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의재(放意齋)라 이름 지으며

정릉동이라는 동명은 목이 말라 급히 물을 찾는 장수에게 버들잎을 띄워 샘물을 건넸다던 어느 여인의 생애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물을 급히 마시면 체할 지도 모르니 버들잎을 불어내며 천천히 마시라는 것이었다. 우물가의 이 아름다운 낭만을 잊지 못했던 태조 이성계는 훗날 그 여인을 비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여인, 신덕왕후의 무덤이 바로 정릉인 바 정치적 역학 속에서 한동안 박대 받았다가 먼 뒷날에야 제대로 관리되기 시작했다. 결국 현 정릉2동에 위치한 정릉으로부터 동명이 나온 것이지만, 원래 이 동네는 북한산 자락의 풍치에서 유래한 이름들을 가지고 있었다.

가령, 청수동은 북한산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에서 그 이름을 얻었으며, 삼양동은 삼각산 봉우리 동남쪽 양지 바른 곳이라 하여 그 이름을 얻었으며, 청암사는 푸른 산봉우리 아래 자리 잡았다 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 그렇지만 그 이름들은 이제 사라져 버렸고 ‘정릉동’이니 ‘미아동’이니 ‘경국사’니 하는 정치적이거나 비자연적인 이름들로 대체되고 말았다.

지역의 이름이 관념화하고 정치화한 것은 자연적인 이름들의 국지적인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령, 청수동은 북한산 계곡 주변의 마을(정릉3동, 정릉4동)을 가리킬 수는 있어도 그 계곡에서 멀리 떨어진 정릉1동, 정릉2동까지 가리키는 것은 억지스러운 데가 있다. 그렇다고 하여 정릉이 지리적으로 북한산 계곡 주변의 범위까지 포함하는 것도 아니니, 이곳을 청수동이라 하지 않고 정릉동이라 이름한 것은 역시 자연에 대한 정치적 관념과 권력의 승리이거나 그 관념에 지배당한 관료들의 역사적 흔적이다. 나는 그 승리, 그 흔적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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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중에 아내의 손바닥만한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몇 컷 찍어보았다. 산골물이 아롱아롱 흩어지고 있다

지난 해 여름, 십수년 간 살았던 동네를 떠나 이곳 청수마을에 들어섰다. 그 날로부터 지금까지 매일같이 북한산 숲을 드나들었으며, 샘물을 길어마셨으며, 산허리 어둠 속에서 들리는 아득한 종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서재에서 보이는 보현봉과 형제봉, 어둠 속에서 소리 높여 흐르는 산골물은 나의 벗이었다. 나는 이들과 더불어 하루하루를 호흡했고 이제는 밤을 새워도 건장할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 과연 이곳은 정릉동이라는 이름보다는 청수동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차고 깨끗한 산골물, 맑고 기운찬 바람, 운무가 머물다 지나가는 산봉우리. 이곳에서는, 속된 감정이든 성스러운 감정이든 불문하고 뭇 감정은 거센 바람과 맑은 물에 쓸려가는 티끌먼지에 불과하다. 이것을 어떻게 노래할 것인가.

태고보우 스님의 <태고암가>는 이곳 청수마을의 능선 너머 태고암에서 지은 것이지만, 북한산 자락의 산골물, 샘물을 읊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산 청수의 원류를 회억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시편으로 음미할 만하다:

산 위의 흰구름은 희고 또 희느니
산중에 흐르는 샘물은 떨어지고 또 떨어지느니
뉘라서 흰구름의 얼굴을 볼 수 있느냐
갤 때 비올 때가 있으며 번개칠 때 있구나
뉘라서 이 샘물소리 들을 수 있느냐
천구비 만구비 쉬지 않고 흐르는구나

山上白雲白又白 山中流泉滴又滴
誰人解看白雲容 晴雨有時如電擊
誰人解廳此泉聲 千回萬轉流不息

— <태고암가> 중에서

산봉우리에 걸린 흰구름은 물러서는가 하면 모이고 모이는가 하면 먹구름이 되고 비가 된다. 이렇듯 변화무쌍한 흰구름인데, 그것의 얼굴, 본모습을 볼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샘물은 떨어지고 떨어지며 흐르고 흐르는데, 그 천구비 만구비 흐름을 관통하는 샘물소리를 누가 들을 수 있느냐. 그것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자라면, “흰구름”(白雲)과 “샘물소리”(泉聲)가 태고의 자연처럼 보이고 들려야 한다. 그것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여야 하며 그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흰색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흰구름에 그 어떤 시각, 감정, 관념도 덧붙지 않아 흰구름이 희고 희어야 하며, 샘물소리에 그 어떤 소리, 감정, 관념도 덧붙지 않아 샘물소리가 천구비 만구비를 뚫고 떨어지고 떨어져야 한다. 이것이 태고의 샘물소리이며 이것이 흰구름의 얼굴이다.

석옥청공 화상은 태고보우 스님의 <태고암가>를 밝은 창가에서 읽고 발문을 쓴 바 있다. 거기에는 태고보우 스님을 묘파하는 “以道自適 放意泉石間”이라는 글귀가 보이는 바, “도로써 자적하며 샘물돌 사이에 뜻을 놓아버렸다”는 뜻이다. 석옥청공 화상도 <태고암가>에서 샘물소리를 노래한 싯구를 눈여겨보았다는 얘기이다. “샘물돌 사이에 뜻을 놓아버린다”는 것은 샘물이 한없이 맑게 흐르는 곳의 돌들과 물결 사이에 뜻을 풀어버린다는 뜻이겠다. 샘물이 흐르다 돌을 만나면 바로 그 즉시 그 지점에서 아롱진 무늬가 되어 흩어진다. 뜻이 생기는즉 물결의 무늬처럼 풀어져 흩어지고 만다. 뜻은 생기는 즉시로 영롱하게 무너지고 사라진다. 이것이 곧 “放意泉石間”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랴.
 

북한산 숲으로 들 때마다 나는 잠시 계곡가에 앉아 샘물과 돌들을 마주한다. 돌을 만나면 즉시로 아롱아롱 흩어지는 샘물, 그 물결들, 그 무늬들, 그 소리들. 존재계에 수시로 침범하는 인간의 뜻, 인간의 습성은 언제나 강고함을 지향할 뿐 샘물과 그 무늬처럼 흩어지지는 않는다. 생각이 난즉 흩어지고, 마음이 생긴즉 흩어지고, 뜻이 난즉 흩어지는 것은 인간적인 범주를 벗어난 위대한 성취인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산 계곡의 산골물은 그러나 그러한 경지를 성취했던 이가 대면했던 샘물이며, 하여 천구비 만구비 흐름을 뚫고 떨어지는 소리의 샘물이다. 어찌 이 샘물과 돌을 중히 여기지 않으랴. 이곳의 물은 다름아닌 태고보우의 “泉聲”과 석옥청공의 “放意泉石間”의 그 샘물인 것이다.

나는 그분들의 대화가 하도 비밀스럽고도 감동적이어서 내가 사는 곳을 “放意齋”라 이름 짓기로 했다. 청수마을 방의재. 그분들을 추억하고 그분들의 샘물, 산골물을 늘 대면하려는 것이다. 태고의 샘물소리는 천구비 만구비 흐름을 뚫고 떨어지고 있으니, 뜻이 난즉, 감정이 난즉, 생각이 난즉 그 즉시로 아롱져 흩어지면, 그 소리 들리리라. — 이 기대와 염원을 안고 “放意齋”라 이름 짓는다.

밤마다 샘물 길으러 가는 길이면, 북한산 숲은 정적이다. 정적 속에서 냇물 소리, 바람 소리는 전체적이고 역력하다. 멀리서 흐르는 소리가 이렇듯 뚜렷하다니, 이런 곳이 있었던가? 이곳에는 샘이 있고 산골물이 있고 바람이 있고 달빛이 있고 안개비가 있고 어둠이 있다. 고요한 산중의 밤길은 소슬하고, 뚜렷하고, 깨끗하다. 그리하여 충만하다. 바람에 쓸려간 티끌은 돌아오지 않는다. 남김없이 타버린 재에는 불꽃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 있으니, 소슬한 솔바람이 불면 만물이 역력히 드러나고 그 위에 달빛이 전체적으로 임하리라. “그대가 내게 산중의 경계가 무엇이냐 묻거든 솔바람 소슬하고 달빛은 내에 가득하다 하리”(<태고암가> 중에서). 그 산중의 경계가 바로 이곳이니, 어찌 이곳에서 심호흡을 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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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겨울숲이다. 어둡고 성긴 나무 아래로 잔설이 흩뿌려 있으니 소슬하다

오늘 새해를 맞아 가벼운 산행을 하며, 다시 한번 “放意齋”라는 이름을 새겨보았다. 북한산 숲은 역력히 드러난 나무들 아래로 잔설들이 남아 있고, 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은 소슬하더라. 부디 마음의 뜻, 마음의 결정, 마음의 욕망, 마음의 관념, 아니 마음 자체가 나뭇잎처럼 모두 떨어져나가, 삶은 나목처럼 역력히 드러나시라. 그리하여 마음이나 뜻이 일어나는 즉시로 샘물처럼 영롱하게 흩어지시라. 그러면 그것이 곧 “放意”이리니, 그러면 태고의 샘물소리 들을 수 있으리니, 희고 흰 구름을 볼 수 있으리니.

인간의 생이 근본적으로 전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放意齋”라는 이름을 지으며 나는 무자년 새해를 맞는다. 이곳을 들르는 벗들에게도 새해가 새해이기를 빌며 . . .

 

방의재(放意齋)라 이름 지으며”에 대한 7개의 댓글

  • 물바가지의 버들잎 이야기는 고려 태조의 전기에도 전하고 있고, 벽초의 『임꺽정』에도 등장하더군요.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옛사람들은 ‘현숙한 여인’에 대한 어떤 환상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엔디
  • 아예 잎사귀가 바닥에 장착되어 있는 도자기도 있더군요. 오래된 상징일 수도.

    kabbala
  • 아, 그 정도로 이 설화가 인기 있나 보군요. 저는 이 설화를 어느 사학자의 글에서 처음 접했던지라 철저한 문헌고증이 된 것이겠다 짐작했는데, 그런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도 이 설화가 인기 있는 것은 역시 “어떤 환상”이 기여한 면이 크겠네요. 덕분에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고싱가
  • ‘방의재’를 기리며
    북한산 산골물 속에는 하늘을 닮은 파아란 물이 있고, 인연처럼 얽힌 나뭇가지가 있고, 곧 가고 없을 마음들이 아직은 나뭇잎처럼 맴돌고 있군요. 아늑하면서도 툭 트인 그곳에서 늘 건강하고 평안하기를 새해에도 빌며….

    가로수 잎에 가을이 머뭇거리는 동안
     

    정릉이 종점인 버스를 탔다, 뜬금없이
    광화문에서 정릉 가는 길을 붙잡아
    경복궁을 지나고
    좁다란 옛날을 구불구불 따라
    환기미술관을 지나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시린 별 같은 것이나 하나
    마음 놓고 생각하면서
    의자처럼 앉아서 아무 생각도 안하면서
    때가 되면 버스는
    나를 종점에 내려놓으리니
    어디만큼 왔나
    얼마를 더 가야 하나
    둘러보면 언제나 낯선 거리
    바쁘게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시간의 버스는
    모가지가 무거운 계절의 종점에도
    나를 내려놓으리니
    햇님유치원 산장설비 청수약국 같은
    쓸데없는 간판이나 찬찬이 읽으면서
    좋구나, 얼만큼은 가려진 둥근 눈썹이나
    저기, 보현봉 형제봉에 그려보면서
    북한산 자락을 에돌고 돌아, 아직
    가을이 가로수 잎에 머뭇거리는 동안
    종점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환기 1970년 뉴욕전

    강물
  • 광화문에서 정릉골짜기까지 오가는 버스는 참 좋은 길만 골라 가는 것 같습니다. 환기 미술관 지나가는 김에 “시린 별 같은 것이나 하나” 보아야겠습니다.

    고싱가
  • 전화드릴까 하다, 시간도 늦었고 술먹고 돌아오는 길이라 말았습니다. 형한테는 술먹는 게 창피하거든요 ^^.

    형수님께도 새해인사 전해주세요.

    아, 그리고 결혼하면 형한테 사진좀 찍어주십사 부탁하면 들어주실거죠? ^^

    armani
  • 결혼식 촬영은 내 영역 밖이어서 불가능함^^ 여행 사진은 찍어줄 수 있지만서두, 혹 숲속에서 혼례를 치룬다면 또 모르겠군. 그나저나 같이 어울려 술 먹던 때가 엊그제 같던데, 이제 나는 술은 일년에 두어 번 마시나?

    고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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