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는 소리만 실리듯이 — 아잔타 석굴사원에서

“몇 겹의 봉우리로 이어지는 높은 산은 어느 것이나 깊고 험하다. 이곳의 깊은 골짜기에 그 기초가 있는 가람이 있다. 높은 당과 깊숙한 건물은 벼랑을 파 봉우리에 의지하고 있으며 중각과 층대는 암성을 등으로 계곡을 향하고 있다. 아찰라 아라한이 세운 것이다 . . . 높이 1백여 척 되는 가람의 대정사 안에 높이 70여척 되는 석상이 있다. 그 위에 일곱겹 되는 돌우산이 있는데 허공을 향해 끝이 없다. 우산의 거리는 각기 3척 남짓이다 . . . 정사의 네 둘레에는 석벽을 조각했는데, 여래가 그 옛날 보살행을 한 것, 과거의 그때그때에 있어서의 불도수행의 정도와 그 깨달음을 얻은 길상, 적멸에 든 신령의 감응 등을 그린 가운데 굵게 혹은 세밀하게 조탁을 해 놓았다 . . . 가람의 문 밖의 남북좌우에는 각기 하나의 돌코끼리가 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이 코끼리는 때로는 큰 소리로 울부짖는데 대지는 그 소리에 진동한다는 것이다. 옛날 딘나보살이 가끔씩 이 가람에 머물렀었다.”(권덕주 역) — 627년부터 643년까지 약 16년간 인도에 머물렀던 중국의 구법승 현장이 아잔타 석굴을 순례하고 나서 남긴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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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은 석굴 주위로 조각된 수많은 상들 중에서 이 열반상을 지목하여 “적멸에 든 신령의 감응”이라고 표현했다. 아잔타 제26굴에서

우리는 현대의 교통편을 이용하여 아잔타 석굴을 방문할 수밖에 없는 까닭에 시야가 좁아지고 흐름이 빨라 주위 풍광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힘들다. 하다못해 주마간산보다도 못한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몇 겹의 봉우리로 이어지는 높은 산은 어느 것이나 깊고 험하다”는 현장의 표현에서 도보여행이 주는 장쾌함과 언어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옛 시대의 언어가 품격이 높은 것은 이렇듯 몸으로부터 나오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산이 높아 골짜기가 깊은 곳, 이곳을 현장이 몸을 굴려 방문한 때는 아잔타 석굴이 현존하는 규모로 이미 완성된 시기였다. 특히 그가 대표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석굴은 다름아닌 가장 나중 시기에 조성된 제26굴 사원이 분명하다. 이 석굴은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예불공간으로서의 장엄미가 특히 빼어나 세계 각지의 건축가들이 필수적으로 내방하는 건축공간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은 이 석굴사원에서 순례 입재기도를 드렸으니, 현장의 묘사처럼, 불상 위로 돌우산이 허공을 향해 끝이 없이 펼쳐진 공간이었다. 저 푸른 어둠, 저 심연, 저 우주 속으로 모든 빛과 모든 소리가 함몰되어 사라질 듯한 그 신비한 공간감! 예불소리를 인위적으로 가공함 없이 가장 자연스럽게, 가장 성스럽게 메아리치던 그 우묵하고 깊고 부드러운 공간!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옴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가리다바 이맘 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니라간타 나막 하리나야 마발타 이사미 살발타 사다남 수반아예염 살바보다남 바바말아 미수다감 다냐타 옴 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 하레 . . .

신묘장구대다라니, 산스크리트 어 다라니가 한글로 음사되어 염송되었다. 이 다라니가 고대 인도에서 성립되기 시작할 때, 이천 여년의 세월을 건너 먼 동북방의 이방인들이 이 신비한 사원에서 염송하게 될 줄 과연 누가 예상이라도 했겠는가? 그런데 산스크리트 어가 소리에서 소리로, 침묵에서 침묵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수천 년을 이어져 마침내 이곳 석굴사원에서 음사되어 울려퍼지고 있는 것이다. 혜초의 스승 금강지와 사형 불공삼장이 이 산스크리트 어 다라니를 한문으로 각각 음사하여 번역했다는 사실은 한 무더기 소리에 실린 신심과 인물과 역사의 파노라마를 더욱 경이롭게 만든다 하겠다.
 

우리는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의미를 잘 모른다. 의미에서 의미로 전달되는 언어가 가장 정확하고 지성적이라고들 흔히들 말하지만, 불법의 세계에서는 그런 언어만큼 한계가 뚜렷하고 부실한 것도 드물다. 언어 자체가 부실한데, 의미가 정확한 언어야 새삼 언급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한 글자라도 받아 지닌다면 그 사람은 영겁토록 여우의 혼령에 지나지 않는다”는 선가의 준엄함은, 차라리 칠통을 바랄지언정 해박한 지식을 갖춘 자들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제26굴 사원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들은 뛰어난 건축가도 아니요, 뛰어난 조각가도 아니요, 뛰어난 학자도 아니요, 오직 신심 있는 자들이다. 해석과 의미에 기대지 않고 도리어 모든 언어를 물리치는 무의미의 소리에 존재 전체를 의존하여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 . .” 염하는 신도들, 수행자들. 결국에는 그 신심 있는 님들이 이 건축물을 만들었으며 이 조각들을 조탁한 것이 아니던가! 그들은 영적이며 그들은 창조적이며 그들은 남들이 접근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현장의 기록을 보아도 그가 방문한 석굴사원들의 건축가들은 다름아닌 보살이나 아라한이다. 아잔타 석굴의 건축가도 아찰라 아라한으로 소개되고 있다. 물론 아찰라 아라한이 모든 석굴을 조탁하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이 기록은 석굴이 다름아닌 출가수행자들의 신심과 손길에 의하여 만들어졌음을 증언하고 있다. 기실 모든 역사 속의 절집 건축은 일차적으로 출가수행자들의 신심과 손길에서 출발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를 성스러운 공간으로 불러들이고 우리를 성스럽게 사라지게 하는 것은 그들의 신심과 손길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약간의 자료를 읽어보면 “바로기제 새바라야”가 “아발로키테슈바라”의 음사이며, 이는 연꽃을 든 님, 관자재보살 내지 관음보살로 번역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바로기제 새바라야”를 염하는 순간에 한 줄기 바람처럼 실린 존재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관음보살도 아니며 연꽃도 아니며 아발로키테슈바라도 아니며, “바로기제 새바라야”도 아니다. 다만 그것을 염하는 순간에 이 세상에 나왔다 저 허공 끝으로 사라지는 것일 뿐. 염송의 소리와 염송하는 자와 염송의 공간이 하나로 돌아가는 순간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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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하는 자와 소리를 듣는 자와 소리가 하나로 돌아가고. 아잔타 제26굴에서

그리하여 아잔타 제26굴 석굴사원에서는 신묘장구대다라니와 함께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고, 소리는 청정한 음악이 된다. 석굴 안에 들이치는 빛은 빛나는 광채가 된다. 이윽고 입재기도 중에 순례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스님의 축원문에 실려 공간을 가득 메아리치다가 저 우묵하고 저 높은 공간으로 아스라히 사라진다. 음악처럼, 청정한 언어처럼, 나의 이름도 인도 데칸고원의 아잔타 제26굴 신비한 사원에서 아득하니 메아리친다. 저 소리에 실린 것은 무엇일까? 오직 청정함만 실리시라, 나의 바람도 말고 나의 미래도 말고 나의 감각도 말고 오직 나 없는 청정함만 오르시라. 소리에는 소리만 오르고 빛에는 빛만 오르시라, 그리고 사라지시라.
 

현장의 기록에서 유념할 용어는 “정사精舍”와 “가람伽藍”이다. “높이 1백여 척 되는 대정사”는 불상을 모신 제26굴 사원을 가리키며, “가람”은 그보다 넓은 영역을 가리킨다. 특히 “가람의 문 밖의 남북좌우에는 각기 하나의 돌코끼리가 있다”는 기록에서 우리는 제16굴에서 제26굴에 이르는 석굴군이 하나의 “가람”으로 칭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남북방향으로 좌우 돌코끼리 상이 있는 곳은 바로 제16굴에 당도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입문 밖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고고학은 편의상 아잔타 석굴군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순차적인 일련번호를 붙히고 말지만, 현장은 가람의 문과 코끼리상을 언급함으로써 당시 제16굴에서 제26굴까지의 석굴군이 가람 안에 유기적으로 배치된 예불과 수행의 공간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딘나보살陳那菩薩이 이 가람에 종종 머물렀다는 것으로 보아 심산유곡의 수행 공간으로 자리잡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딘나보살에 관하여는 현장 스스로가 “안드라국” 편에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딘나보살은 부처님이 세상을 떠난 다음 그 덕풍을 이어 옷을 물들인 사람이다. 대비의 홍원은 광대하고, 지혜의 힘은 굳건하며 세상 사람으로 의지할 곳 없는 이를 가엾이 여기는 가운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려 하였다. 인명론因明論은 논리가 깊고 넓어서 학자가 노력해도 이해하기 어려움을 감안하여 심산유곡에 숨어 선정에 든 가운데 인명因明에 관한 저술의 이해득실을 생각하면서 문리의 번간을 심구했다. 그때 벼랑과 골짜기가 큰 음향을 내면서 산의 모양이 일변하였는데 . . .

— 현장, 권덕주 역, «대당서역기»

딘나보살은 심산유곡, 벼랑, 골짜기, 산을 좋아한 수행자였던가 보다. 안드라국에서도 깊은 산과 깊은 골짜기를 찾아 선정에 들었던 것이니, 아잔타 석굴이야말로 그에게는 천혜의 수행처였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씩 이곳에 머물렀을 것이다.

이상의 기록에서 아잔타 석굴의 기원과 실제적 기능에 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아잔타 석굴군은 예술적인 공간이기 이전에 정사와 요사채를 갖춘 불교 가람, 즉 수행처이자 예불공간이었다. 제아무리 아잔타 벽화가 천상의 아름다움을 선보일지라도, 제아무리 아잔타 건축이 성스러운 공간을 펼쳐보일지라도, 그 완벽함에 감동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잇고 지키고 따르려는 수행자들의 세계를 놓쳐서는 안된다. 그들이 그 건축이며 그들이 그 벽화이며 그들이 그 석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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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모라 다나다라 야야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소리가 소리에 실려 허공을 향해 끝이 없이 오른다. 아잔타 제26굴 천정

어느 수피의 말처럼 “순례자와 순례와 순례길이 모두가 나를 향해 가는 나 자신”이듯이, 수행자와 수행과 벽화와 건축은 모두가 그를 향해 가는 그 자신이므로, 아잔타 가람은 아름답고 성스럽다.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은 멀리서 오지 않는다.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은 바로 나를 향해 가는 나 자신, 아름다운 것을 향해 가는 아름다움, 성스러운 것을 향해 가는 성스러움이기 때문이다. 빛에는 빛만 실리고, 소리에는 소리만 실리듯이 . . .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소리에는 소리만 실리듯이 — 아잔타 석굴사원에서”에 대한 2개의 댓글

  • 장엄한 소리가 들려옵니다.궁륭 같은 저 높고 큰 천장을 지나서. 순례는 어쩌면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는 것인지도… 길을 잃는 길이 즐거움이 되는 길…기존의 아집과 망상을 벗을 수 있는 어떤 크고 높은 것을 만난다는 것, 가슴 떨리는 일이지요.

    강물
  • 애독자가 되어 주시고 늘 격려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길을 잃는 즐거움은 정말 맑고 깨끗한 느낌입니다. 저 역시 이 세상의 보편적인 삶의 구조로부터 벗어나 길을 잃는 꿈을 꾸곤 합니다. 제가 제 감정의 노예가 되는 일 없이, 제가 제 생각의 노예가 되는 일 없이, 그렇게 길을 놓쳐버려 어디든 걸림없이 자유롭게 되는 길 말입니다.

    고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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