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숲에서

숲에서 봄이 오는 첫 신호는 무엇일까? 북한산 자락에 살아보니 비로소 알겠다. 가장 이른 산동백 꽃이 피기 전, 나뭇가지에 새움이 트기 전, 먼저 봄을 알리는 것은 물소리이다.

언땅이 녹기 시작하면서 여기저기 작은 개울물이 마치 노래를 하듯 낭랑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새들은 윤기 있는 소리로 울며 하늘을 난다. 그 몇 주 뒤에 비로소 개울가의 나무가 움트기 시작한다. 이어서 산동백, 개나리, 진달래 순으로 꽃이 피고, 나뭇가지의 색이 달라지고, 나뭇잎이 새옷을 입는다. 허름하고 추운 숲에 은거하던 이들이 순차적으로 봄날을 맞이하며 깨어나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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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숲 초입의 계곡에 핀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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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이르게 봄을 맞이하는 한 그루 나무.

특히 어제처럼 가랑비라도 내리면 숲은 완연히 달라지고 인적은 드물다. 북한산 자락에 살면서 조금의 운치라도 있는 이들이라면, 비오는 날의 숲을 차마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봄날을 맞으며 풍경을 재편하는 시절에 비마저 흩뿌리면 홀로 자적하기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진달래가 아름다운 것은 이 은연자적하는 맛을 더욱 깊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주위의 모든 것이 허름한 빛깔인데 찬란하게 피어나는 순간, 그리하여 잡다하고 무질서한 듯한 풍경을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상승시키는 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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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

아마도, 외국에 오래 산 한국인이라면 산속의 개울물과 진달래에서 가장 그리운 풍경,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발견할 것이다. 또르르 흐르는 작은 개울물과 허름한 산속에 핀 진달래, 이들을 보는 순간 그때까지 알 수 없었던 그리움 덩어리의 근원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장엄하지는 않지만, 그 작고 은연한 아름다움으로 내 안의 모든 것을 커다란 아름다움으로, 커다란 슬픔으로 상승시키는 존재들이다. 아름다움과 슬픔은 동일한 리듬을 갖고 있다. 아름다움과 슬픔은 모두 상습적인 인식체계를 뒤흔들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없다면 그것은 아름다움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다.

그렇다면 인식의 균열과 함께 무엇이 드러나는 것일까? 인식 자체가 관습적인 허구임이 드러난다. 따라서 위대한 예술은 반드시 습관적인 사고와 습관적인 감정을 해체시키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 그런 파괴력이 없는 예술은 위대한 예술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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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해진 숲에서 비를 맞는 나무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본 지가 꽤 되었다. 비오는 봄날의 숲이 아름다워 휴대전화로 오랫만에 사진을 찍어보았다. 어두워지는 숲에서 비를 맞는 나무들을 보며, 말을 잊는다.

봄날, 숲에서”에 대한 1개의 댓글

  • 3월 30일, 그 전날엔 가랑비가 왔었군요. 북한산 첫해, 봄의 첫날을 느낀 게 기억나네요. 물소리에서, 쇠별꽃에서… 잘 지내시지요?

    “위대한 예술은 반드시 습관적인 사고와 습관적인 감정을 해체시키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 그런 파괴력이 없는 예술은 위대한 예술이 될 수 없다.”

    이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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