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보라»의 차라투스트라 5

그 열흘 씩의 작업들을 제외하자면, 차라투스트라의 해들, 특히 차라투스라 이후의 해들은 유례없는 긴급상태였다. 사람들은 불멸하기 위해서는 비싼 보상을 치른다: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생애에 몇번이나 죽는다. — 내가 위대한 것의 원념(怨念, racune)이라고 부르는 그 뭔가가 있다: 작품이든 행위이든 모든 위대한 것은 한번 성취되고 나면, 그것들을 실행했던 자를 대항하여 즉각 방향을 튼다. 그가 그것들을 실행했다는 것, 바로 그것으로 인하여, 이제 그는 허약하게 된다, — 그는 자신의 행위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며, 더 이상 그것의 얼굴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사람들이 결코 바라지 말아야 했을 그 뭔가를 제 뒤에 두다니, 그 뭔가의 안에 인류의 운명이 매듭지어져 있거늘 — 그리고 이제 그것을 제 위에 두다니! . . . 그것이 으깨다시피 하니 . . . 위대한 것의 원념이어라! —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제 주위에서 듣는 으스스한 정적이다. 그 고독은 일곱 겹의 피부를 가지고 있다. 그 어떤 것도 그것을 뚫고 지나가지 못한다. 사람들(man)이 인간들(Menschen)에게 다가가고 벗들에게 인사하지만, 새로운 적막이 인사할 뿐, 더 이상 그 어떤 시선도 인사하지 않는다. 일종의 폭동이 최선의 경우이다. 그와 같은 폭동을 나는 경험했다, 아주 여러 수준에 걸쳐, 그것도 내 가까이 있었던 거의 모든 이들로부터; 갑자기 거리를 느끼게 되는 것보다 더 깊은 모욕은 없는 듯하다, — 고귀한 본성인데도 숭배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줄 모르는 경우는 드물다. — 세번째는, 사소한 상처에도 피부가 터무니없이 민감하다는 것이다, 온갖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속수무책이라고나 할까. 내가 보기에 이 속수무책은 온갖 방어력을 엄청나게 소모했을 때로 한정되는 듯하다. 방어력이라 함은, 창조적인 행위들마다, 가장 고유하고 가장 내면적이고 가장 저변인 것에서 비롯하는 행위들마다,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소한 방어능력들이 떨어져나갔다고 할 만하다; 그것들에는 그 어떤 힘도 흘러들지 않는다. — 내가 과감하게 암시까지 해주겠거니와, [그런]사람들은 소화력이 좋지 않으며, 움직이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한기寒氣와 불신에 대하여 너무나 활짝 열려 있다, — 불신은, 대개 병인病因을 잘못 짚어 [질병이라고] 진단한 것일 뿐이다. 그런 상태에서 나는 암소떼의 접근을 감지한 바 있다, 암소떼를 채 보기도 전에, 좀더 온화하고 좀더 인간에게 친밀한 사상들이 회귀하는 것을 단서로 하여: 그것은 온기를 품고 있느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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