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장미와주판
2007/07/27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듣습니다.
피랍자들의 생사를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불쌍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그들이 믿는 주님이 알아서 해줄것 같네요.

가지말라고 할땐 죽어라하고 가겠다면 ‘소송’준비도 하던 그들이
아프간에 중심에서 예수를 외치다 잡혀갔을때
그들의 주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길래..
소송을 해서라도 가야만했던 주님의 사역지 아프간에서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도
일벌백계의 측면에서는 그다지 나쁘지 않을 듯하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레퀴엠…
아멘.

고싱가
2007/07/27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은 너무나 복잡하고 거대한 구조적 문제라서 의견을 표명하기가 조심스럽니다만, 어쨌든 어떤 이념, 어떤 종교적 가르침보다 우선하여 생명이 존중되는 가운데 해결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저는 제가 동참하지 못하거나 저의 통제범위를 벗어나는 일을 염려하거나 분노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 일에 큰 관심을 두고 싶지 않습니다.

장미와주판
2007/07/30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을 두지 말기.
많은 배움 얻었습니다. 일단 제 자신부터 관리한 후에 주변의 것에 관심을 가져도 늦지 않겠지요.

감사합니다. 레퀴엠을 듣다보니 문득 바흐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클래식 완전 문외한이니 추천음반이라도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고싱가
2007/09/03

은사시나무 님 안녕하세요. 답인사가 늦었군요. 여기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곳에서도 우연히 스쳐지나가며 마음이 쉴 수 있는 자리를 발견하시길 빕니다.

나옹이
2007/09/10

안녕하세요, 질문이 있어서 방명록을 두드려 봅니다. 모차르트가 했던 말이나 서신 중에 오페라를 작곡하면서 자기 자신이 그 음악(2막?)으로 변한다 해도 놀랍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네요. 제가 착각했던 건가 싶기도 하고…ㅠ.ㅠ 혹시 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물
2007/11/26

오랫만에 문을 두드렸는데, 문이 열려있네요. 휴지기를 끝내서 반갑습니다. 주말에 동해에 갔었지요. 봉포라고 작은 바닷가였는데… 설악을 베고 아직 노을이 누워있는데 달이, 그것도 보름달이 떠올랐어요. 멀리 수평선에서 해안까지 내게로인듯 또 누구에게로인듯 밤이 깊을수록 환한 길을 내고 있더군요. 검푸른 밤바다에 여리고 노란 길을. 선생님이라면 필름에 잘 담았을텐데요…

고싱가
2007/11/26

밤바다의 달빛을 보셨군요. 부럽습니다. 저는 밤마다 아내와 함께 북한산 숲으로 들어가 산책을 하고 있는데, 산중의 검은 나무들 사이로 떠오른 달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저도 필름에 담지 못한답니다. 다만 그 순간에 만났던 청수한 풍경이 언젠가는 마음의 온갖 찌꺼기, 아니 온갖 찌꺼기에 불과한 마음을 쓸어버리고 전체적으로 살아 흐르는 순간이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violin123
2007/11/28

안녕하세요. 전 미래의 바이올리니스트 유슬기랍니다. 여기에서 아름다운 음악 감상하며 갑니다.

리디아
2007/11/28

저는 독문학을 전공한 가톨릭 신자입니다. 최근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신비사상에 대한 글을 읽고 너무 심오하여 좀 더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던 중 이 사이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방대한 자료들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니체 번역의 글을 읽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벅차서 몇 자 글을 남깁니다.

고싱가
2007/11/29

리디아님, 제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별도로 다룬 적이 없고 잠깐 언급하고 지나갔을 뿐인데도 어떻게 이곳을 찾아오셨군요. 반갑습니다. 리디아님은 독문학 전공이시니 원하시는 글들은 자유롭게 독해하실 수 있다는 점이 천만 행운이겠네요. 저도 언젠가는 에크하르트의 설교와 글들을 정독할 예정입니다. 에크하르트의 한 구절을 전합니다.

신이 무한하므로 영혼의 사랑도 무한해야 하리라. 사람이 천년을 산다면 그만큼 사랑도 커질 것이다. 이는 나무가 있는 한 타오르는 불을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불의 크기, 바람의 세기에 따라 불의 크기가 결정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을 불이라고 보며, 영혼 안의 성령의 영향을 감안할 때 성령을 바람이라고 본다. 영혼 안의 사랑이 클수록, 바람이, 성령이 강하게 불수록, 불도 그만큼 더 완전하다. 그러나 불은 단번에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커짐에 따라 점차 완전해진다. 그래서 성령은 점차로 분다, 인간이 비록 천년을 살지라도 사랑이 커질 수 있도록.

violin123님 반갑습니다. 첼로가 아니어서 다행이군요. 모차르트는 첼로 소나타는 남기지 않고 바이올린 소나타만 남겼으니까요^^

이수환
2007/12/13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네요. 고싱가숲 홈페이지에 자주 들르지만 글을 쓴 지가 참으로 오래 된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생활 잘 하고 있고요, 고싱가님도 잘 지내시죠 ? 전 아름다운 모차르트의 음악으로 하루의 심신을 달랩니다. 이 곳에 모차르트 음악 뿐 아니라 니체라는 철학자에 대한 글도 많기 때문에, 철학을 그렇게 많이 알고 있지는 않지만 니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볼 생각입니다. 배울 것도 많고 느낄 것도 많은 이 좋은 홈페이지에서 항상 많은 것을 얻어 갑니다.

p.s ) 아, 고싱가님. 모차르트의 음악을 감상하려다가 오페라 링크를 누르면 항상 자리해 있던 『마술피리』K.620 서곡과 1, 2막이 사라져 버렸네요 ? 어떻게 된 일이지요 ? 혹시 저작권 문제인가요 ? 없어져서 마음 속이 대단히 허전한 기분이 듭니다.

이 곳에 있는 모든 분들, 하루 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내시고,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십시오.

고싱가
2007/12/14

이수환님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니체에 관심을 가져볼까 생각하신다니 조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니체는 너무 이른 나이에 읽으면 자칫 잘못 읽힐 수도 있으니까요. 니체의 책을 읽고 풍부한 영감과 위로와 용기와 맑은 공기를 얻을 수 있다면 좋은 독해가 될 것이지만, 대부분은 냉소적이고 독단적이고 과장되고 파괴적인 결론을 얻는 독해를 하기 십상입니다. 어쩌면 니체는 성숙한 정신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제대로 읽힐 수 있는 철학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저작인접권이 만료되었으나 해외에서는 만료되지 않은 음원을 몇 개 제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마술피리도 제외되고 말았습니다. 마술피리가 없는지는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다른 음원이 있겠거니 했지요. 돈 조반니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인데 어서 올려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권상일
2007/12/19

안녕하세요. 물리과 대학원생입니다. 실험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조금씩 차라투스트라를 보고 있는데요, 번역에 문제가 많다고 하셔서 그냥 캠브리지의 영역본을 구입해서 한글 번역본과 고싱가님의 번역과 같이 더불어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싱가님의 번역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몰락”에 대한 것이 있더라구요. 철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의 입장에선 전 그냥 “하강”이 더 와닿는 것 같아요. 영역본은 going down 혹은 다른 용어를 쓸 때도 있던데… 차라투스트라가 일종의 깨달은 자이기는 하지만 전 나름 친근함을 느끼고 있거든요. 그런 사람이 고준한 곳에 있다가 우리에게 뭔가를 보이고, 나눠주고 싶어서 우리들에게 다가오는데 같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그런 행위를 왜 “몰락”이라 칭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인데, 누군가 맨 처음에 몰락을 써서 그냥 다들 따라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ㅡㅡa 심지어 물리에서도 용어 관련해선 비과학적인 얼토당토않는 용어들조차 역사적인 이유로 쓰일때가 너무 많거든요.

고싱가
2007/12/20

‘몰락’이라는 낱말은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자가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자를 상상할 때 떠올리기 쉬운 단어인 듯합니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자”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니체는 이 거리에 대한 느낌을, “거리감”, 혹은 좀더 강조해서 “거리의 파토스”라고 불렀지요.

이러한 거리감에서 필연적으로 파생하는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낱말 선택의 문제이며, 동일한 낱말에 대한 상이한 해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차라투스트라»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만이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런 자는 ‘밤’이자 ‘정오’인 자이고 그림자가 없다는 의미에서, “아무도 위하지 않는 책”이며, 그와 동시에,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자들이 오로지 자기 관점에 입각해서만 읽고 해석하고 만다는 의미에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모두를 위한 책, 아무도 위하지 않는 책”이라는 «차라투스트라»의 부제가 바로 이런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결국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느냐 아니면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느냐의 차이가 결정적인 차이이지, 역어의 선택이나 해석의 입장은 소소한 차이, 파생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권상일
2007/12/21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번역이라는 것은 그 안에 엄청난 노력과 고뇌들이 스며들어가 있는 작업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