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오페라의 고전적인 해석들

모차르트 음악을 본격적으로 좋아한 지 15년 가량 되었으니까, 나로서는 하필 가난한 학생 시절에 음반을 구입해야 했던 셈이다. 그 시절 수입의 지출비로는 음반 구입비가 단연 수위였고, 책값이 그 다음이었다. 책이야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도 있는데 음반은 애초에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페라 음반 같은 경우는 가격이 비싸 오페라는 가장 더디게 접근한 장르이기도 했다.

모차르트 오페라를 녹음한 음반은 보통 시디 2~3장 짜리로 가격이 최소한 35,000원 가량 된다. 물론 마음에 드는 연주 해석이라면 그 가격이 결코 비싸게 여겨지지 않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해석인 경우에는 그 35,000원 짜리가 체감상 5,000원 짜리로 격하된다. 그때의 실망이란… 책처럼 미리 내용을 훑어볼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저런 평을 취합하여 베팅 하는 기분으로 사는 것이 음반인 바, 음반을 플레이어에 올려놓는 순간은 참 걱정스러운 순간이기도 했다.

어느 음악가나 사정은 마찬가지이겠지만, 모차르트 음악에 관한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고 어느 한 음반에 대한 호오도 극명하게 갈리기도 한다. 이것은 예로부터 “취향은 논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서양인들의 명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자신의 호오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고, 나 또한 이런 경험이 비일비재하다. 단적인 예로 아르농쿠르의 교향곡 녹음을 처음 들었을 때 눈에 불을 켜고 반대를 표했으나(수년 간 그의 음반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지금은 대단한 관심을 갖고 듣고 있다. 그리고 과거 오륙년 전에 썼던 모차르트 관련 글들을 읽어보자니 여간 낭만적인 게 아니다.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쓰지 않을 텐데, 지금의 나는 그렇게 여성적인 감수성과는 거리가 먼데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어쩌랴, 그러 했던 자도 나이고 지금의 나도 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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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오페라 모음집” (알라딘에서 확인하기)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는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모차르트 해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모차르트의 오페라 음반을 추천하기 위한 것이다. Documents 라는 처음 보는 음반사가 발매한 음반이다. 이 음반사는 주로 저작인접권이 만료된 음반만을 대상으로 박스 세트로 만들어서 판매하는 듯하다.

즉, 모차르트 음악의 저작권은 이미 만료되었고 모차르트를 녹음한 음원의 저작인접권은 일반적인 경우 녹음 이후 50년이면 만료되므로, 현재 2007년을 기준으로 1956년 이전에 녹음된 모차르트 음악은 공유(Public Domain)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음원은 누구든 아무런 제한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결국 이 음원을 물리적인 형태로 고정시켜(즉 음반으로 만들어) 판매해도 되고 무료로 웹상에 공개해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로서는 클래식 음반으로는 처음 접하는) Documents 라는 음반사가 총대를 메고(아마도 기존 음반사들은 그들간의 상도의라든가 암묵적인 관할권이 있을텐데 그런 것을 무시하고) 저작인접권이 만료된 음반만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염가에 판매하기 시작한 듯하다.

가령, 이 글에서 소개하는 “모차르트 오페라 모음집” 음반만 해도 모차르트의 불후의 오페라들인 <여자는 다 그래(코시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를 시디 10장에 담아 2만 원의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여자는 다 그래>는 칼 뵘, <피가로의 결혼>은 에리히 클라이버, <돈 조반니>는 요제프 크립스, <마술피리>는 페렌츠 프리초이(혹은 흔히 통용되는 바로는 페렌크 프리차이)가 각각 지휘한 음원인데, 알다시피 이 지휘자들은 모차르트 해석에 있어 다들 한 가닥 했던 양반들이다. 특히 에리히 클라이버의 <피가로의 결혼>은 거의 모든 모차르트 음악 애호가들이 예외없이 최고로 꼽고 있는 <피가로의 결혼>이기도 하다.
 

사실 인간들의 그 복잡 다양한 심성상 어느 한 음반에 대한 의견 일치를 본다는 것 자체가 어렵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알다시피 칼 뵘, 브루노 발터, 아르농쿠르 등이 일세를 풍미한 지휘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차르트 음반에 대해서는 호오가 대단히 엇갈린다. 그런데도 에리히 클라이버의 <피가로의 결혼>에 대해서는 거의 의견 일치를 보고 있으니 가히 독보적인 녹음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그 음반 가격만 해도 3~4만 원에 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음반을 포함하여 무려 네 작품을 모두 합하여 단돈 2만 원에 판매한다고 하니 과거 학생 시절 이 음반들을 거금을 들여 구입했던 기억이 유독 쓰리게 느껴진다. 그러나 세월은 세월인 만큼, 모차르트는 모두의 모차르트인 만큼,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더구나 나는 칼 뵘의 <여자는 다 그래>는 ‘다행히도’ 소장하고 있지 않아 이 음반을 구입하는 것이 억울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칼 뵘의 그 긴장감이 싫어 그의 해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의 해석도 흥미롭다.)

<여자는 다 그래>,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는 1955년 녹음이고 <마술피리>는 1954년 녹음이다. 모차르트 해석에 있어 어떤 견해를 가졌든 이 네 음반 중에서 적어도 하나나 둘은 마음에 드는 해석을 만날 것으로 기대해도 될 것이다. 거꾸로 말해, 적어도 하나나 둘은 마음에 들지 않는 해석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젊은날의 단선적인 사고에서 벗어난 나이라면 오히려 이런 다양한 해석들, 나의 견해와는 다른 해석들로 인하여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요제프 크립스가 지휘한 <돈 조반니>는 내가 꼽고 싶은 “이 한 장의 음반”이다.
 

이 “모차르트 오페라 모음집”의 약점은 음반내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각 오페라의 대사는커녕 기본적인 안내도 없다. 오직 있는 것은 음악을 듣는 데 필요한 최소 정보인 트랙정보와 지휘자·가수들의 이름 뿐이다. 헌데 내게는 이 점도 마음에 든다. 요즘 충실한 정보는 웹상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으므로.

이 음반의 구성과 해석자들의 구체적인 면모는 이렇다:

CD 1-2
Così fan tutte

Fiordiligi: Lisa della Casa (Sopran / soprano) – Dorabella: Christa Ludwig (Sopran / soprano) – Guglielmo: Erich Kunz (Bariton / baritone) – Ferrando: Anton Dermota (Tenor / tenor) – Despina: Emmy Loose (Sopran / soprano) – Don Alfonso: Paul Schoeffler (Bass-Bariton / bass-baritone) – Wiener Staatsopernchor – Wiener Philharmoniker – Karl Böhm, Dirigent / conductor – aufg. / recorded in: 1955

CD 3-5
Le nozze di Figaro – commedia per musica – in vier Akten / in Four Acts

Figaro: Cesare Siepi (Bariton / baritone) – Susanna: Hilde Gueden (Sopran / soprano) – Il Conte Almaviva: Alfred Poell (Bass-Bariton / bass-baritone) – La Contessa: Lisa della Casa (Sopran / soprano) – Cherubino: Suzanne Danco (Sopran / soprano) – Bartolo: Fernando Corena (Bass-Bariton / bass-baritone), Marcellina: Hilde Rössl-Majdan (Alt / contralto) – Basilio: Murray Dickie (Tenor / tenor) – Barbarina: Anny Felbermayer (Sopran / soprano) – Antonio: Harald Pröglhof (Bass / bass) – Don Curzio: Hugo Meyer-Welfing (Tenor / tenor) – Chor der Wiener Staatsoper – Wiener Philharmoniker – Erich Kleiber, Dirigent / conductor – aufg. / recorded in: 1955

CD 6-8
Don Giovanni – Il dissoluto punito ossa il Don Giovanni (Der bestrafte Wüstling oder Don Juan / The Reprobate Punished or Don Juan) KV 527

Don Giovanni: Cesare Siepi – Donna Anna: Suzanne Danco – Donna Elvira: Lisa della Casa – Leporello: Fernando Corena – Don Ottavio: Anton Dermota – Zerlina: Hilde Gueden – Masetto: Walter Berry – Il Commendatore: Kurt Böhme – Wiener Staatsopernchor – Wiener Philharmoniker – Josef Krips, Dirigent / conductor – aufg. / recorded in: 1955

CD 9-10
Die Zauberflöte – Eine deutsche Oper in 2 Akten

Königin der Nacht / Queen Of The Night: Rita Streich – Sarastro: Josef Greindl – Tamino: Ernst Haefliger – Pamina: Maria Stader – Papageno: Dietrich Fischer-Dieskau – Papagena: Lisa Otto – Monostatos: Martin Vantin/Wolfgang Spier – Sprecher / Speaker: Kim Borg – Erste Dame / First Lady-In-Waiting: Marianne Schech/Margot Leonard – Zweite Dame / Second Lady-In-Waiting: Liselotte Losch/Marion Degler – Dritte Dame / Third Lady-In-Waiting: Margarete Klose/Alice Decarli – Erster Geharnischter / First Man-In-Armour: Howard Vandenburg – Zweiter Geharnischter / Second Man-In-Armour: Kim Borg – Erster Priester / First Priest: Wilhelm Borchert – Zweiter Priester / Second Priest: Howard Vandenburg – Dritter Priester / Third Priest: Siegmar Schneider – Erster Knabe / First Youth: Margot Guilleaume – Zweiter Knabe / Second Youth: Maria Reith – Dritter Knabe / Third Youth: Diana Eustrati – RIAS-Kammerchor – Berliner Motettenchor – RIAS-Symphonie-Orchester Berlin – Ferenc Fricsay, Dirigent / conductor – aufg. / recorded in: 1954

모차르트 오페라의 고전적인 해석들”에 대한 4개의 댓글

  • 음질은 어떠한가요? 첫 모차르트 오페라 CD로도 손색이 없을까요? ^^
    다른 곡들도 잘 모르지만, 오페라는 역시 접근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엔디
  • 녹음년도가 1954~55년인 만큼 음원 자체가 근래에 녹음한 음원보다 음질이 좋지 못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저는 워낙 음질에 무신경한 편입니다. 엔디님도 청취 경험을 쌓아가시면 수긍하시겠지만, 음질보다는 해석의 문제가 훨씬 중요한 요소로 다가올 겁니다. 그렇다고해서 이 모음집의 음질이 못 들을 정도로 나쁜 것은 아니고요, 충분히 들을 만한 수준입니다. 더구나 <피가로의 결혼>의 음질은 그 녹음년도에 비하여 대단히 탁월합니다. 첫 모차르트 오페라 시디로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고싱가
  • 듣다가 참 좋다 싶으면 모차르트의 곡이고, 또 좋다 싶으면 바흐의 곡이더군요. 이렇게 좋은데 자꾸 들어보고 공부해야지, 하다가도 왜 난 뭐든 ‘공부’한다고 생각할까 하고 스스로가 좀 이상하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고 나면 보인다고, 음악 ‘공부’가 즐겁다면 공부 마인드도 나쁘지 않겠지요? 하지만 항상 초심자는 겁이 많은 편이라서요. ^^ 길어진 변명은 그만두고, 추천 감사합니다.

    엔디
  • 저보다 품이 넓으시군요^^ 저는 모차르트 이외에는 거의 듣지 못하는 최악의 편식성향이 있습니다. 그거 고치려고 노력했는데도 도저히 고쳐지지 않아 이제 담담하게 모차르트만 듣습니다.

    고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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