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제11장

그리스 비극은 자매지간같은 이전의 모든 예술장르들과 다르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스 비극은 풀리지 않는 모순 때문에 자살을 하여, 그래서 비극적으로 죽었던 반면, 다른 예술장르들은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평온한 죽음의 고령을 맞이하여 핏기를 잃었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후손을 남기고 몸서리침 없이 삶과 이별하는 것이 행복한 자연상태에 어울리는 것이라면, 비극 이전의 예술장르들의 종말은 그러한 행복한 자연 상태였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들은 서서히 하직하며, 생기를 잃어가는 그들의 시선 앞에서는 더욱 아름다운 후손이 이미 나타나, 안간힘을 쓰며 의기 있는 몸짓으로 머리를 쳐들고 있다. 이와 반대로, 그리스 비극의 죽음과 함께 도처에서 뼈저리게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공허가 생겨났다; 언젠가 티베리우스 시대에 그리스 선원들이 외딴 섬에서 “위대한 판이 죽었다”는 격렬한 외침을 들었을 때처럼, 처절한 비탄의 소리로 울린다: “비극이 죽었다! 시 자체도 비극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꺼지거라, 꺼지거라 너희 허약하고 앙상한 아류들아! 저승으로 꺼지거라, 너희 그곳에서 선대 스승들의 빵부스러기로 배를 채울 수 있으리니!”

그러나 그런데도 이제 비극을 자신들의 선구자요 스승으로 흠모하는 하나의 새로운 예술장르가 만개하였을 때에, 그 장르가 그 어머니의 특성들을 가짐은 당연하겠으나 놀랍게도 그 어머니가 기나긴 생사투쟁에서 보여주었던 특징까지 가지고 있음이 인지된다. 비극의 이 생사투쟁을 벌인 것은 에우리피데스였다; 저 뒤따라온 예술장르는 아티카 신희극[1]으로 알려져 있다. 극도로 힘겹고 폭력적인 서거를 기념하여, 비극은 신희극에서 변질된 형태로 삶을 이어갔다.

이러한 연관에서, 신희극의 시인들이 에우리피데스에게서 느꼈던 격정적인 애착이 이해된다: 아무튼 죽은 자도 여전히 지성이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저승의 그를 방문할 수 있기 위해서 당장 목매달기를 원했던 필레몬의 소망은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아니, 에우리피데스가 메난드로스, 필레몬과 공유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뒤의 두 사람에게 그토록 자극적이고 선구적으로 영향을 끼쳤던 것이 무엇인가를, 번거롭게 하지 않고 아주 짧게 송두리째 말하자면, 에우리피데스가 관객을 무대 위로 올렸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에우리피데스 이전의 프로메테우스적인 비극작가들이 어떤 소재를 가지고 그들의 영웅들을 빚어냈으며, 현실에 충실한 가면들을 무대 위로 올리려는 의도가 그들과는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가’를 인식했던 자는, 또한 에우리피데스의 전적인 이탈 경향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알 것이다. 일상생활의 인간은 그를 통하여 관객의 공간에서 나와 장면으로 육박하였으며, 이전에는 굵고 대범한 윤곽들만을 표현했던 거울은 이제 자연의 망가진 선들까지 착실하게 재현하는 깐깐한 충실을 보여주었다. 옛 예술의 전형적인 헬라스인 오뒷세우스는, 이제 새로운 시문학의 손길에 의해, 이제부터는 충직하면서도 노회한 사노私奴로서 극적 흥미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인물 그라이쿨루스[2]로 전락하였다. 에우리피데스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개구리들”에서[3] 자신의 민간요법을 써서 비극 예술을 유난스러운 비만으로부터 구해 주었노라며 자신의 공로로 꼽는 바는, 무엇보다도 그의 비극 영웅들에서 감지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이제 관객은 에우리피데스의 무대 위에서 자신의 분신을 보고 들었으며, 그 분신이 매우 훌륭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기뻐하였다. 그러나 이 기쁨으로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에우리피데스로부터 자신들이 말하는 법을 배웠으며, 에우리피데스는 이를 두고 아이스퀼로스와의 경연에서 스스로를 자랑하였다: 그를 통하여 이제 민중은 기교적이고도 아주 교활한 소피스트 논법으로 관찰하고 추궁하고 결론을 끌어내는 법을 배웠다. 그는 공공 언어의 이러한 돌변을 통하여 신희극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그리고 어떤 경구로 일상성을 옹호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제부터는 더 이상 비결이 되지 않는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비극에서는 반신半神이, 희극에서는 취한 사튀로스나 반인半人이 언어의 성격을 규정했지만, 이제는 에우리피데스가 자신의 모든 정치적 희망을 걸었던 시민적 평균이 말씀이 되었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파네스의 에우리피데스는 자신이 각 개인이 판단할 수 있는 일반적이고 익숙하고 일상적인 생활과 충동을 제시하였다며 자신의 성가를 날렸다. 이제 전체 대중이 철학을 하여 전대미문의 명민함으로 토지와 재산을 관리하고 관련 소송을 걸게 된다면, 이는 자신의 공로이자 자신이 민중에게 접목시킨 지혜의 성과라고 하였다.

이제 신희극은 그런 식으로 준비되고 개명된 대중에게 의탁될 필요가 있었으며, 에우리피데스는 그 신희극의 가무단장이 되었다; 다만 이번에는 관중[으로 구성된] 가무단을 연습시켜야 했다. 이 가무단이 에우리피데스의 음계로 노래를 연습해야만 했을 때, 곧장 저 장기놀이 유의 연극 신희극이 영리함과 교활함의 개선가를 계속 부르면서 부각되었다. 아니, 에우리피데스—가무단장—가 부단히 칭송받았다: 그렇다, 사람들은 비극 시인들이 비극과 마찬가지로 죽었음을 모르기라도 했더라면, 그로부터 좀더 배우려고 자결이라도 하였으리라. 비극이 죽음으로써 헬라스인은 불멸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였다, 이상적인 과거는 물론 이상적인 미래에 대한 신앙까지도. 유명한 묘비명의 말, “백발이 되면 경박하고 변덕스럽다”[4]는 백발의 헬라스권에도 타당하다. 순간, 재치, 경박, 괴팍함이 최고의 신성이 된다; 제5의 신분, 노예의 신분이, 적어도 그 성향을 보건대, 이제 통치좌에 다다른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든 “그리스적 명랑함”에 관하여 이야기해도 된다면, 그것은 어떤 무거운 것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어떤 위대한 것을 위해 노력하지도 아니하고, 현재 이외에는 그 어떤 과거도 그 어떤 미래도 더 높이 평가할 줄 모르는 노예의 명랑함이다. 이 “그리스적 명랑함”의 가상을 두고, 그리스도교의 첫 4세기의 신중하고도 무서운 본성들은 격분하였다: 그 본성들이 보기에, 그 명랑함이라는 것은 심각함과 공포를 피하려는 여성적인 도피였으며, 편안한 향락에 비겁하게 자기 만족하는 것은 멸시받아야 할 것, 또한 본연의 반그리스도교적 성향이었다. 수세기를 거쳐 살아남았던 그리스 고대의 직관에 빛바랜 명랑성의 붉은색이 거의 떼어낼 수없을 수만큼 엉겨붙어 버린 것—마치 비극 탄생과 그 비의의 6세기가 없었다는 듯, 피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가 없었다는 듯, 그렇다, 위대한 시대의 예술작품들, 곧 노예적이고 늙어버린 그 현존 욕망과 명랑성의 토대로부터는 어느 하나도 전혀 해명될 수도 없거니와 그것들의 실존 근거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리키는 예술작품들이 현존한 적이 없었다는 듯—은, 그 [그리스도교] 본성들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내, 에우리피데스가 관객을 무대 위로 올림으로써 드라마를 판단할 자격을 관객에게 진정 처음으로 부여했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면, 그 이전 비극 예술이 부적절한 관계에서 헤어나 관객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짐작이 든다: 그러면 사람들은, 예술 작품과 관객 간의 적절한 관계를 의중에 둔 에우리피데스의 철저한 경향을 두고 소포클레스를 능가하는 진보로 칭송하는 시도를 하고자 한다. 이럴 즈음, 그러나 “관중”이란 그저 한 마디 말에 불과하며, 결코 동일한 수준의 일정한 크기도 아니다. 숫자상으로만 강한 힘에 순응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어이해서 예술가에게 생기는 것일까? 재능으로보나 안목으로보나 이 관객들 개개인보다 탁월하다고 느낀다면, 어찌 예술가가 상대적으로 가장 높은 재능을 가진 개개인 관객을 주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보다 열등한 온갖 깜냥들의 이구동성을 주시해야 한단 말인가? 진실로 어느 그리스 예술가도 평생동안 저 에우리피데스보다 더한 후안무치와 자기만족을 품고 관중을 다루지 못했다: 대중 스스로 그의 발에 엎드렸을 때조차도, 그는 제 자신의 경향—이 경향이 있었기에 대중을 제압했던 것인데—을 탁월하게 거스르고서 공공연하게 [대중의] 얼굴을 갈겼다. 이 천재가 관중이라는 신귀들의 집합Pandämonium을 조금이나마 경외하기라도 했다면, 자기 이력의 정점에 이르기 오래 전에 실패의 곤장을 맞고 파멸하였으리라. 이점을 감안하면, ‘에우리피데스는 관객을 무대 위로 올려 관객이 판단 능력을 갖게 하였다’는 우리의 표현은 그저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그의 경향을 한층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된다. 거꾸로 말해,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가 그들 생존시에, 아니 죽은 다음에도 얼마나 민중의 사랑을 독차지했던가, 그러므로 이 에우리피데스 선구자들에게서는 예술 작품과 관중 간의 부적절한 관계를 말할 건덕지가 얼마나 없는가는 모든 면에서 잘 알려져 있다. 창작을 향해 부단히 육박하는 유능한 그 예술가[에우리피데스]를, ‘가장 위대한 시인들의 명성이라는 태양’과 ‘민중의 사랑이라는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이 빛나던 길에서 몹시 폭력적으로 몰아낸 것은 무엇일까? 그는 관객에게 무슨 특별한 배려를 하느라 관객과 마주한 것일까? 그는 관중을 지나치게 존중했는데 어떻게 그의 관중을 경멸할 수 있었을까?

에우리피데스는 자신을 대중보다는 뛰어나지만, 두 사람의 관객보다는 뛰어나지 못한 시인으로 느꼈다—이것이 방금 서술한 수수께끼의 해답이다: 그는 대중을 무대 위로 올렸으나, 저 두 관객을 자신의 모든 예술을 유일하게 판단할 수 있는 판관이자 스승으로 숭배하였다: 그들의 지침과 훈계를 따라서, 그는 ‘여지껏 축제 공연때마다 눈에 띄지 않는 가무단으로 삼아 관객석에다 마련해 두었던 감정들∙열정들∙경험들의 세계 전반’을 자신의 영웅들의 영혼에 이입하였으며, 그 새로운 성격들을 위한 새로운 말과 새로운 음을 탐색할 때 그는 그들[두 관객]의 요구에 굴복하였으며, 자신이 관중의 사법司法에 의하여 거듭거듭 재판받는 것을 볼 때마다 오직 두 관객의 음성에서만 자신의 작품에 대한 타당한 판결문을, 승리를 기약하는 격려의 소리를 들었다.

이 두 관객 중 한 사람은—에우리피데스 자신, 시인이 아니라 사상가로서의 에우리피데스이다. 그를 두고, 레싱과 비슷하게 비평적인 재능은 비상히 넘쳐났으나 창작하지는 못하고 창작 예술가적인 부수 충동을 부단히 품고 있었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이 재능을 발휘하여, 자신의 비평적 사상의 밝기와 기민함을 총동원하여, 에우리피데스는 극장에 앉아서 희미해져버린 초상화와도 같은 위대한 선구자들의 걸작에서 필치 하나하나, 선 하나하나 재인식하려고 각고했다. 그리고 이제 거기에서, 그는 한층 깊은 아이스퀼로스 비극의 신비에 정통한 자가 예감했을 법한 그 무엇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는 하나하나의 필치와 하나하나의 선에서 뭔가 측정 불가능한 것, 모종의 미혹적인 규정성, 수수께끼같은 심층, 그렇다, 배경의 무한성을 알아보았다. 가장 명확한 윤곽은 막막함, 막연함을 암시하는 듯한 혜성의 꼬리 바로 그것을 언제나 가지고 있었다. 이같은 실오리 빛이 드라마의 건물 위로, 더 나아가 가무단의 의미 위로 비치고 있었다. 그러니 그로서는 윤리적인 문제의 해결이란 얼마나 의심스러웠겠는가! 신화를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의뭉스러웠겠는가! 행과 불행의 배분이 얼마나 불균등했겠는가! 이전 비극의 언어조차 그로서는 수많은 면이 불쾌했으며, 적어도 수수께끼였다; 특히 그는 단순한 관계 대신에 지나친 호화스러움을 발견하였으며, 성격들의 간명함 대신에 지나친 수사법과 괴이한 면들을 발견하였다. 그렇게 극장에 앉아 가만 있질 못하고 파헤치면서, 그는, 그 관객은 자신의 위대한 선구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노라 고백하였다. 그러나 지성이 모든 향유와 창작의 본연의 뿌리로 여겨질 때면, 그는 자신처럼 생각하는 자, 동시에 저 불가해함을 고백하는 자는 과연 없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수많은 자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최고의 자들이 저마다 그를 향해 그저 불신의 웃음만을 지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위대한 대가들에 대한 그의 생각과 이의가 왜 정당한가를 설명해 주지 못했다. 그리고 이 괴로운 상태에서 그는 다른 관객, 곧 비극을 파악하지도 못했으며 그래서 무시했던 관객을 찾아냈다. 이 관객과 연합하여, 그는 외로움을 떨쳐내고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의 예술 작품들에 대항하는 투쟁을 과감하게 시작해도 되었다—반박 논문을 쓴 것이 아니라, 비극에 관한 자신의 관념을 전승된 비극에 들이대는 극 시인으로서. —

  1. 에우리피데스의 영향하에 “신희극”을 발전시켰던 메난드로스(기원전 342년~291년)를 신희극의 시작으로 본다. 신희극은 “고희극”, “중간기희극”과는 달리 디오뉘소스 제의와는 거의 완전히 무관하며 아테네와의 사회적, 종교적 결속도 거의 없다. []
  2. 그라이쿠스Graecus는 ‘그리스인’, 그라이쿨루스Graeculus는 경멸적 의미로 ‘왜소한 그리스인’을 뜻한다. []
  3.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개구리들> 939행 이하 참조. []
  4. 괴테의 <이행시풍의 묘비명>에 나오는 구절 []

«비극의 탄생» 제11장”에 대한 3개의 댓글

  •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의 번역문 인용 관련해서 메일 보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최성웅
  • 번역에서 누락이 있는 거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in ihren Stimmen allein hörte er die gültigen Richtersprüche seines Schaffens ebenso wie die siegverheißende Ermutigung, wenn er von der Justiz des Publikums sich wieder einmal verurteilt sah.

    이 부분을
    자신이 관중의 사법司法에 의하여 거듭거듭 재판받는 것을 볼 때마다 오직 두 관객의 음성에서만 타당한 판결문을 들었다.
    라고 번역하셨는데.

    자신이 관중의 사법司法에 의하여 거듭거듭 재판받는 것을 볼 때마다 오직 두 관객의 음성에서만 [자기 작품의] 타당한 판결문을, [약속된 승리를 격려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좋은 주말 보내세요!!

    최성웅
  • 정말, “seines Schaffens ebenso wie die siegverheißende Ermutigung” 부분을 빠트리고 번역했네요. 혹 제가 참조한 텍스트가 달랐었나 확인해 보니 그건 아니고 제가 이 대목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번역하다 보면, 이렇게 어느 한 구절을 빠트리고 번역하는 일이 간혹 발생하더군요. 앞뒤 텍스트에 대해 고심하다가 깜박 놓치는 경우이지요.

    이 블로그에 올린 번역문은 초벌번역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많습니다만, 그런데도 이렇듯 점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문장이 너무 직역투여서 가독성이 떨어져 언젠가는 윤문을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제 관심이 “비극의 탄생”에서 멀어진 터라 제 인생에 그럴 세월이 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자신이 관중의 사법에 의하여 거듭거듭 재판받는 것을 볼 때마다 오직 두 관객의 음성에서만 자신의 작품에 대한 타당한 판결문을, 승리를 기약하는 격려의 소리를 들었다.” 정도로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선생님의 지적을 반영하여 본문을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지적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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