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의 장소들(1) — “새로운 진리를 보았다”

Lange schlief Zarathustra, und nicht nur die Morgenröthe gieng über sein Antlitz, sondern auch der Vormittag. Endlich aber that sein Auge sich auf: verwundert sah Zarathustra in den Wald und die Stille, verwundert sah er in sich hinein. Dann erhob er sich schnell, wie ein Seefahrer, der mit Einem Male Land sieht, und jauchzte: denn er sah eine neue Wahrheit.

오래도록 차라투스트라는 잠을 잤다. 여명도 그의 얼굴 위로 지나가고, 오전도 지나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의 눈이 열렸다: 경이롭게, 차라투스트라는 숲속을 보았고 정적(靜寂)을 보았다. 경이롭게, 자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다, 번뜩 뭍을 본 뱃사람처럼, 탄성을 질렀다: 그는 새로운 진리를 보았던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의 허두> 9절에서

새로운 진리를 보았다? 아마 많은 이들은 이 표현이 낯설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흔한 언어 습관대로라면, 우리가 인식하는 것, 아는 것, 혹은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니체는 굳이 “보다”(sehen)는 동사를 썼다. 이 하나만으로도 니체는 경이로운 존재다.

“진리를 본다”는 표현은 서양고대에서부터 있어온 비의적 계열, 혹은 신비주의적 계열에서 사용되어 온 것이다. 가령, 엘레우시스 비교에서 최고 지위에 오른 이는 “본 자”, “견자見者”라는 의미의 “epoptes”였다. 이것은 «비극의 탄생»에서도 언급된 바 있으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아예 독일어 “Seher”로 번역되어 여러 번 등장하고 있다. 불교의 초기경전에서도 “보다”는 낱말은 깨달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선불교에서도 깨달은 자리를 두고 “견처見處”라는 낱말을 쓰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인간의 마음, 혹은 인간 정신의 어느 한 고원에 대한 증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현대인들은 신비주의에 대한 지독한 편견에 빠져 있다. 그것은 무슨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행태처럼 간주된다. 서양 기독교가 이에 일조한 것은 분명하다. 기독교의 역사는 낮은 수준의 신비주의만 용인하고 높은 수준의 신비주의는 배격하는 경로를 밟아왔다. 높은 수준의 신비주의는 기독교 교의에 대한 최대의 위협이기 때문이다. 영지주의, 정적주의, 야콥 뵈메, 에크하르트 등이 그 사례이다.

 

오쇼 라즈니쉬의 표현을 빌면, 니체는 “붓다적인 요소와 조르바적인 요소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의 불행은 그가 서양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동양이라면 불교의 영향 아래 禪이나 명상을 통해 니체가 숨쉴 만한 공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양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니체 당시의 유럽에서는 불교라는 이름 아래 우파니샤드나 인도 잠언 등이 이제 갓 번역되기 시작한 참이었다.

니체를 “신비주의자”로 보는 것, 이것은 많은 니체 독자들을 당혹케 할 것이다. 아마 굉장한 이질감, 굉장한 반감을 가질 것이다. 그러면, 니체와 불교가 유사한 면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 역시 공격을 받을 지도 모른다. 니체가 불교를 공격한 대목은 여럿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니체의 글들을 읽으면서 불교적 명상, 혹은 禪의 세계에서나 나올 법한 통찰과 이미지를 보았다. 참 놀라웠다. 그러나 이것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며칠 전 «오쇼의 짜라투스트라»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세상에 알려진 가장 위대한 철학자일 것이다. 니체는 타고난 신비주의자이며 또한 많은 철학자들이 전혀 알지 못했던 다른 차원에 있어서도 위대함을 발휘했다.

그의 철학은 단순히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가슴속 깊숙이 뿌리내린 심오한 철학이다. 그 뿌리의 일부는 존재의 심층부에까지 이른다.

그에 관해 아쉬움이 있다면, 그가 서양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그에게는 어떠한 신비주의자와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는 깊이 있게 사유했지만 명상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의 사유는 때때로 명상가의 심오함을 가지기도 하고, 붓다의 경지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당연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존재의 중심에 이르는 깨달음의 도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이러한 무지는 그의 존재에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별만큼 높은 경지를 꿈꾸었으나 그의 삶은 여전히 매우 일상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 — 그의 삶에는 명상이 가져다 주는 번뜩거리는 뭔가가 없었으며 그의 사상은 피가 되어 뼈 속까지 스며들지 못했다.

— 손민규 옮김, «오쇼의 짜라투스트라»(나무의꿈)에서

* 위 번역문 중에서 “그의 삶에는 명상이 가져다 주는 번뜩거리는 뭔가가 없었으며 . . .”는 “it does not have the aura that meditation creates”를 번역한 것인데, “aura”를 “번뜩거리는 뭔가”로 옮긴 것은 부적절하다. 말 그대로, “아우라”나 “광배” 정도가 좋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내가 만나 본 니체 애독자들이 니체와 불교의 친연성에 대해 쾌히 수긍했던 일들이 생각난다. 나는 이제 내 느낌을 좀더 확연하게 드러내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 오역 점검은 그런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그러니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기존 번역자들이 니체의 통찰에 접근하지 못하고 속속들이 무너지는 대목들을 집어내겠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부디, “신비주의”라는 말에 편견을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신비주의”라는 말을, 다름아닌 현대의 서양식 교육에 의해 유린된 인간 정신의 위대성, 니체의 위대한 통찰들을 되살리기 위한 시도쯤으로 간주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기 때문이다.

 

서두에 인용한 니체의 글로 되돌아가자. 독일어 초학자들은 인용문의 독일어가 니체 당시의 표기법에 따른 것임을 유념하기 바란다.

Lange schlief Zarathustra, und nicht nur die Morgenröthe gieng über sein Antlitz, sondern auch der Vormittag. Endlich aber that sein Auge sich auf: verwundert sah Zarathustra in den Wald und die Stille, verwundert sah er in sich hinein. Dann erhob er sich schnell, wie ein Seefahrer, der mit Einem Male Land sieht, und jauchzte: denn er sah eine neue Wahrheit.

“진리를 보았다”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했다. 이것을 “진리를 알았다”, “진리를 깨달았다”로 옮기는 것은, 분명하게 말해두지만, 오역이다.

그리고 “sah … in den Wald und die Stille”는 “숲속과 고요 속을 보았다”, 혹은 “숲속과 고요를 보았다”로 옮겨야 한다. 흔한 생각으로는, “숲과, 그 숲의 고요를 보았다”로 읽기 십상이다. 그래서 많은 역자들이 “숲과 그 고요를 보았다”는 식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숲과 고요”와 “숲과 그 고요”는 다르다. 이것이 왜 다른지 모르는 이들에게 설명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냥 원문대로 “숲과 고요”라고 옮기면 된다. 왜 한결같이 약속이나 듯 원문과 다르게 옮기는가!

너무나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 차이를 모르는 이들에겐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은 이것만이 아니다.

Ein Licht gieng mir auf.
하나의 빛이 내게 트였다.

이것은 툭 트여 사방이 환한 상태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때는 정오다! 그저 숲속에 가느다란 한 줄기 빛이 비치는 장면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대목을 “한 줄기 빛이 비쳤다”는 식으로 번역하면 안 된다. 이렇게 단순한 문장에 이렇게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인용문의 “that sein Auge sich auf”를 “그는 눈을 떴다”는 식으로 번역할 수는 없다. 이것은 당연히 “그의 눈이 열렸다”나 “그의 눈이 뜨였다”로 옮겨야 한다. 결국, 하나의 차이가 무수한 차이를 만든다.
 

이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기존번역들이 위 인용문을 어떻게 번역했는가 비교해 보자[1]:

문수 짜라투스트라는 오랫동안 잤다. 아침놀만이 아니라 오전의 햇살도 그의 얼굴 위로 지나갔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눈을 떴다. 짜라투스트라는 의아한 눈으로 숲속과 그 고요를 바라보았고 의아한 눈으로 자기 내면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갑자기 육지를 발견한 선원처럼 벌떡 일어나 환성을 질렀다. 그는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승자 오랫동안 짜라투스트라는 잤고, 아침놀이 그의 얼굴 위로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눈을 떴다. 놀라서 짜라투스트라는 숲속과 숲속의 정적을 바라보았고, 놀라서 그는 자기 자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서 그는, 문득 육지를 본 뱃사람처럼 급히 일어나며 환성을 올렸다. 새로운 진실을 봤기 때문이었다.

동호 차라투스트라는 오랫동안 잤다. 아침놀뿐만 아니라 오전 한나절의 햇살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침내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놀란 듯이 숲과 그 적막을 들여다보았다. 놀란 듯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갑자기 뭍을 발견한 뱃사람이라도 되는 양 서둘러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환호했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희창 차라투스트라는 오랫동안 잤다. 아침놀뿐만 아니라 오전 한나절의 햇살도 그의 얼굴 위로 지나갔다. 마침내 그는 눈을 떴다. 차라투스트라는 놀란 눈길로 숲과 그 고요함을 바라보았고 놀란 눈길로 자기 내면을 살펴보았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뭍을 발견한 선원처럼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던 것이다.

한 가지 더 언급할 것이 있다. “sondern auch der Vormittag”(오전도 지나갔다)의 번역 문제이다. 승자는 부주의로 누락했고, 나머지는 한결같이 “오전의 햇살”, “오전 한나절의 햇살”이 지나갔다고 번역했다. 제발 그리 하지 마시라. 그냥 “오전”이 지나간 것이다. 왜 원문을 원문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군살을 덧붙이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로서는 너무 높은 문제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체를 자신들의 정신적 수준에 맞게 기어코 끌어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장 높은 문제들은, 그 문제들을 해결할 만한 정신성의 높이와 힘을 가진 자로 점지되지 아니한 채 그 문제들에 감히 접근하는 자는 누구든, 무자비하게 되받아친다.

und die höchsten Probleme stossen ohne Gnade Jeden zurück, der ihnen zu nahen wagt, ohne durch Höhe und Macht seiner Geistigkeit zu ihrer Lösung verherbestimmt zu sein. (KSA 5, 148)

특히 니체의 다음 언급을 고려하자면, 역자들은 부디 니체의 한마디 한마디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사람들은 이미지가 무엇이고 비유가 무엇인지 더 이상 개념을 얻지 못하리라. 모든 것이, 가장 가깝고 가장 바르고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주어졌다. 실제로,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회상하건대, 사물들이 스스로 다가와 비유가 되어주기라도 한 듯하다.

man hat keinen Begriff mehr, was Bild, was Gleichniss ist, Alles bietet sich als der nächste, der richtigste, der einfachste Ausdruck. Es scheint wirklich, um an ein Wort Zarathustras zu erinnern, als ob die Dinge selber herankämen und sich zum Gleichnisse anböten. (KSA 6, 340)

“사물들이 스스로 다가와 비유가 되어준다” — 이것이 “오전의 햇살”, “오전 한나절의 햇살” 따위로 옮겨서는 아니되는 이유이다. “얼굴 위로 오전이 지나간다”와 “얼굴 위로 오전의 햇살이 지나간다”는 다르다. 역자들은 “얼굴 위로 오전이 지나간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서 “오전의 햇살”을 덧붙혔겠지만, 그것은 니체에 대한 모독이며, 앞으로 등장할 탁월한 독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부디, 탁월한 독자들의 눈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일은 하지 마시라!

 

이번 오역 점검에서 너무 사소한 문제를 건드렸다는 생각을 가질 분들도 있을 것이다. 흔한 기준으로는 오역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가장 사소해 보이지만 실은 가장 커다란 것이기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차이가 결국에는 허다한 오역을 낳게 되기 때문이다. 눈에 단번에 띄는 오역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한 것들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오쇼 라즈니쉬의 말을 여기에 옮긴다. 니체의 독자라면, 라즈니쉬의 니체해석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다음의 견해에 대해서만큼은 십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오쇼의 차라투스트라»는, 알라딘의 미리보기를 통하여 20여 페이지를 읽어볼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매우 함축적인 문체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한 권의 책에 쓸 것을 그는 단 한 문장으로 썼으며 그렇기에 문장 하나하나가 더욱 의미 심장하다.

만약 주의를 기울여 듣지 않는다면 그대는 니체가 말하는 것을 놓치고 말 것이다. 니체의 이 책은 소설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우파니샤드의 경전들과 거의 비슷하다. 각각의 격언들이 엄청난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나는 그대의 오해를 막기 위하여 숨은 암시들을 낱낱이 파헤치고자 한다. 니체는 세상에서 가장 오해받기 쉬운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너무나 함축척인 문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암시들에 대하여 결코 구구한 설명을 달지 않았다.

그는 매우 상징적인 사람이다. 그가 그토록 상징적이 이유는, 설명할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새로운 통찰력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것을 나누어 주려고 했고 그러기에는 삶이 너무나 짧다고 생각했기에 논문을 쓸 수가 없었다.

그의 저작은 너무나 의미 심장하고 응축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설령 그들이 ‘이해’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이해는 오해에 불과하다. 그들은 도저히 니체를 읽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그들은 모든 것이 설명되기를 원한다.

니체는 어린아이를 위하여 쓰지 않았다. 그는 성숙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썼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매우 드물다. 사람들의 평균적인 정신연령은 열네 살을 넘지 못한다. 이런 정신 연령으로는 니체를 놓치고 말 것이다. 니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니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니체의 추종자들 역시 니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정신연령은 똑같은 수준이다.

— 손민규 옮김, «오쇼의 짜라투스트라»(나무의꿈)에서

  1.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이 서지 표기는 이후의 글에서도 유효하게 쓰일 것이다:

    문수 황문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문예출판사, 1975)
    승자 최승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청하, 1984)
    동호 정동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책세상, 2000)
    희창 장희창,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민음사, 2004)
    []

오역의 장소들(1) — “새로운 진리를 보았다””에 대한 4개의 댓글

  • 일단 위에서 오역과 관련하여 지적하신 사항은 특히 니체에게 있어서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닌 아주 중요한 점을 잘 지적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소설을 번역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우리 말에 없는 수동태를 능동태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위에서 오역이라 지적하신 것들이 별 문제 없이 받아들여집니다(물론 저는 소설의 번역에 있어서도 그러한 것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니체의 경우는 그의 비유적 표현들로 인해 특히나 조심해야 하는데 다른 분들은 제쳐두고라도 니체 전집 시리즈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번역하신 정동호교수님의 번역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다음으로 니체와 불교의 연관성을 지적하셨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 가는군요. 오쇼 역시 니체를 이 부분에서는 오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니체가 불교와 전혀 연관된 사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니체가 불교와 갖는 연관성은 직접적인 연관성이라기 보다는 간접적인 연관성으로 보야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위에서 니체의 신비주의 사상을 언급하셨는데 분명 니체에게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신비주의 사상은 사실 불교와 직접 연관된 데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니체 당시, 아니 그 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독일의 분위기를 주도했던 독일 루터파의 경건주의 사상과 신비주의 사상과 연관이 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불교적 신비주의보다는 오히려 기독교적 신비주의와 연관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것은 니체가 기독교를 수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 독일의 신비주의적 분위기의 영향을 그가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니체의 사상은 철저하게 반기독교적입니다만 사실 그가 사용하는 비유적 표현들은 대개가 성경에서 빌어온 것들임을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니체의 사상을 겉으로 드러나는 유사성으로 인해 불교와 자꾸 연관시키려는 것은 니체에 대한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니체를 좀 더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니체 당시의 독일의 분위기(독일의 경건주의, 신비주의, 낭만주의 등)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오쇼의 차라투스트라]를 사놓고 1년 넘도록 읽지 못하고 있는데 조금은 겁이 나는군요. 혹시 지나치게 불교적 입장에서 니체를 해석해 놓은 것은 아닌지… [차라투스트라] 번역에서 너무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조호영
  • 조호영님 오랜만이어요, 반갑습니다. 저 역시 님의 의견처럼 니체의 사상이 불교와 직접 연관된 데에서 나왔다고 보지 않습니다. 일단 니체는 불교문헌을 거의 접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니체의 사상을 일부러 불교와 연계시킬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제대로 이해하자면, 이제까지의 우리가 배운 학문적 방식으로는 불가능하고 그 이상의 차원, 가령 불교적 명상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기본입장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대부분의 학자, 아마도 99%의 학자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 외로운 입장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오쇼 라즈니쉬와 칼 구스타프 융이 곁에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가졌지요.

    저는 제도권에 들어가 대부분의 학자가 틀렸다는 것을 논증하거나 그들과 논쟁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니체를 상당히 잘 모른다”는 점을 그들의 오역을 들춰내서 입증하고픈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오역 점검을 시작했던 것이지요.

    아울러 님께서 언급하신 독일 루터파의 경건주의와 니체는 높이가 다르다고 봅니다. 그리고 루터나 독일 루터파의 사상은 신비주의라고 할 만한 높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물론 이냐시오나 마이스터 엑카르트 정도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싶지만 개신교의 경건주의는 신비주의 수준으로 인정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니체가 독일 경건주의 내지 신비주의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니체가 «즐거운 학문» 292에서 “나는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하는 엑카르트의 말을 인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니체의 저서들이 엑카르트의 신비주의와 언어적 친밀성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니체는 (카톨릭이든 개신교든) 기독교 전통의 언어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언어로는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가령, 아우구스티누스조차도 사춘기 수준의 감성이라고 보았고 심지어는 예수조차도 미숙하다고 평했지요. 니체가 기독교 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오히려 패러디이거나 익숙한 의미를 깨뜨리는 의도일 경우가 많은 점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도 니체처럼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이냐시오, 엑카르트, 루터, 본회퍼 등은 현재도 제가 좋아하고 있고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저는 그들의 글을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씩이나마 희랍어, 라틴어, 독일어 원문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그 정도로 기독교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다만 우리나라 개신교 수준에 대해서만큼은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저의 종교적 성향과 이해력을 내비치는 것은 제가 니체를 억지로 불교에 끼워맞출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고싱가
  • 설명 감사합니다. 제가 독일의 경건주의나 신비주의를 말씀드렸던 것은 니체가 불교보다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영향을 더 받을 것이라는 점과 그의 글쓰기 스타일이 결코 그 자신만의 독창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저 역시 니체가 루터파적 경건주의나 신비주의와 직접 연관이 있다는고는 믿지 않지만 독일의 경건주의나 신비주의가 말씀하신 엨카르트에게서와 같은 종교적 방향으로 흘러간 반면, 또 정반인 비종교적 방향으로도 흘러가서 독일 낭만주의에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니체의 글은 당시 독일 낭만주의자들의 글과 상당히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결국 니체를 불교적 신비주의의 관점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니체에 대한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글을 읽을 때마다 님의 해박한 지식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더불어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자극도 받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곳이 님과의 좋은 대화의 장소가 됐으면 합니다.

    조호영
  • 예. 조호영 님 말씀대로 니체는 독일 낭만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요. 단적으로, «비극의 탄생»의 주요 사상이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권 아래에서 쓰여졌다는 점을 부인할 학자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니체의 초기/중기/후기의 사상적 분위기를 각각 낭만주의/계몽주의/낭만주의로 규정하기도 하지요. 저는 이 규정에서 초기의 낭만주의에는 동의하는데 후기의 낭만주의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독일 낭만주의가 엑카르트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지적은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저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엑카르트와 독일 낭만주의는 언어는 비슷해도 그들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다고 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후기의 니체와 독일 낭만주의 사이에도 그만한 간격이 있다고 봅니다. «비극의 탄생» 중 [자기비판의 시도] 7절에서 “아니, [니체] 씨, 당신의 책이 낭만주의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낭만주의입니까?” 하는 질문이 나오지요? 저는 이 대목이 상당히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니체의 후기 저서는 그 언어적 형태로 보자면 누구나 낭만주의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실상 니체는 단호하게 낭만주의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다시, 신비주의의 문제인데, 사실 제 사고에서는 엑카르트의 신비주의나 불교의 신비주의나 별다르게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니체를 불교적 신비주의라고 하든 엑카르트적 신비주의라고 하든 저는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어떤 언어적 형태를 취하든 어느 한 정신적 고원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으로 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니체의 사상이 신비주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해도 상관없고, 또 그 판단도 맞다고 봅니다. 다만, 그런 신비주의가 올라간 정신적 높이에 니체 역시 어느 정도 올라갔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님의 의견이나 저의 의견이나 별다른 이견이 성립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많은 발전 있기를 빕니다.

    고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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