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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싱가 숲 &#187; 심우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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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산들바람으로,폭풍으로,나비의너울거림으로</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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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찬 없는 밥을 대접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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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5 Mar 2009 19:53:23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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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한용운 스님에 관한 일화는 어지간히 알고 있는 편인데, 석명정 스님의 &#171;茶이야기 禪이야기&#187;를 읽다가 새로운 일화를 접하게 되었다. 가령 월남 망국사 강의 도중 울음을 터뜨리신 것이라든가 경봉 스님이 심우장을 들렀을 때 찬 없는 밥을 대접했다는 일화 등이 그렇다. 이에 기록해 둔다:

경봉 스님께서는 22세 때 통도사 강원에서 화엄을 수학하셨는데 여기서 한용운 스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내가 시자 때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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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붉게 타오르는 성곽 아래 연꽃이 피어나 — 심우장 배관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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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8 Jun 2008 08:01:42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category><![CDATA[문화유적답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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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strong>붉게 타오르는 성곽 아래</strong>
&#160;

사대문 안을 감싸는 도성의 북쪽 성곽은 북악산 줄기를 따라 흐른다. 우리나라의 산은 아름다우므로, 능선을 타고 흐르는 성곽은 공주산성의 예와 같이 올라섰다간 내려오고 내려오다간 올라서는 자연을 닮는다. 성북동은 성의 북쪽에 있다 하여 지어진 유서 깊은 이름이며, 현재에도 성곽 일부가 남아 있다. 현재와 같이 차폐물이 많지 않았던 때에는 성북동 어디에서나 성이 보였다. 위창 오세창은 간송미술관의 보화각 정초명에서 "우뚝 솟아 화려하니, [도성의] 북쪽 성곽을 굽어 본다"고 하였다. 이 북쪽 성곽은 성북동의 서남쪽에 위치하여 숙정문에서 혜화문에 이르까지 경계를 그으며 흐른다. 아울러 성북동의 서쪽에서 북쪽, 동쪽에 이르기까지는 구진봉의 주능선이 마을을 크게 품으면서 부채처럼 펼쳐져 있다. 그리하여 성북동은 성곽이 있는 깊은 산중, 깊은 골짜기가 된다. 지금은 도시의 모습이 되고 말았지만,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심산유곡"이니 "산협"이니 했다. 선사와 선비와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산과 골짜기.

1933년 성북천 개울 가까이에 터를 잡고 월북할 때까지 살았던 이태준은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성북동 서남쪽 능선을 따라 흐르는 산성을 즐겨 보았다.

<blockquote>
山마라에는 山봉오리 생긴대로 울멍줄멍 城壁이 솟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여 있다. 솟은 城壁은 아침이 첫화살을 쏘는 과녁으로 城北洞의 光明은 이 山上의 옛 城壁으로부터 퍼져나려오는것이다. 한참 쳐다 보노라면 城壁에 드리운 소나무 그림자도, 城돌 하나하나 새이도 빤-히 드러난다. [...]

멀-리 떨어지는 夕陽은 城머리에 다어선 불처럼 붉다. 구불구불 山등셍이로 달려올라간 城郭은 머리마다 타는것이, 어렸을때 자다말고 나와 본 山火의 輪廓처럼 무시무시 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꺼지는 夕陽일뿐, 아무것도 아니다. 고요히 바라보면 지나가는건 그저 바람이요 구름뿐이다. 있긴 있으면서 아무것도 없는것, 그런것은 생각하면 이런 옛城만도 아닐것이다.

&#8212; 이태준, <城>
</blockquote>

이태준이 바라보던 곳, 석양이 성 머리에 닿아 산불처럼 타오르던 곳, 그곳에는 붉은 화롯불 속의 연꽃처럼 심우장이 있었다. 만해 한용운도 이태준과 같은 시기인 1933년에 성북동 송림에 "띄끌세상을 떠나면/ 모든것을 잊는다 하기에/ 산을 깍아 집을짓고/ 돌을 뚜러 새암을 팟다"(한용운, <山居>). 1936년에 심우장을 내방했던 어느 학인은 돌다리를 지나고 나무다리를 건너 심우장 오솔길로 오르면서 "한양의 옛 성을 등지고 돌아앉은 [...] 심산유곡"이라 하였다. 그는 심우장에서 한용운을 면담하고 나서 사위를 살피고는 성북동 심산유곡의 한가로움을 이렇게 기록했다:

<blockquote>
하루 종일 앉아야 어린아이 소리, 사람 자취 하나 들려오지 않는 이곳이건마는 해가 서편 산허리에 기울어졌을 때에는 건너편 골짜기 청룡암에서 들려오는 소린지, 산중턱 미륵암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뎅뎅뎅 하는 저녁 종소리가 점점 가느다랗게 들려올 뿐이다.

&#8212; 春秋學人, <尋牛莊에 參禪하는 韓龍雲씨를 찾아>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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