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시 히데오, <모차르트>· 1

일본의 문학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의 <モオツアルト> 번역을 시작합니다. 고바야시는 태평양전쟁 발발 무렵부터 고전과 고미술 세계에 빠져 이와 관련된 수필을 발표했으며, 1942년부터 1943년까지 씌어진 이 수필들이 «無常という事»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전후에는 1년 이상 침묵하다가 1946년에 <모차르트>를 발표하였고, 이후부터 문단문학보다는 예술가·사상가를 추구하였다고 합니다.
 
이 글은 원래 «創元» 1946년 12월호에 실렸던 글로서 모두 11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번역본으로는 新潮文庫 판의 «モオツアルト· 無常という事»를 토대로 하였습니다. 고바야시는 <모차르트>에 일체의 주석을 달지 않았으므로 여기에 첨부되는 주석은 역자의 주석입니다.
 
고바야시 저작의 번역저작권이 저에게 있지 않은 상태의 번역물이므로 번역저작권을 가진 개인이나 법인의 이의가 있을 경우 이 글의 번역을 중단하거나 삭제할 예정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분들은 이 번역물을 다른 웹사이트로 전재하거나 배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고바야시 히데오, 모차르트, 1946

 

어머님의 영전에 바칩니다

 
 

엑커만에 따르면, 괴테는 모차르트에 관하여 뭔가 남다른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어떻든 아름답고, 친숙하기 쉽고, 누구라도 닮고 싶지만,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하였다. 언젠가 누군가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말라. 원래 그런 짜임으로 완성되어 있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말을 해두자면, 인간들을 유혹하기 위하여, 악마가 발명한 음악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괴테는 절대로 농담할 심산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이러한 생각이 청년시대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엑커만, 괴테와의 대화-1829년)[1] 여기에서, 아름다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악마의 덫을 느껴 심란해진 이상한 노인을 상상해 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이 의견은 음악미학이라는 것과 같은 것이 전혀 아닌 까닭이다. 게다가, <파우스트>의 제2부를 고심하고 있는 이 80세의 위대한 자의식가가, 어떤 고민을, 남들 몰래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톨스토이는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의 프레스토를 듣고, 괴테는 C단조 교향곡[2]의 제1악장을 듣고, 이런저런 이상한 흥분을 경험했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급기야 <크로이처 소나타>[3]를 써서 그 기괴한 음악가에게 철저한 복수를 했으나, 괴테는 베토벤에 관하여 끝끝내 완고한 침묵을 지켰다. 유명하게 된 일화 쯤으로 취급된다는 것은, 좀 불쾌한 기분이 든다는 이야기이다. 밑바닥에는 미지의 구멍이 입을 쩍 벌리고 있으니, 그곳에서부터 천재의 독단과 창조력이 엿보고 있다.

당대 일류의 음악, 특히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괴테의 무신경 혹은 무관심, 이 통설은 로맹 롤랑의 면밀한 연구(Goethe et Beethoven)[4]가 나온 이후로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 모양이지만, 이 흥미 있는 연구는, 의외일 정도로 평범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만년에 이르러서도 조금도 시들지 않았던 괴테의 호기심은, 베토벤의 음악을 감상할 기회를 결코 피해다니지도 않았으며, 멈추질 않고 진보하였던 괴테의 두뇌는, 놀라울 정도로 신음악의 가치를 넉넉히 인정하였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일찌기 일곱 살의 신동 모차르트의 연주에 취했던 괴테의 귀는, 그의 머리만큼 빠르게 진보할 리는 없었다. 귀가 머리에 반항하였다. 이것이 로맹의 결론이다. 결론이 틀리다고 말하지는 않겠으나, 다만 나는, 이 유명한 책을 읽던 때, 거기에 실린 풍부한 문헌을 가지고, 이런저런 공상을 해보는 것이 즐거웠으며, 반드시 그러한 결론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멘델스존이, 괴테에게 베토벤의 C단조 교향곡을 피아노로 연주해 들려주던 때, 괴테는, 실내의 어두운 한쪽 구석에서 벼락의 신 주피터처럼 앉아서, 멘델스존이 베토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듣고 있는 듯하더니만, 마침내 제1악장이 울려나오자, 이상한 흥분이 괴테를 사로잡았다. “사람을 놀라게 할 따름이오. 감동시킨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실로 과장이오” 하고 말하고는, 잠시 중얼중얼 입을 놀리더니만, 아예 침묵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긴 시간이 흐른 뒤, “굉장하군. 미쳐버릴 듯하오. 마치 집이 무너질 것같소. 그걸 모두 함께 한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겠소.” 탁자에 기댄 채, 이야기가 다른 것으로 흘러도, 그는 뭔가를 입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고 한다.[5]

물론 중얼중얼하며 자문자답하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죽어 없어졌다고 믿었던 Sturm und Drang의 망령이, 점점 새로운 의장意匠을 모아 소생하여, 거부하기 힘든 매혹으로 나타난 것을, 그가 보지 않았겠는가. 과장된 음악, 물론, 그런 주문呪文으로는 악마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누가 뭐래도,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퍼뜩 놀란 것은 괴테라는 불안한 영혼이니, 그의 귀로도 안된다면 그의 머리로도 안된다. 그의 귀는 그의 머리의 진보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있을 법하지는 않는 이야기이다. 괴테가 듣는다면 쓴웃음을 지을지도 모를 일이며, 옛날 그대로의 무구한 귀를 보존하는 일이 보통 힘겨운 것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마 괴테는 뭔가라도 감지했을 것이다. 적어도, 베토벤의 화성적 기악이 참신하고도 강렬하게 전개되는 것에 열광하고 갈채를 보낸 베를린 청중의 귀보다, 훨씬 깊은 것을 알아들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어투가 묘할지는 모르겠으나, 들어서는 안될 것까지도 듣고 말았으리라고 생각된다. 바그너의 “무한선율”에 치를 떨었던 니체가, 발광 전 해에, <니체 대 바그너>를 써서 최후의 자학의 기회를 삼은 것은 주지의 일이지만, 그것과 괴테의 경우 간에, 뭔가 깊은 유비가 있는 듯 생각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파우스트>의 완성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하여, 여러 겹으로 봉인할 필요를 느꼈던 괴테가, 발광의 전 해에는 아니었다고 누가 말하리오.[6] 두 사람 모두 감상가의 한도를 넘어서 들었다. 이미 음악 따윈 울리지 않았다. 제각기 스스로 제 마음에 물어, 신경이 예민해졌다.

위대한 이론가 바그너의 불요불굴의 의지 따위는 문제시하지 않았던 니체는, 바그너의 내부에서, 바그너리안의 퇴폐를 알아들었다. 동일한 듯한 천재의 독단에 따라, 괴테는, 장년기의 베토벤의 음악에서, 이상한 자기 주장의 위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연극을 알아들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 음악이, 괴테의 평정을 어지럽혔다고는 말하지 말라. 파우스트 박사를 데리고 다닌 그의 마음의 폭풍은 죽음을 맞기 전까지는 멈춘 때가 없었던 듯하니까. 그러나, 그의 폭풍에는, 그 자신의 내적인 논리가 있으되, 타인이 탈 수 있는 현弦 같은 것은 아니었다. 베토벤은, 확실히 자신이 뿌린 씨는 베어들였으나, 그가 만년에, 어떤 고독한 길을 가르고 들어서, 어떤 식으로 그 자신을 구조했을까에 대하여, 아마도 괴테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리라. 베토벤이라는 비옥한 들녘에서, 괴테가, 낭만파 음악가들의 어떤 모양의 화원을 예감했을까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도, 낭만주의를 혐오한 고전주의자 괴테라는 주지의 명제를, 나는, 여기에서 응용할 기분은 아니다. 이 응용문제는, 능숙하게 풀릴 예제가 아니다.

바그너의 “몽롱함”을 한결같이 혐오한 니체는,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황금의 엄숙”[7]을 떠올렸다. 베토벤을 혐오하면서도 사랑한 괴테 역시 모차르트를 떠올렸으나, 그는, 니체보다 아름다움과 관련하여 훨씬 복잡한 괴로움을 맛보았다. 그가, 모차르트에 대하여, 어떤 기묘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는, 서두에 서술한 대로다.

“인간도 나이를 먹으면, 세상을 젊을 때와는 다른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어느날 그는 엑커만에게 말한다. 그는 나이 들어서, 젊은 시대가 시작되는가 보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젊은 시대와는 다른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개성과 시대의 상호관계를 신뢰하며, 자기 주장, 자기 고백의 특권을 신뢰하고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청년들의 무리는, 그의 동정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역사의 “무한선율” 따위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파우스트>는, 어떻게든 완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머지않아 스스로 파기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러 겹의 봉인을 하기까지도. 그는, <파우스트> 제2부의 음악화라는 거의 불가능한 꿈에 홀려 있다. 그의 시는, 음악가들의 (슈베르트의, 바그너의, 또 슈만의) 덫이었는데, 음악은 결국 괴테의 덫이었던 것일까. 그것은 알지 못하겠다. 하여튼, 그에게는 <돈 조반니>의 작자 이외의 음악가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8] 그러나, 작자는 이미 이 세상에 있지 않았다. 이것의 봉인은 인간의 손으로 할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이 작자가, 괴테의 귓전에 뭔가를 속삭이고 있다고 보는 순간, 그것은 뭇 음악사적인 의미를 박탈당했던 거대한 음과 변화, 그의 오체에 울려퍼진다. 죽음의 나라로 돌아간 헬레나를 내보내는 음악을 그는 들었던 것일까. 그의 심오深奧에 있는 어느 괴로운 사상이, 모차르트라는 어느 본질적인 수수께끼에 공명한다. 괴테는, 엑커만에게 이야기해 보려고 하였으나, 잘 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나의 공상이다. 나는 그러한 사상이든 음악이든 느닷없는 것을 따라가, 며칠이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많은 것이 쓰여질 듯도 하지만, 또 그 무엇도 쓰여지지 않을 듯도 하다.

  1. 1829.12.6자 괴테와의 대화, 고바야시는 이때의 대화를 두루뭉수리 각색하여 전하고 있다. 특히 “악마”라는 번역어는 괴테가 의도한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악마”는 독일어 Dämon의 번역어인데, 괴테는 Dämon의 의미를 엑커만과의 대화를 통하여 해명하였다. 1831.2.28자 대화와 1831.3.2자 대화에서,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 해명할 수는 없으나 은연히 느껴지는 힘, 부정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긍정적인 활동으로 나타나는 힘을 Dämon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1829.12.6자의 대화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관련 대목을 번역한다:

    괴테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서 말했다, “사람이 나이들면 세상사를 두고 젊었을 때와는 다르게 생각해요. 그래서 나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거든. 마성적인 존재Dämon들이, 인류를 조롱하고 희롱하기 위해서, 간혹 몇 명의 인물들을 내세우는데, 그 인물들이 워낙 유혹적이니까 모든 사람들이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애쓰지만 또 워낙 위대해서 어느 한 사람 그들에게 도달하지는 못한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나 하는 일이나 모두 완벽했던 라파엘을 내놓은 것이지; 후세의 탁월한 이들 몇 명이 그에게 다가갔지만 어느 한 사람 도달하지 못했어. 그렇게, 음악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서 모차르트를 내놓았어. 또 그렇게, 시에서는 셰익스피어를. 자네가 셰익스피어에 대한 내 말에 대하여 뭔가 반대할 수 있다는 걸 잘 알지만, 난 그저 천성적인 면, 자연이 품부한 위대한 면만을 두고 하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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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베토벤의 5번 교향곡 Op.67, 일명 “운명” 교향곡 []
  3. “크로이처 소나타”(Kreutzer Sonata)라 함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9번 op.47을 가리킨다.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듯한데,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는 이 소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1890년 발표. 작가가 소위 ‘톨스토이이즘’으로 전향 후에 쓴 얼마 안 되는 예술소설의 하나로서, 질투 때문에 아내를 살해한 포즈도누이셰프라는 사나이의 고백 형식으로, 타락한 현대의 결혼생활과 성애(性愛)를 통렬하게 비난한 작품이다.

    아내와 그의 애인인 바이올리니스트가 합주하는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가 이 작품의 제명인데, 작가는 이 작품에서 결혼에서의 사랑의 존재에 커다란 의문을 던지고 있으며 결국 결혼생활이란 섹스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따라서 ‘참다운 사랑에 의하여 맺어진 결혼 따위는 한 편의 사기행위’라고 극론하고 있다. 또 작가는 ‘음악’이란 것에 대하여도 통렬한 비판을 퍼붓고 그것은 다만 인간의 마음을 초조하게 할 뿐이라고 하였다.

    톨스토이의 사상은 딱히 반대하고픈 생각은 없으나, 그의 예술관만큼은 ‘나이브’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관련 글을 읽어보면 대단히 목적론적이고 도덕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다. 한 인간이 소박한 이상을 품는 것은 소중하지만 그것이 도덕주의로 승화(승화? 혹시 경화가 아닐까?)되는 경우 폭력적일 수 있는 예가 톨스토이의 예술관이 아닐런지. []

  4. Romain Rolland, “Goethe et Beethoven”은 번역되었다. <괴테와 베토벤: 시인과 악성의 운명적 만남과 사랑>(웅진닷컴, 2000). 문고판으로 간행하면 최적인데, 사치스럽게 하드카버로 간행하였다. 이 책을 읽어보면 로맹 롤랑이 열렬한 베토벤 옹호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괴테의 Sturm und Drang이 대단히 부각되어 있어, 괴테가 너무 어둡게 그려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5. 멘델스존과 괴테의 만남에 관한 이 일화를 분명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도무지 그 책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독일 바이에른 라디오방송국에서 ‘과거의 오늘'(Kalenderblatt)이라는 꼭지로 이 일화를 소개하고 있어 일부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목은 “1821년 11월 8일: 멘델스존-바르톨디와 괴테”이다. 고바야시가 괴테의 일화를 소개하는 대목들이 원전과 제법 다른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그는 기억에 의존하여 일화를 소개했을 가능성도 있다. 관련 대목을 번역한다. 출처는 바이에른 라디오방송이다:

    1821년 멘델스존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괴테를 위해 연주한다. 그는 바이마르를 자주 방문하였는데, 순전한 경애심에서였으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작품을 바탕으로 “시인들의 북극성”에게 현대 음악의 추이를 알려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였다. “그분은 베토벤에게는 다가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분에게 달리 도와드릴 수는 없다고 말씀드리고는 C단조 교향곡 첫 악장을 연주해 드렸다.” 괴테는 중얼거렸다, “이거 거창하군,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이 죄다 연주한다면 집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 꽤나 하겠군!”

    그는 탁자에 앉아서도 거의 진정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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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이 구절을 번역하긴 했지만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원문은 이렇다: “それに,「フアウスト」の完成を,自分に納得させる爲に,八重の封印の必要を感じていたゲエテが,發狂の前年になかったと誰が言えようか” []
  7. 니체의 모차르트 음악에 대한 생각은, 이 블로그의 글 “니체, 모차르트를 말하다”를 참고하라. 니체의 바그너 음악에 대한 생각은 니체 저작의 곳곳에 나타나 있다. 그중에서 바그너의 “몽롱함”에 관한 니체의 언급은 «비극의 탄생»의 <자기비판의 시도> 6절을 참고하라. []
  8. 엑커만, 괴테와의 대화, 1829.2.12자 참조:

    나는 말했다, “<파우스트>에 어울리는 음악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싶다는 소망을 버리지 못하겠습니다”.

    괴테는 말했다, “그건 전혀 불가능해. 충격, 거부감, 두려움, 이런 것들을 음악이 군데군데 삽입해야 할텐데, 이런 것들은 시류에 반하거든. 음악은 성격상 <돈 조반니>가 되어야지. 모차르트가 <파우스트>를 작곡했어야 했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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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히데오, <모차르트>· 1”에 대한 2개의 댓글

  • 와, 번역 착수하셨군요.. 기대기대! 멘델스존과 괴테 만남, 피아노로 5번 교향곡 연주한 얘기는 로맹 롤랑 ‘괴테와 베토벤’에 나오던데요… 번역돼 있어요.

    이채훈
  • 이 글 번역한 지가 언제인데, 이제서야 번역 착수했다니오, 하하! 다만 유감스럽게도 이 글은 아마 3분의 1 정도 번역하다가 중도에 그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고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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