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으로부터 동쪽을 지나 해동에 이르도록 — 송광사 새벽예불 신반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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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음반 표지

이제까지 절집의 예불을 녹음한 음반을 거의 대부분 들어본 경험에 바탕해서 소감을 말하자면, 송광사의 새벽예불은 자연스러운 인간미가 돋보인다. 낮고 느리고 부드럽고 온후한 남도의 풍광을 닮았다. 그리고 송광사의 예불만큼 음반으로 많이 출시된 경우도 드물다. <空 — 소리로 찾아 떠나는 그 곳, 山寺>(저녁예불)를 비롯하여, <승보의 울림>(새벽예불), <松廣寺—첫번째 소리>(저녁예불) 등의 음반을 통하여 송광사의 예불을 접해볼 수 있다.

이제 이 목록에 지난달에 새로 나온 새벽예불 음반, <松廣寺>가 추가되었다. 해인사, 운문사, 송광사의 저녁예불을 각각 일부씩 녹음한 <空 — 소리로 찾아 떠나는 그 곳, 山寺>를 논외로 하자면, 이번에 나온 음반은 이제까지 나온 송광사 예불녹음과는 녹음의 수준에서 질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전의 음반들이 절반되어 더는 구할 수 없는 마당에 고품질로 녹음된 음반이 나옴으로써 송광사 새벽예불을 접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귀한 선물이 될 듯하다. 음반의 구성내용은 다음과 같다:

트랙 예불 시간 집전
1 도량석 1:14
2 새벽종성 14:58 강주 일귀스님
3 법고 5:29
4 범종 4:49
5 목어 2:39
6 운판 1:42
7 예불문 13:43 대일스님
8 발원문 6:02 유나 현묵스님
9 반야심경 2:33
10 금강경 21:20

<승보의 울림>과 비교해 볼 때, <松廣寺>의 가장 큰 차이점은 천수경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송광사의 새벽예불에 직접 참례한 적이 없는지라 자세한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만일 천수경 독송이 단지 음반에서만 빠진 것이 아니라 실제 예불에서 제외된 것이라면, 매우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소한 차이점을 말하자면, <승보의 울림>에서는 범종의 타종횟수가 매우 짧은 분량만(4분의 1가량) 실려 있었다면, <松廣寺>에서는 비교적 긴 분량이 실려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모두 스물여덟 번의 타종 중에서 절반가량만 실려 있다는 것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음반의 물리적 한계상 80분 분량을 초과할 수 없는 까닭에 금강경 독송을 싣자면 부득이 도량석이나 사물에서 일부를 축약하여 실을 수밖에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전 음반에 실린 도량석이 매우 짧아 분량을 많이 줄여서 실었는가 보다 짐작했지만, 이번 음반에서도 도량석이 매우 짧은 것을 보니 송광사의 전통이 군더더기 없이 짧고 간소하게 도량석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닌게아니라 음반 내지의 설명을 보니, 송광사에서는 “도량석에서는 오로지 목탁소리”만 울린다고 한다. 그런데, 범종의 소리를 전부 싣더라도 80분을 초과하지 않는 것으로 계산이 되는데, 왜 줄여서 실었는지 모르겠다. 설마하니 송광사의 타종횟수가 열 너댓번에 불과한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송광사의 예불녹음을 비롯하여 거의 대부분의 예불녹음 음반들이 한결같이 범종의 타종횟수를 줄여서 편집하여 싣는 이유는, 아마도 청중들이 범종이 느리고 긴 호흡으로 십여 분간 반복되는 것을 지루하게 여길 것이라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부디 그런 편견은 버렸으면 한다. 나같은 경우에도 범종이 장중한 호흡으로 울리는 십여 분간이 그토록 아름답고 고요할 수가 없다. 그 소리, 마냥 길게 길게 듣고 싶기만 하다. 산사의 모든 소리를 단 하나의 소리에 모았다가 두웅 하고 울리퍼지며 산하로 사무쳐 들어가는 아름다움을 본 적이 있는가? 생명들의 호흡을 여탈하며 자타가 성불하는 일시(一時)처럼 장엄한 그 순간이 무한히 반복되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그 모습 그대로 찾는 청중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승보의 울림>이 송광사에서 자체 녹음한 것인데도 일정한 녹음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다른 글에서 밝힌 바 있다. 그에 반해, <松廣寺>의 녹음은 전문업체에서 녹음한 것으로, 모든 트랙에서 깊은 공간감과 현장성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범종소리는 종루 주변에서 차수하고 가만히 서서 듣던 소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타종과 함께 퍼지는 두웅 소리의 여음과 범종이 흔들리면서 흔드는 우웅 우웅 하는 저음의 잔향이 그대로 귓전에 와닿는다. 소리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귓가를 어루만지는, 몸을 흔드는 물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이제까지 들어본 범종의 녹음 중 가장 정밀하고 훌륭하다. 다만 절반 분량으로 줄여서 편집한 것만이 아쉬울 따름이다.

한국불교사를 살펴보면, 7세기 이전에 이미 불교음악이 있었고, 예불 의식도 7세기 무렵에는 치러졌다고 한다. 따라서 예불 음악의 역사는 1,300년이 넘는 셈이다. 현재 새벽예불 의식에 포함되어 있는 다게례는 신라 이후로, 축원과 조석예불은 고려 이후로 정착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의식이다. 그리고 종송에는 고려 이후로 만들어진 여러 게문들이 중첩되어 있다. 심지어 반야심경과 팔정례의 독송에는 한국 현대 불교의 영향이 미치고 있다. 송광사의 예불에는 이 긴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 음반 내지에서

천 삼백 년 이상의 세월을 뚫고 살아남은 예불 의식. 승가 공동체가 역사적 위기들 속에서 무산되었더라면 오늘날의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생생하게 구현되고 있는 현장을 더 이상 목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승가 공동체가 이천 오백 년의 세월 동안 끊어지지 않고 이렇게 생생히 살아 있고, 또 이렇게 예불 의식이 매일 새벽 온 우주에 울려퍼지는 것은, 그 긴 세월동안 출가자의 행렬이 면면이 이어져왔고, 전등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소유를 버리고 모든 소유관계를 끊고 오직 법을 구하겠다는 발심으로 산문 안으로 들어선 낱낱 수행자의 개인사가 지금까지 끝없이 이어져왔던 것이다.

너는 한 순간이라도 너의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람과 하늘의 안락을 위하여 길을 나선 적이 있더냐? 그런 점에서, 산문 안에 들어서 체발염의를 하고 법을 구하는 수행자들, 승가 공동체에 예경을 올림이 마땅하다. 그 한 순간의 위대한 포기와 그 한 순간의 발심을 예경해서라도 나는 승가에 귀의한다. 비록 그 모습이 껍데기뿐일지언정 그 겉모습을 통해서라도 법이 지금 이 현장에 살아 있음을 경탄하지 않을 수 없으며, 온갖 난관을 뚫고 법륜이 지금 이 현장에서 구르고 있는 불퇴전의 역사에 찬탄을 보내며 예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至心歸命禮 西乾東震 及我海東 歷代傳燈 諸大祖師 天下宗師 一切微塵數 諸大善知識
서천으로부터 동쪽을 지나 해동에 이르도록 법을 전하신 역대 모든 조사와 천하종사, 미진수처럼 수많은 모든 선지식께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옵니다.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僧伽耶衆
시방삼세 모든 곳에 항상 계시는 승가에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하옵니다.

위와 같은 예불문 자체가 승가의 공동체가 살아 있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다. 승가 공동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예불문이 글귀에 갇혀 있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올려지고 가슴에서 가슴으로 울리고 있는 것이며, 승가 공동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송광사 예불 의식과 같은 수천 년 역사의 고귀한 문화를 눈앞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유구한 역사적 현장에 거하고 있기에, 어느 스님은 새벽예불을 마치고 법당을 나설 때 출가의 기쁨이 물밀듯이 밀려온다고 했다.


조석예불은 일년 열두 달, 단 하루도 빠지지 않는다. 법고를 울리는 스님이 예불을 시작하기 직전 법고 앞에 서 있다. 화엄사에서

<승보의 울림>도 그렇고, 이번에 나온 <松廣寺>도 그렇고, 종성과 발원문은 노장스님들이 맡았다. 특히 이번 음반은 녹음 마이크의 위치를 대웅보전에 모셔진 삼세불의 귀 가까이에 두었다 한다. 그리하여 종성, 예불문, 발원문, 반야심경, 금강경으로 이어지는 예불 의식의 소리가 대웅보전의 마루에서부터 시작하여 천정과 벽체를 타고 울리는 공명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공간적으로 말하자면, 승가 공동체가 여명 속에서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예경 올리는 소리를 부처님의 사자좌에서 그대로 들을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종성과 발원문은 노장스님들이 맡았는데, 새벽종성은 강주스님이고 발원문은 유나스님이다. 수십 년의 수행을 거친 강원과 선원의 수장들이 부처님의 사자좌를 향하여, 시방삼세를 향하여, 뭇 생명들을 향하여, 수행자를 향하여,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향하여, 인천의 안락을 위해 발심했던 그 마음 오롯이 드러내 바치는 것이다. 그 음성에는 인간사 혼곤함과 거친 호흡이 묻어 있지 않으며, 치장이 없는 질박함으로 화살을 곧게 쏘아 여타의 장중함을 능가한다. 한 마디로, 젊은 패기로부터는 도무지 나올 수 없는, 노장의 연륜과 관록에서 비롯한 깊은 우물같은 심연을 맛볼 수 있다.
 

이제, 새벽예불 음반을 추천하라면, 주저없이 이 음반을 추천할 수 있겠다. 음반 케이스와 내지의 사진은 배병우가 찍은 것들이어서 디자인 면에서도 격조를 높였다. 음반 내지에는 새벽예불에 대한 에세이 식의 간략한 소개가 있으며, 예불 의식의 구체적인 텍스트를 싣지는 않았다.

이 음반의 음질과 녹음과정에 대해서는 송광사의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echoes of the great pines>는 여러가지로 뜻깊은 음반이다. 예불을 담은 음반은 여러 종이 나와 있고, 소리가 뛰어난 것으로 이름 높은 송광사의 예불도 이미 두 차례나 음반에 담겨진 바 있다. 그럼에도 새롭게 출시되는 이 음반이 관심과 기대를 모으는 이유는 우선 무엇보다도 그 음질이다. 일반적인 음악 CD 제작을 위한 녹음은 보통 PCM (pulse code modulation)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반해, <echoes>는 보다 진보된 DSD 방식으로 녹음되었다. PCM 방식과 비교할 때 DSD 방식은 네 배가 넘는 양의 정보를 기록하며, 샘플링 주파수는 64배에 이른다. 신호 처리 과정에서의 손실 역시 훨씬 적어서, 한마디로 월등한 음질을 들려주는 포맷이라고 할 수 있다. DSD 방식으로 제작된 디스크는 SACD (Super Audio CD)라고 불리우는데, SACD는 해외에서 클래식 음악 음반을 고품질로 제작하고자 할 때 많이 사용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제작이 활성화되어 있지 못하다. SACD의 또 한가지 장점은 일반 CD에서 보통 사용되는 2채널 스테레오 외에도 멀티 채널을 통해 더욱 입체감 있는 음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시 멀티 채널 포맷을 사용하였는데, 5.0 채널 서라운드 사운드를 뿜어내는 다섯개의 스피커의 중앙에 자리잡고 눈을 감으면 마치 예불의 현장 한 가운데 있다고 착각할 정도라고 한다.

이 음반의 녹음을 담당한 사운드미러 코리아의 황병준 대표는 2008년 그래미 최우수 녹음기술상을 수상한 그레차니노프의 합창 음악 <수난 주간>의 녹음에 참여했던, 국내 최고의 레코딩 엔지니어 중 한명이다. 황병준 대표는 이 녹음을 위해 세 번이나 송광사를 방문하는 준비 과정을 거쳐, 작년 11월에 두 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3박 4일 간 송광사에서 새벽 3시에 시작되는 새벽 예불 소리를 여러 차례 녹음했다. 그 중에서 최선의 소리를 골라내기 위한 편집 과정을 거쳤고, SACD 마스터링과 어서링은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 황 대표가 미국까지 날아가 보스턴에 위치한 사운드미러 본사에서 작업했다. 이러한 모든 노력의 결과로 나온 의 소리에 대해, 사운드미러의 대표이며 수 차례 그래미상을 수상한 세계 정상급의 레코딩 엔지니어인 존 뉴튼John Newton은 “환상적이다! Sounds fantastic!”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송광사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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