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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싱가 숲 &#187; 문화유적답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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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모든 것이 자기 가슴에서 흘러나와야 한다 — 청평사 계곡을 오르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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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6 May 2009 08:04:38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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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들으려 하면 들리지 않는 산골물 소리
우리 시대의 청평사는 언제나 소양호와 함께 기억되겠지만 청평사의 역사는 그렇지 않아 산과 계곡, 강물과 함께 기억되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청평사의 역사를 면면히 적시고 있는 계곡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답사 전날 내린 비는 산과 들과 대지를 풍요롭게 적셨고, 청평사 산골물은 산과 계곡을 흔들며 쏴아 쏴아 무정설법을 토하고 있다.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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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백화 향기는 전각 사이를 흔들며 지나가고 — 운길산 수종사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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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4 Nov 2008 12:10:59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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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종소리는 아름답다. 타종하는 곁에서 듣는 소리보다는 화살 두어 바탕을 띄운 거리에서 아스라히 들리는 소리가 더욱 아름답다. 아득히 소멸할 때 종소리는 마치 산하로 사무쳐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두웅, 두웅, 두웅, . . .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종소리는 관룡사 사하촌 어귀에서 들었던 어둠 속의 종소리였다. 젊은 날 추운 겨울이었고, 버스 종점에서 내리니 이미 사위는 캄캄했다. 그때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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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근원 김용준의 노시산방을 찾아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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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30 Jul 2008 05:58:02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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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심우장, 이태준 고택, 간송미술관, 최순우옛집 등은 성북동 일대를 답사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답사지들이다. 그러나 이재준가는 어느 교회의 부속건물로 쓰이고 있어 답사가 곤란하며 성낙원 역시 개인 소유여서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다. 이재준가나 성낙원에서는 흠모할 만한 정신성을 발견할 수 없어 그곳들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다지 아쉽지 않은데, 노시산방을 답사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노시산방은 근원 김용준이 1934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성북동 집이다. 거의 모든 답사 안내글은 이제는 노시산방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 노시산방이 성북동이 개발되는 와중에 사라진 줄만 알았다. 그러다가 김병종의 &#171;화첩기행&#187;(효형출판 2005)을 읽는 중에 눈을 의심케 하는 대목을 발견하였다: "근원 선생님, 두고 떠나신 성북동 노시산방에는 가을이 한창입니다./ 저는 지금 다시 찾아와 그곳에 서 있습니다."(2권 184면) 아니, 노시산방이 . . . !

김병종의 글에 따르면, 방문 당시의 집 주인은 "자애로운 노년의 여인"이며 노시산방의 옛 내력을 알고 있는 듯 화초를 걷어내지 않고 고스란히 남겨두었다고 한다. 노시산방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감나무 역시 그대로 남아 김병종을 맞아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노시산방의 주소를 밝히지 않고 그저 성북동이라고만 했다. 김병종은 서세옥의 제자이고 서세옥은 김용준의 제자이니, 김병종은 김용준의 고제高弟가 된다. 김병종이 김용준의 &#171;근원수필&#187;과 &#171;조선미술대요&#187;를 통해 "육친의 체취"를 느꼈다고 고백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니까, 노시산방을 자주 방문하여 그 위치를 알고 있었던 서세옥이 김병종에게 노시산방의 위치를 가르켜줬던 모양이다. 서세옥은 노시산방을 이렇게 회고한다:

	<blockquote>
	근원 선생은 성북동 노시산방이라는 조그만 한옥에 사셨습니다. 당시에는 성북동이 서울이 아니고 경기도 고양군이었어요. 성북동에서 삼선교까지 개울이 흘렀는데 아주 일품이었죠. 바닥이 전부 노들바위여서 그 물이 층층 폭포를 이루면서 삼선교로 흘러내렸어요. 그 개울물이 선생이 사시던 노시산방 문 앞에도 흘렀는데, 징검다리를 딛고 건너야 대문으로 들어가게 돼 있었어요. 삼선교에서 성북동으로 오르는 길에는 수백 년 된 소나무, 전나무가 서 있었고, 대낮에도 토끼가 왔다갔다했어요. 참 아름다웠죠.

	&#8212; &#171;근원전집 이후의 근원&#187; 12면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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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붉게 타오르는 성곽 아래 연꽃이 피어나 — 심우장 배관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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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8 Jun 2008 08:01:42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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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strong>붉게 타오르는 성곽 아래</strong>
&#160;

사대문 안을 감싸는 도성의 북쪽 성곽은 북악산 줄기를 따라 흐른다. 우리나라의 산은 아름다우므로, 능선을 타고 흐르는 성곽은 공주산성의 예와 같이 올라섰다간 내려오고 내려오다간 올라서는 자연을 닮는다. 성북동은 성의 북쪽에 있다 하여 지어진 유서 깊은 이름이며, 현재에도 성곽 일부가 남아 있다. 현재와 같이 차폐물이 많지 않았던 때에는 성북동 어디에서나 성이 보였다. 위창 오세창은 간송미술관의 보화각 정초명에서 "우뚝 솟아 화려하니, [도성의] 북쪽 성곽을 굽어 본다"고 하였다. 이 북쪽 성곽은 성북동의 서남쪽에 위치하여 숙정문에서 혜화문에 이르까지 경계를 그으며 흐른다. 아울러 성북동의 서쪽에서 북쪽, 동쪽에 이르기까지는 구진봉의 주능선이 마을을 크게 품으면서 부채처럼 펼쳐져 있다. 그리하여 성북동은 성곽이 있는 깊은 산중, 깊은 골짜기가 된다. 지금은 도시의 모습이 되고 말았지만,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심산유곡"이니 "산협"이니 했다. 선사와 선비와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산과 골짜기.

1933년 성북천 개울 가까이에 터를 잡고 월북할 때까지 살았던 이태준은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성북동 서남쪽 능선을 따라 흐르는 산성을 즐겨 보았다.

<blockquote>
山마라에는 山봉오리 생긴대로 울멍줄멍 城壁이 솟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여 있다. 솟은 城壁은 아침이 첫화살을 쏘는 과녁으로 城北洞의 光明은 이 山上의 옛 城壁으로부터 퍼져나려오는것이다. 한참 쳐다 보노라면 城壁에 드리운 소나무 그림자도, 城돌 하나하나 새이도 빤-히 드러난다. [...]

멀-리 떨어지는 夕陽은 城머리에 다어선 불처럼 붉다. 구불구불 山등셍이로 달려올라간 城郭은 머리마다 타는것이, 어렸을때 자다말고 나와 본 山火의 輪廓처럼 무시무시 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꺼지는 夕陽일뿐, 아무것도 아니다. 고요히 바라보면 지나가는건 그저 바람이요 구름뿐이다. 있긴 있으면서 아무것도 없는것, 그런것은 생각하면 이런 옛城만도 아닐것이다.

&#8212; 이태준, <城>
</blockquote>

이태준이 바라보던 곳, 석양이 성 머리에 닿아 산불처럼 타오르던 곳, 그곳에는 붉은 화롯불 속의 연꽃처럼 심우장이 있었다. 만해 한용운도 이태준과 같은 시기인 1933년에 성북동 송림에 "띄끌세상을 떠나면/ 모든것을 잊는다 하기에/ 산을 깍아 집을짓고/ 돌을 뚜러 새암을 팟다"(한용운, <山居>). 1936년에 심우장을 내방했던 어느 학인은 돌다리를 지나고 나무다리를 건너 심우장 오솔길로 오르면서 "한양의 옛 성을 등지고 돌아앉은 [...] 심산유곡"이라 하였다. 그는 심우장에서 한용운을 면담하고 나서 사위를 살피고는 성북동 심산유곡의 한가로움을 이렇게 기록했다:

<blockquote>
하루 종일 앉아야 어린아이 소리, 사람 자취 하나 들려오지 않는 이곳이건마는 해가 서편 산허리에 기울어졌을 때에는 건너편 골짜기 청룡암에서 들려오는 소린지, 산중턱 미륵암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뎅뎅뎅 하는 저녁 종소리가 점점 가느다랗게 들려올 뿐이다.

&#8212; 春秋學人, <尋牛莊에 參禪하는 韓龍雲씨를 찾아>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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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 신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리소서 — 경주남산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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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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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경주남산. 살아본 적도 없고 가본 적도 없는데, 뭔가가 있어 나를 부르는 듯한 곳. 경주남산의 지도를 훑으면 마음속에 그어지는 굵직한 궤적들. 그 숲길, 내가 나 아닌 분들과 함께 걸어가는 길, 그 길을 그려보자니 마음은 하늘거린다. 부디 이 산하에 비가 내리시라. 비에 씻긴 하얀 꽃잎처럼 마음 얇아지고 투명해지리이다.

남산행을 앞둔 전날 저녁부터, 비는 산하의 수풀과 바위와 흙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남산의 몸뚱이는 밤새 깊이 젖어들고, 그 몸뚱이에 기대어 있는 탑, 마애불, 석불, 보살 들도 그에 일체가 되어간다. 경주남산을 드는 날 아침, 간밤에 중부지방을 강타한 폭우소식이 들려오고, 숙소 창밖으로는 사선으로 몰아치는 빗줄기가 보인다. 모든 것이 비를 맞고 있다. 이 산하의 모든 산과 모든 강이, 중부지방도 천년고도도, 바위도 풀도 나무도 흙도, 물도 바람도 비를 맞고 있다. 내 귀도 비를 맞고 있고 내 눈도 비를 맞고 있다. 모든 것이 일체가 된 시간, 비밀로 가득 찬 경주남산 초행길에 나선다.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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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석등에 불을 놓으리 — 화엄사 효대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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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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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효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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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육조혜능은 일자무식이었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는 선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과 결부되어 신화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스님의 출가동기와 과정 역시 신화적이다:

	<blockquote>
	부친은 내가 어렸을 적에 일찍 돌아가셨고, 노모와 외로운 나는 남해로 이사와서 간신히 가난 속에 나무를 시중에 내다 팔면서 궁핍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어떤 손님이 나의 땔나무를 사 주었습니다. 그 손님은 나를 관청에서 경영하는 여관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손님은 땔나무를 가지고, 나는 돈을 받고 문을 향해서 막 돌아 나오려고 하는데, 그때 갑자기 어떤 객스님이 &#171;금강경&#187;을 독송하는 인연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처음 듣는데도 마음이 맑아지고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객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셨기에 이 경전을 독송하십니까?'

	[중간 생략]

	나는 그 객스님의 말을 듣고, 지난 숙세에 불법과의 인연이 있었음을 알게 되어 곧바로 모친을 하직하고 황매의 빙모산으로 달려가 오조홍인 화상을 찾아뵙고 예배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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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찌 노을이 물을 가려 비치랴 — 병산서원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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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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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병산서원]]></category>
		<category><![CDATA[안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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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안동으로 가는 날, 장마비 내리다.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마주친 한 차례 거센 폭우, 산만한 하늘을 일거에 휩쓸어 정돈하며 북상 중이다. 안동에 접어들었을 때는 이미 폭우가 거쳐간 상태. 말갛게 씻긴 하늘에서는 빗방울 똑똑 듣고 있고, 낙동강은 황톳빛 물결이 되어 하회마을을 감아돈다. 여름의 생태가 격정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몇 마지기의 논마저 낙동강 강물에 잠겼으니 인간의 들녘과 인간의 정신도 재편되지 않을 수 없다. 하회마을로 들어서 병산서원 가는 길은 장마비에 흙이 패여 자잘한 돌들이 토돌토돌 구르는 길. 왼편은 낙동강과 병산이요 오른편은 우리가 어릴적 보았던 시골길 산야의 무심한 풍경. 화려함과 분주함이 없이 그저 고요할 뿐.

한 사람의 정신세계가 재편되는 시절에 장마비 내리고, 병산서원은 찾아오는 길손에게 연달아 연달아 병산의 흐름을 선보이고 있다. 여름날 격정적인 생태 속에서도 산도 강물도 유유히 흐르고 있으니, 정신세계도 유유히 흐르시라.

&#160;

백일홍 필 무렵. 작년, 답사를 시작하면서 처음 보았던 목백일홍. 그 사라락 사라락 피는 꽃을 주목하여 대면한 지 이제 겨우 한 해. 반 평생을 무엇을 보며 살아왔던 것일까. 이제야 꽃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고, 산하에 내리는 풍우와 눈발을 씩씩하게 맞아들이며 수백 수천 년을 견뎌온 유물들을 이제야 접하기 시작하다니.

그간의 결핍된 생을 인정하고 수습하며 병산서원에 당도하니 백일홍이 병산서원 바깥을 두르고 있다. 수목 말고도 담장이 두르고 있으니, 저 안에 누가 있는지, 저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다. 그 폐쇄성의 엄격함에 더하여, 바깥에서 바라볼 때 앙천하듯 바라보아야 한다. 산야의 높낮이를 그대로 살려 누각, 동재와 서재, 강당, 사당을 각각의 규율에 따라 알맞은 자리에 앉힌 그 절도에서 엄정함을 또 엿볼 수 있다.

<div class="lightbox" style="width:250px;">
<a href="http://www.gosinga.net/wp-content/uploads/2006/07/san01.jpg" rel="lightbox" title="복례문에 들어서자마자 강당 마루까지 시야가 확보된다."><img id="image273" src="http://www.gosinga.net/wp-content/uploads/2006/07/san01.jpg" alt="병산서원 진입로" width="250" /></a>
<p>병산서원 복례문에서 바라본 진입로</p>
</div>

조심스러운 듯 반쯤 열린 복례문을 통과하여 병산서원을 들어서다. 후일 지인에게 들어보니 서원을 들어설 때 정문을 통과함은 예가 아니라고 보는 분들도 계시단다. 진작 그런 줄 알았다면, 복례문으로 들어서지 아니하였으리라. 요즘 와서 그같은 예는 의미 없는 겉치레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예'는 자신을 극복함과 동시에 표출되는 그 무엇. 나를 다스리고 나를 이겨내면서, 다시 말해 내가 가진 생각과 정신을 무너뜨리고 극복해 나가면서 나 아닌 외부의 사람, 자연, 사물을 대할 때의 조심스런 자세와도 같은 것. '이 조심스런 자세로 복귀하라', 복례문은 길손의 무례함마저 말없이 받아들이며 크게 가르친다.

복례문을 통과하면 주건물인 강당의 마루까지 시야가 툭 확보된다. 돌계단의 상승일로, 계단과 누마루의 중첩, 두리기둥의 수직 도열. 건축적 공간이 마련해준 이 네모난 공간에 빨려들며 길손의 시선은 강당의 대청까지 직선으로 가 닿는다. 모든 건축적 장치들은 비를 머금고 있어 그 빛깔이 진하고 차분하다. 흐트러짐 없이 어둡고 고요하다. 고요하다. 이 마음을 얻기까지 그간 어디에서 배회하였던 것인가.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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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산하는 영원한 미망을 낳고 — 봄날, 공주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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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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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공산성]]></category>
		<category><![CDATA[공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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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공기는 다사로우나 산야는 아직 잿빛을 벗어나지 못한 봄날, 공주로 향하다. 백제의 옛 도읍지 부여와 공주에 가면 물밀 듯 밀려오는 뭔가가 있어, 생활 속에서 마음 한 켠에 고이 담아두었던 것조차 밀어내고 씻어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 물결 지나가면 다른 한 물결 밀려오는 법, 공주의 봄날은 멀어지는 한 철 한 세월을 고맙게 고맙게 보내라고 한다.

<table class="alignleft">
	<tr>
		<td width="300"><img id="image257" src="http://www.gosinga.net/wp-content/uploads/2006/07/7368a.jpg" alt="목관 화문고리" /></td>
	</tr>
	<tr>
		<td width="300">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목관(복원)의 화문고리</td>
	</tr>
</table>

마곡사를 봄소풍하듯 방문하다. 동구에는 봄나물을 파는 할머니들, 달래와 씀바귀를 사다. 조미되지 않는 자연의 맛 그대로 인간의 몸에 넣을 수 있는 봄나물. 가장 간단한 절차를 거쳐 인간의 몸 안으로 양식이 되어 들어갈 수 있는 그 식물성의 원천은 무엇일까. 동물 중에서 타자를 위해 가장 덜 생산적이며 자신을 위해 가장 많이 소비하는 동물 인간은, 입 안 전체를 매큼한 파맛으로 물들이며 터지는 은달래의 신비로운 형질을 다 알지 못한다. 입 안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그 식물의 형질이 인간을 살지게 하고 인간을 걷게 한다는 단순한 사실 앞에서, 인간은 한사코 모르는 척한다. 아니 그 사실을 철저하게 망각하며 살고 있다.

마곡사를 돌아본 뒤 공주 시내로 들어와 따로국밥을 먹는다. 식당 내부에는 사진작품들이 걸려 있어 식사후에 잠시 살펴보다. 식당 입구에 눈에 띄는 사진 하나, 공산성 사진이 눈에 든다. 때는 겨울날 잔설이 어려 있고 나무들은 나목으로 서 있는 순간이니, 산성의 선은 백제와전의 산수문양마냥 가슴에 뭔가를 치밀어오르게 하는 부드럽고 탄력적인 흐름을 목탄빛으로 애틋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애틋한 부드러움이, 오늘의 답사 내내, 겨우내 기다렸던 봄날처럼 나그네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감쌀 줄은 보는 순간은 미처 몰랐다.

봄날 한낮에 들른 송산리 고분군, 그 출토물에는 목관이 있어 고대적 인간의 죽음을 단정하게 장식하고 있다. 목관 전면에는 화문고리 두 점이 있으니, 부드럽고 탄력적인 원형의 무늬, 아득한 흑갈색 바탕에 연하고 외로운 황금빛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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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꽃을 보는 법  —  시인의 고향, 고창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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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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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무엇이 그리웠던지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바다물결처럼, 봄날은 강인하였던 겨울빛 산하를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이며 점령하고 있다. 자연은 언제나 이렇게 변천하였건만 젊은날의 마음은 그 변천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하였던 것일까. 그러나 이제는 유독 아름다운 봄날, 이 봄날이 과연 몇 번 지면 내 생애도 지는 것일까.

이제 봄날의 꽃이 진다한들 그 홀로 지지는 않는다. 봄날을 찬란하게 음미하는 나의 시선, 나의 숨결, 나의 한 시절을 따고 진다. 언제나 계절이 마음을 앞서 갔으되, 이제는 계절과 마음이 동반하는 듯. 인생의 반 고비를 넘어섰다는 안도감이 든다. 반 고비를 넘기까지 헐떡이며 올라왔건만, 정작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이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 이 고비를 넘어서 이제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가는 곳이 어디라도 좋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가리라. 그동안 추구하였던 뭔가를 모두 버리면 그렇게 갈 수 있을까.

&#160;

풍경은 내면적 인간에 의하여 발견되었다는 어느 문학가의 통찰처럼, 현대인은 스스로 좌절의 터널을 파며 깊이를 획득하였다가, 그 터널을 빠져나오며 풍경을 발견하고서 구원을 얻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가진 깊이의 작위성과 인간이 얻은 구원의 작위성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러나 봄날의 풍경은 저의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움'이라는 이름도 없고 '서러움'이라는 이름도 없다. '가벼움'도 없고 '깊이'도 없다. 오직 풍경을 상실하였던 인간만이 그 풍경을 다시 발견하며 경탄과 애환의 수사를 덧붙힐 뿐이다:

<blockquote>
하여간 이 한나도 서러울것이 없는것들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微物하나도 없는곳에서, 우리는 서뿔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서름같은 걸 가르치치말일이다. 저것들을 祝福하는 때까치의 어느것, 비비새의 어느것, 벌 나비의 어느것, 또는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 것에 대체 우리가 행용 나즉히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이어 있단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完全歸巢가 끝난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山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때가 되거던,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곳의 별을 가르쳐 뵈일일이요, 제일 오래인 鍾소리를 들릴일이다.

&#8212; 서정주, "上里果園" 일부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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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만물의 흐름에 드는 자 있으리니 — 남한강 폐사지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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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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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산등성이에 가파르게 선 나무들이 잔설을 떠나보내고 갯버들 순이 땅바닥의 찬물을 먹고 움트는 때, 남한강의 시원을 향하여 간다. 이즈음의 나무들은 허름한 빛깔이지만 강물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퍼런 경계선을 그으며 흐르고 있다. 이 흐름은 심중을 긋고 흐르는 차가운 물결과도 같아 강물을 따라 굴러가는 차안에도 청신한 기운이 감돈다. 그러다가 또 허름한 산과 마을, 그 누추하고 아늑한 동네. 산하가 깨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산하를 보는 내 눈이 깨어나는 것인가. 원주 거돈사지를 향해 가는 길은 잠들었던 눈들을 깨워 누추한 인간의 산야에 마음을 주라 한다.

인간의 산야! 나의 것도 아니고 너의 것도 아닌, 너와 내가 잘 모르는 추상화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산야, 어느새 그렇게 되어버렸다. 자작고개에 다다르면 이 몹쓸 병이 치유되려나. 언제나 산하는 말이 없고 병든 나는 언제나 질문을 던진다.

흡사 폐사지처럼 느껴지는 마을을 관통하여 거돈사지에 다다르니 저 멀리 저 높이 천 년 묵은 느티나무가 거대한 석축 위에서 작은 사람들의 방문을 굽어보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다 개울 건너 산과 마을을 우두둑 훑어본다. 그리고 검은 느티나무를 다시 쳐다본다. 마을과 산천에서 들어오는 시선들을 모두 틀어잡는 느티나무는 절집과 산천의 경계를 천 년간 무너뜨리며 서 있다. 저 나무에는 산하의 표정이 서렸을 것인가, 절집의 내력이 서렸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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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돈사지 삼층석탑. 폐사지에 선 마음은 허전하고 인간의 생사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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