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 — 소리로 찾아 떠나는 그 곳, 山寺

“부모님 생전에 출가한 이 몸, 돌계단의 발길도 무거운데”, 정태춘의 <탁발승의 새벽노래> 가사이다. 이 가사에는 정태춘이 절집에서 생활하면서 자고 먹고 씻고 예불 드리고 소요했던 발걸음이 담겨져 있다. 절집에 유난히 많은 것이 돌계단이요, 돌계단을 딛고 오르는 때만큼 무수한 상념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시간도 드물다. 그런데 그 돌계단의 발길이 무겁다. 이 한 마디에는 말로 하기 힘든 그 무엇, 귀와 눈과 몸으로 부딪혔던 흔적이 어려 있다. 정태춘의 허투로 웅얼거리는 듯한 창법도 아마 그 흔적과 함께 피어났을 것이다. 그에게 그의 것을 선물했던 절집의 소리는 그러면, 과연 어떤 것일까.

절집의 생활은 새벽 3시 기상, 3시 반에 새벽예불, 아침공양, 운력, 소임, … 이렇게 일과가 되풀이된다. 이 일과들은 경내 이쪽에서 저쪽까지 오고가는 발걸음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 발걸음마다 매듭을 짓고 푸는 것은 절집의 음악, 절집의 소리이다. 도량석, 명고타종, 예불문, 목탁소리, 죽비소리, 빗질소리, 찻물 따르는 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 나무잎이 흔들리는 소리, 비오는 소리, … 이 소리들은 수행자들의 발걸음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소리를 따라 일어나고 소리를 따라 절하고 소리를 따라 눕는 그네들의 감각은 누구보다 소리에 예민하게 노출되어 있다.


절집 소리들을 녹음한 음반. 특이하게도 다른 판매처에서는 검색하기가 힘들고, 알라딘 서점 음반코너에서 “空”으로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空, 이 음반은 이 한 글자 표제를 달았다. 절집 소리의 본질을 뚫어본 것일까. 절집 수행자들의 소리소리에는 근본적으로 진여의 자리에서 퍼져나오는 울림이 깃들어 있다. 그리하여, 제 몸에서 나오는 목소리조차 장악하고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 풀어서 허공으로 흩어버리는 수행자들의 예불소리. 목탁소리, 법고소리, 범종소리, 이 모든 것도 듣는 이들의 마음을 휘어잡지 않고 그저 그 마음들조차 풀어서 함께 허공으로 흩어버린다. 그리고 그 소리들에 맞추어 합장하고, 절하고, 무릎꿇고, 일어서고, 걷고, 공양하고, 빗질하고, 눕는다.

모두가 한낱 환(幻)이고 공(空)인 것을! 그러나 이 환과 이 공은 중생심에 사로잡혀 일생을 끌려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정확히 지칭하는 것일 뿐, 수행자들의 세계가 허하고 공한 것은 아니다. 수행자들은 중생심의 환과 공을 물안개처럼 흩으며, 맑은 청계가 되어 청량하게 흘러간다. 그들은 끊임없이 흩어지는 소리들 속에서 걷고 머물고 앉고 눕지 않던가!

그러나 수행자들의 그 소리가 천편일률일 수는 없다. 절집마다 대중스님들의 성향이 있어 혹은 절집 내력이 있어 그 흩어지는 소리들이 저마다 일가를 이루고 있다. 가령, 해인사 대중들의 명고타종과 예불은 사자가 벼랑을 타고 오르는 듯 기세가 충천하며, 송광사 대중들은 완만한 산세처럼 옹골차고 너그럽다.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은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곱고 단아하고 야무지다. 이 음반은 이 세 절집의 종송, 명고타종, 예불을 녹음해 놓았다.

녹음된 세 절집의 예불소리에는 법당 밖에서 바람따라 흔들리는 풍경소리,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수조의 물 떨어지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녹음자가 절집 소리들을 훼손할 수 있는 인위적 노력을 일체 삼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당 밖 명고타종 후 이어지는 법당 안의 작은종 소리와 예불문 앞자락이 녹음되지 않았다. 명고타종 후 녹음장비를 들고 법당 앞으로 옮기기까지의 시간이 그대로 비어 있는 것이다. (녹음장비가 워낙 고가의 장비여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다.) 그래서 마치 예불자가 법당 밖에서 명고타종 소리를 끝까지 듣고나서 돌계단을 밟고 금당 안으로 들어서는 듯한 공간적 이동이 느껴진다. 명고타종 소리를 내처 듣고 오르는 돌계단의 발길은 가볍고 소리는 비어 있는데, 잠시 후 지심귀명례가 들려온다,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세 절집의 명고타종과 예불문 만으로도 충분히 음반의 값어치를 하고도 남는데, 또 한 장의 음반을 여분으로 제공하고 있다. 여러 절집들의 소리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호거산과 가야산의 계곡 물소리, 수덕사 풍경과 새벽 종소리, 삼경(三更)의 부엉이와 아침의 새 소리, 개심사 홍송 숲에 내리는 가랑비 소리, 무위사의 조그만 시냇물 소리, 일지암 찻물 따르는 소리 등등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이산혜연선사발원문, 반야심경, 천수경, 보례진언, 관세음보살 기도문 등도 함께 담았다. 음반 내지의 설명도 알차게 편집되어 있다.

진작부터 이런 명고타종과 예불문 녹음 시디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이상하게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한번은 해인사 예불 녹음 시디가 있길래 구입하였더니, 참으로 무정하게도, 예불소리에 무슨 백뮤직처럼 소위 ‘명상음악’을 깔아서 녹음한 것이었다. 대중의 취향을 맞추어서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글쎄, 그 대중이 참 어떤 것인지 두렵기만 하다. 모든 예술은 최상을 겨냥하지 않으면 반드시 삼류로 전락하게 되어 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최상을 겨냥해야 비로소 이류라도 될 수 있는 것이거늘, 어찌 최상의 것을 그 아래의 것에다 맞추려 하는 것인지 참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나, 이 음반이 있어 이제는 행복하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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