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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싱가 숲 &#187; 정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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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산들바람으로,폭풍으로,나비의너울거림으로</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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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릉의 보현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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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9 Aug 2009 07:13:16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category><![CDATA[생활잡감]]></category>
		<category><![CDATA[보현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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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정릉 청수장 동네에서 바라본 보현봉

밖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주로 내부순환로를 타고 귀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민대앞 램프를 향할 때 먼저 눈맞춤하는 것은 어김없이 북한산 보현봉과 형제봉이다. 특히 이들은 서재 창으로 언제나 대면하는 이들이어서, 이들이 보이는 순간 곧 집에 왔다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설레임 속에 내부순환로에서 빠져나와 정릉4동사무소 교차로에서 한 템포 정차했다가 좌회전하여 정릉 청수장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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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방의재(放意齋)라 이름 지으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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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Nov -0001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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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불교배우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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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정릉]]></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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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정릉동이라는 동명은 목이 말라 급히 물을 찾는 장수에게 버들잎을 띄워 샘물을 건넸다던 어느 여인의 생애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물을 급히 마시면 체할 지도 모르니 버들잎을 불어내며 천천히 마시라는 것이었다. 우물가의 이 아름다운 낭만을 잊지 못했던 태조 이성계는 훗날 그 여인을 비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여인, 신덕왕후의 무덤이 바로 정릉인 바 정치적 역학 속에서 한동안 박대 받았다가 먼 뒷날에야 제대로 관리되기 시작했다. 결국 현 정릉2동에 위치한 정릉으로부터 동명이 나온 것이지만, 원래 이 동네는 북한산 자락의 풍치에서 유래한 이름들을 가지고 있었다.

가령, 청수동은 북한산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에서 그 이름을 얻었으며, 삼양동은 삼각산 봉우리 동남쪽 양지 바른 곳이라 하여 그 이름을 얻었으며, 청암사는 푸른 산봉우리 아래 자리 잡았다 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 그렇지만 그 이름들은 이제 사라져 버렸고 ‘정릉동’이니 ‘미아동’이니 ‘경국사’니 하는 정치적이거나 비자연적인 이름들로 대체되고 말았다.

지역의 이름이 관념화하고 정치화한 것은 자연적인 이름들의 국지적인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령, 청수동은 북한산 계곡 주변의 마을(정릉3동, 정릉4동)을 가리킬 수는 있어도 그 계곡에서 멀리 떨어진 정릉1동, 정릉2동까지 가리키는 것은 억지스러운 데가 있다. 그렇다고 하여 정릉이 지리적으로 북한산 계곡 주변의 범위까지 포함하는 것도 아니니, 이곳을 청수동이라 하지 않고 정릉동이라 이름한 것은 역시 자연에 대한 정치적 관념과 권력의 승리이거나 그 관념에 지배당한 관료들의 역사적 흔적이다. 나는 그 승리, 그 흔적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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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중에 아내의 손바닥만한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몇 컷 찍어보았다. 산골물이 아롱아롱 흩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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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여름, 십수년 간 살았던 동네를 떠나 이곳 청수마을에 들어섰다. 그 날로부터 지금까지 매일같이 북한산 숲을 드나들었으며, 샘물을 길어마셨으며, 산허리 어둠 속에서 들리는 아득한 종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서재에서 보이는 보현봉과 형제봉, 어둠 속에서 소리 높여 흐르는 산골물은 나의 벗이었다. 나는 이들과 더불어 하루하루를 호흡했고 이제는 밤을 새워도 건장할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 과연 이곳은 정릉동이라는 이름보다는 청수동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차고 깨끗한 산골물, 맑고 기운찬 바람, 운무가 머물다 지나가는 산봉우리. 이곳에서는, 속된 감정이든 성스러운 감정이든 불문하고 뭇 감정은 거센 바람과 맑은 물에 쓸려가는 티끌먼지에 불과하다. 이것을 어떻게 노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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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폭풍에 집 한 간을 맡겨두고 — 북한산 자락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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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Nov -0001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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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니체읽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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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지난 연말 국문학을 하시는 선생님 내외분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 송순의 시조 한 수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는 이 시조가 참으로 좋고 좋다는 말씀과 함께.

<blockquote>
十年을 經營하야 草廬三間 지어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에 淸風 한 간 맛져두고
江山은 드릴 듸 업스니 둘러 두고 보리라
</blockquote>

이 시조를 경탄하셨던 그 선생님께서는 어디에 방점을 두셨는지 모르겠으나, 이 시조가 입에서 흘러나오자마자 내 마음은 "십년을 경영하야 . . ."에 딱 멈추었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스무 살 이후 맞이할 수 있는 십년 단위의 세월은 불과 너댓 번에 불과하다. 그만큼 십년은 큰 것이고, 그만큼 십년 동안 경영한 일도 큰 것이다. 그런데 그 십년 동안 경영한 것, 그 십년 동안 내내 마음속에 품고 실천해 나간 것, 그 성과물이 고작 초려삼간이란다.

송순은 마흔 한 살에 '초려삼간' 면앙정을 지어냈다. 그러므로 그는 삽십대 초반부터 고향 담양에 초려삼간을 짓고 달과 청풍과 강산을 벗삼기로 마음먹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삽십대 시절 한갓진 꿈으로만 남아 있었고, 마침내 마음속에 품은 지 십년 만에야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초려삼간은 '고작' 초려삼간이 아니라, 한 사람이 십년 동안 마음을 다스려 지어낸 탁 트인 공간인 것이다.

"나 한 간 달 한 간에 淸風 한 간" 맡겨두는 일은, 십년을 다스려 시원하게 트인 마음, 시원하게 트인 집의 자연스런 귀결이다. 마음이 트였으니 어찌 그와 달리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여 면앙정을 마음속에 품고 지낸 송순의 삽십대는, 다름아닌 초려삼간을 지어낼 수 있었던 십년이요, 마침내 산과 시내를 두루 벗하고, 마침내 달과 바람을 집안에 들일 수 있었던 십년이다. 결과적으로 초려삼간으로 인하여 그 십년은 빛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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