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온 국보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북녘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아내가 이 전시회가 열리기까지의 과정을 취재한 MBC 심야스페셜(7월 4일)을 보고 이것을 알았다. 이토록 중요한 전시회 정보를 우연하게나마 접하게 된 것이 천만 다행이다. 아마도 독일월드컵 개막 시기에 전시회가 시작되어 일반인에게 잘 홍보되지 못했는가 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하여 이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은 2006년 6월 13일부터 8월 16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 「북녘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들」을 개최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평양 조선중앙력사박물관(관장 김송현)과의 첫 번째 교류 사업으로 개최된 이번 전시회에는 북한이 자랑하는 중요 문화재 90점이 출품되었으며, 그 중에는 국보 50점과 준국보 11점도 포함되어 있다.

지난 3월 24일 양 박물관장이 개성에서 회동하여 전시회에 합의한 이후, 4월 초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가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을 방문하여 유물선정과 전시에 관한 세부 협의를 거쳤다. 5월 4일 금강산을 통해 유물이 무사히 서울에 도착하였고, 그간 한달여의 전시 준비 작업을 거쳐 이번에 특별전을 개막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구석기와 청동기인「상원 검은모루 출토 구석기」와「신암리 출토 청동칼」,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악기樂器인 「서포항 출토 뼈피리」, 고구려의 중요한 금석문인 「고구려 평양성 명문석」등의 고고 역사품이 있으며, 「발해 치미」,「신계사 향완」,「관음사 관음보살」등의 건축과 불교 공예품들이 엄선되었으며, 「선녀도」(김홍도),「소나무와 매」(신윤복),「옹천의 파도」(정선) 등 회화 명품들도 선보인다. 대부분의 유물은 우리 쪽에서 실물로 공개된 적이 없는 유물이며, 일부는 사진으로도 접할 수 없었던 작품들이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1992년 개성의 고려 태조 왕건릉에서 출토된 「고려 태조상」이 일반에게 공개된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학계 일부에 제한적으로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아직 북한에서도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은 비장의 유물로, 이번 서울 전시에서 전격적으로 공개되는 만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상은 발견 초기에는 ‘청동불상’으로 알려졌다가, 후에 연구 결과 고려 태조 왕건의 동상임이 밝혀졌다.

국립중앙박물관 보도자료(2006년 6월 9일자)에서

아마 유물 선정시 유물의 중요도도 중요도이려니와 남한에서 접하기 힘든 유물들을 우선했던 듯, 고조선, 고구려, 고려, 발해의 유물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조선의 유물이 빈약한 편이다. 어쩌면 북한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의 분포도가 반영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선사시대와 고조선의 수많은 유물들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한반도 출토 유물 중 가장 오래된 악기로 꼽히는 뼈피리와 청동거울이었다. 새의 뼈에 구멍을 파서 만든 조그만 악기를 보며, 음악이 인간에게서 얼마나 오래된 벗이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금빛과 짙은 비취빛이 입혀진 청동거울에서 종교적 신비성을 느끼지 못할 이는 드물 것이다.

선사시대와 고조선 유물들은 고고학도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을 테지만, 아무래도 내게는 고구려, 고려의 유물이 압도적인 관심을 끌었다. 세발 까마귀가 무한대로 너울대는 <금동맞뚫음장식>은 마치 모든 것을 삼키는 화염이 훌훌 타오르는 듯하다. 이 장식이 베갯마구리 장식으로 추정될 만큼 아담한 크기인데도 천마총의 천마도가 웅비하는 느낌을 준다. <‘영강7년’이 새겨진 광배>는 연꽃무늬, 넝쿨무늬, 불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는데, 꼭 서산마애삼존불이나 경주배리삼존불의 어리숙한 표정을 무늬로 새긴 듯하다. 천마도나 금동맞뚫음장식의 넘실대는 선형을 알고 있는 고구려가 이토록 소담하고 정겨운 광배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고구려 불교의 일단을 엿보게 해 준다.

“병술년(평원왕8년, 566) 2월에 한성 하후부의 소형 문달이 여기서부터 서북쪽으로 (쌓아)갔다”는 명문이 새겨진 <평양석 명문석>은 글자의 배열하며 서체가 마치 버들잎 가지처럼 하늘거려 헐거움과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마치 고된 노동 후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에 한가로이 새긴 듯하다.

 

이번 전시회는 압권은 고려 유물들이다.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고려 태조상>은 불교경전에서 언급되고 있는 대인상의 상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불상의 종교성이 아닌, 이제까지 어느 상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딱이 설명하기 힘든 묘한 신비로움이 묻어난다. 실제 인물의 크기로 몸매 역시 그리스 조각의 차가운 이상성이 아니라 일반인의 몸매와 다를 바 없는데도, 그 앉아 있는 자세하며 손모양하며 얼굴이 말할 수 없는 격조와 기품을 갖고 있다. 누구든 이 상 앞에서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려불화의 화려함을 연상시키는 <관음사 관음보살>은 대리석 조각상이다. 화려한 장식과 정교한 솜씨에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는 한편으로, 그 무수하고 복잡한 세상의 견해, 세상의 소리를 마치 자연의 소리처럼 듣는 듯한 얼굴 표정은 아득하기만 하다. 이 아득함은 넉넉하게 늘어진 손가락과 자유로운 유희좌에서도 느껴진다.

금속공예 중에서는 특히 <대자사 범종>이 수작이다. 당좌, 악기, 비천이 종신에 새겨진 것이 마치 막막한 허공 위로 민들레 꽃씨들이 드문드문 날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그 빛깔은 어둡고 신비로와 깊은 심연을 들여다볼 때처럼 그 끝을 알 수 없을 것만 같다. 심연의 빛깔을 띈 허공 위로 훌렁 훌렁 떠다니는 악기, 비천, 연화문, … 어쩐지 이 범종의 종소리는 깊고 아득하고 외롭고 자유롭고 홀가분할 듯하다. <불일사 금동소탑> 세 점은 불일사 석탑 내 사리 장엄구로 발견된 것이다. 삼층석탑, 오층석탑, 구층석탑으로 각기 층수가 다른데, 그중에서 오층석탑의 날렵히 오르는 세는 우리나라의 석탑에서 유사형을 찾기 힘든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쇠북>의 문양과 <은제 사리함>의 문양을 보고 있노라면, 옛 선조들의 피가 내게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친밀하고 아뜩하니 좋기만 하다.

고려도자는 <청자 연꽃무늬 정병>, <청자 국화무늬 병>, <청자 물가풍경무늬 대접> 세 점이 왔다. 정병에는 보일 듯 말 듯 연꽃무늬가 음각되어 있어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국화무늬 병에 새겨진 국화무늬는 어쩌면 그토록 아름다운가. 이 둘은 모두 늘씬하게 쭉 빠진 몸매를 자랑한다. 이름도 아름다운 <청자 물가풍경무늬 대접>에는 물가에서 볼 수 있는 물고기, 오리, 화초가 한들한들 노닐고 있는 풍경이 새개져 있다. 이 모든 무늬들은 과연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답다.

 

조선 유물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부류의 것들이어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많지 않다. 지역적인 사정상 북한에는 조선유물들, 특히 그림이 많지 않은 까닭이다. 북한이 국보로 지정한 그림들 중에서 과연 국보가 될 만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들도 많다. 이인문의 <짙은 녹음 아래에서>, 변상벽의 <개>, 장승업의 <게>, 안중식의 <수선과 모란>, 김진우의 <참대>, 이도영의 <가을밤>, 이상범의 <봄> 등이 모두 국보로 지정되었는데, 아마 예술성보다는 희귀성 때문에 국보로 지정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을 해 본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정신적 재료들이 서양적인 것들에서 동양적인 것들로 바뀐 뒤로 국립중앙박물관 관람을 해본 적이 없어서 사실 회화를 비롯, 우리나라 고미술에 대한 나의 판단은 초보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아내의 조언을 듣고 미술도록들을 수시로 열람하면서 안목을 키우고 있는 중인지라 하나하나의 판단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조심스러움을 단번에 허물어뜨리고 내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작품들이 가끔씩 있다. 이번 전시회 작품 중에서는 이인상의 <나무 아래에서>(松下獨坐圖)가 그랬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말할 수 없는 정신적 쾌감을 느꼈고, 근원적인 친밀감을 느꼈다.

이인상의 집안은 당대의 명문가였지만, 그는 서출로 1735년(영조 11) 진사시에 합격, 북부참봉을 거쳐 음죽현감이 되었으나 관찰사와의 불화로 사직하고 음죽에 은거하며 평생을 그림과 학문연구에 전념했던 선비화가였다. […] 이인상의 그림은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 보기 힘든 청아한 격조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고고한 성품과 생활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 국립중앙박물관, «북녘의 문화유산» 73면

“은거하며 평생을 그림과 학문연구에 전념했던 선비화가” 이인상을 이제 처음 만난 셈이다. 시간을 내어 이인상을 공부해야겠다. 계속해서 이렇게 배울 분들을 만난다는 것이 한없이 기쁘다. 풍속화가로 잘 알려진 신윤복의 <소나무와 매>도 내게는 경이로움이었다. 이러한 그림들을 그릴 수 있었던 분들은 어떤 정신세계에서 노닐었던 것일까? 흠모의 마음으로 그 세계를 배우고 그 세계로 진입하고 싶다.

 

관람료가 1만원이어서 무척 놀라긴 했지만, 평생토록 못볼 지도 모를 것을 보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고맙기만 하다. 허기질 때 관람을 시작하여 오래도록 음미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도록은 구입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모든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요 유물은 상세도도 제공한다. 그리고 조그만 불상들은 오히려 도록에서 더 자세히 살필 수 있다.

평양에서 온 국보들”에 대한 4개의 댓글

  • 아침에 한겨레에서 전시회 소식을 들었는데….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강물
  • 선생님께서 언급해 주신 7월 11일자 한겨레신문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신문들이 국립중앙박물관 보도자료를 요약하여 제시하거나 흥미 위주로 기사를 쓰는 반면에, 거의 유일하게 한겨레신문은 유물에 대한 기자 나름의 표현을 담고 있네요. 노형석 기자의 기사를 몇 편 접해 본 적이 있는데, 감각은 좀 건조한 편이지만 성실이 돋보이는 듯합니다.

    고싱가숲
  • 소개해주신 덕분에 좋은 전시회를 보고 왔습니다. 상설전시관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적이 부끄러웠지만…

    다경
  • 다경 님, 오랜만입니다. 좋은 곳 다녀오셨군요.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안목을 깊게 해 주리라 믿습니다. 저 역시 상설전시관 유물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마찬가지로 부끄럽습니다만, 여유를 갖고 천천히 보렵니다.

    고싱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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