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가곡 <제비꽃>, KV.476

“가련한 제비꽃이어라! 어여쁜 제비꽃이었거늘!”(모차르트)
 

현존하는 모차르트 가곡은 모두 29곡인데, 이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무수한 가곡 중 5%에 채 못 미치는 분량이라고 합니다. 오페라의 아리아는 플롯의 구조에 들어가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른 연관을 고려하지 않고 작곡하는 가곡이 좀더 자유롭고 좀더 작곡자의 심중에 가까이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현존하는 가곡 중에는 모차르트가 사랑하였던 알로이지아를 위해 작곡한 곡이 꽤 됩니다. 모두 7곡입니다. 알로이지아는 또 모차르트가 극찬한 소프라노 가수였지요. 모두 다 이탈이라 곡이어서 저는 그 가곡들의 내용을 잘 모르지만, 상당히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곡들로서 격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알로이지아를 위해 작곡한 가곡들 이외에 알로이지아와 관련 있는 곡이 있다면, 바로 그것은 <제비꽃>일 것입니다. 2분을 겨우 넘는 짧은 가곡입니다만, 괴테의 시에 붙힌 이 곡은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괴테의 시 <제비꽃>에서는 천진한 맛을 내는 축약형 어미 ‘-chen’과 절제됨이 없이 속속 터지는 감탄사 ‘Ach!’가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괴테의 시를 읽다보면 청초한 제비꽃이 머리 속에 자연 떠오르고, 사랑의 뜨거운 열망은 결국은 한 송이 수줍은 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의 뛰어남 때문에 수십 명의 작곡가가 이 시에 곡을 붙혔다는군요. 그 중에는 클라라 슈만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차르트도 이 시에 곡을 붙혔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이 시가 괴테의 시인 줄을 몰랐고, 괴테 역시 자신의 이 시로 모차르트가 작곡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모차르트가 괴테의 시를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두 시행을 덧붙혔다는 점입니다. “가련한 제비꽃이어라!/ 어여쁜 제비꽃이었거늘!” 하는 마지막 두 시행이 그것입니다. 이는 당시 가곡 작곡의 관례에서도 벗어나는 것이라네요. 그만큼 모차르트는 괴테의 이 시에 절절하게 반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괴테의 시 <제비꽃>Das Veilchen을 읽어보도록 하지요:

Ein Veilchen auf der Wiese stand
Gebückt in sich und unbekannt;
Es war ein herziges Veilchen.
Da kam eine junge Schäferin,
Mit leichtem Schritt und munterm Sinn,
Daher, daher,
Die Wiese her, und sang.

Ach! denkt das Veilchen, wär ich nur
Die schönste Blume der Natur,
Ach, nur ein kleines Weilchen,
Bis mich das Liebchen abgepflückt
Und an dem Busen matt gedrückt!
Ach nur, ach nur
Ein Viertelstundchen lang!

Ach! aber ach! das Mädchen kam
Und nicht in acht das Veilchen nahm,
Ertrat das arme Veilchen.
Es sank und starb und freut’ sich noch:
Und sterb ich denn, so sterb ich doch
Durch sie, durch sie,
Zu ihren Füßen doch.

Das arme Veilchen!
Es war ein herziges Veilchen!

제비꽃 한 송이 초원에 피었으나
함초롬히 머리 숙여 눈에 띄지 않아,
어여쁜 제비꽃 한 송이.
저기 양치기 아가씨
발걸음도 사뿐히 기분도 발랄하게
저기에서, 저기에서
저기 초원에서 오더니 노래를 부르더라.

아아! 제비꽃은 생각하네, 자연에서 나 홀로
아아, 잠시 잠깐 동안이라도,
제일 아름다운 꽃이 되기라도 한다면,
나를 저 사랑스러운 이가 꺾으려니
가슴에 묻혀 시들기라도 하련만!
아아 그저, 아아 그저
15분 동안만이라도!

아아! 그러나 아아! 아가씨는 오더니
제비꽃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무심코
가련한 제비꽃 밟아버리더라.
제비꽃 주저앉네 죽어가네, 그래도 기뻐하네:
그래 나 죽는구나, 그러나 이렇게 죽는구나,
그이 때문에, 그이 때문에,
그래도 그이 발에 밟혀서.

가련한 제비꽃이어라!
어여쁜 제비꽃이었거늘!

 

음악학자 알프레트 아인쉬타인은 자신의 유명한 저서에서 이 <제비꽃>에 관하여 비교적 상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괴테와 모차르트가 결합한 유일한 예의 곡이자, 괴테와 모차르트 둘 다 직접 겪은 사랑의 실패를 토대로 시를 쓰고 곡을 작곡한 것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 곡을 대단히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그 전문을 번역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차르트는 <제비꽃>에서 유일무이하게—그는 괴테의 이름 대신에 글라임의 이름으로 1778년 출간된 슈테판 출판사의 <독일 가곡 모음집>에서 텍스트를 찾은 것이니까, 이것은 우연이다—실제 시문학과 마주치게 되었다. 이것은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가장 유명한 모차르트 가곡이며, 이 판단은 옳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의 가곡인가? 이것의 탄생이 시인으로서나 음악가로서나 분명히 아주 각별한 개인적 체험에서 비롯하였음을 인식하고 느낀다면, 아마도 이 곡의 특징을 가장 잘 파악하는 것이리라. 이것은 최고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기회음악”Gelegeheitswerk이다. 이 시는 괴테의 첫 징슈필, <에르빈과 엘미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수년이 지난 뒤에 비로소 자신의 발라드에 수록하였다. 이제, <에르빈과 엘미레>는 시문학의 봄볕 아래에서 두 명의 사랑하는 사람의 격정적이고 고통스러운 관계를 되비춘다, 먼저, 괴테가 그의 친구 헤르더와 그의 신부에게서 목도할 수 있었던 관계를, 그 다음, 자기 자신과 릴리에게서 목도할 수 있었던 관계를: 허물어질 듯하면서도 고고한 한 소녀가 선한 한 청년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번민을 선사하고, 애정으로 희롱하는 식의 관계. 이 선한 청년의 영혼에서 <제비꽃>이 노래되었다. 그리고 괴테의 징슈필에서, 아름다운 소녀가 뉘우치는 가운데 그 제비꽃을 떠올리며 뒤늦게 노래할 때면, 그녀로서는 “노래를 마치면 언제나 마치 독배를 마신 듯”하다.

확실히 유사한 사정이 모차르트의 <제비꽃>에 있다. 이것은 여타 가곡들과 같은 가곡이 아니다. 텍스트가 친숙한 영혼과 만났다. 이건 하나의 서정적인 장면이다. 서정적인 면 즉 음악적 감수성의 격랑과, 장면적인 면 즉 사건을 그려내는 감정적이고 짙은 회화가 동일한 인상을 준다. 얼마나 사랑스럽게 전주와 첫 두 행이 시작되는가; 얼마나 남성적으로 얼마나 강하게 결미가 강조되는가; 얼마나 애틋하게, “발걸음도 가볍게, 기분도 발랄하게”, 양치기 소녀가 이리로 오는가, 얼마나 홀가분하게 그녀의 노래가 초원에 울리는가(초원은 오페라를 들었다, 자그마한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를!). 제비꽃의 명상은 얼마나 소박하고 얼마나 감상적이며, 파국의 다가옴은 얼마나 불안하고 얼마나 모면하기 힘든가! 파국은 포르테시모의 협화음 반주로, 목소리의 단순한 서창으로 상징화되어 있는 것이다. 모차르트가 독자적으로 추가한 후절—이 사실이 얼마나 주목받고 있는가—, “가련한 제비꽃이어라! – 사랑스러운 제비꽃이었거늘”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모차르트는 가곡의 형식을 부수고 도약하였다; 시인의 말, 가곡 형식의 의미에 대하여 자의적이거나 무감각한 것이 아니라, 내적인 갈급함에 의해서 그렇게 했다. 이 갈급함의 근원에 대해서는 짐작만 할수 있을 따름이다. 모차르트는 육체적으로 작았으며 초라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이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위대함을 강렬하게 의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초라함 때문에 매우 괴로워했다는 사실이 입증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곡 아닌 가곡 속에서 한 천재가 다른 천재에 의하여 점화되었다. 이 영역에서, 그리고 아리아의 영역에서, 모차르트는 궁극적인 감동을 발설하였으며 지고의 감동에 도달하였다.

—Alfred Einstein, Mozart: sein Charakter und sein Werk, S.396-397

저는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일본작가 하루키의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여주인공 이름이 바로 ‘스미레'(제비꽃의 일본어)라고 합니다. 스미레의 어머니가 모차르트의 이 <제비꽃>을 사랑한 나머지 딸의 이름으로 명명했다는군요. 스미레는 모차르트의 <제비꽃>이 무척 아름다운 가곡일 것이라고만 막연히 짐작하고 있다가 무참히 짓밟히는 사랑의 노래임을 알게 되고, … 아무튼 이 <제비꽃>에 얽혀든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가 봅니다.

이렇게 <제비꽃>을 절절하게 소개해 놓고는 음악을 안 들려주면 안되겠지요?

Das Veilchen, KV.476 Irmgard Seefried(soprano), Gerald Moore(piano)

 

모차르트의 가곡 <제비꽃>, KV.476”에 대한 4개의 댓글

  • 괴테와 모짜르트도 ‘선한 영혼’으로서의 ‘제비꽃’을 노래했군요. 우리 시사에도 가련하고 어여쁜 시, 이용악의 ‘오랑캐꽃’이 있어요. 우리가 아는 제비꽃.20년대 조선 민중의 짓밟히고 선한 객관적 상관물.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지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게/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마침 이용악을 새로 읽다가…

    강물
  • 좋은 자료 잘 보고 가져갑니다..행복한 날들 되시길예~!*

    njkykh
  • 모차르트님은 기악과 오페라는 물론 가곡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신 분이라 생각됩니다.
    좋은 글 담아갑니다. 행복한 하루하루 보내세요~

    song2agnes
  • 정말 잘 보고 갑니다. 단순히 음악을 듣는것도 물론 좋지만 이렇게 자상한 해설을 보고 들으니 그 즐거움이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거에요!

    이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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