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시 히데오, <모차르트>· 2

KV550.jpg

 
이제 20년도 지난 일을, 어떤 식으로 떠올리면 좋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어지러이 방황하던 시절의 어느 겨울밤, 오사카의 도톰보리를 배회하던 때, 돌연, 이 G단조 교향곡의 유명한 주제[1]가 머리속에서 울렸던 것이다. 내가 그때,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기야 인생이라든가 문학이라든가 절망이라든가 고독이라든가, 스스로도 의미를 잘 모르는 그런 시시껄렁한 말로 머리를 가득 채워, 개처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여튼, 그것은, 스스로 상상해본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래 생각해 보아도 그건 아니었다. 붐비는 거리속을 걷는다, 고요해진 내 머리속에서, 누군가가 또렷이 연주하는 듯 울렸다. 나는, 뇌수에 수술을 받는 듯 놀랐고, 감동으로 떨리었다. 백화점으로 뛰어들어가, 음반을 들었으나, 이내 감동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스스로의 이러한 병적인 감각에 의미가 있다는 둥 말하자는 것은 아니다. 모차르트의 글을 쓸까 하면서, 그에 관한 스스로의 제일 통절한 경험이, 저절로 생각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도대체, 지금, 스스로는, G단조 교향곡을, 그 무렵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은,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나는, 그 무렵, 모차르트의 미완성 초상화 사진[2]을 한 장 가지고서, 소중히 하였다. 그것은, 정교한 그림은 아니나, 아름다운 여인 모양의 얼굴로, 뭔가 두렵고 불행한 감정이 드러나 있는 기묘한 그림이었다. 모차르트는, 커다란 눈을 한껏 뜨고서, 약간 숙어져 있다. 인간은, 타인 앞에서는, 이런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 그는, 화가가 눈앞에 있는 것 따위, 온전히 잊어버리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쌍꺼풀의 커다란 눈은 그 무엇도 보고 있지 않다. 세계는 이미 사라졌다. 어느 큰 번민이 있어, 그의 마음은, 그것으로 가득차 있다. 눈도 입도 무슨 소용 있으랴. 그는 모든 것을 귀에 걸고서 기다리고 있다. 귀는 동물의 귀마냥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머리카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G단조 교향곡은, 때때로 이런 얼굴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인물로부터 나온 것이 틀림없다고,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뭔가 숱한 번민이, 뭔가 단순하기 짝이 없는 형식을 발견하고 있을까. 내용과 형식의 멋드러진 일치라고 하는 식의 심드렁한 말로는, 말하여 드러내기 어려운 것이 있다. 전혀 상이한 두 정신상태가 거의 기적과도 같이 합일을 이루는 듯 보인다. 이름을 붙히기 어려운 재난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고통이라든가 하는 움직임이, 그것 그대로 동시적으로, 어떻게 하여 이렇듯 정확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 진정으로 슬픈 음악이라는 것은, 이러한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의 슬픔은, 투명하고 차가운 물처럼, 나의 마른 목을 적시어 나를 고무한다, 그런 것을 생각하였다. 주의해 두고 싶은데, 바로 그 무렵, 오사카의 거리는, 네온사인과 재즈로 가득하고, 저열한 유행가는, 전파처럼 밤 허공을 달리어, 방랑아의 여린 육체의 약점이라고 할 약점을 자극하여, 나는 단장斷腸의 심정이었던 것이다.

생각해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생각해 낸다고 할 만한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이제 갓 태어난 모습을 띠고 나타나, 그때마다 나의 생각과 감정에 전혀 걸리적거림 없이, 뭐랄까, 절대적인 신선함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를 놀라게 한다. 인간은 그의 아름다움에 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는 날이 잘 드는 강철처럼 유연하다.

모차르트의 음악으로 인하여 꿈결 속에 있는 듯했던 그 무렵, 나는 이미 그 뭔가라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금도 아직 그 무엇 하나 알지 못하고 있는 셈이 된다. 어느 경우일까. 물론, 그 무렵, 알지 못한 채 소중히 여긴 그림은, 요제프 랑에가 1782년에 그린 그림이라고 지금은 알고 있으나, 그런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보면 내가 지금도, 개처럼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약간에 불과한 음반에다 약간에 불과한 악보, 그것에다, 결코 정확한 음을 내고자 하지 않는 낡은 싸구려 축음기, ― 무슨 불만을 말할 게 있겠는가. 예컨대 바다가 거뭇해지고 하늘이 자주빛으로 물드는 때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이 위협하듯이 울린다면.

  1. 교향곡 제40번 G단조, KV.550, 제4악장 allegro assai의 도입부이다. 악보는 제1바이올린 파트가 담당하는 주제선율을 보여주고 있다. 이 대목을 한 번 들어보자. 주요 주제는, 바이올린 파트의 독주와 나머지 관현악의 총주가 서로 쫓고 쫓기듯 숨돌릴 틈도 없이 상호교체되면서 진행되고 있다.
     

    Symphony no.40 in g minor 4악장, KV.550 Bruno Walter, New York Philharmonic

    []

  2. 고바야시가 묘사하고 있는 모차르트의 초상화 사진은 아래 초상화를 말한다.

    lange-mozart.jpg

    이 초상화는 미완성의 유화로서, 그린 사람은 모차르트의 인척, 즉 아내 콘스탄체의 형부였던 배우 요제프 랑에Joseph Lange이다. 인연이 또 묘한 것이, 랑에는 모차르트가 짝사랑하였던 알로이지아(콘스탄체의 언니)와 결혼한 사람이다.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는 이 초상화를 두고 남편의 얼굴을 가장 비슷하게 그린 그림이라고 증언하였다.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