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고싱가
2007/12/20

‘몰락’이라는 낱말은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자가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자를 상상할 때 떠올리기 쉬운 단어인 듯합니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자”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니체는 이 거리에 대한 느낌을, “거리감”, 혹은 좀더 강조해서 “거리의 파토스”라고 불렀지요.

이러한 거리감에서 필연적으로 파생하는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낱말 선택의 문제이며, 동일한 낱말에 대한 상이한 해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차라투스트라»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만이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런 자는 ‘밤’이자 ‘정오’인 자이고 그림자가 없다는 의미에서, “아무도 위하지 않는 책”이며, 그와 동시에,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자들이 오로지 자기 관점에 입각해서만 읽고 해석하고 만다는 의미에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모두를 위한 책, 아무도 위하지 않는 책”이라는 «차라투스트라»의 부제가 바로 이런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결국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느냐 아니면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느냐의 차이가 결정적인 차이이지, 역어의 선택이나 해석의 입장은 소소한 차이, 파생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권상일
2007/12/21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번역이라는 것은 그 안에 엄청난 노력과 고뇌들이 스며들어가 있는 작업이군요.

정수환
2007/12/30

안녕하세요.. 한동안 모짜르트를 잊고 지냈습니다. 문득 생각나서 들렀어요.. 오늘 하루 우울했는데.. 한가지를 얻었어요.. “아기가 어릴때는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게 하고, 아기가 크면 새처럼 날게하라” 제가 할일이었어요..

고싱가
2007/12/31

정수환님 정도면 모차르트를 잊고 지낸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보는데…^^ 아마도 공부를 무척 집중해서 하시는가 보군요. 한 해 잘 마무리하시기를 빕니다.

mattise
2008/01/13

모짜르트 피아노 소나타 17번 릴리 크라우스 연주 잘 듣고 갑니다.
종종 애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싱가
2007/11/26

밤바다의 달빛을 보셨군요. 부럽습니다. 저는 밤마다 아내와 함께 북한산 숲으로 들어가 산책을 하고 있는데, 산중의 검은 나무들 사이로 떠오른 달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저도 필름에 담지 못한답니다. 다만 그 순간에 만났던 청수한 풍경이 언젠가는 마음의 온갖 찌꺼기, 아니 온갖 찌꺼기에 불과한 마음을 쓸어버리고 전체적으로 살아 흐르는 순간이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강물
2007/11/26

오랫만에 문을 두드렸는데, 문이 열려있네요. 휴지기를 끝내서 반갑습니다. 주말에 동해에 갔었지요. 봉포라고 작은 바닷가였는데… 설악을 베고 아직 노을이 누워있는데 달이, 그것도 보름달이 떠올랐어요. 멀리 수평선에서 해안까지 내게로인듯 또 누구에게로인듯 밤이 깊을수록 환한 길을 내고 있더군요. 검푸른 밤바다에 여리고 노란 길을. 선생님이라면 필름에 잘 담았을텐데요…

고싱가
2007/09/14

아! 다경님 고맙습니다. 솔레르스의 책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군요.

모차르트는 무엇보다도 극적인 행위이자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1781년 1월 2일 모차르트는 뮌헨에서 자신의 오페라 «이도메네오»를 상연 중이다. 그의 나이 25세. 그는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머릿속과 두 손은 3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 자신이 3막으로 변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정돕니다.”

— 필립 솔레르스, 김남주, «모차르트 평전» 25면

이 편지는 1781년 1월 3일자 편지로,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Kopf und Hände sind mir so von dem dritten Ackte voll, daß es kein Wunder wäre, wenn ich selbst zu einem dritten Ackt würde.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모차르트가 오직 «이도메네오»에 대해서만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인 건 아니라는 겁니다. 발언 내용이 다르거나 명확한 언급은 없을지라도 모차르트는 자신의 모든 음악에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음악에 자신의 전체를 던진 것이지요. 그래서 솔레르스는, “모차르트는 무엇보다도 극적인 행위이자 자유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겠지요. 그래도 «이도메네오»와 관련한 발언이 역시 제일 근사하네요.

armdown
2007/10/06

가끔 들러 근황을 살피고 가는데, 대문에 이상한(?) 글이 떠서 놀랐습니다. 어찌된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뭐, 있을 수 있는 일일 거라 생각됩니다.
자성의 시간을 가진다니, 그거야 뭐 환영할 만한 일이겠지요. 그렇다고 쪼그라들 것도 아닌데요 뭐.
Muth 있지요, Muth!
그 구절이 나오는 Zarathustra III권 2절의 번역이 빨리 보고 싶네요. 나름 번역은 했었는데, Gosinga 님 번역으로 보면 어떨지 궁금해서요. 메일로라도 하나 보내주시면 힘 나겠네요.

논문 때문에 Deleuze의 Nietzsche et la philosophie를 후루룩 읽었는데, 오히려 Nietzsche가 더 땡기더군요. 원래 시험 때면 하고 싶은 일이 모조리 생각나는 법이죠.

잘 지내시고, 또 들르겠습니다.

고싱가
2007/10/06

강물님 감사합니다. 저의 경솔함에서 비롯된 일이니 심호흡을 하고나서 다시 시작하렵니다.

armdown님 감사합니다. 자숙하면서 용기를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홈페이지를 새로 단장하셨군요. 논문을 쓰고 계시나본데 건강하시길 빕니다. 언급하신 대목은 저도 관심이 많습니다. 더불어 보르헤스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도 관심이 있고요. 언젠가 번역하게 되면 메일로라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옹이
2007/10/14

제가 던졌던 질문을 한동안 잊고 있다가 이제 확인했네요. 필립 솔레르스의 책에서 본 거였군요. 답변해주신 다경님, 고싱가님 감사합니다^^

美蘭
2007/10/30

오보에 협주곡을 듣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요.

오보에 협주곡 in C major 신청합니다.

고싱가
2007/10/31

설마… 하고 찾아보았더니 정말 오보에 음악이 없네요. 그래서 음반들을 뒤적거려 보았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저작인접권이 만료된 음원이 제게는 없었네요. 적어도 1956년 이전에 녹음된 음원이어야 하는데 말이죠. 대신에 오보에 사중주 한 곡을 올려놓습니다.

권상일
2007/11/16

안녕하세요. 예전에 글 올렸던 조용필 좋아하는 물리과 대학원생입니다. 여기에는 종종 들어오는데 방명록은 잘 안 남깁니다. ㅎㅎ
인문학하거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물리학을 취미로 해보려는 사람을 찾기 힘든데, 물리하는 사람중에서는 인문학과 음악에 관심이 참 많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현세의 욕망과 같다는 지적 욕망 때문일까요.
학부 때 서양철학을 공부해보려고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절에 다니시긴 했지만 전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 따라갔던 절에서 만화로 된 장자를 읽었던 것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의 출발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안동림 역본 장자를 읽는데 잘 모르겠어요. 여튼 그래서 그런지 서양철학에 대한 강의들을 들으면서 공감가던 부분이 많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습니다. 물리학 전공자의 입맛에선 철학한다는 사람들은 공허한 글빨만 남발하는게 취미인가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불성실하게 공부했던 탓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 글들을 보면서 고준한 경지를 바라보고 가보려는 사람들의 노력들을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더불어, 아직 장자와 니까야도 헤메며 읽지만 틈나는대로 니체도 진지하게 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숫타니파타를 읽을 때는 쉽고 단순한 문장에 긴 여운이 있었는데 니체는 어떨까 모르겠네요.

모짜르트
2007/11/17

이곳에서 음악 몇곡 다운받아갔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들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