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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싱가 숲 &#187; 고미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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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산들바람으로,폭풍으로,나비의너울거림으로</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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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만원권 배경 도안의 원작 훼손 논란이 시작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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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6 Mar 2009 05:57:31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category><![CDATA[문화예술]]></category>
		<category><![CDATA[강관식]]></category>
		<category><![CDATA[고미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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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마침내 어몽룡 &#60;월매도&#62;의 원작 훼손 논란이 불거졌다.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최초의 문제 제기자는 한성대 강관식 교수로 한겨레신문에 기고문을 실었다. 강 교수는 &#60;월매도&#62;를 가로로 배치하든 세로로 배치하든 본래 모습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안목이 있는 이들이라면 십분 동의할 만한 내용이다. 기고문의 결론부를 소개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60;월매도&#62;는 본래 모습으로 복원해 놓아야한다. &#60;월매도&#62;는 하늘 높이 솟아오른 매화 가지를 거의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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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결한 탐미성은 어디로 갔는가? — 신권화폐의 배경 도안을 보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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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6 Mar 2009 09:36:43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category><![CDATA[문화예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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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옛 사람들은 매화를 과연 무슨 마음으로 대했던 것일까? 왜 봄이 오는 길목이면 매화를 찾아 길을 나섰던 것일까? 겨울날 허름한 비산비야의 풍경 속에 홀로 피는 매화는 천하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한 그루 나무여서, 어느 산야에서 이를 발견하는 순간 소생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자칫 스산하게 끝나버릴 것같던 고절한 삶에 새로움과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 맛을 보기 위해,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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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홍도의 소림명월도(疎林明月圖)</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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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Nov -0001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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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문화예술]]></category>
		<category><![CDATA[고미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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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오주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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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김홍도는 워낙에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인의 관심을 덜 받는 화가에 속할 것이다. 나 역시 김홍도의 만년 작품들을 보기 전까지는 풍속화 정도만 보았던 문외한이었다. 더구나 전공이 서양인문학이었던 데다가 관심마저 서양의 문화에 경도되어 있어서 우리나라 옛 미술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서양의 학문과 문화와 정신에 한계를 느꼈고 그 전환기의 시점에 우리나라 곳곳의 문화유적지를 찾아 답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장 동양문화에 심취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이제는 급기야 서양의 문화, 정신, 미술에 대하여 시큰둥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이 모르는 분야로 접어들 때에는 처음 한동안은 헤매기 마련인데 복되게도 미술도록을 대거 소장한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고미술 분야의 중요 도록들을 대략이나마 훑어볼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김홍도의 만년 작품들도 결혼 이후에 비로소 접했던 것이니, 처음 보았을 때 과연 이게 김홍도의 그림이란 말인가 하고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그림들에 크게 감동한 나는 만년 작품들 중의 하나인 소림명월도를 오려 이 블로그의 이미지로 채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김홍도의 그림들에 등장하는 김홍도 특유의 나무들을 보고서 나는 그것들이 우리나라 산야에서 전형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곳곳을 답사하고 다닐 때도 그런 나무들은 쉽사리 목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한 때 시골에서 비산비야의 풍경과 함께 11월, 그리고 2월을 보내면서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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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檀園의 墨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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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Nov -0001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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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문화예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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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묵죽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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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img id="image462" src="http://www.gosinga.net/wp-content/uploads/2007/10/bamboo.jpg" alt="bamboo.jpg" />
<p class="caption"><新竹含露>, 紙本水墨, 23×27.4㎝, 간송미술관 소장</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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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외로운 봉우리로 해가 저무네 — 최준호의 &lt;원교창암유묵&gt; 해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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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8 Mar 2007 15:03:01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category><![CDATA[문화예술]]></category>
		<category><![CDATA[인문·종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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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이광사]]></category>
		<category><![CDATA[이삼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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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table class="alignleft">
<tr><td width="204">
<img id="image338" src="http://www.gosinga.net/wp-content/uploads/2007/03/choneunsa.gif" alt="choneunsa.gif" />
</td></tr>
<tr><td width="204">
원교 이광사의 천은사 일주문 편액
</td></tr>
</table>
내 고향의 천은사가 항상 맑고 청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가는비가 흩뿌릴 때 천은사 일주문을 자주 들었던가 보다. 그러나 어쩌면 일주문 편액 탓인지도 모른다. 대부분 사찰의 일주문 편액이 가람의 위세를 과시하듯 힘찬 필세의 글씨라면, 천은사 일주문 편액은 풀잎을 뒹구는 물방울처럼 작고 맑게 흐르는 필세의 글씨였다. 일주문 편액의 분위기가 곧 천은사 가람의 분위기를 대표한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듯하다. 원교 이광사의 '유수체(流水體)'라 하던가. 그런가 보다 했던 것이 불과 몇년 전인데, 작년부터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미술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요, 다년간 서화를 보아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우리나라 탁본첩이나 서첩을 빌려와  일견하면서 수많은 서예가들 중에서 마음에 들어오는 서예가들을 꼽아보았다. 김생, 탄연, 영업, .... 그들 모두가 명필 중의 명필로 꼽히는 분들이었다. 나는 서첩들을 보기 이전에 서예관련 글이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역시 예술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따로이 설명이 필요없고 곧바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인가? 능호관 이인상도 그렇게 만났다. 그에 관한 견문도 없었고 관련 글도 읽은 바 없었지만, 전시된 단 하나의 작품을 통해서 나는 단번에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만큼 나의 고미술 지식이 형편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내가 그들에 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작품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대단히 기쁘다. 내 감각에 대한 확신이 내가 소유한 지식보다 월등히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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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평양에서 온 국보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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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0 Jul 2006 13:35:14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category><![CDATA[문화예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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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평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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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북녘의 문화유산&#8212;평양에서 온 국보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아내가 이 전시회가 열리기까지의 과정을 취재한 MBC 심야스페셜(7월 4일)을 보고 이것을 알았다. 이토록 중요한 전시회 정보를 우연하게나마 접하게 된 것이 천만 다행이다. 아마도 독일월드컵 개막 시기에 전시회가 시작되어 일반인에게 잘 홍보되지 못했는가 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하여 이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blockquote>
<table class="alignleft">
<tr><td style="width:250px;">
<a href="http://www.gosinga.net/wp-content/uploads/2006/07/img02.jpg" rel="lightbox" title="고려 태조상. 고려. 개성시 해선리 현릉. 높이 138.3cm. 국보"><img id="image262" src="http://www.gosinga.net/wp-content/uploads/2006/07/img02.jpg" alt="" width="250" /></a></td></tr>
<tr><td style="width:250px">전시회 포스터를 장식한 고려 태조상</td></tr>
</table>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은 2006년 6월 13일부터 8월 16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 「북녘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들」을 개최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평양 조선중앙력사박물관(관장 김송현)과의 첫 번째 교류 사업으로 개최된 이번 전시회에는 북한이 자랑하는 중요 문화재 90점이 출품되었으며, 그 중에는 국보 50점과 준국보 11점도 포함되어 있다.

지난 3월 24일 양 박물관장이 개성에서 회동하여 전시회에 합의한 이후, 4월 초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가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을 방문하여 유물선정과 전시에 관한 세부 협의를 거쳤다. 5월 4일 금강산을 통해 유물이 무사히 서울에 도착하였고, 그간 한달여의 전시 준비 작업을 거쳐 이번에 특별전을 개막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구석기와 청동기인「상원 검은모루 출토 구석기」와「신암리 출토 청동칼」,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악기樂器인 「서포항 출토 뼈피리」, 고구려의 중요한 금석문인 「고구려 평양성 명문석」등의 고고 역사품이 있으며, 「발해 치미」,「신계사 향완」,「관음사 관음보살」등의 건축과 불교 공예품들이 엄선되었으며, 「선녀도」(김홍도),「소나무와 매」(신윤복),「옹천의 파도」(정선) 등 회화 명품들도 선보인다. 대부분의 유물은 우리 쪽에서 실물로 공개된 적이 없는 유물이며, 일부는 사진으로도 접할 수 없었던 작품들이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1992년 개성의 고려 태조 왕건릉에서 출토된 「고려 태조상」이 일반에게 공개된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학계 일부에 제한적으로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아직 북한에서도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은 비장의 유물로, 이번 서울 전시에서 전격적으로 공개되는 만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상은 발견 초기에는 ‘청동불상’으로 알려졌다가, 후에 연구 결과 고려 태조 왕건의 동상임이 밝혀졌다.

&#8212; <a href="http://www.museum.go.kr/kor/int/int_boa_new_vie.jsp" class="extlink">국립중앙박물관 보도자료</a>(2006년 6월 9일자)에서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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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留齋</title>
		<link>http://www.gosinga.net/archives/905</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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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Nov -0001 00:00:00 +0000</pubDate>
		<dc:creator></dc:creator>
				<category><![CDATA[문화예술]]></category>
		<category><![CDATA[고미술]]></category>
		<category><![CDATA[김정희]]></category>
		<category><![CDATA[유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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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blockquote>
<img id="image360" src="http://www.gosinga.net/wp-content/uploads/2007/03/ujae.jpg" alt="ujae.jpg" />
&#160;

留不盡之巧以還造化
留不盡之祿以還朝廷
留不盡之財以還百姓
留不盡之福以還子孫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로 돌아가게 하고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한다.
</blockquote>

留齋에 대한 첫 풀이,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造化로 돌아가게 한다"는 시서화 모두에 해당하는 말일 게다. 녹봉, 재물, 복이 이세상 살아가는 동안 인간이 수행해야 할 의무와 운명과 관계가 있는 것들이라면, "기교"는 글과 서체와 그림과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완당의 제주 유배시절 제자 남병길에게 써준 留齋 현판과 위의 풀이글은 자신의 시서화와 자신의 운명과 자신의 의무를 말하고 있다. 모든 정신적 위대함은 울타리 밖으로 나설 수 없는 운명적인 순간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인가.

留齋, 남김을 두는 집. 남김을 두어 조화로 돌아가도 좋고 아니 돌아가도 좋다. 그저 남김을 두는 것이 좋고 흡족할 뿐, 그 이후에 덧붙는 가치는 소중히 여길 바가 아니다.
&#160;

留齋에 대한 귀동냥과 사진은 아내로부터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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