이 불교문화의 전례에 좀더 유의했더라면, 부도와 탑비를 별도로 두고 탑비에 비명을 새겼을 일이다. 비음碑陰에는 무엇을 새겨야 했을까?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눈이 없다…”는 경문 하나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분은 논문에서 당신의 병고로 점철된 생을 반추하듯이, “모든 것이 무상[ㆍ무아ㆍ공]하다면 도대체 살고 있는 것은 누구이며, 고락苦樂은 또 누가 받는다는 말인가”(129) 하는 물음을 뼈아프게 던지고 있다. 눈이 없는 세계가 진실이라면, 눈이 있는 세계에서 받는 고락은 누가 받는다는 말인가! “눈이 없다…”는 경문은 궁극의 반야(반야바라밀)로 오온이 공함을 본(照見) 보살, 육내외입처의 분열ㆍ확산을 역류하여 처處가 타개됨을 본 보살의 사자후이다. 이 무외無畏의 사자후를 토할 수 있는 보살만이 고익진 선생의 필생에 걸친 물음에 답할 수 있으며,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답은 그 어떤 답을 하더라도, 설령 경문 그대로 답할지라도 유위세간에서 벌어지는 쟁론의 수사에 불과하다.

“눈이 없다…”, 이 사자후를 알겠는가?

처處ㆍ계界의 타개와 동시에 육육법과 오온의 공함이 드러나는 “무색無色ㆍ무식無識”의 이 사자후를…,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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