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보라»의 차라투스트라 6-7

6.

이 작품은 단연 독보적이다. 시인들은 제외하자: 아마도 결코 그 어떤 것도 이만큼 힘이 흘러넘쳐 실행되지는 않았으리라. 나의 “디오니소스적”이라는 개념은 여기에서 최고의 행위가 되었다; 이 행위를 기준으로 하자면, 여타 인간적 실행 전체가 초라하고 제한된 것으로 드러난다. 어느 괴테, 어느 셰익스피어도 이 엄청난 정열과 높이에서는 한 순간도 숨쉬지 못할 만하다는 점, 단테도 차라투스트라에 비하자면 한 명의 신봉자일 뿐 진리를 처음으로 창조한 자도 아니요,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의 정신, 하나의 운명이 아니라는 점 —, 베다의 시인들은 사제들이요, 어느 차라투스트라의 신발끈도 풀어 줄 만한 자격이 전혀 없다는 점, 이것은 모두 극히 미미한 것이며, 이것은 거리(距離, Distanz)에 관해서나 이 작품이 살고 있는 옅은 하늘색 고독에 관해서나 어떤 개념도 제공하는 바 없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할 만한 영원한 권리가 있다: “내 주위로 원을 그으니 성스러운 경계를 이룬다; 산이 높을수록 나와 함께 오르는 자는 점점 적어진다, — 점점 성스러워지는 산들로 나는 산맥을 짓는다.” 모든 위대한 영혼들의 정신과 선의를 하나로 모아보라: 그 모든 것을 합한들 차라투스트라의 한 설법(Eine Rede)을 내놓지 못하리라. 차라투스트라가 오르내리는 사다리는 어마어마하다; 그는 어느 인간보다도 더 넓게 보았으며, 더 넓게 의욕하였으며, 더 넓게 가능했다. 그가 하는 말마다 반박하는 말이다, 그는 모든 정신들 중에서 가장 긍정하는 정신이어니; 그 정신 안에서는 온갖 대립들이 하나의 새로운 통일로 묶인다. 인간적 본성의 최고의 힘들과 최저의 힘들이, 가장 감미롭고 가장 가볍고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 불멸의 확실성과 함께, 한 샘(Ein Born)에서 솟구쳐 흐른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사람들은 높이가 무엇이고 깊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더더욱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진리가 그렇게 계시될 때의 순간은, 사전에 간파될 만한 [성질의] 순간이 아니며, 가장 위대한 자들 중 어느 누군가에 의하여 예측될 만한 [성질의] 순간도 아니다; 차라투스트라 이전에는 지혜도, 영혼의 탐구도, 설하는 법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것, 가장 일상적인 것이 여기에서는 전대미문의 것들에 관하여 설한다. 금언이 정열로 떨고 있다; 달변이 음악이 되었다; 번개들이 이제까지 예측이 불가능했던 미래들을 향하여 먼저 쳤다. 비유를 가장 강력하게 다룰 수 있었던 기존의 힘은, 조형력의 본성을 향하여 언어가 되돌아가는 것을 막는 허튼짓이 되고 말며 또 빈약해진다. — 그런데 어떻게 차라투스트라가 내려와 각자에게 가장 호의적인 것을 말하고 있는가! 어떻게 그 스스로 자신의 대척자, 사제들을 부드러운 손으로 붙잡고 그들과 함께 그들을 겪어내고 있는가! — 여기에서 매 순간마다 인간이 극복되었다, “초인” 개념이 여기에서 지고의 현실이 되었다, — 이제까지 인간에게서 위대하다고 칭했던 모든 것이 그의 아래로 한없이 멀리 떨어져 있다. 태평한 것이, 가벼운 발이, 악의와 오만의 편재가, 그리고 그밖에 차라투스트라 유형에 유형적인 모든 것이, 위대한 것들에 본질적이라고는 그 누구도 꿈에라도 생각하지 못했다. 공간의 그만한 범위에서, 대립적인 것에 대한 그러한 접근성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스스로를 모든 존재물 중 최고의 종(種)으로 느낀다; 그리고 차라투스트라가 그 종을 어떻게 정의하는가를 들어보면, 사람들은 나름의 비유를 찾기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 가장 기다란 사다리를 갖고 있으며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는 영혼,

제 안에서 가장 넓게 달리고 헤매고 배회할 수 있는, 더없이 광범위한 영혼,

쾌활하게 우연 속으로 추락할 수 있는, 더없이 필연적인 영혼,

생성 속으로 들기를 원하는, 존재하는 영혼, 의욕과 염원 속으로 들기를 원하는, 소유하는 영혼 —

제 자신을 피하는, 제 자신을 가장 넓은 원환들 속에서 영접하는 영혼,

어리석음이 가장 감미롭게 말을 거는, 더없이 지혜로운 영혼,

제 자신을 더없이 사랑하는 영혼, 그 영혼 안에서, 만물이 순류와 역류와 썰물과 밀물을 얻나니 — —

그러나 이것이 디오니소스 개념 자체이다. — 바로 이것을 안내하는 것이 [이어질] 또 하나의 숙고이다. 차라투스트라의 유형에서 심리학적인 문제는, 사람들이 이제까지 예라고 말했던 모든 것들에 대하여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아니오를 말하고 아니오를 실행하는 자,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아니오를 말하는 정신과 대립일 수 있느냐는 것; 운명의 가장 무거운 것, 과제의 숙명을 짊어지고 있는 정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가장 가볍고 가장 저편의 정신일 수 있느냐는 것 — 차라투스트라는 한 명의 춤꾼이어니 —; 현실을 가장 가혹하게, 가장 공포스럽게 들여다본 자, “가장 심연인 사상”을 사유한 자,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현존에 대해서, 아니 현존의 영원회귀에 대해서조차 반박거리를 찾지 않느냐는 것, — 도리어, 만물을 향한 영원한 긍정, “제한을 모르는 엄청난 예를 말하고 아멘을 말하기” 자체가 되기 위한 근거를 더욱 찾느냐는 것 . . . “모든 심연 속으로, 나는 또한 나의 축복하는 긍정을 들고 가노니” . . . 그러나 이것이 다시 한번 디오니소스의 개념이다.

 

7.

— 그러한 정신이 오로지 제 자신하고만 말한다면, 어떤 언어를 말할 것인가? 디튀람보스의 언어이다. 나는 디튀람보스의 고안자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제 자신하고 해 뜨기 전(Ⅲ, 18) 말한 것을 들어보라: 그러한 비취빛 행복, 그처럼 신성한 보드라움은, 나 이전에 혀에 오른 바 없다. 그러한 디오니소스의 가장 깊은 암울함도 역시 디튀람보스가 된다; 그 표시로, 나는 밤의 노래를 들겠다, 빛과 권력이 흘러넘침으로 말미암아, 그것의 태양 본성으로 말미암아, 사랑하지 못하도록 판결 받은 불멸의 비탄을.

밤이어라, 이제 모든 솟아나는 샘물이 더욱 소리 높여 설하네. 그리고 내 영혼도 솟아나는 샘물이어라.

밤이어라, 이제 비로소 사랑하는 이들의 모든 노래가 깨어나네. 그리고 내 영혼도 사랑하는 이의 노래여라.

진정되지 않는 것, 진정될 수 없는 것이 내 안에 있어 그것이 소리 높이려 하네. 사랑을 향한 열망이 내 안에 있어 저 스스로 사랑의 언어를 설하네.

나는 빛이어라, 아아, 내가 밤이라면! 그러나 내가 빛에 싸여 있다는 것, 이것이 나의 고독이어라.

아아, 내가 어두운 자요 밤인 자라면! 어찌 내가 빛의 가슴을 빨기를 원했던가!

그리고 [어찌] 내가 너희까지도 축복하기를 원했던가, 너희 반짝이는 작은 별들이여 저 위의 반딧불들이여! — 그리고 [어찌] 너희의 빛-선물들로 인하여 복되기를 [원했던가].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의 빛에 살고 있어라, 내게서 일어나는 불꽃을 내 안으로 다시 삼키노라.

나는 받는 자의 행복을 알지 못하나니, 자주 꿈꿨노라, 받음보다 훔침이 더욱 복될 수밖에 없기를.

나의 손이 한시도 쉬지 않고 선사한다는 것, 이것이 나의 가난이어라. 기다리고 있는 눈을 보고 동경으로 밝혀진 밤들을 보는 것, 이것이 나의 선망이어라.

오 모든 선사하는 자들의 불행이여! 오 나의 태양의 일식이여! 오 열망하기를 바라는 열망이여! 오 포만 속의 격한 허기여!

그들은 나에게서 받는다. 그러나 나 역시 그들의 영혼에 닿아 있는가? 줌과 받음 사이에는 균열이 있어라, 그리고 가장 작은 균열이 가장 건너기 힘든 것.

나의 아름다움으로부터 허기가 자라나네. 내가 비추고 있는 자들을 아프게 하고 싶어라, 내가 선사했던 것을 빼앗고 싶어라: — 그토록 나 악의에 굶주려 있나니.

과연 너희가 손을 내밀 때 나 손을 물리네, 낙하하는 때에도 멈칫하는 폭포처럼 나 멈칫하네: — 그토록 나 악의에 굶주려 있나니.

그같은 복수를 나의 충만함이 생각해내고, 그같은 음모가 나의 고독으로부터 솟아나네.

선사할 때의 나의 행복은 선사할 때에 죽었노라, 나의 덕은 흘러넘침으로 인하여 저 스스로에게 지치고 말았노라!

늘 선사하기만 하는 자의 위험이란 그가 부끄러움을 상실하는 것, 늘 나눠주기만 하는 자의 손과 마음은 순전한 나눔 이전에 멍울이 선다.

청하는 자들의 부끄러움을 두고 나의 눈은 더 이상 [눈물이] 넘쳐나지 않네, 가득한 손들의 떨림에 비하자면 나의 손은 너무 굳어졌네.

내 눈의 눈물은 어디로 갔으며 내 심장의 솜털은 어디로 갔는가? 오 모든 선사하는 자들의 고독이여! 오 모든 비추는 자들의 침묵이여!

무수한 태양들이 적막한 공간을 회전하는구나. 어두운 만물을 향하여는 태양들이 저의 빛으로 설하네, — 나를 향하여는 태양들이 침묵하네.

오 이것이야말로 비추는 자에 대한 빛의 적대이니, 빛은 무자비하게 저의 궤도를 운행하는구나.

가장 깊은 심장으로 비추는 자에 대하여 부당하게, [다른] 태양들에 대하여 냉혹하게, — 그렇게 태양들이 저마다 운행하는구나.

하나의 폭풍처럼, 태양들은 저의 궤도를 날아가네, 이것이 태양들의 운행이어라. 태양들은 저의 가혹한 의지를 뒤따르네, 이것이 태양들의 냉혹함이어라.

오 너희 어두운 자들이여, 너희 밤인 자들이여, 너희야말로 비추는 자로부터 너희의 따뜻함을 창조하는 자들이어라! 오 너희야말로 빛의 젖가슴으로부터 젖과 청량제를 마시는구나!

아아, 얼음이 내 주위에 있어 나의 손이 빙설에 화상을 입는구나! 아아, 갈증이 내 안에 있어 너희의 갈증을 갈구하는구나!

밤이어라, 아아, 내가 빛이어야 하다니! 그리고 밤인 자에 대한 갈증이어야 하다니! 그리고 고독이어야 하다니!

밤이어라, 이제 내게서 나의 염원이 샘처럼 터지네, — 나 설하기를 염원하네.

밤이어라, 이제 모든 솟아나는 샘물이 더욱 소리 높여 설하네. 그리고 내 영혼도 솟아나는 샘물이어라.

밤이어라, 이제 비로소 사랑하는 이들의 모든 노래가 깨어나네. 그리고 내 영혼도 사랑하는 이의 노래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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