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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폴라 라훌라,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


이 책을 만나게 된 시절 인연에 대하여 먼저 감사를 한다. 월폴라 라훌라(혹은 월뽈라 라훌라), 이승훈 역,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 (경서원, 1995)
 

한 사오년 간 책을 멀리한 적이 있었다. 대형서점에 가면 꼭 무슨 쓰레기장에 들어선 기분이 들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이 마무리되는 첫 계기는 동양고전을 접하면서였다. 다산 선생의 글이었던가, 두보의 시였던가, 아무튼 나는 동양고전을 띄엄띄엄 읽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 동양정신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서양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동양고전에 이르를 경우, 그 거치는 길목이 다들 다르겠지만, 나는 하이데거와 니체 덕분이었다. 그들이 나를 동양으로 인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공부하면서 나는 존재, 현존, 실체, 근거, 논리, 객관성, 가치, 도덕, 영원 등등, 그 허깨비같은 개념들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서양인문학은 내게 서구가 만들어놓은 철학적 개념들을 벗어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이런 부류의 경험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희랍인 조르바»로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 역시 베르스송과 니체를 통하여 서양인문학과 안녕을 고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베르그송 밑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가 어떻게 인생에서 “먼지 한 번 피워보려고” 가진 돈을 몽땅 광산개발에 쏟아부었겠는가. 그 소설에서 조르바의 거침없는 인생과 더불어 붓다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서양인문학이 내놓은 개념들에 대한 최대의 항거인 셈이다. 그 항거의 일환으로 카잔차키스는 일본과 중국을 여행하기도 하였으나, 그 여행기를 미루어 보건대 끝내 동양적인 지혜에는 도달하지 못한 듯 보인다.

동양고전이 손에 잡히기 시작한 이제, 어디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정말 막연했다. 다행히 답사모임에 참가할 기회를 얻어 우리문화 유적지를 답사하기 시작하면서 그와 연관된 글들을 조금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안에 감추어져 있던 역량의 폭발이었다. 두서 없이 이책 저책 읽으면서 불교쪽도 넘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헐적이긴 하지만 끊임없는 그 넘보기의 연속 끝에 나는 이 책을 만났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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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the Buddha Taught»의 저자 Walpola Rahula(1907-1997) 스님. 스님의 생애와 저술에 관하여 살펴보려면 팔리문헌연구소 마성 스님의 글, “행동하는 불교지성, 월폴라 라훌라 스님“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번역서의 원작은 서양에서 불교소개의 기준적인 저서로 통용되는 «What the Buddha Taught»이다. 많은 불자들과 불교학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스리랑카의 월폴라 라훌라(Walpola Rahula) 스님께서 빨리어 경전들을 토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서양인들에게 명석하게 풀이하여 소개한 책. 너나없이 이 책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므로 이 책의 가치에 대해서는 달리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그러나 책을 고른다는 것은 음반을 고르는 것과도 같아, 누군가에게도 좋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아니 좋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의 허름한 정신적 이력을 간단하게나마 밝혔던 것이다. 정신적 이력이 다르면 동일한 책에 대한 평가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약간의 내용 소개를 하고자 한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 . . »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인 사성제, 연기, 무아無我를 핵심적으로 다룬다. 팔정도는 사성제의 마지막 항목이므로 별도로 분리하지 않고 사성제에 포함하여 서술하고 있다. 사성제와 연기, 무아를 서술한 뒤에는 명상과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관하여 약술한 다음, 본문의 설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전 대목들을 추려서 싣고 있다. 이 <경전 추림>(Selected Texts)은 라훌라 스님이 빨리어에서 영어로 직접 추려 옮긴 것이다. (역자는 이 책의 내용 중에서 라훌라의 무아론에 감명을 받아서였는지, 역서의 제목을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부처님이 가르친 것’ 등으로 하지 않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 . . »로 했나 보다. 라훌라의 무아론은 나에게도 역시 깊은 감명을 주었다.)

라훌라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가면, 고, 업, 윤회, 열반, 법 등은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것들이지만 대표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오해들을 하나하나 풀어주는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불교서적에서 무수히 접했던 용어들이 어느새 쉽게 이해된다. 더불어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근본적인 가르침으로 인정되는 거의 모든 것, “상좌부와 대승불교 모두가 사상적 체계의 근본으로 받아들이는 주제”, 즉 사성제, 팔정도, 오온, 업, 연기, 무아, 염처 등등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온다.

스님은 프랑스에서 “노란색 가사를 걸치고, [...] 서양의 대기를 호흡하며 어쩌면 낡고 잘못되었는지도 모를 우리[서구] 방식의 시각으로 자기 종교에 대한 보편적 성찰을 모색”하며 8년을 생활한 후, 이 책에다 “가장 오래된 경전에 보이는 불교 교리의 기초 원리가 모든 이에게 전해지도록, 명석하게 풀이”(Paul Demieville, College de France 교수)하였다. 그래서 서구적 개념체계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다름아닌 현대 교육을 이수한 우리들)에게는 신선함을 넘어 충격을 주기까지 할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철학적 개념들을 머리속에서 줄기차게 털어냈던 나는, 내가 불교에 접근하면서 기대했던 거의 대부분의 내용을 라훌라 스님의 책에서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었다. 오, 이 놀라움이여!
 

국내에서 «What the Buddha Taught»의 번역본은 이 책 이승훈 역본(1995년 번역) 말고도 또 있다. 비교적 근래에 번역된 한국빠알리성전협회의 전재성 역본(2002년 번역)이다. 전재성 역본은 약간 심하게 말해서 “라훌라 스님의 책이 아니다”. 전재성 역본으로 읽다보면 나름대로 잘 읽히다가도 팔정도 대목에서 한없이 늘어질 것이다. 역자가 자신의 글을 수십 면 삽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본 제목조차도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이다. 물론 원저에 역자의 글을 삽입하면서 별도의 표기를 해 주었다면 참을 만하겠지만, 그런 표기도 해놓지 않았다. 팔정도 대목 뿐만 아니라 “일일이 거론하기가 무척 어려워 밝힐 수가 없”을 정도로 곳곳에서 역자가 라훌라 스님의 글을 보완했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저자의 글이고 어디까지가 역자의 글인지 확인할 수가 없다. 더구나 전재성 역본의 역어들은 내가 서양인문학을 거치면서 머리속에서 털어내었던 개념들을 대다수 포함하고 있어서 꼭 모래알을 씹는 기분이 든다. «What the Buddha Taught»에 어엿하게 실려 있는 <Selected Texts>(pp.91~138)를 아예 빠뜨린 것도 의외다. (원저는 <Selected Texts>를 부록이 아니라 본문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래서 이 역본은 라훌라 스님의 책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거지 성자» 등을 읽으면서 그분의 인생에 대하여 숙연한 마음을 갖고 있는 독자로서, 이런 비평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이승훈 역본의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 . . »는 탁월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빛나는 번역서를 만났다. 책의 주요 개념들을 우리말로 옮기려는 노력과 그 결과가 감동적이거니와, 한자, 빨리어 등을 일일이 병기해 두었다. 그리고 인용되는 각 경전들의 이름을 빨리어와 한문으로 표기해 두었으며, 색인까지 두었다. 역주 또한 대단한 정성이 들어가 있다. 가령, 월폴라 라훌라 스님이 objective라는 낱말을 쓸 때 이는 ‘如實하다’는 불교적 언어를 지칭한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서양언어의 관계대명사를 똑똑 끊어 간결 정확한 한글 문체로 번역한 점도 높이 살 만하다. ‘학문적’으로 옮겨야 할 scientific을 늘 ‘과학적’으로 옮긴다거나, ‘개신교적’으로 옮겨야 할 Evangelic을 ‘전도주의적’ 등으로 옮긴, 그야말로 사소한 실수들을 제외하고는 완결판이라고 보고 싶다. 물론, 전재성 역본이 나은 점도 있다. 전재성 역본은 라훌라 스님의 빨리어 텍스트 출처를 근간된 PTS 판본의 출처로 바꾸는 수고를 하였으며, 일일이 주석 형식으로 빨리어 원문을 싣고 있다. 이 하나의 장점을 제외하고는 이승훈 역본의 우위가 현저하다.

그런데도, 저작도 뛰어나고 번역도 뛰어난 이 책,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 . . »가 묻혀 있다. 인터넷서점에서는 책 표지 이미지도 없고, 역자 이름도 없고, 아무런 설명도 없고, 아무런 평도 없고, 거의 팔리지도 않은 채, 땅에 묻힌 보석처럼 묻혀 있다. 이렇게 조용히 묻혀 있는 책, 조용히 묻혀 사는 분들 때문에 커다란 위안을 받기도 하지만, 마음이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경서원이라는 출판사와 역자에게 존경을 표한다.

진리를 선물하는 것은 다른 어떤 선물보다도 뛰어나다.
Sabbadaana.m dhammadaana.m jinaati

— 헌사에서


이 글은 2005년 10월 23일에 작성되어 불교서적(으)로 분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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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폴라 라훌라,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에 대한 댓글 9


  1. 카잔자키스의 ‘희랍인 조르바’를 감동적으로 읽고 ‘앤서니 퀸’이 주연하는 영화도 감동적으로 보았는데… 그가 하이데거와 니체의 영향으로 동양철학도 섭렵한 줄을 이제 알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내용들의 이해가 깊어집니다. ‘아도니스’ 같은 소설에서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남다른 시각을 들어내는데… 그것도…..’라훌라’스님 사진은 안 보여요.

    강물

    2005년 10월 24일

  2. 선생님이 소개하시는 책은 항상 재미있게 보아서
    이번에도 사려고 했는데
    제가 가는 인터넷 서점에는 그 책이 없네요.
    ‘책 표지 이미지도 없는’ 그 사이트가 어딘지
    가르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aspirin

    2005년 10월 26일

  3. 저는 주로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합니다. 예스24는 이공계 계통의 간단한 서평이 활발하고, 알라딘은 인문예술 쪽의 서평이 활발하더군요. 알라딘 서평이 글자 수 제한이 없어서 그런 듯합니다. 제가 지속적으로 거래하던 예스24에서 알라딘으로 바꾼 계기도 서평 글자 수 제한 문제 때문이었어요. 간단한 서평인데도 예스24는 길다고 서평등록을 거부하더군요.

    그리고 검색해 보니 알라딘 말고도 교보문고에도 있습니다. 제가 소개하는 책이 항상 재미있다니 영광입니다.

    Gosinga

    2005년 10월 26일

  4. 소개하신 책 조금씩 읽고 있는데 정말 좋네요.
    머리속이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아스피린

    2005년 11월 18일

  5. 책과 좋은 인연이 되겠군요. 머리도 마음도 맑아지기를 빕니다.

    Gosinga

    2005년 11월 21일

  6.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다시 점검해 보니, ‘하이데거와 니체의 영향’이 아니라 ‘베르그송과 니체’의 영향입니다. 제가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았던 경험을 카잔차키스에게도 대입시킨 잘못이었네요. 카잔차키스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지요: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죽었거나 살았거나 내 투쟁에 도움이 된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내 영혼에 가장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의 이름을 대라면 나는 아마 호메로스와 부처와 베르그송과 니체와 조르바를 꼽으리라.

    첫번째 인물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기운을 되찾게 하는 광채로 우주 전체를 비추고 태양처럼 평화롭고 찬란하게 빛나는 눈이었으며 부처는 세상 사람들이 빠졌다가 구원을 받는 한없이 깊은 새까만 눈이었다. 베르그송은 젊은 시절에 해답을 못얻어 나를 괴롭히던 철학의 온갖 문제들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었으며 니체는 새로운 고뇌로 나를 살찌게 했고 불운과 괴로움과 불확실성을 자부심으로 바꾸도록 가르쳤으며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부처는 . . . 한없이 깊은 새까만 눈”—이 표현에 카잔차키스와 불교의 관계가 잘 드러나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잘 유념하지 않는 사항이긴 한데, 카잔차키스의 첫 저작은 소설이나 희곡이 아니라 다름아닌 니체의 «비극의 탄생»의 그리스어 번역이었습니다.

    라훌라 스님의 사진이 안 보인다는 지적, 정말 고맙습니다.

    Gosinga

    2005년 10월 24일

  7. 전에 방명록에 이경영 이란 이름으로 인사올린 낙타입니다.(ctl은 낙타에서 사자로를 줄인 말입니다^^) 선생님의 글을 다시 보다가 jung 의 자서전을 소개한 글에서 감명을 받아 그 책을 얼마 전에 구입해서 보고 있습니다. 또 어제는 집에서 나오려는 등 뒤에서 어머니께서 교회 설교집 하나 들고 가라는 말씀에 도망치듯 나와서는 서점에서 이 책을 구입했습니다. 기독교에 몸담았던 30년 동안 재수생시절에 경험했던 개인적인 체험의 성격을 규정하기가 힘들다가 Jung의 자서전을 소개한 글에서 느낌이 왔었습니다. 그리고 열린 눈으로 불교관련 서적을 보기는 이 책이 처음인 듯 합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면서도 벅찬 감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스스로 책을 선별할 수 있는 눈을 갖추기까지는 고싱가 숲을 자주 드나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책을 소개해주신 고싱가님의 선물도 저에겐 너무나 뛰어난 선물입니다. 감사합니다.

    CTL

    2009년 07월 22일

  8. 이 책이 마음에 드신다면 마스타니 후미오의 “아함경”(현암사)도 추천해 봅니다. 그 책에 대해서는 제가 따로 소개의 글을 올렸지요. 불교의 범위가 워낙 넓어서 어떤 책을 먼저 집어들어야 할지 선택하기가 어렵지만, 서양식 사고에 익숙해 있는 분들께서 불교를 처음 접할 때 좋은 책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양적인 문체와 문학적 기지를 맛보면서 선불교를 접해보고 싶다면 “벽암록”(장경각)을 추천해 봅니다. 이 책은 번역이 중요하므로 장경각 역본을 꼭 택하셔야 할 겁니다. “벽암록”은 사실 읽어보아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될 겁니다. (그렇지만 CTL님은 남다른 분이시니까 어느 정도 이해될 지도 모르겠군요.) 아무튼 벽암록은 그 문학적 아름다움과 선승들의 간결하고 예리하고 활발발한 가풍 때문에라도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쉬운 선불교 관련 책으로는 “선의 황금시대”가 괜찮습니다. 선불교의 역사를 쉽게 소개한 책이지요.

    이 세상에는 고수들이 많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할 뿐이지요. CTL님의 정신적 높이가 높아질수록 역사 속의 고수들이 끝없이 나타날 겁니다. 배우는 길은 사람을 겸허하게 만들고 늘 새롭게 하는 듯합니다. 지속적인 발전이 있기를 빕니다.

    고싱가

    2009년 07월 23일

  9.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RinRin, YounSeung. YounSeung said: 고싱가 숲, 월폴라 라훌라,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 http://bit.ly/dr8Cd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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