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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싱가 숲 &#187; «비극의 탄생» 번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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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찬국 번역의 «비극의 탄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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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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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제까지 니체 저작의 번역본들을 읽으면서 가장 실망했던 점은, 번역자의 성실성이었다. <비극의 탄생>을 예로 들자면, 역자는 적어도 희랍비극, 바그너 음악극 등에 관한 기본지식은 갖추어야 한다. 아울러, 니체가 인용하고 있는 인용문의 출처 정도는 최소한 확인을 하고서 번역해야 한다. 니체는 인용부호만 달 뿐 인용문의 출처를 거의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니체는 호기심 있는 학자들을 위하여 일부러 출처를 안밝히기도 했던, 학자들이 보기에는 고약한 취미의 소유자였다) <고증판 니체전집>의 보급판(KSA) 제14권에서 인용문들의 출처를 밝혀놓고 있거니와, 다른 독일어판(가령 골트만 출판사)이나 일본어역본에서는 인용문 출처뿐만 아니라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상세한 주석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역자가 성의만 있다면 이런 책들을 참고하여 충분한 기본지식을 갖추고서 번역할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아침놀>까지의 니체 저서들은 이런 정도의 성실성만 있다면 현저히 오역이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즐거운 학문> 이후의 저서들은 이런 성실성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그 뭔가가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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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극의 탄생» 제18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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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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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하나의 영원한 현상: 탐욕적인 의지는, 사물들에 대하여 허상을 퍼트림으로써, 자신의 창조물들을 삶에 붙들어두고 살아남으라고 강요하는 수단을 언제나 찾아낸다. 어떤 자는 ‘인식에 대한 소크라테스적 욕망’과 ‘바로 그 인식을 통해서 현존의 영원한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겠다는 망상’에 붙들리며, 어떤 자는 눈앞에서 너풀거리는, 예술의 현혹적인 아름다움의 너울에 휘감기며, 또 어떤 자는 ‘현상들의 소용돌이 아래에서 영원한 삶이 파괴되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다’는 형이상학적 위로에 휘감긴다: 의지가 매 순간 준비하고 있는 허상들, 좀더 진부하면서도 거의 더 강하기까지 한 허상들은 언급하지 말기로 하자. 허상의 이 삼단계는 무릇 고귀하게 갖춰진 본성들에게만 있는 것인데, 그들은 깊은 무욕과 함께 현존의 뭇 짐과 무게를 감지하지만, 선별된 자극수단 때문에 그 무욕에 대하여 속아넘어갈 수 있는 자들이다. 우리가 문화라 부르는 모든 것은 그러한 자극수단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혼합비율에 따라 우리는 우선적으로 <strong>소크라테스적</strong>이거나 [우선적으로] <strong>예술가적</strong>이거나 [우선적으로] <strong>비극적</strong>인 하나의 문화를 갖고 있다; 혹은 역사적 선례를 들어도 좋다면, 알렉산드리아적이거나 헬라스적이거나 불교적인 하나의 문화가 있다.

우리의 현대 세계는 온통 알렉산드리아적 문화의 그물에 걸려 있으며, 가장 높은 인식능력을 갖추고 학문에 복무하는 <strong>이론적 인간</strong>을 이상으로 알고 있다. 이 이론적 인간의 원형이자 비조는 소크라테스이다. 우리의 모든 교육수단은 근원적으로는 이러한 이상을 안중에 두고 있다: 그 외의 실존은 모두, 의도된 실존이 아니라 허락된 실존으로서, 별도로 고군분투해야 한다.<footnote>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원문의 문장 자체는 어렵지 않다: jede andere Existenz hat sich mühsam nebenbei emporzuringen, als erlaubte, nicht als beabsichtigte Existenz.</footnote> 여기 [현대세계]에서 교육 이수자가 오직 학자의 형식만 띠게 된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는 것은 거의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우리의 시적인 예술들조차도 확실히 학적 모방에서 비롯하여 발전되고 있으며, 압운押韻의 주요 효과를 보더라도 우리의 시적인 형식이 친밀한 언어가 아니라 정말 완연히 학적인 언어를 통한 예술적 실험으로부터 기원했음을 알게 된다. [우리한테는] 자명하게 이해되는 현대적 문화인간 <strong>파우스트</strong>가 진정한 그리스인에게는 얼마나 이해 불가능한 인물로 비치겠는가. 파우스트는 불만족 속에 온갖 학과를 섭렵해 나가고 앎을 향한 충동에서 주술과 악마에게 심복한다. 현대인이 저 소크라테스적 인식욕의 한계를 예감하기 시작하고 난무하는 지식의 망망대해에서 해안을 비원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파우스트를 소크라테스 곁에 나란히 놓아보기만 하면 된다. 언젠가 괴테가 엑커만에게, 나폴레옹과 관련하여, “그래요, 그래, 행위의 생산성이라는 것도 있어요”<footnote>엑커만, &#171;괴테와의 대화&#187;, 1828년 3월 11일</footnote> 하고 말했을 때, 그는 고아하고도 소박한 방식으로, ‘비이론적 인간은 현대인들에게는 뭔가 믿기지 않는 것,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므로, [그러한 부류의] 아주 생소한 실존형식까지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니 납득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괴테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상기시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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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극의 탄생» 제17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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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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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디오뉘소스적 예술 역시 우리에게 현존의 영원한 욕망에 관하여 확신을 심어주려고 한다: 우리는 이 욕망을 현상들 속에서가 아니라 오직 현상들 배후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생성되는 모든 것이 반드시 고통으로 가득 찬 몰락을 하기 마련임을 인식해야만 하며, 우리는 개별 실존의 경악을 들여다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그렇지만 떨 필요는 없다: 형이상학적 위로가, 분주히 변천하는 형상들로부터 어느 순간 우리를 낚아챈다. 우리는 실제로 짧은 순간에 원초 본질 자체가 되며, 그것의 거침없는 현존욕구와 현존욕망을 느낀다; 삶 속으로 휘몰아가고 [삶 속으로] 들이미는 허다한 현존형식이 과도할 때, 세계의지의 격렬한 생산성이 있을 때, 이제 우리에게 투쟁, 단말마, 현상들의 파멸이 필연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현존을 향한 측정할 수 없는 원초 욕망과 하나가 되는 때, 그리고 우리가 디오뉘소스적 황홀 속에서 이 욕망의 불멸성과 영원을 예감하는 때,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그 단말마의 격심한 가시에 찔린다. 우리는 공포와 연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 산 자들’이 되지만,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strong>하나의</strong> 산 자’—우리는 이것의 생식욕망과 융합된다—로서 그렇다.

그리스 비극의 생성사는 이제 우리에게, 환한 규정성을 띠고서, 그리스인들의 비극 예술작품은 음악정신으로부터 탄생하였음을 말해준다: 바로 이 사상을 통해서 우리는 처음으로 가무단의 근원적이고 몹시 경탄스러운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그리스 철학자들은 두 말할 나위 없거니와 그리스 시인들조차도, 앞서 제시한 비극적 신화의 의미를 결코 개념적 명료성을 가지고 통찰하지는 못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인들의 영웅들은 행동에 비하자면 말은 어느 정도 피상적이다; 신화는 말의 발언을 통해서는 결코 적절한 대상화를 이루지 못한다. 장면의 구성과 관조적 영상들이 계시하는 지혜는, 시인 스스로가 말과 개념을 가지고 파악할 수 있는 지혜보다 더 심오하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면을 셰익스피어에게서도 관찰할 수 있다. 가령 그의 햄릿도 비슷한 의미에서 행위에 비하자면 발언이 좀더 피상적이므로, 앞서 언급했던 저 햄릿론은 ‘말’이 아니라 ‘전체에 대한 심화된 관조와 개관’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 우리한테는 당연히 오로지 말의 드라마로서만 등장하는 그리스 비극과 관련하여, 내 넌지시 드러내기도 했거니와, ‘신화와 말의 저 불일치가 우리를 오도하여, 자칫 그리스 비극을 실제보다 더 표피적이고 비중이 덜하다고 간주하기 십상이며, 그리하여 고대인들의 증언에 의하자면 분명코 그리스 비극이 실제 가졌을 효과에 비하여 피상적인 효과를 전제하기 십상이다’: 말의 시인이 신화의 지고한 정신성과 이상성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던 바를, 창조적 음악가가 됨으로써 매 순간 성공할 수 있었다는 점을 과연 사람들은 얼마나 쉽사리 망각하고 있는가! 물론 우리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비극에 고유한 위로로부터 뭔가를 얻기 위하여, 음악적 효과의 우세를 거의 학술적인 방식으로 재건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적 우세조차도, 우리가 그리스인들이 될 경우라야만, 그것 그대로 감지하게 될 터이다: 반면, 우리는 그리스 음악—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친숙한, 그리하여 한없이 넘쳐나는 음악에 대립하는 [음악]—이 온전히 전개될 때에만, 수줍은 듯한 힘의 느낌에 조응하는, 음악적 천재의 소년가를 듣게 된다고 믿는다. 이집트 사제들의 말처럼, 그리스인들은 영원한 어린아이들<footnote>플라톤의 대화편 &#171;티마이오스&#187; 22b에서는 솔론과 이집트 사제의 만남이 보고되고 있다. 이 만남에서 이집트 사제가 솔론에게, “당신네 헬라스인들은 언제나 어린아이들이고 연로한 헬라스인이라곤 없군요”라고 말한다.</footnote>이며, 비극 예술에서조차 ‘자신들의 손에서 어떤 탁월한 놀이도구가 생성되고—파괴되는가’를 아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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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극의 탄생» 제16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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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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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상으로 상술한 역사적 사례에서, 비극이 오직 음악의 정신으로부터만 탄생할 수 있는 만큼, 그 정신이 사라지면 비극도 확실하게 파멸함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 주장의 파격적인 면모를 완화시키는 한편으로, 우리의 이 인식의 근원을 명시하기 위하여, 이제 자유로운 시선으로 현재의 유비적인 현상 앞에 서야 한다; 좀전에 말했다시피, 우리의 현 세계의 지고한 천구들에서 ‘만족을 모르는 낙관주의적 인식’과 ‘비극적 예술의 갈망’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투쟁 한복판으로 들어서야 한다. 여기에서 나는, 각 시대마다 예술과 비극에 전면적으로 맞섰던 여타의 적대적 충동들, 그리고 현재에도 승리를 구가하며 번지고 있는 그 충동들을 무시하겠다. 현재 그 충동들이 어느 정도인가 하니, 극장 예술들 중에서 가령 소극笑劇<footnote>독일에서 유행한 희극의 일종으로, 인간적 약점을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음담패설을 즐기는 것이 특징이다.</footnote>과 발레만이 넘치도록 번성하는 가운데 모든 이들에게 향긋하지는 않을 꽃을 틔우기에 이르렀을 정도이다. 나는 비극적 세계관에 대항하는 <strong>가장 탁월한 적수</strong>에 관해서만 말하겠다. 시조 소크라테스를 최전방에 내세우고 있는, 가장 깊은 본질상 낙관주의적인 학문에 관해서만 말하겠다는 것이다. 곧이어 내가 보기에 <strong>비극의 재탄생</strong>—독일적 본질로서는 얼마나 다른 부류의 복된 희망이런가!—을 보장하는 듯한 세력들도 거론할 것이다.

저 투쟁 한복판으로 뛰어들기 전에, 먼저 지금까지 정복했던 인식으로 무장을 하자. 예술들을 단 하나의 원리로부터, 즉 개개 예술 작품의 필연적인 생명수로부터 연역해내려고 안달하는 모든 이들과는 반대로, 나는 그리스인들의 저 두 예술가 신성, 아폴론과 디오뉘소스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눈을 떼지 않았으며, 그들을 가장 깊은 본질상 그리고 가장 높은 목표상 상이한 두 예술세계를 대표하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대표자들로 알아보았다. 아폴론은 개별화 원리—이 원리를 통해서만 가상 속에서의 구원이 참되게 이루어질 수 있다—를 광명으로 비추는 천재로서 내 앞에 서 있다: 반면에 디오뉘소스의 신비적인 환호성 아래에서는 개별화의 구속이 갈래갈래 찢기며, 존재의 어머니들, 사물들의 가장 내밀한 씨앗에 이르는 길이 열린다. 아폴론적 예술로서의 조형예술과 디오뉘소스적 예술로서의 음악 간에 쩍 벌어진 이 거대한 대립은, 위대한 사상가들 중에서 딱 한 명에게만 계시되었으니, 그는 헬라스의 신상징술神象徵術로부터 연역함이 없이, 제 스스로, 음악은 여타 예술마냥 현상의 모사가 아니고 직접적으로 의지 자체의 모사이며, 그러므로 <strong>세계의 모든 형이하에 대하여 형이상을</strong>, 모든 현상에 대하여 사물 자체를 제시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음악은 여타 예술과는 다른 성격과 근원이 있음을 인정하였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집, 3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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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극의 탄생» 제15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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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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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예감어린 이 마지막 질문의 의미에서 이제, ‘어떻게 해서 소크라테스의 영향이 이 순간까지, 아니 모든 미래에 이르기까지, 저녁노을 아래 점점 퍼지는 그늘처럼 후세에까지 확산될 수밖에 없는가’, ‘어떻게 해서 그의 영향이 <strong>예술</strong>—그러니까 가장 넓고 가장 깊은 의미, 거의 형이상학적인 의미에서의 예술—의 새로운 창조에 가일층 필요하게 되는 것이며, 어떻게 해서 그의 영향이 그 나름의 무한성을 띠고서 예술의 무한성을 보장하게 되는 것인가’ 하는 점을 발설하지 않을 수 없다.

아테네인들이 소크라테스와 함께 산책하듯 우리가 그리스인들과 함께 산책하고 난 뒤에야, 그 뒤에야 모든 예술마다 그리스인들, 곧 호메로스에서 소크라테스에 이르기까지의 그리스인들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시대와 교양 단계마다 한번쯤은 심각한 좌절을 맛보며 그리스인들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리스인들 앞에만 서면, 자신들이 일군 모든 것들, 겉보기엔 완전히 독창적인 것들, 진정코 경탄스러운 것들이 갑자기 핏기와 생명을 잃은 듯 위축되어 실패한 모작, 즉 희화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저 거만한 민족, 어느 시대에나 배짱을 가지고 자국민 아닌 모든 이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른 저 민족에 대하여 언제나 심중의 분노를 터뜨리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자문한다, 한갓 하루살이같은 역사적 광휘, 한갓 가소로울 정도로 한계가 뚜렷한 제도들, 한갓 의심스러운 풍습의 유덕밖에 제시하지 못하며 심지어는 추한 악덕들을 특색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천재에게 인정하는 존엄과 특별 지위를 [여타] 민족들에게 요구하는 저들은 누구인가? 유감스럽게도, 몹시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그러한 본질을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는 독배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자체적으로 질투, 비방, 분노를 생산해내는 온갖 독으로는 저 자족적인 찬란함을 제거하기에는 미진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리스인들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하물며, 사람들이 모든 것보다 진리를 더 존중하여 이러한 진리, 즉 ‘그리스인들은 마부로서 우리 문화와 여타 문화의 고삐를 쥐고 있다. 그러나 거의 언제나 말과 마차가 너무 볼품없는 것이어서 그 영도자의 영예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기야 그들은 그 사두마차를 몰아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고 자신들은 아킬레우스의 도약<footnote>호메로스, &#171;일리아스&#187; 21권 303-305행 참고</footnote>을 하여 그 절벽을 뛰어넘는 것을 재미로 삼는다’는 진리를 과감하게 고백하는 것임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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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극의 탄생» 제14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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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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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비극을 바라보는 소크라테스의 커다란 퀴클롭스 눈, 즉 예술가적인 홀림Begeisterung의 탐탁한 광기라곤 전혀 타오르지 않는 그 눈을 생각해 본다면—어찌해서 그 눈은 디오뉘소스적인 심연을 호감을 가지고 관조하지 못하는가를 생각해 본다면—플라톤이 일렀다시피 “숭고하고 높이 칭송받는”<footnote>플라톤, &#60;고르기아스&#62; 502b</footnote> 비극 예술에서 그 눈은 도대체 무엇을 볼 수밖에 없었던가? 결과가 없는 듯한 원인이 있는, 원인이 없는 듯한 결과가 있는, 정녕 불가해한 그 뭔가를 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전모는 다채롭고 다중적인지라 차분한 부류의 정서에 거슬릴 수밖에 없겠고, 혹하기 쉽고 예민한 영혼에게는 하나의 위험한 도화선이었겠다. 우리는 알고 있거니와, 그가 유일하게 시 예술의 장르로 파악한 것은 <strong>이솝 우화</strong>였다:<footnote>플라톤, &#60;파이돈&#62; 60e1 이하 참고</footnote> 그것도, 존경받는 훌륭한 겔레르트가 꿀벌과 암탉의 우화에서 시를 칭송하며 노래할 때 띄웠던 겸허한 미소와 함께였다:

<blockquote>
그대는 나를 보고 알리, 그것이 어디에 소용 있는가,
많지 않은 지성을 소유하고 있는 자에게
비유를 통하여 진리를 말해주는 것.<footnote>18세기 시인 Christian Fürchtegott Gellert의 교훈시</footnote>
</blockquote>

그러나 이제, 비극 예술을 멀리해야 하는 이중의 근거, 즉 비극 예술이 “많지 않은 지성을 소유하고 있는 자”를 향한다는 점, 그러므로 철학자를 향하지 않는다는 점은 젖혀놓더라도, 소크라테스로서는 비극 예술이 결코 “진리를 말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는 비극 예술을 알랑거리는 예술, 안이한 것만 제시할 뿐 유익한 것은 제시하지 못하는 예술로 꼽았으며,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러한 비철학적인 유혹거리를 금하고 철저히 멀리하도록 요구하였다; 그 결과 청년기에 비극시인이었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학생이 되기 위하여 가장 먼저 자신의 시들을 태워버렸다. 그러나 체질을 숨길 수 없어 소크라테스의 준칙에 싸움을 걸어 보았지만, 그럴수록 그 준칙의 힘도 저 엄청난 인물의 무게도 갈수록 거대해져, 시마저도 그 당시까지만 해도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지위로 몰아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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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극의 탄생» 제13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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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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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비극의 탄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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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소크라테스가 경향상 에우리피데스와 관계가 있다는 점을 동시대의 고대는 놓치지 않았다; 이 예민한 감각을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제격의 표현은, 아테네에서 떠돌았던, ‘소크라테스는 에우리피데스가 시를 지을 때에 일삼아 도와준다’는 이야기이다.<footnote>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171;유명 철학자들의 삶과 가르침&#187; 2권 5장 참조.</footnote> “좋았던 옛 시절”<footnote>아리스토파네스, &#60;구름&#62; 961행 이하, 1353행 이하</footnote>의 추종자들은 현재의 민중 오도자들을 열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서 그 둘의 이름을 한꺼번에 거명하였다: 몸이며 정신이며 굳건했던 옛 마라톤의 늠름함이 의심스러운 계몽으로 말미암아 육체적, 정신적 힘이 지속적으로 위축되어 희생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그 오도자들의 영향에서 비롯한다고 한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은 반은 분노요 반은 멸시인 이러한 음조로 그들을 이야기하기 일쑤이거니와, 이는 새로운 자들에 대한 충격에서 그렇다. 그들이 에우리피데스를 스스럼없이 포기하는 것이야 그렇다쳐도, 그들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에서 소크라테스가 최상의 일급 소피스트, 모든 소피스트적인 운동의 거울이자 총화로 등장한다’는 점을 두고도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을 수 있는 자들이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위안을 얻는 방법은, 아리스토파네스 자체를 시덥잖은 거짓말쟁이, 시詩의 알키비아데스로 보아 책형에 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는 않고 그러한 공격에 맞서 아리스토파네스의 심오한 본능을 방어하기보다는, 나는 소크라테스와 에우리피데스의 밀접한 연계를 고대의 감수성으로부터 끌어내 입증해 보이겠다; 말하자면, 어떤 의미에서 소크라테스가 비극 예술의 적수로서 비극 관람을 그만두었는가를, 또 어떤 의미에서 에우리피데스의 새 작품이 상연될 때에만 관객이 되었는가를. 자, 두 이름의 긴밀한 연관은 델포이 신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거니와, 그 신탁은 소크라테스가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한 자라고 하면서, 에우리피데스에게 지혜의 경연 2등상을 주었다.<footnote>델포이 신탁의 내용은 이렇다:<blockquote>소포클레스는 현명하다, 에우리피데스는 더 현명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 중에서 소크라테스가 가장 현명하다.</blockquote></foot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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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극의 탄생» 제12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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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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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비극의 탄생» 번역]]></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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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비극의 탄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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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 또 다른 관객의 실명을 거론하기에 앞서, 여기에서 잠깐만, 아이스퀼로스 비극의 본질 자체가 선사하는, 앞에서 서술한, 갈등을 일으키고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저 인상을 기억에 되살려보자. 우리의 습성이나 전승의 장단에 한결같이 맞지 않았던 비극의 <strong>가무단</strong>과 <strong>비극적 영웅들</strong>에 대해 느꼈던 우리 자신의 생소함을 생각해 보자—우리가 저 이중성 자체를 그리스 비극의 근원이자 본질로서, 그리고 서로 얽혀진 두 예술 충동, <strong>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뉘소스적인 것</strong>의 표현으로서 재발견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던 그 생소함을 생각해 보자].

저 근원적이고 전능한 디오뉘소스적 요소를 비극으로부터 솎아내는 것, 그리고 비극을 아예 새롭게 비디오뉘소스적 예술∙인륜∙세계관 위에다 세우는 것—이것이 밝은 조명 아래에서 우리에게 드러난 에우리피데스의 경향이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아, 에우리피데스는 이러한 경향의 가치와 의의에 관한 물음을 신화를 빌어서 동료들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선사하며 던졌다. 과연 디오뉘소스적인 것이 있었겠는가? 그것을 폭력을 써서라도 헬라스 토양에서 근절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가능하기만 하다면야 그래야 한다고 그 시인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러나 디오뉘소스 신은 너무나 강하다: 가장 지성적인 적대자—가령 “박코스의 시녀들”에서의 펜테우스—는 예기치 않게 디오뉘소스에게 현혹당하고, 이 현혹과 함께 자신의 숙명을 향해 치닫는다. 두 노인 카드모스와 테이레시아스의 판단은 노년에 이른 시인의 판단이기도 한 듯하다: 가장 현명한 개인들의 숙고는 저 옛 민속전통들, 영원히 자가증식하는 디오뉘소스 숭배를 뒤집지 못하는가 보다, 아니, 그 기적적인 힘들을 상대할 때에 최소한 외교관처럼 조심스러운 동감을 표하는 것이 온당한가 보구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신은 그처럼 미온적인 동조에 분노를 품고 그 외교관을—여기 카드모스처럼—결국 한 마리 괴물로 변신시킬 수도 있나 보다. 이상의 것들을, 기나긴 생애에 걸쳐 영웅적인 힘을 발휘하여 디오뉘소스에게 저항하였던 그 시인이 우리에게 말해준다—그리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든 혼미로운 현기증을 애오라지 벗어나려고 탑에서 뛰어내리는 현기증 환자와도 같이, 그는 마침내 삶의 막바지에 자신의 적수를 영예롭게 만들고서 자살로 이력을 마감하였다. 이 비극은 그의 경향의 실행 가능성을 저지하려는 하나의 항의이다; 오호라, 그의 경향은 이미 실행이 되고 말았거늘! 기적은 일어난 뒤였다: 그 시인이 철회하였을 때는 이미 그의 경향이 승리를 구가한 뒤였다. 디오뉘소스는 이미 비극 무대에서 일소되고 말았다, 그것도 에우리피데스 입으로 발설된 마성적인 위세를 통해서. 에우리피데스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가면에 불과했다: 그의 입으로 발설된 신성은 디오뉘소스도 아폴론도 아니며, 전적으로 새로 태어난 신귀神鬼, 이른바 <strong>소크라테스</strong>였다. 디오뉘소스적인 것과 소크라테스적인 것: 이것은 새로운 대립이며, 그리스 비극의 예술작품은 이로 말미암아 몰락하였다. 이제서야 에우리피데스는 자진 철회함으로써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더없이 찬란한 신전이 폐허 속에 누워 있다; 그것이 모든 신전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파괴자의 비탄과 고백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에우리피데스가 모든 시대의 예술 판관들의 처벌을 받아 한 마리 괴물로 변신된다한들, 그 누가 그런 빈약한 벌충에 만족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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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극의 탄생» 제11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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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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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비극의 탄생» 번역]]></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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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비극의 탄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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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그리스 비극은 자매지간같은 이전의 모든 예술장르들과 다르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스 비극은 풀리지 않는 모순 때문에 자살을 하여, 그래서 비극적으로 죽었던 반면, 다른 예술장르들은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평온한 죽음의 고령을 맞이하여 핏기를 잃었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후손을 남기고 몸서리침 없이 삶과 이별하는 것이 행복한 자연상태에 어울리는 것이라면, 비극 이전의 예술장르들의 종말은 그러한 행복한 자연 상태였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들은 서서히 하직하며, 생기를 잃어가는 그들의 시선 앞에서는 더욱 아름다운 후손이 이미 나타나, 안간힘을 쓰며 의기 있는 몸짓으로 머리를 쳐들고 있다. 이와 반대로, 그리스 비극의 죽음과 함께 도처에서 뼈저리게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공허가 생겨났다; 언젠가 티베리우스 시대에 그리스 선원들이 외딴 섬에서 “위대한 판이 죽었다”는 격렬한 외침을 들었을 때처럼, 처절한 비탄의 소리로 울린다: “비극이 죽었다! 시 자체도 비극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꺼지거라, 꺼지거라 너희 허약하고 앙상한 아류들아! 저승으로 꺼지거라, 너희 그곳에서 선대 스승들의 빵부스러기로 배를 채울 수 있으리니!”

그러나 그런데도 이제 비극을 자신들의 선구자요 스승으로 흠모하는 하나의 새로운 예술장르가 만개하였을 때에, 그 장르가 그 어머니의 특성들을 가짐은 당연하겠으나 놀랍게도 그 어머니가 기나긴 생사투쟁에서 보여주었던 특징까지 가지고 있음이 인지된다. 비극의 이 생사투쟁을 벌인 것은 <strong>에우리피데스</strong>였다; 저 뒤따라온 예술장르는 <strong>아티카 신희극</strong><footnote>에우리피데스의 영향하에 “신희극”을 발전시켰던 메난드로스(기원전 342년~291년)를 신희극의 시작으로 본다. 신희극은 “고희극”, “중간기희극”과는 달리 디오뉘소스 제의와는 거의 완전히 무관하며 아테네와의 사회적, 종교적 결속도 거의 없다.</footnote>으로 알려져 있다. 극도로 힘겹고 폭력적인 서거를 기념하여, 비극은 신희극에서 변질된 형태로 삶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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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극의 탄생» 제10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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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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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가장 유구한 형태의 그리스 비극은 오로지 디오뉘소스의 고통만을 대상화했으며, 상당히 긴 세월동안 유일하게 현전했던 무대 영웅은 바로 디오뉘소스였다는 점은 공박할 수 없는 전승이다. 아니, 에우리피데스에 이르기 전까지는 단 한번도 디오뉘소스가 비극적 영웅이기를 그친 적이 없으며, 그리스 무대의 모든 유명한 인물들, 프로메테우스, 오이디푸스 등은 단지 저 근원적인 영웅 디오뉘소스일 뿐이라는 점도 동일한 확실성을 가지고 주장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나의 신성이 그러한 온갖 가면 뒤에 은신한다는 점은, 몹시도 빈번하게 경탄을 자아내는 저 유명한 인물들이 지닌 “이상성理想性”의 본질적인 근거이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개체들은 개체로서는 희극적이며, 그래서 비극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로부터, 그리스인들은 비극 무대에 뭇 개체들[이 등장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결론을 끌어낼 볼 만도 하다. 실제로 그들은, “에이돌론”, 모사와 대립하는 “이데아”에 대한 저 뭇 플라톤식 가치평가와 구분이 헬라스의 본질에 뿌리깊이 박혀 있음을 감지했던 듯하다. 아니, 플라톤의 용어를 써서 말하자면, 헬라스 무대의 비극적 군상들에 관하여는 이렇게 말해도 되리라: 진정으로 실재적인 디오뉘소스는 군상들의 다多로, 투쟁하는 영웅들의 가면들로 나타나며, 마치 개별 의지의 그물망 같은 것에 걸려서 나타난다. 나타난 신이 이제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만큼, 그 신은 방황하고 노력하고 고통받는 개체를 닮는다: 그리고 무릇 그 신이 이 서사적 규정성과 명료성을 띠고서 <strong>나타남</strong>은, 저 비유적인 현상을 통하여 자신의 디오뉘소스적인 상태를 가무단에게 해명해 주는, 해몽하는 아폴론의 작용이다. 아니, 정녕 저 영웅, 고통당하는 비의의 디오뉘소스는, 기묘한 신화들이 설명하고 있다시피 마치 어린아이인 디오뉘소스가 거인들에 의하여 난도당하듯, 그리고 이 [난도당한] 상태에서 자그레우스로 숭배되듯, 개별화의 고통들을 손수 겪는 신이다:<footnote>이번 장에서의 니체 서술은 전승된 그리스 신화를 토대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장의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관련 신화를 참고하기 바란다.</footnote>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이 난도질, 본연의 디오뉘소스적 <strong>고통</strong>이라 함은 공기, 물, 흙, 불로의 산화散華라는 점, 그러므로 우리는 개별화의 상태를 모든 고통의 원천이자 원근거로서, 그 자체로는 뭔가 나쁜 것으로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 디오뉘소스의 방긋한 웃음으로부터 올륌포스의 신들이 기원하며, 그의 눈물로부터 인간이 기원한다. 저 난도당한 신으로서의 실존 속에서, 디오뉘소스는 ‘소름끼치도록 야성적인 신귀와 온화하고 너그러운 지배자’의 이중 본성을 지닌다. 견자見者들<footnote>니체는 “보는 자”라는 의미의 희랍어 epoptes를 음역하여 사용했다. 견자는 엘레우시스 비의에 헌신한 이들 중에서 최고 등급에 속하는 신분이다.</footnote>의 희망은 그러나 디오뉘소스의 재생을, 이제는 우리가 예감을 하여 개별화의 종국이라고 보아야 하는 그의 재생을 바라마지 않는다: 다가오는 이 세 번째 디오뉘소스를 향하여 함성처럼 터지는 견자들의 환호송이 쩌렁쩌렁 울린다. 그리고 이 희망 속에서만, 파열되고 개체들로 분쇄된 세계의 얼굴 위에 기쁨의 빛살이 어린다: 영원한 슬픔에 잠긴 데메테르, [그러나] 디오뉘소스를 <strong>다시 한번</strong> 낳을 수 있다고 사람들이 말해 주자 처음으로 다시 <strong>기쁨</strong>을 되찾은 데메테르를 통하여 신화가 형상화하고 있는 것처럼. 이상으로 열거한 관점들에서 우리는 이미 심오하고 비관주의적인 세계관의 모든 구성요소들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strong>비극의 비의의 가르침</strong>도 함께 확보하게 되었다: 모든 현전자의 일체성에 관한 근본 인식, 개별화를 악의 원초 근거로 보기, ‘개별화의 속박은 파괴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쁜 희망으로서의, ‘일체성이 다시 수립될 것’이라는 예감으로서의 예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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