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 2010/04/18 |
모차르트, ‘집착 없는’ 사랑 “마음이 없는 천재라는 것은 넌센스다. 천재란 위대한 지성이나 탁월한 상상력, 심지어 이 두 가지를 합쳐서도 이뤄지지 않는다. 천재를 만드는 것은 오직 사랑, 사랑, 사랑 뿐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도, 책을 쓸 때도 이 말의 뜻을 충분히 알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다른 모든 위대한 작곡가들의 음악에도 사랑은 담겨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모차르트인가? ‘집착 없는’ 이란 수식어를 붙일 때 모차르트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모차르트가 5살 때 작곡을 시작했고, 35년 동안 베끼지도 못할 만큼 많은 작품을 썼고, 한곡 한곡이 모두 완벽하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의 천재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집착 없는’ 사랑이 바로 이 위대한 천재의 본질임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영화 에 나오는 클라리넷 협주곡의 선율을 기억하실 것이다. 사랑하는 세상과 헤어지는 슬픔을 가득 머금고 있지만, 엉엉 울거나 소동을 피우지 않는다. 투명한 아름다움 속에 조용히 노래할 뿐이다. 모차르트를 숭배했던 차이코프스키가 마지막 작품인 ‘비창’ 교향곡에서 탄식하며 울부짖었음을 기억하면 그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모차르트도 사람인지라 죽기 전날 친구들 앞에서 잠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곧 맑은 미소를 되찾았다. 이 미소가 바로 클라리넷 협주곡 아다지오가 노래한 ‘집착 없는’ 사랑인 것이다. 그는 처제 조피에게 아내 콘스탄체를 잘 돌봐 달라고 했다. 그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죽음이란 것은 우리 삶의 마지막 목적지이고, 저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좋은, 참된 벗인 죽음과 이미 친숙해졌기 때문에 죽는다는 생각이 두렵기는커녕 반대로 위안과 안도감을 느낍니다. 저는 아직 젊지만 잘 때마다 ‘오늘밤에 잠들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생각 때문에 제가 침울해 보인다거나 슬퍼 보인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모차르트는 35년의 짧은 생애에서 6번 가족의 죽음을 겪었다. 22살 때 어머니, 3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6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이 중 4명이 죽었다. 민감한 그는 늘 죽음을 생각했고, 인생의 덧없음을 느꼈다. 그러니 그의 마음 어디에 ‘집착’이 발붙일 자리가 있었겠는가. 당연한 귀결로 그는 살아있는 날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잘 알고 있었고, 아름답고 착한 마음을 나누는 게 유한한 인간들의 가장 큰 축복이라는 점을 체득하고 있었다. “삶의 비극적 의미를 잘 아는 사람이 진정 즐거운 사람”이라는 말은 모차르트에게 완벽히 적용된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죽음을 전후한 시기에 이별의 느낌을 담고 있는 노래 ‘라우라에게 보내는 저녁 상념’, 아리아 ‘너를 떠나는 지금, 내 딸이여’ 같은 작품을 썼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직’이나 ‘음악의 유머’처럼 즐거운 작품도 썼다는 점은 내게 오랫동안 미스테리로 남아 있었다. 잘 알다시피 아버지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의 최대 스승이자, 매니저이자, 보호자였다. 하늘같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마당에 어떻게 그런 곡을 썼을까? 결론은 모차르트가 아버지의 죽음조차 음악으로 승화해 냈다는 것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음악이었고, 모든 ‘집착’이 부질없다는 점을 잘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우리는 음악의 힘으로 죽음의 어두움을 기꺼이 헤쳐 나가리”라고 노래했다. 마술피리를 불면 사나운 짐승들이 춤을 추고, 악당들이 착한 사람으로 변한다. 모차르트는 이 장면을 보며 어린애처럼 즐거워했으리라. 나는 이러한 음악의 마술이 어느 정도 사실일 거라고 믿는다. 마술처럼 한 순간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그의 음악에 담긴 ‘집착 없는’ 사랑이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널리 확산된다면 이 세상은 점점 더 아름다운 곳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불어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는 사춘기 시절 자살을 생각했다. “열다섯 살 때였습니다. 제 친구들, 학업, 진로 등 모든 것이 덧없어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죽어갈 뿐’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저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고, 급기야 자살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가게 됐어요.” 그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백작부인의 아리아 ‘아름다운 날은 가고’를 듣는 순간 삶을 긍정하게 됐다. 달콤했던 행복의 순간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이 무정한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은 이 노랫말은 백작을 비난하지 않는다. 질투와 분노와 증오의 흔적도 없다. 오직 자신의 마음에 대한 고결한 확신이 있고, 삶을 긍정하는 강철 같은 의지가 있을 뿐이다. ‘집착 없는’ 사랑은 결코 허약하지 않은 것이다. 그날 밤, 에릭은 모차르트에게 편지를 썼다. “문득 시간이 멈춰버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여자가 부르는 노래에 매혹된 채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우리는 사랑을 나눴습니다. 힘이 솟아 올랐습니다. 삶의 기쁨이 되살아났습니다. 당신이 내 목숨을 구해 준 것입니다. 이 세상이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인 이상, 절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테니까요.” 에릭은 모차르트 음악이 음악 이상의 것, 곧 삶의 지혜를 준다고 말한다. 그가 모차르트라고 부르는 것은 ‘모차르트 뿐 아니라 사랑, 즐거운 것, 아름다운 것, 삶을 소중하게 만들어 주는 그 모든 것’을 뜻한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모차르트 음악은 불교와 통하는 바가 있다고 한 피아니스트 시프리앙 카차리스의 지적은 참으로 적절하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든 사람에게 약을 주라’는 부처의 가르침은,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몇 시간이고 연주를 해 준 모차르트의 소탈함을 닮았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존엄하다’는 부처의 가르침은, 황제 요제프2세부터 고아원 어린이까지 모두 동등한 친구로 대한 모차르트의 열린 마음을 닮았다. 세상이 험악한 요즘, 모차르트가 더욱 간절하다. 모차르트, 그 ‘집착 없는’ 사랑이 그립다. 이채훈 (MBC ‘세계와 나 W’ 연출 /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저자) |
고싱가 2010/03/23 |
랑이엄마님, 모차르트와 좋은 인연 되기를 빕니다. 모차르트 음악과 벗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훌륭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씩씩한 강냉이님, 아마 플러그인 자체에 설명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독자적 스킨의 페이지 만드는 법은 워드프레스 위키에서 따로 익히셔야 할 겁니다. 제가 일일히 설명해 주기는 좀 버거운지라 더 이상의 도움을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김경수님, 허름한 이 공간조차도 멋지게 활용하시니 다른 훌륭한 경서들과는 더욱 잘 노니시겠군요. 정결한 걸음걸이로 걸으셔서 스스로의 삶에 좋은 스승이 되시길 빕니다. |
랑이엄마 2010/03/22 |
태교에 모차르트 음악이 좋다고 해서 찾다가 들어와서 즐겨찾기 해놓고 매일 듣고 있어요. 좋은 음악 들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씩씩한강냉이 2010/03/22 |
> 답변 감사합니다^^ 블로그가 너무 깔끔하고 맘에 드는데..ㅎㅎ |
김경수 2010/03/20 |
가끔 산에 올라 바람을 쐬듯.. 잘 읽고 갑니다. |
고싱가 2010/03/20 |
강냉이님 반갑습니다, 방명록은 Paged Comments Plugin을 활용하여 스킨을 수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블로그 테마 역시 제가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공개용으로 만든 게 아니라서 배포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
씩씩한강냉이 2010/03/19 |
> 와, 워드프레스 사용자 페이지에서 보고 들어왔어요..^^ |
고싱가 2010/03/13 |
대나무와 관련 있는 죽향님의 호를 접하니, 문득 대숲의 청정한 내음이 그립습니다. 또, 장한 대숲에 동백나무가 어울려 자라기도 하지요. 바람 부는 날, 흔들리는 대숲에서 사선을 그으며 떨어지던 붉은 꽃도 생각나네요. 좋은 봄날 되십시오. |
죽향 정호수 2010/03/12 |
인연 따라 이곳까지 왔습니다. |
istill 2010/02/11 |
오랜만에 들러요. 오늘따라 삼촌이 그립네.. |
고싱가 2010/02/03 |
아시다시피, 임대서버에서 제공하는 대역폭은 일일 전송량이나 월간 전송량이 제한되어 있어요. 그런데 음악파일은 용량이 상당히 크잖아요. 음악감상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대용량의 대역폭이 필요하답니다. 더구나 많은 분들이 여러 곡이나 전체 곡을 연속으로 듣게 되면 대역폭이 엄청나게 늘어나잖아요. 그래서 고싱가숲처럼 포털사이트에서 독립된 개인 블로그에서는 연속듣기를 제공하기가 힘듭니다. 이 점이 저도 아쉽습니다. 사실 이 모차르트 음악감상을 제공하기 위해 블로그와는 다른 별도의 해외서버를 임대하면서 적지는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음악감상실을 전면 개편하여 연속듣기도 가능하게 하는 게 저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시일이 좀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이를 실현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차르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셨으니, 복되십니다. |
그녀 2010/02/01 |
여기는 울릉도 |
고싱가 2009/12/30 |
이선일님은 정말 저와 관심사가 비슷하네요. 반갑습니다. 선가에는 “최잔고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무막대기지요. 그러나 최잔고목이 된 사람만이 세간을 완벽히 등지고 크게 발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큰 발전 있기를 빕니다. 니체 번역은 저의 오래된 꿈입니다. 계획으로는 십년 뒤 쯤에는 니체 번역을 시작하고 싶지만, 모든 것은 인연이 있는 법이어서 아직은 모를 일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이선일 2009/12/29 |
초창기부터 들러서 읽기만 하다가 인사드립니다. 블로그의 주제가 어렸을때부터 저의 관심분야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종종 새글을 찾아 읽습니다. 중학교때부터 Antichrist를 읽고, 고등학교때부터 모짜르트 피아노협주곡을 듣기 시작하고, Konze의 불교서적에도 서성거리기는 했습니다.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 그리고 무기력함 때문에 어느 한분야도 딜레땅뜨 수준도 못되었다는 겁니다. 내일 모레면 마흔다섯인데, 이렇다하는 깨달음이 단 하나도 없네요. |
고싱가 2009/12/23 |
보리님, 제가 쓴 책은 아직 없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