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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싱가 숲 &#187; 라훌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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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산들바람으로,폭풍으로,나비의너울거림으로</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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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월폴라 라훌라,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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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2 Oct 2005 16:47:29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category><![CDATA[불교서적]]></category>
		<category><![CDATA[라훌라]]></category>
		<category><![CDATA[불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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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 책을 만나게 된 시절 인연에 대하여 먼저 감사를 한다. 월폴라 라훌라(혹은 월뽈라 라훌라), 이승훈 역, &#171;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187; (경서원, 1995)
&#160;

한 사오년 간 책을 멀리한 적이 있었다. 대형서점에 가면 꼭 무슨 쓰레기장에 들어선 기분이 들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이 마무리되는 첫 계기는 동양고전을 접하면서였다. 다산 선생의 글이었던가, 두보의 시였던가, 아무튼 나는 동양고전을 띄엄띄엄 읽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 동양정신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서양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동양고전에 이르를 경우, 그 거치는 길목이 다들 다르겠지만, 나는 하이데거와 니체 덕분이었다. 그들이 나를 동양으로 인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공부하면서 나는 존재, 현존, 실체, 근거, 논리, 객관성, 가치, 도덕, 영원 등등, 그 허깨비같은 개념들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서양인문학은 내게 서구가 만들어놓은 철학적 개념들을 벗어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이런 부류의 경험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171;희랍인 조르바&#187;로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 역시 베르스송과 니체를 통하여 서양인문학과 안녕을 고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베르그송 밑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가 어떻게 인생에서 “먼지 한 번 피워보려고” 가진 돈을 몽땅 광산개발에 쏟아부었겠는가. 그 소설에서 조르바의 거침없는 인생과 더불어 붓다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서양인문학이 내놓은 개념들에 대한 최대의 항거인 셈이다. 그 항거의 일환으로 카잔차키스는 일본과 중국을 여행하기도 하였으나, 그 여행기를 미루어 보건대 끝내 동양적인 지혜에는 도달하지 못한 듯 보인다.

동양고전이 손에 잡히기 시작한 이제, 어디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정말 막연했다. 다행히 답사모임에 참가할 기회를 얻어 우리문화 유적지를 답사하기 시작하면서 그와 연관된 글들을 조금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안에 감추어져 있던 역량의 폭발이었다. 두서 없이 이책 저책 읽으면서 불교쪽도 넘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헐적이긴 하지만 끊임없는 그 넘보기의 연속 끝에 나는 이 책을 만났다: &#171;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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