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정수환
2007/01/12

책을 통해서 이 사이트 알게됬습니다.. 이런말 하기 모하지만 요즘 모짜르트에 빠졌습니다. 이정도로 빠졌다고 해도 될지..??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끼려고 합니다.

고싱가
2007/01/14

정수환 님 반갑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를 읽으셨나 보군요. 모차르트와 함께 유럽의 “좋았던 옛 시절”을 만끽하시기를…

이수환
2006/12/13

주피터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항상 송년 음악회에서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9번이 연주됩니다. 그런데,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송년 음악회에서 다루어도 손색이 없을만큼 사실 음악계에서는 대단한 작품이었고, 지금까지 인간애를 음악으로 다루는 대표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아마 없을 것입니다.

손색이 없는데, 다만 제가 주피터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것은 송년 음악회에서도 변화가 좀 필요하다는 면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단조로운 면이 다분히 존재합니다. 특히나, 우리 나라 대표 지휘자인 정명훈님은 베토벤을 아주 좋아하는 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그 분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모차르트 작품을 연주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류가 모차르트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이런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 중에서 모차르트가 빠진다면, 이는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에 불과하다.’ 라는 것입니다. 모차르트 음악이 없으면, 우리 인간은 확실히 어둡고, 암울하고, 더욱 더 자연의 거대함 속에서 움츠러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없이 초라해 보일 것입니다. 그나마 모차르트 음악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만의 생각일까요? 모차르트 음악을 한 번 들으면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중독성이 너무 강해서 그 향기에 듬뿍 취하다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감동합니다.

저는 16살, 내년이면 고등학교 1학년이 됩니다. 제 또래의 아이들은 매일 가요 얘기를 합니다. 제가 들으면 노래 같지도 않은 노래를 주변 친구들은 극찬하고, 좋다고 하고, 듣고 싶어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얼마나 좋은지도 모르고 노래 같지도 않은(랩 따위)노래만 따라가면서 급기야는 가수 앞까지 가서 소리 지르고 픽픽 쓰러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참으로 밉고 경멸하는 마음이 듭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취향이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사람들이 모차르트 음악을 많이 들어줬으면 합니다. 그게 바램입니다. 모차르트 음악을 듣고 전 세계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고싱가
2006/12/07

예전부터도 느꼈지만, 주피터 님의 감각과 통찰은 언제나 경탄을 불러 일으킵니다. 고지로 상승할수록 시장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명체들의 역학이니, 고지에 오를수록 외로운 것은 당연한 듯합니다.

그러나 그 고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방식이 여럿 존재하겠는데, 니체는 압도적으로 경멸과 파괴의 시선을 택했지요. 그의 표현대로, 그는 “성인”이 되기보다는 “광대”가 되기를 원했으니까요. 이것이 바로 제가 니체를 항상 안타깝고 마음 아프게 바라보는 지점입니다.

어쩌면 니체는 그 시선을 택함으로써 최대한으로 불행했으나, 그 덕분에 그가 살았던 서양은 최대의 사상가를 만나는 혜택을 누렸지 않았나 싶습니다. 니체는 자신이 경험했던 고지가 서양정신사의 그 어떤 고지보다도 높고 또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직각적으로 알았기에 그 경험을 서양 전통의 용어(특히 기독교 용어)로는 절대로 설명할 수 없었거니와 예수를 “미숙하다”고 평하고 아우구스티누스를 “사춘기의 가장(假裝)”이라고 평하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저는 니체와 기독교의 차이가 단순한 감수성의 차이가 아니라, 정신적 고지의 높낮이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그루 나무처럼 고지로 상승했던 니체가 아래를 내려다보고서 그 아래의 구조(다름아닌 기독교, 학자, 시장, 다수, 대중, 시인, 심지어 예술가 등등의 세계)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을 때, 바로 그 순간이 니체의 가장 커다란 운명이었던 듯합니다. 그는 과연 하나의 운명이었습니다. 성인이냐 광대냐 하는 그 분수령에서 광대 쪽으로 쏟아져버린 것이지요.

주피터 님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그런 유의 분수령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빕니다.

이수환
2006/11/01

안녕하세요 ? 고싱가님, 제가 원했던 오페라 곡을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오페라 곡이 올라왔던 순간, 정말 너무 감동했어요. 기분이 너무 좋아진거 있죠 ?
좋은 감상 할게요. 홈페이지가 더 많이 많이 번성하기를 빕니다.
항상 행복한 하루 되세요.

고싱가숲
2006/11/02

이옥희 님, 이수환 님, 언제나 반갑습니다. 모차르트 음악을 듣다가 뭔가 영감이 떠오르거든 저에게도 알려주시고 그래 주세요.

김경환
2006/11/04

고싱가숲 선생님 덕분에 좋은 책을 많이 알게 되고 또 읽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니체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인 선입견을 버리고 그의 글을 읽어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오역의 장소들”과 최근의 번역글을 보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글 번역본을 꾸벅꾸벅 졸면서 읽어왔던 저는 대단히 당혹스럽습니다. 그냥 읽는 데 의의를 두어야 할까 싶기도 합니다만,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옥스포드 대학출판부와 캠브리지 대학출판부에서 각각 “차라투스트라”의 새로운 영문 번역본이 나왔지만, 어느 것을 손대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독일어는 고교 시절에 배운 것이 전부라서, 아, 참 막연하고 막막하기만 합니다.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경환
2006/11/09

짧은 말씀이라 멋적지만, 참 감사합니다. :)

오민지
2006/11/13

저 고싱가숲 선생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니체 최후의 고백이라는 책을 봤는데요. 이게 정말 니체가 쓴 책입니까? 솔직히 니체의 글이라고는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고싱가숲
2006/11/13

오민지 님, 반갑습니다. «니체 최후의 고백»(My sister and I)은 1951년 영어로 처음 출판된 책입니다. 역자는 Oscar Levy로 기재되어 있는데, 사실 그는 책이 출판되기 4년 전에 죽었으니까 그가 실제 역자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그의 딸은 Oscar Levy가 그 책의 역자로 기재된 것은 완벽한 조작(complete fabrication)라고 비난했다는군요. 더구나 독일어 원본조차 존재하지 않는 책이지요.

니체저작들을 영어로 번역했던 Walter Kaufmann이 Partisan Review (May/June 1952)에서 그 책을 정확히 비평한 이후 몇년 뒤 자취를 감춘 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수십 년 뒤에 버젓이 니체 최후의 유고라는 이름 아래 번역 출판된 것입니다. 니체는, 이런 식으로도 곡해되고 있는 것이지요. 거의 핍박 수준입니다.

오민지
2006/11/14

답 글 감사합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그 책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더군요. 네이버 책 내용 검색을 해보니 그 니체 최후의 유작이라며 자신이 쓴 책에 인용까지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왜 우리나라에는 진실이 알려지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반은기
2006/11/15

좋은 음악을 이렇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다니~ㅎ
넘 감사합니다.

자주 애용할께요.

고싱가숲
2006/11/16

반은기 님 반갑습니다. 좋은 음악, 모차르트 음악 …

김흥순
2006/11/24

안녕하세요
라고 첫 인사를 하기에는
꽤나 오랜전부터 제 즐겨찾기 목록에 남아있는 홈페이지 입니다만..

처음 인사 드리네요

오늘도 이렇게 늦가을 감나무에
저녁새 쉬어가듯.. 조용히 듣다 갑니다

마음에 온기가 없다 보니
조석으로 가볍게 스치는 바람에도
꽤나 추위를 타게 되는 요즈음 이네요

몽테뉴의 이런 유명한 말도 있지요..
쾌락도 지혜도 학문도, 그리고 미덕도,
건강이 없으면 그 빛을 잃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건강 유의하세요..

고싱가숲
2006/11/25

김흥순 님, 반갑고 감사합니다.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건강하게 사는 것…

주피터 님, 오랜만입니다. 그간 별고 없었는지요. “하숙집 노신사 쇼펜하우어” – 참 멋진 표현이군요. 그 노신사의 빙그레 웃는 모습이 곧 주피터 님 모습이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