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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싱가 숲 &#187; 서경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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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산들바람으로,폭풍으로,나비의너울거림으로</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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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열한 사실정신에서 투명한 고요로움으로—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순례»를 읽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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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5 Feb 2006 15:51:31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category><![CDATA[문화예술]]></category>
		<category><![CDATA[그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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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시몬느 베이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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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풍경을 아예 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의 젊음을 끌고 다녔던 그 뭔가에 이끌려 책만 읽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 정점에 다다를 즈음, 일이건 사람이건 풍경이건 모든 것이 눈에 띄지 않고 저의 머리 안의 '생각'만이 물질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다가 저에게서 유일하게 무게를 가지고 있던 그 생각마저 해체되는 것이었는데, 그 경험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이글이글 증발하는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선과 악,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 게으름과 공부 등, 모든 구별이 사라져 버리고 모든 것들의 균일함만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세상은 곧 권태로움이었습니다. 신비로왔던 것은 오직 하나, 똥누는 육체였습니다. 민둥산을 헤매는 누추한 머리와 변기통에 앉아 똥누는 육체, 이 둘만 존재하던 때였습니다.

권태로움을 벗어나는 첫걸음 내딛기는 사물을 느끼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그것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임을 그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숲속에 핀 꽃이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주는 일이며 가을날의 단풍이 온 몸을 벌겋게 물들이는 일이며 파아란 하늘이 가슴을 시퍼렇게 멍들게 하는 일을 겪을 줄 몰랐습니다. 사물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저는 사람들의 삶을 풍경처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옆사람의 슬픔과 만나는 사람들의 상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 사이를 메아리하는 울림을 듣기 시작하니,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김훈), 상처의 窓을 통해 들어오는 풍경이었습니다.

그 풍경의 언어를 따라가 보니, 참으로 유연하게 곡절(曲折)하며 흐르는 물의 인생이 있는가 하면, 매연으로 칼칼해진 도시의 인생, 얼룩진 고통의 인생, 빛나는 자폐의 이성을 가진 인생도 있습니다. 이제 저는 그 인생들을 한 그루 나무처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인생길, 숲속 오솔길을 걸으면서, 그 길은 나무들이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비켜주어 마련된 길, 상처와 아픔을 싸안고서 저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어 마련된 길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도 저는 그 오솔길을 걸으면서 사람들 사이를 관통합니다.

"한평생 나그네길 반 고비에"(단테) 사람들의 풍경으로 들어갑니다. 그 풍경이 주는 언어를 깊이 맛보려고 저는 저의 언어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습니다. 저의 언어를 품고 숲으로 들어가면, 풍경은 보이지 않고 저 하나만 남게 됩니다. 생각을 풀어 보내고 숲으로 들어가면, 풍경이 저를 둘러싸고 있고 저는 감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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