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솔레르스, «모차르트 평전»

모차르트 관련 서적 번역을 꿈으로 품고 있는 나로서는 이 역서의 출현과 더불어 그 꿈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음을 고백하고 싶다. 특히 모차르트 음악 자체가 주도하는 가운데 흘러가는 솔레르스의 이 책은, 국내에 번역된 모차르트 관련 서적들과 비교해 볼 때, 독보적인 지위를 갖는다. 모차르트 음악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라면 사회정치사적인 배경, 사회적인 고찰 등 음악 이외의 시선 안에 모차르트 음악이 포착되는 책을 그다지 달가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시선 역시 도움이 되겠지만, 그 도움은 정보적인 차원일 뿐이다.

우리는 솔레르스의 통찰과 같은 통찰 혹은 상상 혹은 사랑을 원한다. 모차르트 음악을 들을 때의 그 유쾌함, 발랄함, 슬픔, 격정, 전율, 연금술적인 사랑을 글 속에서도 발견하길 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 안에 공히 내재한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바위”와 “순간 바람에 저리 훌쩍 비상하는 깃털”이 빚어내는 인간사의 숨막히는 격정, 무거운 것의 찬란한 가벼움, 가벼운 것의 끝없는 무게, 한 마디로 “인간성의 학교”가 있을진대, 그리고 모차르트가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그것을 드러냈을진대, 글을 통하여 그 단면이나마 드러내지 못하란 법은 없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만 따지자면, 솔레르스만이 그것을 유일하게 해낸 것은 아닐까?
 

오페라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틀림없이 좋아할 것이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분들은 대부분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좋아하기 마련이며, 이 책은 “언어와 드라마가 있는”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축으로 모차르트의 위대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차르트 오페라의 그 기발한 착상들이 솔레르스 글의 기발한 문장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흡사 만화를 읽을 때처럼, 가볍고 흠없는 (그러나 참으로 오랜만인) 웃음을 연신 터뜨렸다: “서양 음악 200년을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 적어도 열 명 이상의 음악가가 거론된다. 그런데 프랑스 음악가로 이런 수준에 오른 이는 단 한 명도 없는가? 자, 흥분해봤자 소용없다. 그게 사실이므로.”(307면); “천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가까운 이들에게는 흔하다(그들이 어떻게 다른 식의 반응을 보일 수 있었겠는가?)”(354면)

이러한 유쾌함 사이사이로 뭔가 묵직한 것을 내놓기도 한다: “콜로레도도 아르코도 (또 다른 이들도) 모차르트의 행운과 승리 앞에서 수치로 가슴을 짓찧을 만큼 오래 살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그들은 어쨌든 X나 Y나 Z라는 인물로 변해 지금도 살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남몰래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196면); “이 오페라[=돈 조반니]에서 케루비노는 성장해 이제 조반니라 불린다.”(250면)(유감스럽게도, 이 하나의 문장이 얼마나 무서운 통찰인지를 알려면 피가로의 결혼에서 등장하는 케루비노의 그 아프고 아름다운 아리아를 익히 알고 있어야 한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아는 이라면, 이러한 “발랄함”, “발랄한 웃음 뒤에 찾아오는 서늘한 감동”이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되풀이될 것이다. 특별히 솔레르스의 글은 <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에서 십분 독자를 웃고 울릴 것이다. 솔레르스와 모차르트가 죽이 척척 맞아들어가는 대목으로 꼽고 싶을 정도이다.

 

오페라를 제외한 모차르트의 음악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이 많지 않다. 어쩌면 그래야 하는 지도 모른다. 대신 모차르트의 편지와 동시대인의 증언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시시콜콜 전거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이들로서는 매우 고맙고 유익한 정보이다. 이러한 정보들은 모차르트의 지상 여행(먹고 똥누고 뽀뽀하고 놀고 작곡하고 여행하고 돈빌리고 하는 일상생활)에 밀착시켜서만 공개되며, 이 정보에 심원한 차원을 입히기 위하여 솔레르스는 몇몇 문학가, 철학자들의 글을 인용한다. 랭보, 횔덜린, 괴테, 하이데거, 니체 등.

나 개인적으로는 가장 많이 인용되는 랭보의 시를 이해할 만한 내공이 아직 못되어서 무척 아쉽긴 했지만,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이들인) 횔덜린, 니체, 하이데거, 괴테의 글들을 촌철살인 인용할 때에는 정말이지 딱이지 싶었다. 모차르트 오페라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라도 아마도 솔레르스의 이러한 문학적 인용 솜씨에 연신 감탄할 것이다. 물론 이 감탄은 독자의 적지않은 내공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오페라 각각에 대해 무작정 칭찬만 했던 괴테를 꼬박꼬박 인용해 주어서 너무 고맙다. (돈 조반니와 관련하여 괴테가 실러에게 보낸 서신 내용도 언급했더라면 더 좋았으련만.) 과연 동시대인으로서 괴테만큼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일거에 파악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러니까 괴테 문학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이 책을, 아니 모차르트를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번뜩이는 착상으로 여기저기(심리적으로 말해 무거움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이 글을 읽다보면, 꼭 모차르트의 오페라 부파를 듣는 기분이 든다. 그만큼 유쾌하면서도 서늘하다. 그런데, 그 기분이 뚝 단절되는 대목이 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 관련 대목이다. 아아, 여기에 대해서는 영화글이 극적인 반전 부분을 밝히지 않는 것처럼 침묵하는 게 예의이리라. 정말 울고 싶었다는 말만 해 두자.

이런 책을 번역해 주신 역자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글 자체가 꼭 일상 대화처럼 되어 있어 결코 쉬운 번역이 아니었을 것이고, 모차르트의 편지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분뇨담”을 번역할 때에는 ‘이런 것까지 번역해야 하나’ 하는 배반감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위대한 작가는 독자를 믿는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역자 역시 독자를 믿어주시기를 기원한다.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이라면 이 책도 좋아할 것이므로. 지난 성탄절에 내게 온 선물이 없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나에게 더없이 기쁜 성탄 선물이었다.

“신의 영혼을, 그의 미묘하고 가변적이고 복잡하고 유쾌하고 지독하고 부드러운 영혼[을], 간단히 말해서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모차르트를 좋아한다고, ‘신의 모차르트’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말라.”(솔레르스, 103면) 그래요, 그랬지요. 음악을 좋아한다는 분들을 만날 때면, 저도 언제나 “모차르트를 좋아하세요?” 하는 조용한 물음을 던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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