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제26품, “바라문”

383 힘써 흐름을 끊으라,
욕락을 없애라, 바라문이여!
행行의 멸진을 알면
무위無爲를 아는 자여라, 바라문이여!

384 두 겹의 법[1]“두 겹의 법”에 대한 일의적인 정의는 보이지 않으며, 다만 여러 맥락에서 일상어처럼 쓰이는 듯하다. 일례로, 「숫타니파타」 제886송에서는 ‘진리, 거짓’이라는 “두 겹의 법”을 언급하고 있으며, 제867송에서는 色을 ‘有(이다/있다)와 非有(아니다/없다)’로 변별함으로써 탄생한 “분노와 망언과 의문”에 대하여 “이 법들은 두 겹으로 있다”는 언급이 있다. 그리고 「상응부」 제35.92경에서는 “눈과 色,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접촉, 意와 법”을 두고 “두 겹”이라 언급하며, 「상응부」 제12.19경에서는 “身과 名色”을 두고 “두 겹”이라 언급한다. 속에서
저편에 이른 바라문이 될 때,
지자知者인 그에게서
일체의 결박이 사라진다.

385 이편도 없으며 저편도 없으며
이편·저편도 없는 자,
무서움이 없으며 결박에서 벗어난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386 선정에 든 자, 물듦 없는 자, 좌정한 자,
할 일을 마친 자, 흘러듦(漏)이 없는 자,
위없는 도리에 도달한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387 태양은 낮에 빛나며
달은 밤에 빛난다.
크샤트리야는 무장할 때 빛나며
바라문은 선정에 들 때 빛난다.
그러나 붓다는 밤낮으로
온종일 광채로 빛나노라![2]「상응부」 제21.11경에서 결집한 부처님의 게송이다. 본래 십구게인데 뒤의 여섯 구만 취했다. 앞의 네 구는 이렇다: “계보를 중시하는 자들에게는/ 크샤트리야가 으뜸이며,/ 천신과 인간들 중에서는/ 명행족明行足이 으뜸이어라.”

388 악을 버렸으므로 바라문이라 하며
고요하게 노닐므로[3]“고요하게 노닒(samacariyā)”은 보통 “여법하게 노닒(dhammacariyā)”과 함께 쓰인다. 두 가지 모두 삼매 속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중부」 제148경의 “왕자님, 이 사람은 출가자라 하옵나니, 여법하게 노닒이 훌륭하며, 고요하게 노닒이 훌륭하며, 선한 행실이 훌륭하며, 공덕의 행실이 훌륭하며, 불상해가 훌륭하며, 존재들에 대한 연민이 훌륭합니다”(M ii. 28)라는 경문 참고. 사문이라 한다.
자신의 티끌을 몰아내고 있으므로
그를 일러 출가자라 한다.

389 바라문을 치지 말라,
바라문이여, [치는] 그에게 분풀이하지 말라.
화 있으리, 바라문을 때리는 자는!
화 있으리, [때리는] 그에게 분풀이하는 자는!

390 바라문에게 가장 나은 것은
의意가 사랑하는 것들에서 멀어지는 것!
해치고자 하는 의意가 물러갈수록
괴로움이 그친다.

391 몸(身)과 말(口)과 의意로
악행을 짓지 않는 자,
그 세 곳을 지키는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392 정등각께서 설시하신 법을
누군가로부터 듣고 분별하거든,
그를 공경히 예배하라,
마치 바라문이 화제火祭를 올리듯.

393 결발結髮로도 혈통으로도
태생으로도 바라문이 되지 못하나니,
진리와 법이 있는 자 —
그가 안락한 자요 바라문이다.

394 우둔한 자여, 그대의
결발이 무엇이며 영양가죽옷이 무엇인가?
안으로는 밀림인데
밖으로는 단장하는구나.

395 누더기옷을 걸치고 야위고
정맥이 드러난 사람,
숲에서 홀로 선정에 든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396 태생이 바라문인 자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지 않는다.
그는 호칭으로만 바라문일 뿐이요
소유所有[4]경에서 말하는 “소유(kiñcana)”는 오늘날 일상적인 의미의 물질적 소유가 전혀 아니며, 탐·진·치를 통해 지어진 존재물을 말한다. 탐·진·치는 한정을 짓고 존재물(所有)을 만들고 특징(相)을 부여하는 자로서, 이 한정과 소유와 상相을 통해 시비·유무·호오·애증의 구체적 존재들이 창조된다. 동시에 마음은 한정되고 소유가 있고 상相이 있게 된다. 그러나 탐·진·치가 끊어져 공하면, 무량하고 무소유하고 무상無相한 심해탈에 이른다. 탐·진·치가 한정를 짓고 존재를 만들고 相을 부여하는 자라는 경증은 「상응부」 제41.7경, “고닷타 경”(S iv. 297) 참고.
 
선가의 용어를 빌자면, “소유”는 “일물一物”이며 “무소유”는 “무일물無一物”이다. “태생이 바라문”이라는 한정과 소유와 상을 통해 창조된 존재는 당연히 “소유가 있는 자, 일물이 있는 자”이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일물도 취하지 않는 무소유자를 일러 바라문이라 하신다.
가 있는 자이다.
무소유자無所有者요 취取함이 없는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5]제396송에서 마지막 제423송까지는 「숫타니파타」 제3.9경, “바셋타 경”에서 취한 것이며, 이 경은 「중부」 제98경으로도 결집되었다. 베다에 통달했던 바라문 학도 바셋타의 “태생에 의하여 바라문이 됩니까, 아니면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됩니까?” 하는 물음에 대해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답하신 것이다.

397 일체 결박을 끊어버리고
갈망이 없는 자,
집착을 넘어선 자, 결박에서 벗어난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398 가죽끈과 가죽띠를 끊고
밧줄과 고삐를 끊고
빗장을 풀어버린 붓다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399 잘못이 없음에도
모욕과 처벌과 포박을 감내하는 자,
인욕을 힘으로 삼고 힘차게 진군하는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00 분노가 없는 자, 금禁이 있는 자,
계戒가 있는 자, 흘러듦이 없는 자,
길든 자, 최후의 몸을 가진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01 연잎 위의 물처럼
송곳 끝의 겨자처럼
욕락에 물들지 않는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02 바로 여기 스스로에게서
괴로움의 멸진을 알아차리는 자,
짐을 내려놓고 결박에서 벗어난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03 혜慧가 깊은 자, 명철한 자,
길과 길 아님을 아는 자,
위없는 도리에 도달한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04 재가자, 출가자를 불문하고
함께 어울리지 않는 자,
거처를 좇지 않는 자,[6]「상응부」 제22.3경의 해석에 따르면 “거처”는 “識의 거처”를 뜻하며, “거처를 좇는 자(okasārin)”는 “識의 거처를 좇는 자”이다. 그리고 “識의 거처”는 色界·受界·想界·行界이다. 바람이 적은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05 움직이는 것들에도 움직이지 않는 것들에도
폭력을 내려놓아
죽이지도 않으며 죽이게 하지도 않는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06 적대하는 자들 중에서도 적대하지 않는 자,
폭력적인 자들 중에서도 적멸에 든 자,
취하는 자들 중에서도 취하지 않는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07 탐貪과 진瞋,
만慢과 위선이
송곳 끝의 겨자처럼 떨어진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08 거칠지 않고 분별 있는 말,
진실된 말을 하는 자,
어느 누구에게도 악담하지 않는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09 여기에서 긴 것이든 작은 것이든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아름다운 것이든 추한 것이든
주지 않은 것을 취하지 않는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10 이 세간에서든 저 세간에서든
원하는 것들이 없는 자,
성향이 없어 결박에서 벗어난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11 애착하는 것들이 없는 자,
앎에 이르러 의문이 없는 자,
‘불사不死에 잠김’[7]“불사에 잠김(amatogadha)”은, “불사에 잠기고 불사로 건너가고 불사로 완결된다”는 정형구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에 도달한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12 여기에서의 공덕[8]“여기에서의 공덕”은 「상응부」 제7.20경을 배경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 경의 내용은 ‘걸식이라는 모양’을 전부로 여기는 바라문에 대한 일침으로서, “여기에서의 공덕”은 곧 ‘걸식이라는 겉모습’을 가리킨다. 제266송~제267송에 대한 주석 참고.과 악덕,
양편의 집착을 넘어선 자,
슬픔이 없는 자, 이탐한 자, 청정한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13 달처럼 흠없고 청정한 자,
흐리지 않고 명징한 자,
즐김과 존재(有)[9]“즐김과 존재(nandībhava)”는 “受에 대한 즐김”과 “有(이다/있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중부」 제38경, “대애진경”의 관련 경문 참고: “낙수든 고수든 비고비락수든 지각되는 受를 즐기지 않고 환대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다. 그 受를 즐기지 않고 환대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 그에게 受들에 대한 즐거움이 滅한다. 그에게 受들에 대한 즐거움의 滅로부터 取의 滅이 있으며 取의 滅로부터 有의 滅이 있으며, 有의 滅로부터 生의 滅이 있으며, 生의 滅로부터 老死ㆍ憂悲苦惱가 滅한다.” 아울러 「숫타니파타」 제1111송의 “안으로든 밖으로든 受를 즐기지 않는다.”가 다한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14 이 난행의 진창,
윤회와 어리석음에서 헤어난 자,
건넌 자, 저편에 이른 자, 선정에 든 자,
흔들림 없는 자, 의문이 없는 자,
취착이 없어 적멸에 든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15 여기에서의 욕락을 버리고
집 없이 유행하는 자,
욕락과 존재가 완전히 다한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16 여기에서의 갈증(愛)를 버리고
집 없이 유행하는 자,
갈증과 존재가 완전히 다한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17 인간적인 결속도 버리고
천상의 결속에서도 헤어난 자,
일체의 결속에서 벗어난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18 즐거움도 즐겁지 않음도 버려서
청량한 자, 취착이 없는 자,
일체 세간을 이긴 영웅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19 중생들의 죽음과 태어남을
모두 밝히 아는 자,
집착이 없는 선서善逝, 붓다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20 천신들도 건달바도 인간들도
행로를 알지 못하는 자가 있나니,
그는 바로 흘러듦(漏)이 다한 아라한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21 앞에서도 뒤에서도
중간에서도 소유가 없는 자,
무소유자, 취함이 없는 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22 황소, 최고의 영웅,
대선인大仙人, 승리자,
흔들림 없는 자, 씻은 자, 붓다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423 전생을 밝히 알고
천상과 악처惡處를 보는 자,
태어남이 다하고
신통지神通智가 완성된 모니,
일체의 완성자 —
그를 일러 나는 바라문이라 하노라.

383 chinda sotaṃ parakkamma, kāme panuda brāhmaṇa,
saṃkhārānaṃ khayaṃ ñatvā akataññū si brāhmaṇa.

384 yadā dvayesu dhammesu pāragū hoti brāhmaṇo
ath’ assa sabbe saṃyogā atthaṃ gacchanti jānato.

385 yassa pāraṃ apāraṃ vā pārāpāraṃ na vijjati
vītaddaraṃ visaññutt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386 jhāyiṃ virajam āsīnaṃ katakiccaṃ anāsavaṃ
uttamatthaṃ anuppatt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387 divā tapati ādicco, rattiṃ ābhāti candimā,
sannaddho khattiyo tapati, jhāyī tapati brāhmaṇo,
atha sabbam ahorattiṃ Buddho tapati tejasā.

388 bāhitapāpo ti brāhmaṇo samacariyā samaṇo ti vuccati.
pabbājayam attano malaṃ tasmā pabbajito ti vuccati.

389 na brāhmaṇassa pahareyya nāssa muñcetha brāhmaṇo,
dhī brāhmaṇassa hantāraṃ, tato dhī y’ assa muñcati.

390 na brāhmaṇass’ etad akiñci seyyo yadā nisedho manaso piyehi,
yato yato hiṃsamano nivattati tato tato sammatimeva dukkhaṃ.

391 yassa kāyena vācāya manasā n’ atthi dukkataṃ
saṃvutaṃ tīhi ṭhānehi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392 yamhā dhammaṃ vijāneyya sammāsambuddhadesitaṃ
sakkaccaṃ taṃ namasseyya aggihuttaṃ va brāhmaṇo.

393 na jaṭāhi na gottena na jaccā hoti brāhmaṇo,
yamhi saccañ ca dhammo ca so sukhī so ca brāhmaṇo.

394 kin te jaṭāhi dummedha, kin te ajinasāṭiyā,
abbhantaran te gahanaṃ, bāhiraṃ parimajjasi.

395 paṃsukūladharaṃ jantuṃ kisaṃ dhamanisanthataṃ
ekaṃ vanasmiṃ jhāyant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396 na cāhaṃ brāhmaṇaṃ brūmi yonijaṃ mattisambhavaṃ
bhovādi nāma so hoti sa ve hoti sakiñcano,
akiñcanaṃ anādān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397 sabbasaṃyojanaṃ chetvā yo ve na paritassati
saṅgātigaṃ visaṃyutt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m.

398 chetvā nandhiṃ varattañ ca sandānaṃ sahanukkamaṃ
ukkhittapaḷighaṃ buddh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399 akkosaṃ vadhabandhañ ca aduṭṭho yo titikkhati
khantībalaṃ balānīk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00 akkodhanaṃ vatavantaṃ sīlavantaṃ anussutaṃ
dantaṃ antimasārīr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01 vāri pokkharapatte va āraggeriva sāsapo
yo na lippati kāmesu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02 yo dukkhassa pajānāti idh’ eva khayam attano
pannabhāraṃ visaññutt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03 gambhīrapaññaṃ medhāviṃ maggāmaggassa kovidaṃ
uttamatthaṃ anuppatt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04 asaṃsaṭṭhaṃ gahaṭṭhehi anāgārehi c’ ūbhayaṃ
anokasāriṃ appicch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05 nidhāya daṇḍaṃ bhūtesu tasesu thāvaresu ca
yo na hanti na ghāteti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06 aviruddhaṃ viruddhesu attadaṇḍesu nibbutaṃ
sādānesu anādān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07 yassa rāgo ca doso ca māno makkho ca pātito
sāsaporiva āraggā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08 akakkasaṃ viññāpaniṃ giraṃ saccaṃ udīraye
yāya nābhisaje kañci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09 yo ‘dha dīghaṃ va rassaṃ vā aṇuṃthūlaṃ subhāsubhaṃ
loke adinnaṃ nādiyate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10 āsā yassa na vijjanti asmiṃ loke paramhi ca
nirāsayaṃ visaṃyutt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11 yassālayā na vijjanti aññāya akathaṃkathī
amatogadhaṃ anuppatt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12 yo ‘dha puññañ ca pāpañ ca ubho saṅgaṃ upaccagā
asokaṃ virajaṃ suddh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13 candaṃ va vimalaṃ suddhaṃ vippasannam anāvilaṃ
nandībhavaparikkhīṇ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14 yo imaṃ palipathaṃ duggaṃ saṃsāraṃ moham accagā
tiṇṇo pāragato jhāyī anejo akathaṃkathī
anupādāya nibbuto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15 yo ‘dha kāme pahatvāna anāgāro paribbaje
kāmābhavaparikkhīṇ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16 yo ‘dha taṇhaṃ pahatvāna anāgāro paribbaje
taṇhābhavaparikkhīṇ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17 hitvā mānusakaṃ yogaṃ dibbaṃ yogaṃ upaccagā
sabbayogavisaṃyutt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18 hitvā ratiñ ca aratiñ ca sītibhūtaṃ nirūpadhiṃ
sabbalokābhibhuṃ vīr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19 cutiṃ yo vedi sattānaṃ upapattiñ ca sabbaso
asattaṃ sugataṃ buddh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20 yassa gatiṃ na jānanti devā gandhabbamānusā
khīṇāsavaṃ arahant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21 yassa pure ca pacchā ca majjhe ca n’ atthi kiñcanaṃ
akiñcanaṃ anādān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22 usabhaṃ pavaraṃ vīraṃ mahesiṃ vijitāvinaṃ
anejaṃ nhātakaṃ buddh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423 pubbenivāsaṃ yo vedi saggāpāyañ ca passati
atho jātikkhayaṃ patto abhiññāvosito muni
sabbavositavosānaṃ tam ahaṃ brūmi brāhmaṇaṃ.

* 각주   [ + ]

1. “두 겹의 법”에 대한 일의적인 정의는 보이지 않으며, 다만 여러 맥락에서 일상어처럼 쓰이는 듯하다. 일례로, 「숫타니파타」 제886송에서는 ‘진리, 거짓’이라는 “두 겹의 법”을 언급하고 있으며, 제867송에서는 色을 ‘有(이다/있다)와 非有(아니다/없다)’로 변별함으로써 탄생한 “분노와 망언과 의문”에 대하여 “이 법들은 두 겹으로 있다”는 언급이 있다. 그리고 「상응부」 제35.92경에서는 “눈과 色,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접촉, 意와 법”을 두고 “두 겹”이라 언급하며, 「상응부」 제12.19경에서는 “身과 名色”을 두고 “두 겹”이라 언급한다.
2. 「상응부」 제21.11경에서 결집한 부처님의 게송이다. 본래 십구게인데 뒤의 여섯 구만 취했다. 앞의 네 구는 이렇다: “계보를 중시하는 자들에게는/ 크샤트리야가 으뜸이며,/ 천신과 인간들 중에서는/ 명행족明行足이 으뜸이어라.”
3. “고요하게 노닒(samacariyā)”은 보통 “여법하게 노닒(dhammacariyā)”과 함께 쓰인다. 두 가지 모두 삼매 속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중부」 제148경의 “왕자님, 이 사람은 출가자라 하옵나니, 여법하게 노닒이 훌륭하며, 고요하게 노닒이 훌륭하며, 선한 행실이 훌륭하며, 공덕의 행실이 훌륭하며, 불상해가 훌륭하며, 존재들에 대한 연민이 훌륭합니다”(M ii. 28)라는 경문 참고.
4. 경에서 말하는 “소유(kiñcana)”는 오늘날 일상적인 의미의 물질적 소유가 전혀 아니며, 탐·진·치를 통해 지어진 존재물을 말한다. 탐·진·치는 한정을 짓고 존재물(所有)을 만들고 특징(相)을 부여하는 자로서, 이 한정과 소유와 상相을 통해 시비·유무·호오·애증의 구체적 존재들이 창조된다. 동시에 마음은 한정되고 소유가 있고 상相이 있게 된다. 그러나 탐·진·치가 끊어져 공하면, 무량하고 무소유하고 무상無相한 심해탈에 이른다. 탐·진·치가 한정를 짓고 존재를 만들고 相을 부여하는 자라는 경증은 「상응부」 제41.7경, “고닷타 경”(S iv. 297) 참고.
 
선가의 용어를 빌자면, “소유”는 “일물一物”이며 “무소유”는 “무일물無一物”이다. “태생이 바라문”이라는 한정과 소유와 상을 통해 창조된 존재는 당연히 “소유가 있는 자, 일물이 있는 자”이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일물도 취하지 않는 무소유자를 일러 바라문이라 하신다.
5. 제396송에서 마지막 제423송까지는 「숫타니파타」 제3.9경, “바셋타 경”에서 취한 것이며, 이 경은 「중부」 제98경으로도 결집되었다. 베다에 통달했던 바라문 학도 바셋타의 “태생에 의하여 바라문이 됩니까, 아니면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됩니까?” 하는 물음에 대해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답하신 것이다.
6. 「상응부」 제22.3경의 해석에 따르면 “거처”는 “識의 거처”를 뜻하며, “거처를 좇는 자(okasārin)”는 “識의 거처를 좇는 자”이다. 그리고 “識의 거처”는 色界·受界·想界·行界이다.
7. “불사에 잠김(amatogadha)”은, “불사에 잠기고 불사로 건너가고 불사로 완결된다”는 정형구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8. “여기에서의 공덕”은 「상응부」 제7.20경을 배경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 경의 내용은 ‘걸식이라는 모양’을 전부로 여기는 바라문에 대한 일침으로서, “여기에서의 공덕”은 곧 ‘걸식이라는 겉모습’을 가리킨다. 제266송~제267송에 대한 주석 참고.
9. “즐김과 존재(nandībhava)”는 “受에 대한 즐김”과 “有(이다/있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중부」 제38경, “대애진경”의 관련 경문 참고: “낙수든 고수든 비고비락수든 지각되는 受를 즐기지 않고 환대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다. 그 受를 즐기지 않고 환대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 그에게 受들에 대한 즐거움이 滅한다. 그에게 受들에 대한 즐거움의 滅로부터 取의 滅이 있으며 取의 滅로부터 有의 滅이 있으며, 有의 滅로부터 生의 滅이 있으며, 生의 滅로부터 老死ㆍ憂悲苦惱가 滅한다.” 아울러 「숫타니파타」 제1111송의 “안으로든 밖으로든 受를 즐기지 않는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