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半香初 水流花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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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singa 作, 일지암. 동백숲에서 머나먼 곳처럼 바라보다.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

고요히 처소에 앉아 차를 반 마시니 비로소 향,
묘한 작용이 일어나 물 흘러 꽃이 피는구나

― 작자 미상

위의 시가 누구의 시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완당고택에는 추사가 직접 쓴 書로 위의 시구가 주련으로 걸려 있어 흔히 완당의 시로 소개되고 있으나 그렇지는 않다. 완당과 초의선사의 친분으로 봐서 초의선사의 시일 가능성도 있으나 이 역시 입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위의 시를 누가 썼는가와는 무관하게, 이 시에 가장 가까운 분으로는 너나없이 초의선사를 꼽을 만하다. 그러므로, 일지암에서 이 시를 음미하는 것은 최고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해남 대둔사에서 반 시간 가량 오르면 일지암에 닿는다. 초의선사가 머물며 “물욕 밖의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음미하고 말하던 곳. 남은 주춧돌을 토대로 초가를 올렸다고 하니, 일지암은 애시당초 한 칸 초가였다.

산중의 물을 받아, 동백숲이 둘러싼 곳에서, 비가 내리는 날, 차를 마신다면, 생활과 산과 비와 물과 차가 하나로 어우러진다. 이 공간에서 소치는 그림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산, 비, 물, 차, 생활, 예술, 그리고 수행.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
고요히 처소에 앉아 차를 반 마시니 비로소 향,
묘한 작용이 일어나 물 흘러 꽃이 피는구나

가만히 읽어보면, 읽는 순간 차를 마시고 있는 듯한 감각이 인다. 이내, 숨이 드나드는 입 안과 콧구멍의 통로로 다향이 짙게 흐르기 마련이다.

위의 시구에서 茶半香初는 흔한 해석처럼 “차를 반쯤 마셔도 향은 처음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다. 茶半香初는 다음 시행의 水流花開와 댓구가 되는 시구로서, 시인은 이 댓구를 활용하여 몸의 움직임과 자연의 움직임을 고품격으로 일치시키고 있다. 차가 몸에 스며들어 향이 나는 것이 물 흘러 꽃 피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차가 목구멍을 통하여 몸 내부로 깊숙히 스며드는 과정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다향이 몸과 마음을 일미에 빠지게 한다. 이는 물 흘러 꽃 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다반향초 수류화개, 몸의 흐름은 자연의 흐름 ― 사람이 자신의 처소에 고요히 앉아 있음이 묘하기도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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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singa 作, 일지암. 암자 뒷켠으로는 샘물을 받아내는 돌확이 보인다.


이 글은 2005년 08월 23일에 작성되어 문화예술(으)로 분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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