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관게(慈觀偈, Mettākathā) 낭송을 들으며

«호흡관법경» 서두에 보면, 부처님 재세시 승가에서는 비구들이 다양한 종류의 수행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 언급된, 당시 비구들이 닦고 있었던 수행의 종류로는, 사념처, 사정근, 사여의족, 오근, 오력, 칠각지, 팔정도를 비롯하여, 자애(慈), 연민(悲), 기쁨(喜), 평정(捨), 부정관, 무상관, 호흡관 등을 들 수 있다.

이중에서 사무량심으로 통칭되는 자•비•희•사는 각각이 수행방식으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자(慈, mettā)를 닦는 수행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 수행방식을 일컬어 역사적으로는 “자관”(慈觀)이나 “자심관”(慈心觀), “자비관”(慈悲觀)이라 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자애관”이나 “자비관”으로 통용되고 있는 듯하다.

선불교 전통 우위의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자관은 오늘날 상좌부불교 전통에서 필수적인 수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위빠사나 수행단체들이 대부분 자관을 닦는 게송, 즉 자관게(慈觀偈, Mettākathā)를 매일 아침 낭송하고 있는 것에서도 미루어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불교의 전통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자관게는 반야심경이나 천수경의 위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애송되는 만큼 자관게는 여러 텍스트로 변형되어 전승되어 왔고, 오늘날 상좌부불교 수행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유통되고 있다. 그러나 그 변형이라는 것이 반복되는 내용을 첨삭하거나 일부 내용을 재배치하거나 조합을 새로 하는 정도일 뿐 텍스트의 주제와 실질적인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유통되고 있는 자관게는 소부경에 속하는 경전, «무애해도»(無碍解道, Paṭisambhidāmaggapāḷi) 2.4, <자관게>에 직접적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텍스트의 변형은 변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수행의 목적을 위한 축약과 정돈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무애해도»의 <자관게>에 나타난 자심방사(慈心放射, mettācetovimutti)의 대상은 세 가지 범주로 나뉘는 바, 포괄적 방사 다섯(유정, 생명, 존재, 개아, 중생), 한정적 방사 일곱(여성, 남성, 성인, 범부, 천신, 인간, 악도중생), 방향별 방사 열(시방)로 분류되어 있다. (이에 관해서는 붓다락끼따 스님의 «자비관»(고요한소리 1991)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전문은 고요한소리에서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있다.)

앞서 글을 통하여 소개한 미얀마 전통의 자관게(자애송) 낭송을 들어보면, <자관게>의 자심방사 대상 세 범주가 큰 틀을 이루고, “증오를 여의기를, 악의를 여의기를, 괴롭힘을 여의기를, 편안하게 지내기를!”이라는, <자관게>의 자심방사 내용이 정형구로 되풀이됨을 알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상좌부불교 전통의 나라들에서 유통되고 있는 자관게가 «무애해도»에 직접적인 근원을 두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자관수행, 혹은 자애명상에 관해서는 «미산스님 초기경전 강의»(명진출판 2010) 뒷부분에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출판된 관련 서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붓다락끼따 스님의 «자비관»과 자관수행 체험을 쓴 샤론 살스버그의 «붓다의 러브레터»(정신세계사 2005)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위빠사나 수행 관련 서적에서는 대부분 자관수행을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일체의 존재, 일체의 생명, 일체의 인간이 증오가 없고, 악의가 없고, 괴롭힘이 없고, 편안하게 지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자관수행이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일까?

당연히 있을 것이다. 자관수행을 포함하는 불교의 각종 수행법이 최종적으로 무상•고•무아를 자각함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면, 자관수행은 더더욱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아라는 강도 높은 논리회로의 집적, 감각회로의 집적을 가장 수월하게 위협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아의 뿌리, 에고의 뿌리를 해체시키기 위한 장도의 여정을 시작할 때, 자아는 이미 거대하고 굳건한 체계로 자리잡고 있는 상태이다. 그것은 결코 쉽게 무너질 수 없는 강력하고 광범위한 해석체계이며, 가장 익숙한 존재방식의 터전, 평생을 걸쳐 연마된 습관, 실질적으로 우리를 장악하여 조종하고 있는 주인, “집을 짓는 자”이다. 그 거인, 그 거대한 성채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전략이 필요하다. 자아의 활동, 자아의 작용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양태는 주로 탐욕과 증오와 분노다. 자관수행은 바로 그 탐욕과 증오와 분노, 즉 자아가 가장 강력하게 발현하는 거처를 서서히 허물어가는 교묘하고 능숙한 전략이다.

제일 해롭게, 제일 강하게 작용하는 자아의 측면들을 약화시키고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약화시키고 사념처 수행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사념처 수행을 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참선 역시 사무량심을 계발하면서 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서 하는 것은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유하자면, 몸을 건강하기 만들기 위해서는 운동보다 시급한 것이 해독작업인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해로운 자아의 활동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살아왔다. 그것에 끊임없이 연료를 공급하고 탄탄한 거처를 제공했다. 그러나 거처를 제공하지 않고 연료를 공급하지 않는다면 자아는 사라진다. 자아는 자아를 지탱해주는 자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으며, 고통은 고통을 받아주는 자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Mātā yathā niyaṃ puttaṃ
Āyusā ekaputtam anurakkhe
Evam pi sabba‧bhūtesu
Mānasaṃ bhāvaye aparimāṇaṃ.

Mettañ ca sabbalokasmiṃ
Mānasaṃ bhāvaye aparimāṇaṃ
Uddhaṃ adho ca tiriyañ ca
Asambādhaṃ averaṃ asapattaṃ.

어머니가 아들을, 하나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위해(危害)에서 지켜내듯
그렇게 모든 생명을 향하여
한량없는 마음을 기를지니

또한, 온 세상을 향하여
한량없는 자심(慈心)을 기를지니
위로, 아래로, 옆으로
괴롭힘을 여의고, 증오를 여의고, 원한을 여의고

— 숫타니파타의 <자애경> 중에서

모든 자관게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숫타니파타의 <자애경>(Mettā Sutta)은 모든 생명을 향하여, 온 세상을 향하여 자애심, 자비심을 기르라고 가르친다. 괴롭힘을 여의고, 미워함을 여의고, 원한을 여의고, 위로, 아래로, 사방팔방으로 한량없는 자심을 기르라고 가르친다.

이 싯구는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이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자아라는 사고-감정 복합체를 뿌리채 해체시키기 위한 대회전의 선전포고와도 같다. 누가 이 싸움에서 승리할 것인가? 미움과 증오와 분노를 버리고, 모든 생명, 온 세상을 향하여 한량없는 자비심을 기름으로써, 빈틈없이 싸울 준비를 마친 자, 누구보다도 자비심을 기본적으로 갖춘 수행자, 무서울 정도로 아름다운 전략을 품고 있는 수행자일 것이다.

자관게(慈觀偈, Mettākathā) 낭송을 들으며”에 대한 4개의 댓글

  • 고싱가님, 반야심경 처음 접하기에 좋은 해설서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pietas
  • 제가 반야심경 관련 책들은 별로 읽은 바가 없어 추천해 드리기엔 역부족입니다만,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이야기>(정토출판 1995)와 무비스님의 <반야심경>(조계종출판사 2005)이 어떨까요? 무비스님의 경전해설은 전통적인 노선의 해설이라는 장점이 있고, 법륜스님 글들은 실천적 해석이 돋보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화스님의 반야심경(법공양 2005)은 시적인 고백류의 독특한 맛이 있고, 성법스님의 반야심경은 다른 경전해설을 읽어본 경험에 비추어볼 때 저와는 잘 맞지 않아 추천해 드리긴 어렵고요.

    틱낫한 스님과 달라이 라마 스님의 반야심경 해설서도 있던데, 두 분의 글들을 조금밖에 접해보지 못한 저로서는 호오를 말씀드리기가 힘드네요. pietas님께서 두루 접해보시다가 마음에 드시는 해설서를 만나시면 저에게도 귀띔해 주세요.

    고싱가
  • 법상스님과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을 조심스레 추천해봅니다 ^^

    보리
  • 저같은 경우에는 법상스님의 글은 인터넷에서 접해보았기 때문에 별로 접해보지 못한 틱낫한 스님의 책을 읽어봐야겠네요.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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