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박한 의견에는 경청할 만한 가치가 별로 없다 — «불교가 좋다»를 읽고

불교에 접근하는 통로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며, 불교를 바라보는 시선도 각기 다를 것이다. 이제 나는 수행자들이 불교에 귀의하여 펼쳐낸 언어의 세계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므로, 수행자가 아닌 이들이 불교에 접근하는 상이한 방식, 불교를 바라보는 상이한 시선이 궁금하기도 하여 별미 삼아 이 책을 집어들었다.

특별히 융 심리학을 전공한 학자와 젊은 시절에 티베트 불교를 수행하고 <티베트와 모차르트>라는 기발한 제목의 책까지 쓴 종교학자가 불교를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니, 읽기 전부터 흥미로왔다. 출판사측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가와이 하야오는 “일본인의 마음을 다스리는 정신적 지주”이며, 나카자와 신이치는 “일본 현대 지성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종교학자”라 한다. 애시당초 이런 소개 문구에 대해서는 피식 웃고 넘어가는 편이지만, 그래도 융, 모차르트, 불교 등등이 얽혀 있으니 일독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은 경박한 의견들로 채워져 있어 경청할 만한 가치가 별로 없다고 본다. 두 저명한 학자의 대담을 두고 경박하다고 평가하는 것에 대하여 불쾌하게 여길 분들도 있겠으나,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뭔가 알 수 없는 찝찝한 느낌, 뭔가 진흙탕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느낌, 고대 수행자들의 표현을 빌면, “덕지덕지 때묻은 느낌”, 뭔가 불투명하고 축축한 느낌을 가졌다. 일반적으로 불교경전이나 선어록을 읽으면 맑고 투명한 느낌이 드는데, 이와 정반대의 느낌이 든 것이다.

물론 이 느낌 때문에 이 책이 무가치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름대로 종교학이나 인류학, 심리학 등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책, 나름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이제까지 배운 불교의 가르침이라는 근본입장에서 이 책을 되돌아보건대, 적어도 불교에 관한 한, 식견 없는 잡담을 나눈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우세하다. 이들은 “불교가 좋다”고 했으나 나는 이들이 말하는 불교가 어쩐지 내가 배운 불교와 그다지 큰 상관은 없다는 판단마저 든다.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 구판에서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종교는 오로지 불교뿐이다”라고 했으나, 2001년 신판에서는 “이것[불교에 대한 판단] 역시 시대착오적인 고찰”이라고 의견을 고쳤다고 한다. 이를 두고 가와이는 “대체로 경박한 의견에는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경우가 많다”(27)고 했다. 맞는 말이다. 경박한 의견에는 그 의견을 피력한 사람을 간파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실마리가 숨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가와이나 나카자와의 개인사 내지 개인적 철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실마리는 될 수 있어도, 불교 자체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경박한 의견에는 경청할 만한 가치가 별로 없다는 말 역시 맞다.

이 두 학자들이 제시하는 견해에 대하여 사사건건 부딪히는 대목이 많이 있으나, 그런 것들을 일일이 운위하느라 시간을 뺏기는 것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와는 달리,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분들이 틀렸다는 것은 전혀 아니며, 다만 나같은 경우에는 일독할 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저렴한 문고판으로 읽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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