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공과 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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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singa 作, 청량사 응진전

세존이 이르기를, “너희들은 부처를 그 이름이나 친구라는 말로 불러서는 안 된다. 나는 세간의 공양을 받기에 합당한 깨달음을 얻은 부처이다.”

부처는 깨달음 이후 바라나시의 녹야원에 들러 다섯 명의 출가자에게 첫 설법을 한다. 그들은 한때 석가모니와 함께 수행하기도 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한때 동료였던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어 수행처로 되돌아왔을 때 친구 이상의 대우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부처가 한 말이 바로 인용한 내용이다. “너희들은 부처를 그 이름이나 친구라는 말로 불러서는 안 된다. 나는 세간의 공양을 받기에 합당한 깨달음을 얻은 부처이다.”

친구나 도반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친구나 도반의 차원을 넘는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는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부처는 “세간의 공양을 받기에 합당”하다는 자격을 이야기한다.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란, 쉽게 말해 스스로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남이 챙겨주는 밥을 먹어도 되는 사람을 뜻한다.

이러한 자격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가리켜 ‘아라한’이라고 하는데, 한자 문화권에서는 ‘응공應供’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응공의 자격이 있는 사람, 즉 깨달음을 얻은 분들을 모시는 전각이 바로 절집의 ‘응진전’이다. 이러한 근원적 의미를 알고 있기에, 춘원 이광수는 병상에서 쓴 ‘응공’이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응공의 자격이 없는데도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있다는 자격지심을 발로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개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인문적인 가르침을 주는 일은 금기에 속한다.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을 그토록 몰아부쳤던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그것, 즉 돈을 받고 가르치는 행색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가르치는 일이 제도권에 편입되어 철학과 문학을 가르쳐도 떳떳히 제도로부터 돈을 받을 수가 있는데, 교수의 직위가 바로 그것이다. 책을 써서 출판사로부터 돈을 받을 수도 있다.

대학 제도권 내에서 가르치면서 봉급을 받으면 떳떳한 듯해도, 제도권 밖의 일반 학술모임 등에서 가르치면서 수강료를 받으면 떳떳하지 않은 듯 보이는 것은, 돈을 받는 사람이 돈을 내는 사람으로부터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느냐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일 뿐, 근본적으로는 둘 다 떳떳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기술이나 기예를 가르치면서 돈을 받는 것은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데, 사실 문학이나 철학을 가르치면서 돈을 받는 일은 꼭 종교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돈을 받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만큼 문학이나 철학은 삶의 진정성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신을 치료해 준답시고 환자로부터 직접 돈을 받는 정신과 의사는 대단한 강심장이 아니면 하기 힘든 직업일 게다.

서양의 과거사에서 문학이나 철학을 하는 자가 밥을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정한 직업을 가지거나 소위 ‘패트론'(후견인)이 있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패트론 대신 제도가 등장하였다. 즉 인문학이 직업화된 것이다. 기술적인 직업을 갖지 아니하고 인문적인 탐구를 하면서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 사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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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singa 作, 청량사 응진전

나는 다시 부처의 제1성으로 되돌아간다: “공양을 받기에 합당한 깨달음을 얻은 부처이다.” 당연히, 나는 공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탁발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 탁발이라는 것이 밥그릇을 두 손으로 들어올리는 구상적 행위를 가리키는데, 한 마디로 밥 좀 달라고 밥그릇 들어올리고서 거지처럼 겸손하게 비는 행위이다. 부처는 깨달음 이후에도 탁발을 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물론 제자들이 탁발을 했음에도 밥을 얻지 못한 채 수행처로 되돌아온 일화들이 초기 경전에 기록되어 있다.

불교에서도 그렇고 초기 기독교에서도 그렇고 이 탁발 행위는 대단히 중요한 깨달음의 장이었다. 탁발하는 순간은 “나는 당신으로 인하여 밥을 먹을 수 있는 존재, 하잘 것없는 존재입니다” 하는 고백의 순간인 까닭이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행위인 밥먹는 일에 임하여 한없이 비천한 숨결이 되는 것이다. 불가에서 밥 먹는 시간을 엄숙하게 보내고 쌀 한 톨, 상추 잎 하나라도 귀히 여기는 전통은 이러한 탁발 정신이 맥맥히 흘러왔다는 증거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른 시기에, 요즈음엔 불교마저 탁발 행위가 거의 사라지고 없다. 교회는 헌금으로, 사찰은 관람료나 보시로 대체가 되었다. 이 변화의 시기에 과연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밥을 주는 구체적인 일상인을 만나면서 가장 겸허해야 했던 숨결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 비천한 숨결을 쌀 떨어질 때마다 되풀이하면서 탁발승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일까?
 

종교적인 영역에서도 탁발의 언어가 거의 사라지고 말았으니, 학문의 영역에서야 두말할 나위 없겠다. 책을 내고 돈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인문적 가르침을 베풀고 돈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물론,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뒤엎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다만 탁발의 언어를 전혀 모른 채 돈을 받는 행위가 과연 어떤 사람을 만들 것인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하기야, 부처처럼 응공의 자격이 있다면 돈을 받는 것을 당연히 여겨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응공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인문적인 탐색을 하는 우리는 탁발을 통하여 일대사를 이끌고 가야 할 사람들이다. 인간의 삶에서 벌어지는 이 근본적인 언어를 놓친다면, 대단히 심오한 깊이를 상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응공의 자격도 없고 탁발도 싫다면, 노동을 하여야 한다. 자기 손으로, 자기 기술로 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세 가지 밥 먹는 방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을 통하여 밥을 먹든가, 깨달음의 길을 가려고 밥을 겸허하게 빌어 먹든가, 아니면 득도의 경지에 이르러 보시를 받든가 하는, 이 세 가지 길 중 어느 하나를 우리는 가야 하지 않을까?

응공과 탁발”에 대한 2개의 댓글

  • 아. 정말 명쾌하군요. 이렇게 쉽게 주제를 풀어쓰는 능력은 자신의 실천적 행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다른 글들도, 물론 웅숭깊은 사진들도 그런 맥락에서 감동입니다. 사진 한 장도 테크닉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담겨서 매일의 일상도 그러하리니 울림을 자아내겠지요….

  • 실천적 행위에 기반하고 있지는 못하고요, 그저 이런저런 생각일 뿐입니다. 밥에 대해서는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고는 있습니다.

    Gosi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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