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음악에 관한 두 단상의 음미

“모차르트의 음악은 어린이에게는 쉽고 어른에게는 어렵다”—Artur Schnabel
“무거운 것이 가볍게 떠다니고 가벼운 것이 끝없이 무겁게 가라앉는다”—무명의 평자
 

모차르트의 음악 체험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나름의 식견을 계속 쌓아가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 모차르트에 다가가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릴 적부터 천성적으로 모차르트와 가까웠던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에는 모차르트 음악은 각고의 수련을 거쳐 가까스로 다다르게 된 그 무엇입니다.

각고의 수련이라 해서 무슨 음악적 연구나 감상의 두께를 기반으로 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진작부터 음악이라는 것을 삶의 호흡과 동일하다고 느꼈던 저로서는, 제 삶의 숨결과 비슷한 음악을 찾는 여정이 곧 음악을 알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내적인 불화로 인하여 언제나 긴장되고 무거웠던 젊은날의 생활은 사실 모차르트 음악을 “알아듣기”에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무거운 젊은날에 들었던 모차르트 음악은 진정 가까이 하고 싶으나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것이었고, 그래서 저는 그런 세월 동안 내내 언젠가는 모차르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삶의 자리를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아마도, 모차르트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던 것은, 많은 분들이 의아하게 여기실 지도 모르겠지만, 노동을 하면서였던 것 같습니다. 머리 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모든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들어갔던 노동의 세계에서, 낯선 타인과 손발을 맞추어 그 뭔가를 물질적으로 함께 세워내는 공간에서, 모차르트 음악은 기적적으로 저의 귀와 마음에 들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노동의 세계는 저로서는 용서와 화해의 세계였으며, 끈질지게 그리워했던 사뿐한 비상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세계였습니다.

그 때 처음 모차르트의 발랄함에 슬픔이 있음을 알게 되었던 듯하고, 모차르트 음악의 가벼움에 무거움이 있음을 알게 되었던 듯합니다. 가벼움이라, … 그것은 무거운 뭔가의 가벼움이었고, 무거움은 가벼운 뭔가의 무거움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린이 세계에서의 가벼움과 무거움은 어른들 세계에서의 그것들과는 다를 것인데, 가벼움/무거움의 갈림이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또 어쩌면 가벼움/무거움의 벌어진 틈새가 어른들에게서보다 훨씬 좁을 지도 모를 일, 아니 어쩌면 없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무거운 것이 가볍게 떠다니고 가벼운 것이 끝없이 무겁게 가라앉는” 신비가 어린이의 세계에서 현실적으로 구현될 지도 모릅니다.

그런 느낌, 그런 기쁨, 그런 슬픔과 찬연함, 한 마디로 “기적”을 모차르트 음악에서 듣노라면, 저는 어느새 가벼운 존재가 되고, 가벼운 침묵이 되고, …, 그리고 저 깊숙히 나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자가 됩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