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는 워낙에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인의 관심을 덜 받는 화가에 속할 것이다. 나 역시 김홍도의 만년 작품들을 보기 전까지는 풍속화 정도만 보았던 문외한이었다. 더구나 전공이 서양인문학이었던 데다가 관심마저 서양의 문화에 경도되어 있어서 우리나라 옛 미술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서양의 학문과 문화와 정신에 한계를 느꼈고 그 전환기의 시점에 우리나라 곳곳의 문화유적지를 찾아 답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장 동양문화에 심취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이제는 급기야 서양의 문화, 정신, 미술에 대하여 시큰둥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이 모르는 분야로 접어들 때에는 처음 한동안은 헤매기 마련인데 복되게도 미술도록을 대거 소장한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고미술 분야의 중요 도록들을 대략이나마 훑어볼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김홍도의 만년 작품들도 결혼 이후에 비로소 접했던 것이니, 처음 보았을 때 과연 이게 김홍도의 그림이란 말인가 하고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그림들에 크게 감동한 나는 만년 작품들 중의 하나인 소림명월도를 오려 이 블로그의 이미지로 채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김홍도의 그림들에 등장하는 김홍도 특유의 나무들을 보고서 나는 그것들이 우리나라 산야에서 전형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곳곳을 답사하고 다닐 때도 그런 나무들은 쉽사리 목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한 때 시골에서 비산비야의 풍경과 함께 11월, 그리고 2월을 보내면서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삼한사온의 날씨에서 사온의 날에, 따스한 햇빛과 맑은 바람이 있는 가을/겨울, 겨울/봄 어느 날에, 산야의 곳곳에 김홍도의 나무들이 서 있었다. 그 나무들은 평상시에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따스한 초겨울 날씨의 비산비야, 어느 호젓한 곳에서 문득 우수수 드러나는 풍경이었다. 그 처처의 풍경을 목도한 이후로 11월과 2월의 비산비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절과 장소가 되고 말았다. 확실히 김홍도는 겨울로 접어들거나 겨울에서 빠져나오는 시절의 허름한 산야를 좋아했던 듯하다. 그것은 냉엄한 정신적 풍경도 아니고 춘설의 끼긋한 꽃도 아니다. 꽃이 있어도 그 허름한 잎사귀와 나뭇가지에 숨어 있을 뿐이다. 봄날의 무르익은 감정이나 여름날의 무성한 풍요, 가을날의 화려함, 겨울날의 차가움 등등의 직설적인 언어들은 그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김홍도가 만년에 그린 <병진년화첩>에 실려 있는 “소림명월도” 역시 틀림없이 11월이나 2월 어느 날의 풍경이다. 그리고 그 풍경은 쓸쓸하거나 처연하지 않다. 나무의 메마른 잎들은 까칠하지 않고 부드럽다. 나목의 나뭇가지 사이로 보름달이 떠오를 때면 보통은 겨울 찬바람에 스산하기 마련인데, 이 그림은 그런 전형에서 벗어나 있다. 조선시대에 적적함의 대표적 정서였던 <추성부>도 김홍도가 그림으로 옮겨놓으면 어쩐지 쓸쓸하지 않다. 이게 다 그 나무들 탓이런가?
김홍도, <병진년화첩> 중 “소림명월도”, 1796년, 종이·수묵담채 26.7×31.6cm, 호암미술관 소장
<병진년화첩>은 김홍도가 52세 원숙기에 그린 화첩이다. 그는 육십을 갓 넘어서 타계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만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화첩은 전체 20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여지없이 11월과 2월의 나무들이 등장하는데, 그 나무들은 이제 보편적 조형을 획득한 듯 시절을 불문하고 여러 그림에서 그 허름한 골간을 은연히 드러내고 있다. 늙어서 되돌아보는 생의 풍요로움은 결국은 다 스러지는 것들이 아닌던가? 결국은 스러지고 남는 것이 아름답고 정겨운 것이 아니던가? 이제, 살아 있는 두두물물마다 그 나무들이 아스라히 서 있음을 들여다 볼진저!
<병진년화첩>보다는 <단원절세보첩>(檀園折世寶帖)이라는 명칭이 정당하다고 구체적으로 논했던 이는 오주석이다. ‘병진년’이라는 말이 제작시기 이외에는 아무 것도 지칭하는 바가 없으므로, ‘절세(絶世)의 보물’을 뜻한다고 볼 수 있는 ‘단원절세보’라는 명칭이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명칭은 김홍도와 동시대를 살았던 유한지가 쓴 것이므로 본래의 화첩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원절세보’가 단원 스스로가 부여한 명칭이 아니고 유한지의 해석이 들어간 명칭이라면 두루 통용되는 ‘병진년화첩’을 굳이 버릴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의미를 던져주는 명칭, 해석을 가하는 명칭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절세(絶世)라는 말은 그 의미가 진부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비교적 덜 해석적인, 그러니까 각자의 해석권으로 덜 끌려들어간 ‘병진년화첩’이라는 명칭이 좋다. 물론 이 명칭이 정당하다는 주장은 아니다. 오주석은 이 명칭을 작품 제목으로 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건조하다고 평했으나, ‘병진년’이 원숙기의 김홍도를 가리키는 만큼 나로서는 명칭의 정당성과는 별도로 그 어떤 해석보다는 깊은 울림을 준다. 생이라는 것이 늙음과 죽음이라는 위치에서 바라보지 않는 한 그 전모가 드러나지 않는 법이니, 모름지기 누군가의 만년은 귀하게 여길 일이다. 하물며 김홍도의 만년임에랴.
‘折世’라는 말이 오주석의 조심스러운 추정대로 ‘絶世’를 뜻하는지도 의문이다. 혹시 ‘折世’가 ‘급작스레 세상을 뜨다’는 의미는 아닐까? 그러니까 ‘夭折’과 ‘逝世’를 합한 의미가 아닐까? 유한지는 단원의 죽음을 황망하고도 애석하게 받아들였고 그의 죽음 이후 이 화첩을 완상하게 된 까닭에 ‘折世寶’라는 이름을 붙히지는 않았을까? 이를테면 유묵첩(遺墨帖)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려 부른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김홍도 평전은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열화당, 1998)가 가장 자세하다. 이 평전은 오주석이 호암미술관 객원연구원 소속으로 1995년 <단원 김홍도 탄신 250주년 기념 특별전>에 관여하면서 도록과 더불어 논고집 형식으로 간행되었던 것을 저본으로 하여 1998년 열화당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이다. 그리고 오주석의 타계 이후 2006년 솔출판사에서 판형을 키워서 재출간했다. 열화당판의 몇 가지 오류를 수정했다고 한다.
오주석의 <단원 김홍도>가 아직 글솜씨가 무르익지 않은 소장 시절의 글이라면,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솔출판사 1999, 2005(2)),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솔출판사 2006)는 완숙기에 접어들면서 작성한 글들이다. 그는 김홍도의 그림을 사랑하고 경모했던 만큼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에는 김홍도 그림을 소개하는 글이 여러 편 있다. 그의 글들은 감동적이고 완미하다. 아울러, <우리 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 2>(돌베개 1998)에는 오주석이 쓴 “단원 김홍도의 생애와 예술”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은 “<단원절세보첩>을 중심으로”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만큼 독자들은 이 글에서 화첩에 대한 상세한 소개를 만날 수 있다. 이 모든 책들이 김홍도에 관한 글을 싣고 있거나 김홍도를 전면적으로 다룬 책이므로 반복되는 내용이 없잖아 있으나, 오주석의 짧은 생애를 추모하며 대하노라면 반복적인 내용조차도 아끼면서 읽게 된다.
도록으로는 앞서 말한 <단원 김홍도 탄신 250주년 기념 특별전>(삼성문화재단)이 271 개의 도판과 작품해제를 싣고 있어 으뜸이다. 그 다음으로 1992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펴낸 <단원 김홍도>(통천문화사)를 꼽을 수 있는데 판형이 앞의 책보다 크고 화질이 좋아 자세히 살피기엔 최적이지만 도판이 많지 않은 것이 흠이다. <단원 김홍도 탄신 250주년 기념 특별전>은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호암미술관이 함께 협력하여 연 것이기에 앞으로 이때보다 더 나은 도록은 나오기 힘들 것이다. 애석하게도 두 도록 모두 현재로서는 구입할 수가 없다. 하나는 비매품이고 하나는 품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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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단원 김홍도>는 열화당판(1998)과 솔출판사판(2006) 두 종이 있다. 그리고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의 1999년 초판은, 주제로 삼고 있는 그림들을 책 말미에 도판으로 싣고 있다. 제본상태가 좋지 않아 도판들이 책에서 떨어지는 흠은 있어도 화질만큼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나고 격조가 있다. 도판 그대로 표구를 해도 좋을 정도이다.
솔출판사는 2005년에 재판을 찍으면서 제목을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로 고치고 도판을 다시 인쇄했다고 하는데, 화질이 초판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이다. 판형이 같은, 내가 소장하고 있는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로 유추해서 판단하건대,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은 그림의 도판을 별도로 첨부하지 않고 내용 가운데 삽입한 듯하다. 그런데 종이질 때문인지 뭔지 하여튼 도판의 운치와 격이 훨씬 떨어지는 느낌이다. 책 편집도 난삽한 편이다. 다음에 새로운 판을 찍는다면 부디 도판인쇄와 편집, 판형 등 모든 면에서 1999년판으로 되돌렸으면 한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는 그의 유고작이다.
상세한 글 잘읽었습니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그림 이라는 책에서 소림명월도를 보고 이건 누구 그림일까 하고 봤는데 단원의 그림이더라구요..
한국화에 대해 잘모르지만 참 마음에 드는 그림이어서 검색해봤습니다 ^^
소림명월도와 만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그림에 문외한엔 제가 어설픈 지식으로나마 감상하려고 검색하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좋은 글 잘 읽고, 좋은 그림 감상 잘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