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는 법 — 시인의 고향, 고창에서

무엇이 그리웠던지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바다물결처럼, 봄날은 강인하였던 겨울빛 산하를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이며 점령하고 있다. 자연은 언제나 이렇게 변천하였건만 젊은날의 마음은 그 변천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하였던 것일까. 그러나 이제는 유독 아름다운 봄날, 이 봄날이 과연 몇 번 지면 내 생애도 지는 것일까.

이제 봄날의 꽃이 진다한들 그 홀로 지지는 않는다. 봄날을 찬란하게 음미하는 나의 시선, 나의 숨결, 나의 한 시절을 따고 진다. 언제나 계절이 마음을 앞서 갔으되, 이제는 계절과 마음이 동반하는 듯. 인생의 반 고비를 넘어섰다는 안도감이 든다. 반 고비를 넘기까지 헐떡이며 올라왔건만, 정작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이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 이 고비를 넘어서 이제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가는 곳이 어디라도 좋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가리라. 그동안 추구하였던 뭔가를 모두 버리면 그렇게 갈 수 있을까.

 

풍경은 내면적 인간에 의하여 발견되었다는 어느 문학가의 통찰처럼, 현대인은 스스로 좌절의 터널을 파며 깊이를 획득하였다가, 그 터널을 빠져나오며 풍경을 발견하고서 구원을 얻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가진 깊이의 작위성과 인간이 얻은 구원의 작위성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러나 봄날의 풍경은 저의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움’이라는 이름도 없고 ‘서러움’이라는 이름도 없다. ‘가벼움’도 없고 ‘깊이’도 없다. 오직 풍경을 상실하였던 인간만이 그 풍경을 다시 발견하며 경탄과 애환의 수사를 덧붙힐 뿐이다:

하여간 이 한나도 서러울것이 없는것들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微物하나도 없는곳에서, 우리는 서뿔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서름같은 걸 가르치치말일이다. 저것들을 祝福하는 때까치의 어느것, 비비새의 어느것, 벌 나비의 어느것, 또는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 것에 대체 우리가 행용 나즉히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이어 있단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完全歸巢가 끝난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山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때가 되거던,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곳의 별을 가르쳐 뵈일일이요, 제일 오래인 鍾소리를 들릴일이다.

— 서정주, “上里果園” 일부

내면적 인간이었던 나는 정말 그토록 작위적이었던 것인가. 풍경에다 부여한 경탄과 애환의 수사는 곧 내게만 어울렸던 수사였을 뿐이더라. 수사를 덧붙히며 의미를 발견하였다고 오산할 지도 모르겠으나, 아서라, 그것은 의미의 발견이 아니라 의미의 주입이더라. 인생의 반 고비를 넘어서며 풍경을 재발견한 이들은 부디 자신의 깊이를 자랑하지 마시라. 그 깊이는 그대만의 깊이일 뿐, 그 깊이는 그대만의 좌절일 뿐, 늘 풍경과 함께 호흡하였던 존재들에는 미치지 못하더라.

 

고창의 첫날 답사지 동호해수욕장. 아무런 이름도 걸치지 않고 지상을 샅샅이 핥으며 사위어가는 서해의 붉은 낙조 앞에서, 굽히는 법 없이 하루의 운명을 완성하고 사라지는 생애를 본다. 붉게 검게 넘실거리는 파도 너머로 기다랗게 누워 있는 섬, 위도. 인간은 불안하게 보이는 저 외딴 곳으로까지 이전하여 삶의 뿌리를 내리고 누대의 생애를 이어가고 있다. 무엇이 저곳으로 인도한 것일까. 산다는 것 자체가 때로는 기막히게도 꿈결과도 같아, 인간의 생애가 저 붉은 파도 위에 섬처럼 누워서 산곡山谷의 조형을 흘리고 있는 듯하다. 낙조의 빛을 토하며 거뭇하게 누운 섬의 자태는, 다채로운 색채와 질감을 거두고 역광의 피사체처럼 간명한 모노톤이다. 하루 중 가장 압축적이고 간결한 색채 앞에서, 다채로운 풍경을 거닐기만 했던 나그네는 이렇게 하여 어설프기만 하다.

인간이 지성으로 쌓아올린 온갖 다채로운 작위성을 거두면, 바다 위의 섬과 바다 너머의 해가 자아내는 간결한 색채 앞에서 무엇을 보며 무엇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눈앞에서 불안스레 배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뺨을 불어치는 바람의 육체성을 온전히 받아안을 수 있으려나. 그 바람의 소리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들을 수 있으려나. 하여 저 타오르는 빛깔, 저 거침없이 내닫는 바람을 축복할 수 있으려나.

 

도솔암 마애불
안개 속에서 스르릉 떠오르는 순간처럼 세계를 상대하고 있는 도솔암의 마애불

어두운 바닷가에서 바람이 내닫는 소리를 고맙게 받다. 그리고서 선운산 자락의 숙소로 들다. 새벽, 도솔암으로 오르다. 일행과 함께 둘러보는 곳은 고창군 전역에 두루 걸쳐 있는 유적지들이지만, 어느 유적지에서나 질마재의 신화가 어른거린다. 시인 서정주의 시들은 우리가 딱히 ‘깊이’라고 부를 만한 심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를테면, 김승옥의 현대적 감수성이나 최인훈의 논리적 근대성이 서정주의 시에는 없다. «화사집»의 관능성, «귀촉도»의 표표함, «신라초»의 불교적 은유와 영원성, «질마재 신화»의 수천년래 생활력 등등, 시인의 시들은 현대적 지성을 갖추고 젊은날의 정열이 파고든 깊이를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도솔암의 마애불처럼.

도솔암의 마애불은 얼핏 보면 시골 머슴아이처럼 뚱한 표정이다. 긴장과 비의성을 띨 수밖에 없는 혁명의 과정 속에 이 마애불이 포섭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비의성과는 사뭇 거리가 먼 표정으로, 계곡 저편의 풍경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눈을 지긋이 감고 있다.

단호함도 없고 위엄도 없는 표정이건만, 혁명을 꿈꾸는 이들을 어떻게 사로잡은 것일까.

천진한 미소를 띠고 있는 서산마애불이 미소를 감추고 선정에 들면 이런 표정이 아닐까. 선각線刻을 겨우 벗어나 가까스로 부조의 조형에 도달하고 있는 하단부의 오른손은, 어머니의 손길처럼 은연하면서도 두툼하다. 손길이 한없이 자비롭게 느껴진다. 섬세하지도 여리지도 않은 손길이건만, 어쩌면 저리도 마음을 곱게 위로할 수 있단 말인가. 저 손은 저 얼굴을 닮았다. 혁명의 비기를 얻으려던 이들은 자신들의 비장함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얼굴과 손길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도솔암의 마애불은 안개 속에서 스르릉 떠오르는 순간처럼 세계를 상대하고 있다. 신비의 마당에서 흐릿하면서도 두툼하게 드러나는 그의 조형 앞에서 혁명의 비의성조차 어쩐지 왜소하게 뵈는데, 하물며 일개 답사객의 일생이랴. 좌절과 구원의 드라마를 전혀 담고 있지 않는 듯한 마애불 앞에서, 부끄럽구나, 나의 좌절과 나의 구원을 황급히 감춘다.

 

선운사 앞산
봄날 선운사의 아침. 아침 햇살은 어린아이 볼을 만지듯 앞산에 어리고

선운사에 들 무렵, 아침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시절은 또 나무들이 연두빛 절정에 든 무렵이다. 황홀한 연두빛과 과분한 빛살 아래에서 숲은 깨어나고 고요한 계곡물은 그 깨어나는 찰나를 찬란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봄날의 낯바닥에 나는 얼마만큼 사로잡힐 수 있을 것인가. 이 순간에 내 생애를 얼마나 맡길 수 있을 것인가.

봄날 피었다가 지는 동백꽃, 한 철 피었다가 지는 꽃에 한 해의 가락, 한 해의 숨결을 내어맡길 줄 알았던 “막걸리집 여자”는, 정녕 현대인의 허위적인 좌절을 모른 채 명멸자의 운명을 감내하고 살아갔을 터:

禪雲寺 고랑으로
禪雲寺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 서정주, “禪雲寺 洞口” 전문

한 사람의 얼굴, 음성, 혹은 손길로부터, 그에 스며든 풍경을 읽을 수 있다면, 오, 나는 얼마나 아름다울 것이냐. 그리고 붉은 꽃들의 피고 짐을 본 오늘의 나는, 장차 어떤 얼굴, 어떤 음성을 가질 것이냐.

활달하게 탁 트인 선운사 뜨락은 방문자의 은둔을 허락하지 않는다. 내면으로의 침잠을 허락하지 않고 동백꽃, 철쭉, 영산홍과 교유하라고 한다. 대웅보전 뒤란 언저리에서 동백숲을 등 뒤로 하고 선운사 앞산을 본다. 아침 햇살, 어린아이 볼을 어루만지듯 산에 어린다. 이 세상에 여린 살로 피어나 여린 살로 지는 붉은 꽃들의 한 철 운명에 한 해의 삶을 내어맡길 줄 알았던 “막걸리집 여자”는 이제 어디로 갔는가. 저 앞산의 숨결은 막걸리집 여자의 영혼을 부르는 것이런가.

선운사를 빠져나와 걷는 들머리의 계곡물은 조용히 흐르고 있다. 이 선운사 고랑의 물은 흘러 흘러 돌개울을 이루고 질마재 마을에 이르러 서해와 합수한다. 시인 서정주가 태어나서 아홉 살 때까지 살았던 질마재 마을은 서해와 합수하기 직전의 개울물을 사이에 두고 나뉘는데, 개울 이편에는 서정주의 생가가 있고 개울 저편에는 그의 외할머니댁이 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이 질마재의 풍천은 때로 해일이 일 때면 바닷물이 흘러넘쳐 외할머니댁 싸리담장을 새어들어와 마당을 홍건히 적시기도 하였다. 평소라면 바지자락을 걷어부치고 건널 수 있는 개울이지만, 장마가 지거나 해일이 일 때면 건널 수 없는 풍천이었던 것이다.

선운사 계곡
선운사 들머리의 계곡물과 수목들이 아침 햇살을 찬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선운사 고랑물이 빛나고 있다. 이 물은 시인의 고향을 관통하여 흐르는 것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기존에 창작된 모든 시적인 것들을 진부한 것으로 만들 정도로 찬란하다. 눈부신 아침 빛살을 받아 빛나는 찬란한 낯바닥에 일행 중 몇 분은 꽃을 띄운다. 흑장미처럼 마력적으로 붉은 동백꽃은 그렇게 하여 초록빛 물결 위에 떠서 느린 속도로 흐른다. 저 무의지의 꽃이 질마재를 지나 서해까지 흐를 것인가. 그러나 아니 흐른들 또 어떠하리오. 이 빛나는 한 순간에 생을 내어맡길 줄 알면 되는 것을!

 

어느해 봄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親戚의 부인을 모시고 城안 冬柏꽃나무그늘에 와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部分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듯이 앉어계시고, 나는 풀밭위에 홍근한 落花가 안씨러워 줏어모아서는 부인의 펼쳐든 치마폭에 갖다놓았습니다.
쉬임없이 그짓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그뒤 나는 年年히 抒情詩를 썼읍니다만 그것은 모두가 그때 그 꽃들을 주서다가 디리던— 그 마음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 “나의 詩” 일부

모양성으로 들어간다. 모양성 둘레는 온통 붉은 철쭉꽃 천지이다. 인간이 구축한 강인한 성을 봄철의 꽃이 압도하고 있다.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역사적 사실은 망각된다. “나의 詩”는 이 성 안에서 있었던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시이다. 시에서도 역시 성이라는 역사적 무게가 낙화의 서정을 위한 소품으로만 등장한다. 꽃을 보고 감탄하고, 꽃을 보고 발길을 돌리고, 꽃을 보고 일상행위를 뒤집을 수 있는 자는 모두 시심(詩心)을 가지고 있을 터. 그 시심 때분에 더러는 일상을 작파하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을 작파하기도 하니, 인간 심리의 그 복잡하고 오묘함이란!

 

마침내 질마재. 미당시문학관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시인의 생가가 있다.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이곳이 «질마재 신화»의 공간, 시인의 원형적 공간이다. “더운 오줌을 대가리에다 몽땅 깔기어” 놓겠다는 이 생원네 욕쟁이 마누라로부터, 외할머니댁 뒤안 “먹오딧빛 툇마루”, 무당네 머슴 아이, 석녀 한물댁, 떡장수 알뫼댁 등등, 촌락에서 만날 수 있는 통상적인 인물과 소품이 이 공간에 등장한다. «질마재 신화»의 시들을 읽다보면, 긴장감이라든가 격정이라든가 깊이라든가 하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시집을 펼치는 순간 혼곤하면서도 맥이 탁 풀리기 마련인데, 어찌 보면 등장 인물들이 질마재 마을에 안착한 이내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허름한 짚새기처럼 무게가 없는 듯도 하다. 또 어찌 보면 형체의 윤곽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고 아스라히 보이는 한 송이 꽃같기도 하다.

꽃 옆에 가까이 가는 아이들이 있으면, 할머니들은
「얘야 눈 아피 날라. 가까이 가지마라.」
고 늘 타일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피어나는 山과 들의 꽃들을 이쁘다고 꺾기는커녕, 그 옆에 가까이는 서지도 않고, 그저 다만 먼 발치서 두고 아스라히 아스라히만 이뻐해 왔습니다.

— “꽃” 일부

시인은 질마재 마을 사람들을 보기를, 꼭 질마재 마을 사람들이 꽃을 보듯 한다. 시인의 원형적 공간에 들어온 질마재 마을 사람들을 “아스라히 아스라히만” 바라보노라면, 꼭 주술에 걸린 듯 홀린다. 무엇보다도 시간의 관념이 달라지고, 우리 자신이 현대의 속도와 정보에 너절해지고 허전해진 몸뚱어리임을 확인하게 된다.

沈香을 만들려는 이들은, 山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 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 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거 넣어 둡니다. 沈香은, 물론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이 잠근 참나무 토막들을 다시 건져 말려서 빠개어 쓰는 겁니다만, 아무리 짧아도 2~3百年은 水底에 가라앉아 있은 것이라야 香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천년쯤씩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굽시요.
그러니, 질마재 사람들이 沈香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陸水와 潮流가 合水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自己들이나 自己들 아들딸이나 손자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未來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後代들을 위해섭니다.
그래서 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 쓰는 사람 사이의 數百 數千年은 이 沈香 내음새 꼬옥 그대로 바짝 가까이 그리운 것일 뿐,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습니다.

— “沈香” 전문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멋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읍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날마닥 칠해져 온 것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 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는 묻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딲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일부

조금만 어긋나도 천리 만리 멀어지는 것이 고향길이건만, 시인은 나이 환갑에 이르러 이곳 유년의 공간으로 완벽하게 되돌아왔다. 그러나 여러 경로를 거친 뒤 이곳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십대 초반에 출간된 첫 시집 «화사집»에서부터 이미 시인은 현대적 지성이 일궈낸 성과와는 거리가 먼 길로 접어들었다. “병든 수캐마냥 헐덕어리며”, “가쁜 숨결”로, “즘생스런 우슴”과 함께, 건강한 육체성으로 당대의 비극을 돌파하려고 하였다. 비극적인 시대를 십분의 몸부림으로 돌파하려는 가열찬 움직임은, “毘盧峰上의 强姦事件들”이라는 시어에 압축되어 있다. 가장 신성한 땅에 가장 거대하게 꿈틀대는 육체성이 결합한 것이다. 이것은 다름아닌 목숨의 절규로서의 관능이다. 이러한 관능성이 보들레르의 현대성 비판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서구적 현대가 도입될 당시 시인은 이미 서구적 현대의 끝을 보았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절규로서의 관능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자살의 유혹을 받으면서,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면서 비극의 시대를 지난다. 마침내 삶의 통로로 발견한 것은 «삼국유사». 그 불교적 은유의 세계와 호젓한 영원성에 깊이 침잠하였고, 그 결과의 일부가 바로 «新羅抄»이다.

살[肉體]의 일로써 살의 일로써 미친 사내에게는
살 닿는 것 중 그중 빛나는 黃金 팔찌를 그 가슴 위에,
그래도 그 어지러운 불이 다 스러지지 않거든
다스리는 노래는 바다 넘어서 하늘 끝까지.

하지만 사랑이거든
그것이 참말로 사랑이거든
서라벌 千年의 知慧가 가꾼 國法보다도 國法의 불보다도
늘 항상 더 타고 있거라.

— “善德女王의 말씀” 일부
 

피가 잉잉거리던 病은 이제 다 낳았습니다.

— “娑蘇 두번째의 편지 斷片” 일부

이러한 경로를 포함한 여러 경로를 거쳐 노년이 되어 돌아온 곳이 지금 거닐고 있는 질마재 마을이다. 이 신화의 마을은 아직도 개발과 거리가 있어 허름한 담장들, 허름한 지붕들이다. 미당시문학관 옥상에 오르니 질마재 마을이 한눈에 든다. 북쪽은 줄포만, 서쪽은 서해바다, 동쪽은 선운사가 자리한 선운산 방향, 남쪽은 소요산이다. 저 소요산을 넘어 바다로 나아갈 때 거치는 곳이 질마재라고 한다지. 선운리의 허름한 길들을 걸으며 시인의 생가로 가보았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그 옆으로 흐르는 개울물도 보았으면 좋겠는데, 그냥 떠난단다. 무형적인 자산으로 승화된 신화의 마을이니, 그냥 먼 발치서만 바라보고 떠나는 것도 좋은 일일 테지.

 

여염집 마당
뒷뜰에 고인돌을 두고 있는 민가 앞마당. 토담으로 지은 헛간 앞에 하얀 수건 두 장, 그리고 조경의 손을 타지 않은 장다리꽃.

질마재 마을을 병풍처럼 비호하고 있는 해발 440 미터의 소요산을 바라보노라니, 마을 사람들이 자운영 꽃밭을 옆에 두고 전답에서 일을 하고 있다. 도시인의 시선에서는 농부의 일조차 이미 까마득한 옛일이 되고 말았는지, 일을 하는 농부들이 신화에서 걸어나오는 인물들 같다. 나는 그만큼 세련된 것인가, 아니면 뭔가를 상실한 것인가.

그랬었지, 고창 전역을 답사하는 동안 집집마다 꽃이 있었지. 농촌의 실상을 은폐한 채 봄날의 꽃타령만 한다고 흉보아도 어쩔 수 없다만, 마당에 핀 꽃을 바라보는 아침 한 순간, 그 순간의 집주인을 상상해 봄은 겸허한 일에 속하리라. 남루한 생활 공간 속에 핀 꽃, 조경의 손을 타지 않은 꽃, 유년의 마당에 꿈결처럼 피어 있던 꽃. 이 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다. 무엇을 보며 살고 있는지, 무엇을 먹으며 살고 있는지, 여기 이 마당의 꽃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지.

 

한달 뒤 괴산의 화양구곡을 답사하다. 우암 송시열의 고향이고 그의 역사 속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많은 이들이 그의 무게에 짓눌려버렸다. 그러나 한번쯤 그런 비중은 무시하며 살아도 좋다. 화양구곡 곳곳에 박혀진 이념의 글자들을 지우고, 또 그 이념을 세웠던 인간 지성도 무시해 보면서, 현재 걷고 있는 나만의 모습으로 비경을 상대해 볼 일이다. 그리하여 깊고 넓은 계곡의 수면 위로 차라락 흐르는 빛자락에 몸과 마음을 헐겁게 하고, 부유해 볼 일이다. 점심 식사 때에는 동동주 한 잔 동동동 걸치며 술과 몸이 만나는 지점을 정직하게 응시할 일이다. 김기응 가옥이나 홍명희 생가를 들르면서 그 주변의 마을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또 웃어볼 일이다. 그리고 민가의 마당으로 불쑥 들어가, 불쑥 침범하는 손님을 꽃잎처럼 주름진 미소로 맞아주는 마을 어른들의 심경을 마주할 일이다.

패랭이꽃
홍명희 생가 근처에 피어 있던 패랭이꽃. 현혹적인 빛깔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가슴을 문지르다.

꽃은 날마다 새로 피고 있다. 지난 달 답사 때에는 장다리꽃, 철쭉이 피었다면, 이번 달 답사 때에는 애기똥풀, 괭이밥, 찔레꽃, 작약, 패랭이꽃이 피어 있다. 괴산의 민가 마당과 마을길 주변에는 패랭이꽃, 그래, 패랭이꽃이 피어 있다. 새하얀 꽃잎부터 검붉은 꽃잎까지 다채로운 붉은색 계열의 패랭이꽃은, 보는이의 가슴을 태워버린다. 다른 모든 것을 잊어도 좋다는 듯이 나는 패랭이꽃에 몰두한다. “아스라히 아스라히” 바라보면서 관조하지 못하고 혼곤히 빠져드는 것이다. 저 꽃에 무엇이 있길래, 저 화심(花心)에 무엇이 숨어 있길래, 유약하게도 빠져드는가. 무슨 공허를 맛보았길래 인간사 다른 모든 것을 물리고 저 꽃에만 빠져드는가. 현혹적인 빛깔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가슴만 문질러 본다.

꽃아. 아침마다 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門에 기대 섰을 뿐이다.
門 열어라 꽃아. 門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
門 열어라 꽃아. 門 열어라 꽃아.

— “꽃밭의 獨白” 일부
 

혼자서 고향을 떠나
어느 후줄근한 땅의 막바지 바닷가나 헤매다니다가,
배 불러서는 무엇 하느냐?
먹는 것도 어줍잖은 날이 오거던
맨 발 벗고,
설움도 참아 아닌 이 풀밭길을
인제는 혼잘 것도 따로 없이 걸어 오너라,
그리하여 어디메쯤 뇌여 있는 千年 묵은 山의 바윗가에
처음으로 눈웃음 웃고 오는 네 오랫만의 누이 — 꽃나무를 보리니…….

— “꽃을 보는 법” 전문

다시 꽃을 본다. 이 꽃 하나로 하여 다시 유년의 마당을 그려본다, 역사도 없고 무게도 없던 그 신화적인 세계를, 그 잃어버린 시절을……. [2004년 글]

꽃을 보는 법 — 시인의 고향, 고창에서”에 대한 2개의 댓글

  • 안녕하세요. 서정주의 ‘꽃 옆에 가까이 가는’으로 검색하다가 이곳에 다시 들어오게 되다니요!! 전에 종종 오던 곳인데 이렇게 다시 들어오게 되어 우선 반갑고 기뻐서 덧글을 답니다. 앞으로도 글 찬찬히 읽어나겠습니다..ㅠㅠ

    새벽
  • 검색을 통해 그렇게 재방문하기는 드문 일인데, 아마도 새벽님의 취향과 저의 취향이 비슷한가 봅니다. 반갑습니다. 서정주의 시는 언제나 혼곤한 느낌이 드네요^^

    고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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