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장미와주판
2007/07/23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내가 축생계에서 허우적대는 기분이 들어’
‘의미없는 닭들의 울부짖음… 소음이 윙윙대서 견딜수가 없어’
‘난 이데아좀 다녀올테니 축생계를 잘 지키고 있어라’

현대 분석철학과 논리학을 굉장히 좋아하던 같은 국문과 선배의 말입니다.
국문과면서 철학과수업을 더 좋아하고 교수와 토론을 즐기던 그 선배.
제가 대학생활하면서 유일하게 존경하고 닮고 싶었던 사람이죠.

당시는 모차르트가 왜 그런느낌을 주는지 몰랐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씩 이해가 가네요.
그때는 클래식 = 졸음의 공식이 너무 확고했기 때문에 그렇게 닮고 싶었던 선배였음에도 이상하게 음악만큼은 닮기가 힘들었지요.

이후로 8년. 먹고 살기위해 시작한 학원강사라는 업이 수렁처럼 저를 빨아들이고 … 우울증 증세가 조금씩 나타나고 악화되고..
우울증 증세가 심해져 건성으로 수업하고 무단으로 결근하던 한 달 전 선배로 부터 모차르트 교향곡만 따로 되어있는 패키지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기가 힘들어 오디오에 손에 짚이는 대로 시디를 넣었고 그 안에서 나오는 음악은 다름아니 교향곡 40번과 41번….

살면서 처음으로 엉엉 소리내면서 울었습니다. 그냥 아무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지기 시작해서 시디한장을 다듣는 그 순간까지 울고 있었지요. 그 덕분일까요 지금은 완치는 아니지만 신경안정제와 수면유도제는 필요없을 정도는 되었고 대인관계면에서도 한결 원만해 졌습니다.

음악이란게 이런것이구나……

사이트 글들을 주욱읽어보다가 갑자기 기억이 나서 정말 두서없이 글 적어보았습니다.
모두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싱가
2007/07/24

장미와주판 님, 모차르트 음악을 참 멋지고 훌륭하게 만나셨군요. 부럽습니다. 저 역시 모차르트 교향곡을 들으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고백하자니 좀 쑥쓰럽긴 하네요^^

예전에는 두통이 있으면 혼신을 다해 집중해서 모차르트 음악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깨끗이 낫더군요. 정말 거짓말같은 경험이었지요. 그 뒤로 저는 문제를 머리로만 해결하려는 경향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두통이 저를 겁내나 봐요. 두통을 앓아본 지가 한 십년은 넘었나 봐요.

“음악이란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님의 경험을 나중에라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주시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장미와주판
2007/07/27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듣습니다.
피랍자들의 생사를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불쌍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그들이 믿는 주님이 알아서 해줄것 같네요.

가지말라고 할땐 죽어라하고 가겠다면 ‘소송’준비도 하던 그들이
아프간에 중심에서 예수를 외치다 잡혀갔을때
그들의 주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길래..
소송을 해서라도 가야만했던 주님의 사역지 아프간에서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도
일벌백계의 측면에서는 그다지 나쁘지 않을 듯하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레퀴엠…
아멘.

고싱가
2007/07/27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은 너무나 복잡하고 거대한 구조적 문제라서 의견을 표명하기가 조심스럽니다만, 어쨌든 어떤 이념, 어떤 종교적 가르침보다 우선하여 생명이 존중되는 가운데 해결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저는 제가 동참하지 못하거나 저의 통제범위를 벗어나는 일을 염려하거나 분노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 일에 큰 관심을 두고 싶지 않습니다.

장미와주판
2007/07/30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을 두지 말기.
많은 배움 얻었습니다. 일단 제 자신부터 관리한 후에 주변의 것에 관심을 가져도 늦지 않겠지요.

감사합니다. 레퀴엠을 듣다보니 문득 바흐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클래식 완전 문외한이니 추천음반이라도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고싱가
2007/07/31

장미와주판님, 유감스럽게도 저는 바흐를 잘 모릅니다. 하긴 모차르트 음반을 추천해 달라고 해도 모른다고 했을 겁니다. 음반추천과 관련한 것은 고클래식에 가셔서 문의하거나 검색해 보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korb
2007/08/06

고싱가님께
글만 읽고 지나가다가 감히 질문하나 드릴께요
얼마전에 니체의 명언이라는 이 밑의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언제인가 많은것을 말해야 할 사람은
많은것을 가슴속에 쌓아야 한다
언제인가 번개에 불을 켤 사람은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원본을(독일어로 된) 찾으려고 해도
어느 곳에서 나온 말인지 찾기가 아주 힘드네요
너무도 말이 좋아 이 글이 나온 책을 읽어보고 싶은데요
혹시 아신다면 답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싱가
2007/08/06

니체전집에는 포함되지 않은 듯한 니체의 시입니다. 니체가 August Bungert에게 «서광»을 증정하면서 그 책에 1883년 3월 14일자로 쓴 증정시입니다. 증정본에 쓴 시이지만 일찌기 잘 알려진 시여서 독문학계 논문에서도 몇 차례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수없이 선포해야 하는 자
속으로 수없이 침묵하고 있다
언젠가 번개를 점화해야 하는 자
오래도록 구름이 되어야 한다

Wer viel einst zu verkünden hat,
schweigt viel in sich hinein:
Wer einst den Blitz zu zünden hat,
muss lange – Wolke sein.

그런데 korb님께서는 이 시를 어디서 읽으셨나요? 이 시를 인용한 책을 알고 계시면 저에게도 알려 주시겠어요?

니체의 이 시와 관련한 사항은 Hans Joachim Mette의 1932년 논문, Der handschriftliche Nachlass Friedrich Nietzsches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경
2007/09/14

안녕하세요. 말씀하신 서신은 필립 솔레르스의 ‘모차르트 평전’에 인용되어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3막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내 자신이 3막이 되어버릴 것 같다는 내용이었는데, 저도 당장 책을 확인해 볼 수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3막이 있는 오페라겠지요^^;

고싱가
2007/09/14

아! 다경님 고맙습니다. 솔레르스의 책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군요.

모차르트는 무엇보다도 극적인 행위이자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1781년 1월 2일 모차르트는 뮌헨에서 자신의 오페라 «이도메네오»를 상연 중이다. 그의 나이 25세. 그는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머릿속과 두 손은 3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 자신이 3막으로 변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정돕니다.”

— 필립 솔레르스, 김남주, «모차르트 평전» 25면

이 편지는 1781년 1월 3일자 편지로,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Kopf und Hände sind mir so von dem dritten Ackte voll, daß es kein Wunder wäre, wenn ich selbst zu einem dritten Ackt würde.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모차르트가 오직 «이도메네오»에 대해서만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인 건 아니라는 겁니다. 발언 내용이 다르거나 명확한 언급은 없을지라도 모차르트는 자신의 모든 음악에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음악에 자신의 전체를 던진 것이지요. 그래서 솔레르스는, “모차르트는 무엇보다도 극적인 행위이자 자유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겠지요. 그래도 «이도메네오»와 관련한 발언이 역시 제일 근사하네요.

armdown
2007/10/06

가끔 들러 근황을 살피고 가는데, 대문에 이상한(?) 글이 떠서 놀랐습니다. 어찌된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뭐, 있을 수 있는 일일 거라 생각됩니다.
자성의 시간을 가진다니, 그거야 뭐 환영할 만한 일이겠지요. 그렇다고 쪼그라들 것도 아닌데요 뭐.
Muth 있지요, Muth!
그 구절이 나오는 Zarathustra III권 2절의 번역이 빨리 보고 싶네요. 나름 번역은 했었는데, Gosinga 님 번역으로 보면 어떨지 궁금해서요. 메일로라도 하나 보내주시면 힘 나겠네요.

논문 때문에 Deleuze의 Nietzsche et la philosophie를 후루룩 읽었는데, 오히려 Nietzsche가 더 땡기더군요. 원래 시험 때면 하고 싶은 일이 모조리 생각나는 법이죠.

잘 지내시고, 또 들르겠습니다.

고싱가
2007/11/29

리디아님, 제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별도로 다룬 적이 없고 잠깐 언급하고 지나갔을 뿐인데도 어떻게 이곳을 찾아오셨군요. 반갑습니다. 리디아님은 독문학 전공이시니 원하시는 글들은 자유롭게 독해하실 수 있다는 점이 천만 행운이겠네요. 저도 언젠가는 에크하르트의 설교와 글들을 정독할 예정입니다. 에크하르트의 한 구절을 전합니다.

신이 무한하므로 영혼의 사랑도 무한해야 하리라. 사람이 천년을 산다면 그만큼 사랑도 커질 것이다. 이는 나무가 있는 한 타오르는 불을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불의 크기, 바람의 세기에 따라 불의 크기가 결정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을 불이라고 보며, 영혼 안의 성령의 영향을 감안할 때 성령을 바람이라고 본다. 영혼 안의 사랑이 클수록, 바람이, 성령이 강하게 불수록, 불도 그만큼 더 완전하다. 그러나 불은 단번에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커짐에 따라 점차 완전해진다. 그래서 성령은 점차로 분다, 인간이 비록 천년을 살지라도 사랑이 커질 수 있도록.

violin123님 반갑습니다. 첼로가 아니어서 다행이군요. 모차르트는 첼로 소나타는 남기지 않고 바이올린 소나타만 남겼으니까요^^

이수환
2007/12/13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네요. 고싱가숲 홈페이지에 자주 들르지만 글을 쓴 지가 참으로 오래 된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생활 잘 하고 있고요, 고싱가님도 잘 지내시죠 ? 전 아름다운 모차르트의 음악으로 하루의 심신을 달랩니다. 이 곳에 모차르트 음악 뿐 아니라 니체라는 철학자에 대한 글도 많기 때문에, 철학을 그렇게 많이 알고 있지는 않지만 니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볼 생각입니다. 배울 것도 많고 느낄 것도 많은 이 좋은 홈페이지에서 항상 많은 것을 얻어 갑니다.

p.s ) 아, 고싱가님. 모차르트의 음악을 감상하려다가 오페라 링크를 누르면 항상 자리해 있던 『마술피리』K.620 서곡과 1, 2막이 사라져 버렸네요 ? 어떻게 된 일이지요 ? 혹시 저작권 문제인가요 ? 없어져서 마음 속이 대단히 허전한 기분이 듭니다.

이 곳에 있는 모든 분들, 하루 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내시고,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십시오.

고싱가
2007/12/14

이수환님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니체에 관심을 가져볼까 생각하신다니 조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니체는 너무 이른 나이에 읽으면 자칫 잘못 읽힐 수도 있으니까요. 니체의 책을 읽고 풍부한 영감과 위로와 용기와 맑은 공기를 얻을 수 있다면 좋은 독해가 될 것이지만, 대부분은 냉소적이고 독단적이고 과장되고 파괴적인 결론을 얻는 독해를 하기 십상입니다. 어쩌면 니체는 성숙한 정신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제대로 읽힐 수 있는 철학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저작인접권이 만료되었으나 해외에서는 만료되지 않은 음원을 몇 개 제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마술피리도 제외되고 말았습니다. 마술피리가 없는지는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다른 음원이 있겠거니 했지요. 돈 조반니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인데 어서 올려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권상일
2007/12/19

안녕하세요. 물리과 대학원생입니다. 실험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조금씩 차라투스트라를 보고 있는데요, 번역에 문제가 많다고 하셔서 그냥 캠브리지의 영역본을 구입해서 한글 번역본과 고싱가님의 번역과 같이 더불어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싱가님의 번역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몰락”에 대한 것이 있더라구요. 철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의 입장에선 전 그냥 “하강”이 더 와닿는 것 같아요. 영역본은 going down 혹은 다른 용어를 쓸 때도 있던데… 차라투스트라가 일종의 깨달은 자이기는 하지만 전 나름 친근함을 느끼고 있거든요. 그런 사람이 고준한 곳에 있다가 우리에게 뭔가를 보이고, 나눠주고 싶어서 우리들에게 다가오는데 같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그런 행위를 왜 “몰락”이라 칭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인데, 누군가 맨 처음에 몰락을 써서 그냥 다들 따라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ㅡㅡa 심지어 물리에서도 용어 관련해선 비과학적인 얼토당토않는 용어들조차 역사적인 이유로 쓰일때가 너무 많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