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의 위험, 수천 년의 소리 — 새벽예불 음반을 들으며

흥선스님은 답사안내서인 «팔공산 자락»에서 예불을 두고 “수행자들이 피워올리는 침묵의 꽃”이라 했다. 목탁, 법고, 운판, 목어, 범종, 작은종의 소리가 울려도 그 소리는 침묵이며, 도량석, 종성, 예불문에서 음성이 울려퍼져도 그 음성은 침묵이다. 소리도 음성도 뿌리는 공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절집 예불은 본질적으로 침묵, 향연(香煙)처럼 피어오르는 침묵이다. 그래서 예불을 수행자들이 피워올리는 침묵의 꽃이라 했을 것이다.

절집의 소리, 절집의 음악은 일반 음악처럼 매혹을 발산하지 않으며, 오히려 아름다운 매혹을 끊어버리고 소리의 공성을 체험하도록 이끈다. 그것은 청정한 소리이다. 그러므로 예불소리는 듣는 이들의 마음에 매혹적인 움직임을 형성시켜 그 마음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을 텅 비게 만들어 그 마음이 소리의 운명처럼 산으로 계곡으로 흩어져 사라지게 만든다. 바꿔 말하면, 듣는 이들의 마음에 매혹적인 움직임을 형성시켜 그 움직임을 되풀이시키고 가속시키는 소리는 예불소리로 적합하지 않다.

비구들이여, 법을 노래하듯 읊었을 때의 위험이 다섯 가지 있다.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스스로가 소리에 애착하게 되며,
다른 이들도 소리에 애착하게 되며,
상류계 인사들이 비웃으면서 “저 석가의 아들들이 우리와 똑같이 노래한다”고 말하며,
그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의 집중이 무너지며,
뒷사람들이 그것을 따라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법을 노래하듯 읊었을 때의 위험 다섯 가지이다.

— 앙굿따라 니카야, 5.209

증지부 아함에서는 법을 노래로 읊었을 때의 위험을 다섯 가지로 말하고 있다. 그 중에서 핵심적인 위험은 역시 “소리에 대한 애착”이다. 어떤 현상이든 좋아서 집착하는 면이 있다면, 반대급부로 싫어서 멀리하는 면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불로소득으로 생활을 꾸릴 수 있는 상류계 인사들(gahapatikāpi)은 좋아서 집착하는 면을 결정화시켜 욕망을 충족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 경향성이 음악에 적용되면, 애착하는 감정을 순정화시켜 만들어낸 유희, 하나의 고급예술이 된다.


실상사 약사전의 비천상. 비천의 날아감은 바람과 같고 물결과 같다. 매혹적인 선율의 반복성에 따라 회귀하는 움직임이 아니라 생멸의 흐름을 따라가는 듯한 움직임이다.

선율이나 가락에 애착하는 감정이 실려 있다면, 법을 노래하든 연정시를 노래하든 그 소리는 상류계 인사들의 유희와 다를 바 없다. 소리에 법이 묻히기 때문이다. 선율이나 소리가 마음에 회귀하는 움직임을 형성시키면 마음은 그 스스로의 즐거운 수레바퀴를 따라 스스로 운동을 하며, 그리하여 마침내 법은 그 운동 속에 함몰되고 만다. 순정화된 감정의 흐름은 매력적이고 회귀적이라는 면에서 근본적으로 수행자들의 집중, 선정과는 다른 흐름이다. 물론, 모든 것을 타고갈 수 있는 아라한 경지에 있는 이들은 어떤 거스르는 흐름이 다가와도 방해받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수 있겠지만, 일반 수행자들은 집중·선정을 거스르는 흐름 앞에서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일반 언어도 아니고 선율과 함께 하는 법이잖는가.

따라서, 예불소리는 “법을 노래하듯 읊었을 때의 위험”과 싸우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닷물의 소금맛처럼, 모든 법은 “한 맛”을 갖는 법이며, 수천 년의 불교 역사는 지역을 불문하고 바로 그 한 맛으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예불소리는 마음에 애착을 일으켜서도 안되고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도 안되는 전제조건 속에서 탄생하고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마음을 끌어당기거나 마음을 거스르는 소리여서는 안된다. 그저 시냇물이나 바람 같은 자연의 소리처럼 울려야 한다.
 

국내에서 출반된 거의 모든 예불녹음 음반을 구입해 들어보았다. 자연의 소리처럼 모든 면이 완벽한 음반은 없었다. 더러는 수행자의 인위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소리도 있는가하면, 텅빈 소리처럼 청담한 소리도 있다. 음반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평하기는 어렵겠지만, 대강의 특성을 소개하여 예불 음반을 구입하려는 분들에게 조그만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해인사[예불·禪](1989년)
1. 도량석
2. 아침종성
3. 사물(북, 범종, 목어, 운판)
4. 예불
5. 이산혜연선사발원문
6. 반야심경
7. 천수경

해인사 새벽예불이다. 능허스님의 도량석과 아침종성이 맑고 높으며, 범종은 새벽에 스물여덟 번을 치도록 되어 있는데 그중 열 번 정도의 타종만 녹음되어 있다. 반야심경과 천수경 독경은 대중스님들의 입이 맞지 않아 분잡하게 들린다.

해인사 새벽예불(1997년)
1. 도량석
2. 아침종송
3. 사물(법고, 범종, 목어, 운판)
4. 예불
5. 발원문
6. 반야심경
7. 천수경

1997년 녹음된 음반이다. 유일하게 스물여덟 번의 타종이 모두 녹음된 음반인데, 녹음 위치를 잘못 선정해서인지 사물의 소리가 전반적으로 둔탁하게 들린다. 천수경 독경은 1989년 음반처럼 듣기에 편하지가 않아, 해인사 대중의 빠르고 높은 기상을 맛보기 어렵다.

산사의 새벽
1. 도량석
2. 아침종송
3. 명고타종
4. 오분향례
5. 발원문
6. 반야심경
7. 천수경

출반된 지 꽤 되는, 제작년도 미상의 해인사 새벽예불이다. 소위 명상음악을 제작하겠다는 의도로 신디사이저 음악을 배경으로 깔았다. 그래서 새벽예불과 소위 명상음악이 괴이하게 결합되어 있다. 신디사이저 명상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오롯이 예불소리만 들으려는 분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승보의 울림
1. 도량석
2. 종송
3. 불전사물
4. 예불
5. 발원문
6. 반야심경
7. 천수경
8. 금강경

송광사에서 자체 제작한 새벽예불 음반인데, 녹음이 꽤 잘 되어 있다. 금강경 합송이 들어 있는 게 이채롭지만, 음반의 분량상 도량석이나 종송을 짧게 실었으며, 아쉽게도 타종 소리는 스물여덟 번 중 열 번 정도만 실었다. 노장스님의 발원문이 담박하여 들을 때마다 새롭다. 송광사 새벽예불은 전반적으로 꾸밈이나 화려함이 없이 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반야심경과 천수경 독경도 물 흐르듯 힘차고 좋다. 이 음반에 대해서는 송광사의 새벽예불, <승보의 울림>에서 소개한 바 있다.

통도사 새벽예불
1. 도량석
2. 아침종성
3-6. 운판, 목어, 법고, 범종
7. 예불문
8. 행선축원
9. 천수경
10. 입정

제작년도 미상의 통도사 새벽예불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통토사의 새벽예불은 장중하고 귀족적이다. 특히 예불문의 느린 호흡과 깊은 공간감은 듣는 이들을 압도한다. 사물 소리도 하나하나 음미하듯 친다. 범종 소리가 절반 정도로 줄여서 실린 점이 아쉽다.

空 CD2
1. 송광사 저녁예불 – 명고타종(사물)
2. 송광사 저녁예불 – 예불문, 반야심경, 천수경
3. 해인사 저녁예불 – 종송, 명고타종(사물)
4. 해인사 저녁예불 – 예불문, 반야심경, 금강경
5. 운문사 저녁예불 – 종송, 명고타종(사물)
6. 운문사 저녁예불 – 예불문, 반야심경

전통의 소리를 전문적으로 녹음하는 코리아루트에서 제작하여 2004년 출반했다. 음질에 관한 한 최고의 녹음이며, 다른 음반과는 달리 저녁예불을 녹음했다. 송광사의 천수경 독경과 해인사의 금강경 독경이 음반 분량 때문에 일부만 실려 있는 점이 아쉽다. 운문사의 단아하고 정갈한 예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귀한 음반이다. 이 음반에 대해서는 空 — 소리로 찾아 떠나는 그 곳, 山寺에서 소개한 바 있다. 바라기는, 언젠가는 코리아루트에서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운문사 등지의 새벽예불을 녹음했으면 좋겠다.

 

위에 언급한 음반들은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어떤 음반은 다른 음반에 비해 비교 우위에 있지만 음반 분량 때문에 일부 소리를 줄여서 싣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한 음반을 전적으로 추천하기가 힘들다. 예불소리가 생략되지 않은 녹음은 <해인사 새벽예불>(1997)이 유일하지만, 딱히 추천할 만한 녹음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각 음반 트랙 중에서 최대한 인위적인 맛이 덜 가미된 소리를 골라서 개인적인 새벽예불 편집반을 만들어보았다. 트랙 구성은 아래와 같다.

새벽예불 편집본

1. 도량석(해인사 1989년)
2. 아침종성(해인사 1989년)
3. 사물(통도사)
4. 예불문(통도사)
5. 발원문(송광사)
6. 반야심경(송광사)
7. 천수경(송광사)
8. 입정(통도사)

위 구성 중에서 통도사의 사물은 범종 타종 소리가 절반 정도로 줄여서 실려 있는데, 그 분량을 스물여덟 번의 타종으로 늘려서 편집했다. 이렇게 편집하고 보니 약 80분에 약간 못 미치는 분량이어서 다행히도 음반 한 장에 모두 들어간다. 이 새벽예불 편집반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듣고 있다.

새벽예불을 들을 때마다 상념에 잠겨본다. 이 소리는 천 년의 세월을 뚫고 살아남은 소리가 아닐까? 아니, 정신적 근원상 “법을 노래하듯 읊었을 때의 위험”과 유구하게 싸우면서 이루어진 소리임을 감안하자면, 이천 년, 이천오백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소리가 아닐까?

스스로 소리에 애착하지 않으며, 그리하여 남들도 소리에 애착하지 않게 하며, 예술의 고급욕망을 따라 흐르지 않으며, 수행자의 청정한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며, 매혹의 선율이 되어 마음을 유혹하지 않는 소리, 이것이 절집소리의 본령이 아닐까? 이 본령에 부합하는 녹음도 있겠고 부합하지 않는 녹음도 있겠지만, 절집소리가 이것을 지향하는 것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오음이 서서히 깨어나는 시각, 산하의 어둠 속에서 도량석이 정갈하게 울린다. 이윽고 법당 안으로부터 작은 종소리가 철위산의 어둠을 밝히며 “파지옥진언”, 지옥을 깨트리는 청정한 진언을 토한다. “나모 아따 시지남 삼먁삼못다 구치남 옴 아자나 바바시 지리지리 훔 . . .”

산사의 새벽은 이렇듯 수천 년의 정신적 전통을 계승하며 세간의 어둠을 밝히기 시작한다. 수천 년의 위험도 매일 되풀이되고, 수천 년의 소리도 매일 되풀이된다. 부디 그 전통 길이길이 살아남아 그 청정함 영원히 빛나기를!

수천 년의 위험, 수천 년의 소리 — 새벽예불 음반을 들으며”에 대한 3개의 댓글

  • 고싱가님. 니체 때문에 처음 알게 된 이후 자주 접하다가 최근 불교에 관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추천하신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이런 부탁드리기는 참으로 죄송스럽습니다만, 혹시 직접 편집하신 예불소리 편집본의 파일들을 구할 수 없을까요?

    pietas
  • 반갑습니다. 저작권법 때문에 부탁하신 것에 대하여 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 대신 음반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송광사의 승보의 울림은 유일하게 진주시의 보문불교사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아마 송광사와 가까운 곳이라서 판매가 가능한가 봅니다.

    그리고 통도사나 해인사(1997년) 새벽예불은 일반 인터넷 불교용품점에서도 두루 판매되고 있습니다. 서울에 계시면 조계사 건너편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에 있는 불교전문서점에도 비치되어 있으니 그곳에서 구입이 가능합니다. 다만 해인사(1989) 녹음은 구입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의 편집본은 각 삼보사찰 새벽예불의 전체 분위기를 맛보지 못하는 단점이 있는 만큼, 각 사찰의 음반 전체를 들으시면서 절집의 분위기에 젖어보는 것도 큰 매력이 될 것같습니다. 어렵게 얘기를 꺼내셨는데 요청에 응하지 못해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고싱가
  • 예, 감사합니다. 찾아서 들어보겠습니다. ^^

    pie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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