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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싱가 숲 &#187; 니체읽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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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산들바람으로,폭풍으로,나비의너울거림으로</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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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니체는 심미주의의 과장인가? &#8212; 토마스 만의 니체 에세이를 읽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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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5 Mar 2010 18:40:55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category><![CDATA[니체읽기]]></category>
		<category><![CDATA[낭만주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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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토마스 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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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947년 4월에 미국에서 영어로 강연하고 그해 7월에 취리히에서 독일어로 강연하고, 이듬해 독일에서 &#171;우리의 경험으로 비추어 본 니체 철학&#187;(Nietzsches Philosophie im Lichte unserer Erfahrung, Suhrkamp 1948)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토마스 만의 짧은 니체 에세이가 &#171;쇼펜하우어·니체·프로이트&#187;(원당희 역, 세창미디어 2009)의 일부 내용으로 실려 번역되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1889년 니체의 정신적 붕괴를 상기하며 “아, 여기 한 고귀한 정신적 인간이 파괴되었도다!” 하는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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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71;이 사람을 보라&#187;의 번역본 검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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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0 Sep 2008 05:55:41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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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니체는 실스 마리아에서의 경험 이후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이해받기 힘든 존재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부단히 자신을 세상에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171;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7; 이후 &#171;선악의 저편&#187;, &#171;도덕의 계보&#187;의 글 형식이 계속 바뀐 것도, 1886년에 저작들을 재간행하면서 서문들을 추가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될 만하다. 그중에서도 &#171;이 사람을 보라&#187;는 그런 노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8220;모든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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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니체 다큐멘터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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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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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실스 마리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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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embed id="VideoPlayback" style="width:400px;height:326px" allowFullScreen="true" flashvars="fs=true" src="http://video.google.com/googleplayer.swf?docid=-184240591461103528&#038;hl=ko"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embed>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BBC 다큐멘터리 시리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니체 편이다. 1999년에 제작된 것으로 분량은 50분이다. 다큐멘터리는 실스 마리아의 설산 정상부를 걷고 있는 니체로부터 시작된다. (병약한 니체가 과연 3천 미터 고봉의 고지까지 올랐는지는 의문이지만.)

연대기적으로 진행되며, 니체 생애의 흐름에 따라 뢰켄 생가, 트립셴, 실스 마리아, 이탈리아 등지가 화면에 소개된다. 그리고 여러 전기작가와 학자, 니체 서고 관계자가 니체에 관하여 언급을 한다. 50분 분량인데도 무척 짧게 느껴지고 많이 축약되어 있다는 인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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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 사람을 보라»의 차라투스트라 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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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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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그와 같은 것은 시로 지어진 바 없으며, 느껴진 바도 없으며, [수난으로] <strong>치러진</strong> 바도 없을 만큼, 어느 신, 어느 디오니소스가 톡톡히 [수난을] 치르고 있다. 빛 속에서의 태양의 고립무원을 [노래한] 그러한 디튀람보스에 대한 답은, 아리아드네일 터이니 . . . 나 이외에 그 누가 아리아드네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 . . 그러한 모든 수수께끼에 관하여 어느 누구도 이제까지 해답을 얻지 못했으니, 과연 여기에서 그 누가 수수께끼를 보기라도 했을지 의심스럽다. &#8212; 차라투스트라는, 엄격하게, 사람들이 <strong>의미</strong>에 대하여 잘못 파악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과제를 규정한 바 있으니 &#8212; 그것은 또한 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8212;: 그는 모든 과거의 것을 의롭게 하기까지, 심지어 구원하기에 이르기까지 <strong>긍정한다</strong>.

<blockquote>
나는 사람들 사이를, 미래의 파편들 사이를 거니노라: 그 미래는 내가 관조하고 있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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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 사람을 보라»의 차라투스트라 6-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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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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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6.

이 작품은 단연 독보적이다. 시인들은 제외하자: 아마도 결코 그 어떤 것도 이만큼 힘이 흘러넘쳐 실행되지는 않았으리라. 나의 "디오니소스적"이라는 개념은 여기에서 <strong>최고의 행위</strong>가 되었다; 이 행위를 기준으로 하자면, 여타 인간적 실행 전체가 초라하고 제한된 것으로 드러난다. 어느 괴테, 어느 셰익스피어도 이 엄청난 정열과 높이에서는 한 순간도 숨쉬지 못할 만하다는 점, 단테도 차라투스트라에 비하자면 한 명의 신봉자일 뿐 진리를 처음으로 <strong>창조한</strong> 자도 아니요, <strong>세계를 다스리는</strong> 하나의 정신, 하나의 운명이 아니라는 점 &#8212;, 베다의 시인들은 사제들이요, 어느 차라투스트라의 신발끈도 풀어 줄 만한 자격이 전혀 없다는 점, 이것은 모두 극히 미미한 것이며, 이것은 거리(距離, Distanz)에 관해서나 이 작품이 살고 있는 <strong>옅은 하늘색</strong> 고독에 관해서나 어떤 개념도 제공하는 바 없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할 만한 영원한 권리가 있다: "내 주위로 원을 그으니 성스러운 경계를 이룬다; 산이 높을수록 나와 함께 오르는 자는 점점 적어진다, &#8212; 점점 성스러워지는 산들로 나는 산맥을 짓는다." 모든 위대한 영혼들의 정신과 선의를 하나로 모아보라: 그 모든 것을 합한들 차라투스트라의 한 설법(Eine Rede)을 내놓지 못하리라. 차라투스트라가 오르내리는 사다리는 어마어마하다; 그는 어느 인간보다도 더 넓게 보았으며, 더 넓게 의욕하였으며, 더 넓게 <strong>가능했다</strong>. 그가 하는 말마다 반박하는 말이다, 그는 모든 정신들 중에서 가장 긍정하는 정신이어니; 그 정신 안에서는 온갖 대립들이 하나의 새로운 통일로 묶인다. 인간적 본성의 최고의 힘들과 최저의 힘들이, 가장 감미롭고 가장 가볍고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 불멸의 확실성과 함께, 한 샘(Ein Born)에서 솟구쳐 흐른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사람들은 높이가 무엇이고 깊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더더욱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진리가 그렇게 계시될 때의 순간은, 사전에 간파될 만한 [성질의] 순간이 아니며, 가장 위대한 자들 중 어느 누군가에 의하여 예측될 만한 [성질의] 순간도 아니다; 차라투스트라 이전에는 지혜도, 영혼의 탐구도, 설하는 법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것, 가장 일상적인 것이 여기에서는 전대미문의 것들에 관하여 설한다. 금언이 정열로 떨고 있다; 달변이 음악이 되었다; 번개들이 이제까지 예측이 불가능했던 미래들을 향하여 먼저 쳤다. 비유를 가장 강력하게 다룰 수 있었던 기존의 힘은, 조형력의 본성을 향하여 언어가 되돌아가는 것을 막는 허튼짓이 되고 말며 또 빈약해진다. &#8212; 그런데 어떻게 차라투스트라가 내려와 각자에게 가장 호의적인 것을 말하고 있는가! 어떻게 그 스스로 자신의 대척자, 사제들을 부드러운 손으로 붙잡고 그들과 함께 그들을 겪어내고 있는가! &#8212; 여기에서 매 순간마다 인간이 극복되었다, "초인" 개념이 여기에서 지고의 현실이 되었다, &#8212; 이제까지 인간에게서 위대하다고 칭했던 모든 것이 그의 <strong>아래로</strong> 한없이 멀리 떨어져 있다. 태평한 것이, 가벼운 발이, 악의와 오만의 편재가, 그리고 그밖에 차라투스트라 유형에 유형적인 모든 것이, 위대한 것들에 본질적이라고는 그 누구도 꿈에라도 생각하지 못했다. 공간의 그만한 범위에서, 대립적인 것에 대한 그러한 접근성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스스로를 <strong>모든 존재물 중 최고의 종(種)</strong>으로 느낀다; 그리고 차라투스트라가 그 종을 어떻게 정의하는가를 들어보면, 사람들은 나름의 비유를 찾기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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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 사람을 보라»의 차라투스트라 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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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3 Dec 2007 14:15:20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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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그 열흘 씩의 작업들을 제외하자면, 차라투스트라의 해들, 특히 차라투스라 이후의 해들은 유례없는 긴급상태였다. 사람들은 불멸하기 위해서는 비싼 보상을 치른다: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생애에 몇번이나 죽는다. &#8212; 내가 위대한 것의 원념(怨念, racune)이라고 부르는 그 뭔가가 있다: 작품이든 행위이든 모든 위대한 것은 한번 성취되고 나면, 그것들을 실행했던 자를 <strong>대항하여</strong> 즉각 방향을 튼다. 그가 그것들을 실행했다는 것, 바로 그것으로 인하여, 이제 그는 <strong>허약하게</strong> 된다, &#8212; 그는 자신의 행위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며, 더 이상 그것의 얼굴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사람들이 결코 바라지 말아야 했을 그 뭔가를 제 <strong>뒤에</strong> 두다니, 그 뭔가의 안에 인류의 운명이 매듭지어져 있거늘 &#8212; 그리고 이제 그것을 제 <strong>위에</strong> 두다니! . . . 그것이 으깨다시피 하니 . . . 위대한 것의 원념이어라! &#8212;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제 주위에서 듣는 으스스한 정적이다. 그 고독은 일곱 겹의 피부를 가지고 있다. 그 어떤 것도 그것을 뚫고 지나가지 못한다. 사람들(man)이 인간들(Menschen)에게 다가가고 벗들에게 인사하지만, 새로운 적막이 인사할 뿐, 더 이상 그 어떤 시선도 인사하지 않는다. 일종의 폭동이 최선의 경우이다. 그와 같은 폭동을 나는 경험했다, 아주 여러 수준에 걸쳐, 그것도 내 가까이 있었던 거의 모든 이들로부터; 갑자기 거리를 느끼게 되는 것보다 더 깊은 모욕은 없는 듯하다, &#8212; <strong>고귀한</strong> 본성인데도 숭배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줄 모르는 경우는 드물다. &#8212; 세번째는, 사소한 상처에도 피부가 터무니없이 민감하다는 것이다, 온갖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속수무책이라고나 할까. 내가 보기에 이 속수무책은 온갖 방어력을 엄청나게 소모했을 때로 한정되는 듯하다. 방어력이라 함은, <strong>창조적인</strong> 행위들마다, 가장 고유하고 가장 내면적이고 가장 저변인 것에서 비롯하는 행위들마다,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strong>사소한</strong> 방어능력들이 떨어져나갔다고 할 만하다; 그것들에는 그 어떤 힘도 흘러들지 않는다. &#8212; 내가 과감하게 암시까지 해주겠거니와, 사람들은 소화력이 좋지 않으며, 움직이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차가운 감정들과 불신에 대하여 너무나 활짝 열려 있다, &#8212; 불신은, 단지 많은 경우에만, 원인을 잘못 짚은 실책일 따름이다. 그런 상태에서 나는 암소떼의 접근을 감지한 바 있다, 암소떼를 채 보기도 전에, 좀더 온화하고 좀더 인간에게 친밀한 사상들이 회귀하는 것을 단서로 하여: <strong>그것은</strong> 온기를 품고 있느니 . .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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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 사람을 보라»의 차라투스트라 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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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2 Dec 2007 14:19:39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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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나는 그 후로 몇 주간 제노바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그 뒤를 이어 로마에서의 암담한 봄날이 왔다. 그곳에서 나는 삶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8212; 그것은 쉽지 않았다. 차라투스트라의 시인에 대하여 무례하기 짝이 없는 그 지상의 장소는 근본적으로, 지나치게,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곳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지는 않았다; 나는 떠나려고 했다, &#8212; 로마의 반대개념이며 로마에 대한 적의에서 설립된 <strong>아퀼라</strong>로 가고 싶었다. 이는 언젠가 내가 어느 장소를 설립하게 될 방식인 바, 무신론자이자 당연히 교회의 적인 자, 나와 가장 친밀한 자, 위대한 호엔슈타우펜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회상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로마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숙명이었다. <strong>반그리스도적인</strong> 지역을 애써 찾느라 지친 나머지, 마침내 나는 바르베리니 광장으로 만족했다. 내가 고약한 냄새를 가급적 피하기 위해 심지어는 델 퀴리날레 궁에 철학자를 위한 조용한 방이 있는지 묻게 될까봐 염려할 지경이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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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 사람을 보라»의 차라투스트라 2-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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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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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

이 유형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생리학적 전제를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그 전제는 내가 <strong>위대한 건강</strong>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는 이 개념을 "즐거운 학문" 제5부 결론 절들 중 어느 한 절에서 이미 밝혔던 것보다 더 낫게, <strong>더 개인적으로</strong>(persönlicher) 밝히지는 못하겠다. 그 대목은 이렇다: "새로운 자들, 이름 없는 자들, 이해하기 힘든 자들인 우리는, 아직 입증되지 않은 미래의 조산아들인 우리는, 새로운 목적을 위하여 새로운 수단, 즉 기존의 그 어떤 건강보다 더 강하고 더 기민하고 더 굳건하고 더 과단력이 있고 더 쾌활한 건강, 새로운 건강이 필요하다. 기존의 가치들과 소망들의 전모를 체험하고 이 이상적인 "지중해"의 모든 해안을 항해하기를 갈구하는 영혼을 가진 자, 가장 독자적인 경험의 모험들을 통해 이상(理想)의 정복자와 발견자가 어떤 기분인가를 알기 원하는 자, 그와 마찬가지로 예술가·성자·입법자·현자·학자·경건한 자·옛 풍습처럼 신성하게 제정신을 벗어난 자(Göttlich-Abseitiger)가 어떤 기분인가를 알기 원하는 자, 그가, 그것을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하나, <strong>위대한 건강</stro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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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 사람을 보라»의 차라투스트라 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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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9 Dec 2007 13:07:55 +0000</pubDate>
		<dc:creator>고싱가</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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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나는 이제 차라투스트라의 역사를 이야기하겠다. 저서의 근본개념, <strong>영원회귀 사상</strong>, 무릇 도달 가능한 긍정의 최고 공식은, 1881년 8월에 속한다: 그것은 “인간과 시간 너머 6천 피트”라는 서명과 함께 한 쪽지에 투여되었다. 그날 나는 숲들을 지나 실바플라나 호숫가를 걸었다; 수를레이 근처, 피라미드처럼 거대하게 솟은 바윗덩이 옆에서 멈추었다. 그때 그 사상이 내게로 왔다. — 그 날로부터 따져 두 달을 거슬러가면, 나는 내 취향의 급격한 변화, 가장 깊은 곳에서의, 다른 무엇보다도 음악에서의 결정적인 변화를 징조로 발견하게 된다. 차라투스트라 전체를 음악으로 꼽아도 무방하다; &#8212; 확실히 <strong>듣는</strong> 법에서 재생이 있었다. 이것이 예비조건이었다. 비첸차에서 멀지 않은 어느 조그만 산중 온천 레코아로에서, 내가 1881년 봄을 지냈던 곳에서, 나의 벗, 음악가 페터 가스트, 나와 마찬가지로 “재생한 자”와 함께, 나는 음악이라는 불사조가 이제까지 보여준 것보다 더욱 가볍고 더욱 빛나는 깃털로 우리 곁을 스쳐 비상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반대로, 그 날로부터 시작하여 1883년 2월에 급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정황으로 진입하는 출산에 이르기까지 따지면 &#8212; 마무리 대목, 즉 내가 <strong>서문</strong>에서도 몇 문장을 인용했던 대목은, 정확히 신성한 시간에, 리하르트 바그너가 베네치아에서 숨을 거둔 시간에 마무리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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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니체 판본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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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0 Nov 1999 00:0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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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니체]]></category>
		<category><![CDATA[니체전집]]></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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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class="notice">니체 저작들의 간행사와 관련하여 접한 가장 일목요연한 글은 독일 위키피디아의 <a href="http://de.wikipedia.org/wiki/Nietzsche-Ausgabe" class="extlink">Nietzsche-Ausgabe</a> 이다. 그 항목의 본문을 번역하여 소개한다.</a></p>
&#160;

<strong>니체가 쓰러진 뒤, 처음 계획들</strong>

니체는 1888/89년 해가 바뀔 무렵 정신적 암흑에 빠졌다. 그의 저작들은 정본이라 할 만한 형식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부분적으로 예전 저작들은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판본으로 나와 있었으나, 두 저작은 &#8212; 니체가 잘못된 곳들을 지적한 가운데 &#8212; 인쇄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아울러 인쇄되지 않은 자료들이 다양한 마무리 수준 상태로 존재했다. 이 인쇄되지 않은 자료는 프란츠 오버베크가 하인리히 쾨젤리츠[=페터 가스트]와 협의하여 처음으로 수집했다. 이들은 또한 니체의 최종 출판업자인 콘스탄틴 게오르크 나우만과 함께 계속적인 출판작업을 두고 논의했다. 그리고 1890년 말에 처음으로 파라과이에서 귀향한 니체의 누이 엘리자베트 푀르스터-니체가 가족을 대표하여 논의에 참견했다. 그간에 니체 저술의 판매고가 올랐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 1892년 초에 처음으로 전집판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다. 이 전집판은 나우만 출판사에서 간행되었으며, 쾨젤리츠가 이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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